용산에 가면 시대가 보인다

 * Beautiful ones *  
  Name  :  돕헤드     * Go Home

안녕.
오랫만에 편지를 써보기로 했어.

그동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잘 짐작이 가지 않는데, 왜냐하면 한동안 용산 투쟁 하는 것 말고는 정말 아무것도 머리 속에 넣지 않고 살았었기 때문이야.
너무 단순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다른 것들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던 거야.
정말 용산 문제 하나에만 내 온 신경을 집중해서 1년을 보냈던 것 같아.

용산 문제 하나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고 했지만, 실은 용산이라는 것이 매우 많은 가지를 펼치고 있다고 생각해.
이건 처음에는 국가폭력의 문제로 시작이 되었지.
제어받지 않는 공권력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가는 결국 모조리 공개된 검찰의 수사기록에 다 나오잖아.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은 일단 몽둥이를 들었다고 하면 민중의 고통이나 절규 같은 것에는 애초에 관심도 없고, 그저 지배계급을 위한 이 불평등한 체제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제거하는 것에만 골몰할 뿐이야.
그 과정에서 민중의 목숨을 앗아간다고 해도 저들은 눈 하나 깜짝하거나 반성하는 법이 없지.
심지어 검찰이라는 최고위 공권력이 나서서 그런 학살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만행을 덮어주었잖아.
국가의 명령에 반항하려면 21세기 민주화된 사회라는 지금도 여전히 목숨까지도 걸어야 하는 시대잖아.
끔찍한 국가폭력 앞에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한 인권의 가치는 얼마나 보잘 것 없었는가 생각해보니 정말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었어.
겨우 내가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몸부림을 쳤나 생각하니 기가 막히더라.

그런데 용산은 또 국가폭력의 문제만은 아니었어.
거기엔 천문학적인 이윤을 긁어들이는 대기업 재벌들이 그 추악한 본모습을 드러낸 채 또아리를 틀고 있었고, 자본가들의 성공을 욕망하고, 그들의 제품을 소비하고, 그들에게 아첨하고 비위나 맞춰주면서 떨어지는 떡고물을 받아 먹으며 나름 안락하게 살아가는 또 수많은 중산층들이 있었어.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용산4구역을 재개발해서 얻는 1조4천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은 과연 어디서 나온 것일까?
돈을 얻는 자가 있으면 분명 뺏기는 자도 있겠지.
용산은 돈을 뺏긴 철거민들이 저항의 과정에서 목숨까지 빼앗긴 경우잖아.
이게 과연 우리가 원한 세상인가.

그래서 결국 용산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 어디에서 살아갈 것이냐는 질문을 집요하게 던지고 있어.
매일 우리가 접하는 광고에 등장하는 화려하고 깔끔하며 세련된 삶, 아파트와 자동차와 쇼핑몰과 아이폰을 욕망하는 삶이야말로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돈과 목숨까지 빼앗는 체제를 만들어온 것은 아닌가 묻고 있잖아.
우리의 삶 중 가장 본질적인 것이 주거와 먹거리라고 해본다면, 우리는 주거와 먹거리에서 모두 대기업 자본가들에게 종속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해.
2008년 촛불 이후 많은 사람들이 로컬 푸드에 관심을 갖는 것도, 지역에서 순환되는 먹거리 자립에 관심을 갖는 것도 같은 맥락일거야.
이제 우리는 주거에서도 대기업이 만들어주는 도시 아파트가 아닌, 분명히 다른, 자립적이고 자치적인 주거공동체를 이뤄나가야 해.
용산 남일당 망루에서 희생된 열사들이 그런 물음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해.
이래도 당신은 초고층 아파트에서 살고 싶습니까? 라고 말야.

우리는 355일간 용산 현장에서 대안적인 운동을 펼치려 무진 애를 썼었던 것이지.
구체적으로 우리는 레아라는, 투쟁의 현장에 마련된 복합 공간에 둥지를 틀고 새로운 대안의 가능성을 찾아 하루 25시간을 보냈던 거야.
가장 처참한 공간에서 가장 소박하지만 나름대로 화려한 부활을 꿈꾸었고, 최소한 저 멀리 보이는 시티파크의 초고층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들과는 다른 식으로 관계를 맺고, 다른 식으로 살아볼 수 있었어.
가장 폭력적인 공간이었기에 가장 치열할 수 있었고, 가장 치열할 수 있었기에 가장 생기가 넘쳤고, 가장 생기가 넘쳤기에 용산 현장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지금도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투쟁을 할 때 미학적으로 최고의 아름다움이 성취된다고 생각해.
아니, 성취고 뭐고 할 것이 없이, 그런 투쟁에는 아무런 꾸밈도 아무런 수식도 아무런 치장도 필요하지 않아.
그냥 그 자체로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춤이 되는거야.
가장 아름다워서 그 앞에 서면 눈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며 마음이 움직이게 되는 상태랄까.
감동적이잖아.

