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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자매연대 2011-11-15 12:32:29, Hit : 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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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기자회견문 및 자료]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희망의 버스는 계속 달려갑니다!
[기자회견문 및 자료]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희망의 버스는 계속 달려갑니다!

- 기자회견문
- 희망의 버스 이후 계획
- 희망의 버스 승객들에게 드리는 글
- ‘희망의 버스’ 송경동 시인 수사에 대한 문화예술단체 성명서




<기자회견문>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희망의 버스는 계속 달려갑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가 노사 합의에 이르고 농성 309일만에 85호 크레인 농성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비록 아쉬움이 남지만 정리해고자 모두가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에서 희망을 봅니다. 이것은 김진숙 지도위원과 크레인 농성자들, 끝까지 절망하지 않고 투쟁해온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자들, 그리고 희망버스에 함께했던 이들의 연대의 마음이 만나서 이룬 성과입니다. 아주 작은 힘밖에 없는 이들이지만 모이고 울고 웃고 서로를 위로하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우리는 보았습니다. 고통과 무기력에 빠져있는 이들이 힘을 얻고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소금꽃’이라는 연대의 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희망의 버스는 한 정거장을 지났습니다. 우리가 목표하는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아직 멀리 있지만 우리는 달려가고 있으며 그곳에 도달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재벌과 정부는 우리가 두려움을 갖고 분열하고 경쟁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희망의 버스는 계속 발전하고 세포분열을 하여 자신이 소금꽃임을 알고 권리를 찾기 위해서 애쓰는 이들, 그리고 그들과 연대하기를 원하는 모든 이들이 있는 이곳저곳에서 희망의 이름으로 연대의 이름으로 계속 이어나가고 발전할 것입니다. 이렇게 연대의 풍성함이 자본과 정부의 압박과 압력을 누르고 이윤이 아니라 노동의 가치가 더 중요하게 존중되는 사회로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희망은 계속 자라납니다.

우리는 공권력에 대한 불복종운동을 선언하며 재벌의 사병에 불과한 공권력에 대해 국가손해배상소송과 집단대응으로 맞설 것입니다. 아직도 희망버스 참여자들에 대한 엄정수사 운운하는 검경은 김진숙지도위원과 희망버스 참여자들의 구속영장을 기각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인 의지를 제대로 읽고 정신 차려야 합니다. 오늘 희망의 버스에 함께해왔던 두 명의 승객이 경찰조사를 받으러 갑니다. 경찰 조사를 받으러 가는 것은 그들의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리해고의 부당함과 연대의 의미를 알리고 우리의 당당함을 보여주고자 함입니다. 연대의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이들을 탄압하고 두려움을 심어서 침묵하게 하려는 정부와 재벌과 공권력의 의도는 더 많은 이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그 권력을 무너뜨리는 힘이 된다는 것을 반드시 보여줄 것입니다.

조남호와 재벌에 대해 경고합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자들은 1년 이내에 반드시 현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만약 이 합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면 희망의 버스에 함께했던 모든 승객들은 ‘분노의 버스’를 타게 될 것입니다. 정리해고는 경영상의 이유로 인해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하며 정리해고 다음날 주식배당을 챙기고 성과금 잔치를 벌이는 것이 단지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만은 아닙니다.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하청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탄압하는 현대자동차, 1,400일이 넘도록 농성하는데도 여전히 용역깡패를 동원하는 악질 재능자본, 무수한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며 해고자 복직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쌍용자동차 등 많은 자본들이 지금도 우리의 삶을 파괴하며 자신들의 이윤만을 챙기려고 합니다. 이런 1%에 맞서 모든 이들의 권리와 삶을 지키기 위해서 희망의 버스는 계속 달릴 것입니다.



2011년 11월 15일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의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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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1> 희망의 버스 이후 계획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희망의 버스는 계속 달려갑니다.


◯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이루어질 때까지 희망버스는 계속 달립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에 노사가 합의하고 85호 크레인 농성은 마무리되었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많은 과제가 있습니다. 희망의 버스가 한진중공업 문제 해결만을 위해서 출발한 것이 아니기에, 재벌의 탐욕에 의해 해고되고 삶이 파괴되는 이들이 있는 한, 희망의 버스는 결코 멈출 수 없습니다. 희망버스는 누군가 기획하고 만든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사람이 죽어서는 안 된다’는 소박한 마음을 지닌 이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후의 희망버스가 지난 1차에서 5차까지처럼 많은 이들이 모여서 연대의 마음을 전하는 대규모 집회가 될 지, 아니면 소박한 마음을 담아 투쟁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지속적 연대의 버스가 될 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희망의 버스는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계속 달려간다’는 것입니다.