용산 현장에 마련된 레아에 머물면서 나는 그런 경험을 자주 했었어.
이건 대추리에 살 때 논밭에 나가 일을 하는 농민들에게서도 자주 느꼈던 바야.
이것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아름다움이구나.
그들의 삶.
질기고 질겨서 누군가 억지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삶 자체가 풍기는 아름다움이랄까.
아름다운 것은 계속 보고싶고, 함께 하고 싶은 거잖아.

그래서 내가 계속 이곳에 있었는지도 몰라.
철거민들은 어느새 가수였고, 어느새 춤꾼이었고, 어느새 시인이었어.
함께 있는 것이 매일 너무나 슬픈 경험이었는데, 동시에 너무나 아름다웠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 아름다움을 담아내볼까 한거야.
내가 만드는 음악이 그 아름다움을 담아낼 수 있을까?
저 감동의 백만분의 일이라도 담아낼 수 있을까?
그래서 남일당이 헐리고, 레아가 부서지고, 용산 현장이 잊혀지고, 이곳에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자본가들이 허허 웃으며 수십조원을 긁어들인다 하더라도 그곳에 살았던 이름 모를 풀뿌리 사람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 저항이 얼마나 눈물 겹도록 아름다웠는지 10년 후 누군가 우연히 '용산에 가면 시대가 보인다' 음반을 듣게 될 때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을까?

송경동 시인이 얼마전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이라는 괜찮은 시집을 냈는데, 난 이 음반을 통해 지금 내게 주어진 모든 물음들에 답하고 있다고 생각해.    
넌 왜 그렇게 되도 않는 짓거리를 벌이느냐는 물음부터, 왜 그렇게 일에 파묻혀 밥도 제대로 먹을 시간도 없이 지내느냐는 물음까지, 너처럼 노래를 못하는 가수는 처음 본다는 웃음에서부터 '와 저는 예전부터 조약골의 팬이에요' 하는 칭찬까지, 레아 1층에 앉아 있으면 오며가며 물어보는 사람들의 사소한 질문들에서부터 바로 옆에서 같이 투쟁을 하고 있는 전문 시위꾼 친구들의 호기심까지, 음악은 어디에 울려퍼져야 하는지, 노래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기타가 탱크보다 강한지, 음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 능력이 없는 사람은 그냥 포기해야만 하는 것인지, 왜 짓밟힌 사람이 계속 더 큰 폭력에 시달려야 하는지, 왜 나는 고통스러운 것인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나는 왜 살아가는 것인지, 나는 무엇인지... 모든 물음들에 대해 그저 이 음반을 들려주고 싶어.
그래서 한 장 한 장 손으로 일일이 만들고 있어.
이건 무척 정성을 들인 선물이야.
멍청하게 보일 수도 있어.
돈을 조금만 들이면 깔끔하고 화려하고 번듯하고 일률적이고 똑같이 생긴 시디들이 공장에서 찍혀져 나올 것이고,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가서 시디를 사오고 굽고 인쇄하고 검사하고 자르고 붙이고 신경을 쓰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되니까.  

모든 것은 그저 즐거운 투쟁이야.
내가 용산에서 보낸 1년도, 경찰에 항의하고, 지나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전단지를 돌리고, 현장의 소리를 일일이 녹음하고, 노래를 부르고, 짐을 내놨다가 다시 들여오고, 편집하고, 인터넷에 올리고, 뿌리고, 사람들을 만나고, 밥을 먹고, 회의를 하고,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1인시위를 하고, 집회를 하고, 조직하고, 그리고 이렇게 나온 음반을 만드는 것도 모두가 즐거운 투쟁이었던 것 같아.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매일 이런 빡센 일정들을 내가 어떻게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그 활력은 도대체 어디서 샘솟아 나왔던 것일까 궁금하기도 해.
아마 남일당 망루에서 산화해간 다섯 열사들이 내 가슴 속에 살아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던 것 같아.
'당신을 가슴 속에 묻겠다'는 말도 있잖아.
당신들은 2009년 1월 20일에 학살을 당했지만, 내 마음 속에서 지금까지 살아계셨던 것이지.
무언가 든든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을 거야.
용산의 열사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억울하고 부당한 폭력에 맞서 자유와 인권과 평화와 정의를 위해 싸웠던 사람들이 모두 내 가슴 속에 함께 하고 있었겠지.
우리는 그렇게 계속 살아 남아왔으니까.
앞으로도 우리는 어디에서나 그렇게 계속 살아 남을테니까.

그렇게 길을 걸으며 생존을 위해 즐겁게 투쟁하는 가운데 나는 노래도 만들고 여행도 떠나고 맛있는 채식요리도 먹어보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사랑하고 고양이들과도 인사하고 아찔한 대자연의 장엄함 앞에 더없이 작아지는 내 모습도 느낄 때가 오겠지.
아,  어느새 장례식을 치르고 이제는 용산을 떠나야 할 때가 다가왔어.
지금까지는 매일 잡히는 일정들과 약속들 그리고 해야 할 일들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는데, 그러다보니 여행이라든가, 인도네팔 식당에 가서 말라이 코프타와 알루 고비와 팔락 파니르 같은 것을 시켜먹는다든가, 쇼핑을 한다든가, 요즘 무슨 영화가 개봉했나 알아본다든가, 텔레비전에서는 누가 나오고 뭐가 유행이고 누가 웃기고 누가 무엇으로 힛트를 치고 있는지 등등을 생각할 겨를이 전혀 없었어.
정신의 다이어트를 한 기분이야.
마음의 다이어트를 한 것처럼 개운한 느낌이랄까.

사실 이번 5집 음반을 만들면서 넣고 싶은 부분들, 넣어야 할 소리들이 너무나 많아서 부득이하게 '다이어트'를 할 수밖에 없었어.
그러니까 음반 하나에 들어갈 수 있는 최대 시간은 80분인데, 355일 간의 용산참사를 한 장의 오디오 다큐멘터리에 오롯이 담아내려고 하다보니 이것도 넣고 저것도 넣고 싶은데, 그러다 보면 100분이 넘어가고 2시간이 넘어가고 10시간이 넘어가는 거야.
줄이고 줄일 수밖에 없더군.
용산엔 너도 알다시피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유가족도 있고, 4구역 철거민들도 있고, 신부님들도 있고, 범대위 활동가들도 있고, 레아 사람들도 있고, 저마다 모두 용산참사 해결을 위해 힘을 모은다고는 하지만 생각도 다르고 방식도 다른데 이것을 그냥 모조리 섞어놓을 수도 없고, 짬뽕도 좋지만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어울리되 서로 완전히 일치될 수 없는 그 태생적 다름도 서로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드러낼 수 있는 음반을 만들고 싶었어.

복잡하지?
그래, 음반을 만든다는 것도 책을 한 권 쓰는 것만큼, 장편 다큐멘터리 영상을 완성하는 것만큼 힘들고 고된 작업이야.
정신적으로도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작업이란다.
용산참사 355일간 많은 일들이 벌어졌는데, 그중 무엇을 드러낼 것인가, 이것은 동시에 무엇을 드러내지 않을 것인가 하는 물음이기도 한데, 나는 내가 살아가는 그리고 투쟁하는 그래서 이루고자 하는 원칙과 목표와 신념과 철학과 입장이 여기서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그것을 감추려고 해도 어차피 드러날테니까 일부러 감추려고 하지도 않고, 일부러 드러내려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드러날테니까 그럴 필요도 없었던 것이지.
용산참사라는 하나의 컨셉트 앨범에서 각각의 트랙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서사적 구조를 갖고 그에 따라 자리를 잡고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 말이 너무 딱딱하게 들린다면 그냥 뭐랄까 하나의 트랙들이 다음에 오는 트랙과 그 전에 나오는 트랙들과 자연스러운 흐름을 이루도록, 그래서 각자가 자연스럽게 자기의 자리에 놓이는 그런 음반을 만들고 싶었어.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끈끈하게 맺어진 노래들과 인터뷰와 소리들이 이 음반에서 저마다의 자리를 잡고서 개성있게 보이되 전체적으로 보면 용산참사 355일이라는 내러티브를 완성할 수 있도록 기획하려다보니 이렇게 복잡하게 되었구나.
그래도 음반은 음반이니 그냥 틀어놓고 네가 하고 싶은 딴일을 하면 될거야.

이제 나는 용산을 떠나도록 할께.
네게 선물로 준 이 음반을 들으며 언젠가 너도 이곳을 기억하게 되겠지.
그리고 참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도 어디에선가 아름다운 영혼들이 네 주위에 있다는 것을 눈물 한 방울 흘리며 느끼게 될거야.  
그것으로 나는 족해.
새로운 세상이라는 것도, 전혀 다른 삶이란 것도 이미 우린 모두 거쳐갔던 것 아니겠어?
우리가 바라는 시대란 지금 우리가 만들고 있는 시대니까 말야.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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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가면 시대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