◯ 11월 19일 부산에서 이후 방향을 이야기하고 즐겁게 만나는 자리를 갖습니다.

매번의 희망버스의 방향과 기조는 승객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의견을 반영하여 결정했습니다. 이후 희망버스의 방향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가 해결되었다 하더라도 이후 희망버스는 어떻게 달려갈 것인지에 대해서 희망버스 승객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마련할 것입니다. 2011년 11월 19일(토) 5시 부산에서 희망버스 승객들이 함께하는 ‘승객들의 이야기마당’을 열 것입니다. 희망버스에 참여했던 각 지역, 예술인, 교수, 종교인, 인권단체, 학생, 철거민, 비정규직 등 무수히 많은 이들이 희망버스에 대한 바람과 방향을 이야기하는 공간을 만들 것입니다.

그날의 자리는 또한 희망버스 승객들이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만나서 서로를 위로하고 이후 지속될 연대의 마음을 다지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한진중공업 크레인 농성자들, 정리해고자들, 가족대책위원회, 그리고 희망버스 승객들, 부산지역의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만나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희망버스 승객들 모두 참여하여 즐거운 자리를 만들어봅시다.

◯ 소환자들의 집단대응과 국가손해배상청구소송 등 불복종 운동을 확산할 것입니다

희망의 버스가 달려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공권력의 실체를 확인했습니다. 공권력은 집회와 통행을 임의로 가로막고 물대포와 최루액을 난사하고, 참여자들에게 소환장을 남발하고 체포영장을 들이미는 등 도를 넘는 횡포를 자행했습니다. 희망의 버스 참여자들은 이러한 횡포에 굴하지 않고 희망의 버스에 탑승했으며, 이러한 공권력의 태도에 항의하여 소환거부와 진술거부로 맞서왔습니다.

소환자들은 대부분이 조사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조사를 받는다는 것이 수사에 협조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의 당당함을 보여주고 이후에도 계속 투쟁하겠다는 의미를 담아 진술거부를 지속할 것입니다. 앞으로 사법처리 절차가 진행되면 더 많은 이들이 재판 과정에서 공권력의 폭력의 부당함을 폭로하고 불복종함으로써 공권력을 바로세우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 일환으로 희망의 버스 관련 소환자들에 대한 법률비용과 벌금 등에 대해 집단적으로 힘을 모을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권력의 횡포에 대해 국가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할 것입니다.

◯ 희망버스의 의미와 성과를 밝히고 연대운동을 확산하는 토론회를 개최할 것입니다.

희망버스는 계속 달려갈 것이지만 당연히 기름도 넣고 정비도 해야 합니다. 앞으로 더 달려가자면 이제야말로 ‘말들의 잔치’가 필요합니다. 희망의 버스 운동 과정에서 승객들이 자발성을 보여주셨고, 문화예술인들이 매번의 희망버스를 풍성하게 만들었으며, 인권활동가들의 헌신도 빛났습니다. 지역에서도 자발적으로 모임을 구성하여 함께했습니다. 이런 연대의 성과가 한번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하려면 이제는 돌아보기가 필요합니다.

희망버스의 의의와 성과를 밝히고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하는 토론회를 개최할 것입니다. 그 토론회 역시 희망버스 승객여러분들이 주인이 되어서 만들어나가고 더욱 풍성해지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희망버스 토론회 준비팀에 승객 여러분들이 적극 참여해주십시오.

◯ 투쟁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연대의 공간을 언제라도 열겠습니다.

희망버스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연대의 마음을 가진 모든 이들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야말로 외롭고 힘들게 투쟁하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이 전해지고 연대와 위로의 마음이 전해지는 모든 곳이 바로 희망버스입니다. 벌써 더 많은 희망버스가, 더 많은 희망비행기가, 더 많은 희망도보가, 더 많은 희망편지가 전해지고 만나고 모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희망입니다.

권리를 찾기 위해서 애쓰는 이들과 연대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버스는 연대의 공간을 열어나갈 것입니다. 당장 19명의 목숨을 앗아간 잔인한 자본이 있는 쌍용자동차, 1,400일이 넘는 투쟁을 하고 있는 재능교육 등 지금도 투쟁하는 곳에 희망을 전하고자 하는 분들이 함께할 수 있도록 연대의 공간을 열겠습니다. 희망버스는 그렇게 다시 만들어지고 투쟁하는 이들과 같이 할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900만 비정규직과 해고자들, 최저임금도 안되는 임금으로 삶의 고통에 빠져있는 이들에게 다시 일어서 권리를 찾고자 하는 용기를 불어넣고 그런 힘이 점점 커질 수 있도록 하면서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향한 우리의 꿈을 현실화할 것입니다.

◯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 약속이 지켜질 때까지 지켜볼 것입니다

쌍용자동차가 노사합의를 했지만 그 약속은 버려지고 아직 아무도 현장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랜 투쟁 끝에 맺은 합의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재벌과 그를 비호하는 정권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경험했습니다.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아지면 항복하는 척하다가 다시 그 약속을 저버리거나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재벌들을 흔하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안 됩니다. 재벌들이 반드시 약속을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한진중공업 노사합의가 마무리되었지만 정리해고자들이 현장으로 돌아가기까지는 아직 1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한진중공업이 합의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고 정리해고자 모두가 현장으로 돌아갈 때까지 희망의 버스는 계속 조남호를 지켜볼 것입니다. 그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면 사회적인 약속을 버리는 재벌에 대해서 반드시 응징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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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2> 희망의 버스 승객들에게 드리는 글

우리는 언제 이겼을까


송경동(시인)

정신없이 봄여름가을이 갔다. 생각해보니 단 하루도 일이 없는 날이 없었다. 가을에 접어들면서는 눈만 열면 눈물이 쏟아지던 일주일여가 있기도 했다.

이렇게 막막한 시간을 김진숙 선배와 박성호, 박영제, 정홍형, 그리고 단식 40여일만에 실려내려와야 했던 신동순 조합원은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그 아래에서 하루하루 가슴을 태우며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은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힘들 때마다 그들과 희망의 버스를 지켜주는 승객 여러분들을 생각했다. 함께 일하며 몇 달 동안을 낮밤없이 피로감에 지치면서도 굳건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잃지 않으려는 깔깔깔 벗들을 생각했다.

작년 이맘때엔 병원에 있었다. 기륭전자비정규 투쟁 당시 포크레인에서 떨어지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병원에 누워 있는데 구미KEC와 현대자동차비정규직 투쟁 현장에서 두 분이 분신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GM대우비정규직들이 정문 아치에 오르고, 부산에서 김진숙 선배가 85호 크레인에 올랐다는 소식과 대우조선비정규직 강병재씨가 고공철탑에 올랐다는 소식이 다시 들려왔다. 그때마다 이 시대에 대한 싸늘한 분노와 안타까움이 가슴을 저몄다.

특히 김진숙 선배가 오른 85호 크레인은 93년 김주익 열사가 목을 매달고, 곽재규 열사가 도크에 떨어져 죽은 한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곳이었다. 그후 8년동안 방에 불을 때지 않고 살았다는 김진숙이 어떤 마음으로 그곳에 올라갔을까, 간담이 서늘했다. 무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재능과 쌍용, 콜트콜텍, 발레오, 유성, 전주버스도 모두 마찬가지였지만 85호 크레인 그곳은 그냥 단위사업장의 어느 한 곳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의 지난 서러운 역사가 고스란히 배인 곳이었다. 최소한의 노동자들의 자존심이 지켜져야 하는 곳이었다. 다시는 절망의 무덤이 되지 않고, 희망의 등대가 되어주어야 하는 곳이었다.

희망의 버스는 그 모든 분노와 안타까움이 모여 만들어졌다. 누구 몇 사람이 기획하고, 제안한 게 아니다. 실제 희망버스가 기획된 곳도 쌍용과 재능과 콜트콜텍 등의 농성장이었다. 연대에 목말라 본 우리라도 저 외로운 85호 크레인에 연대하자가 시작이었다. 실제 1차 희망의 버스의 주동력은 그간 그렇게 싸워왔던 현장의 동지들이었다. 기륭과 동희오토, GM대우, 홍대 등 청소노동자투쟁, 그리고 용산과 두리반 등에서 싸움을 함께 지키던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진정성이 희망의 버스의 엔진이었고, 주원료였다.

잊지 못할 감동의 순간들이 참 많다.

희망의 버스는 깔깔깔이라는 유쾌한 형태를 띄었지만, 안으로는 수없이 많은 노동자민중의 눈물이 가득찬 눈물의 버스였다. 1차 당시 공장문을 나서는 우리에게 양말 하나씩을 나눠주던 조합원들과 가족들의 눈물, 3주만에 인권버스, 성소수자버스, 반값등록금버스, 교수학술, 문화예술인버스, 보건의료, 종교인, 촛불시민, 철거민 버스 등 실제로 전국에서 193대의 버스가 만들어지던 2차의 순간들, 하루 40km를 걸어내려가던 쌍용차 정리해고자들과 소금꽃 천리길의 사람들, 다시 쌍용차 가대위들이 한진 가대위 분들을 만나기 위해 출발시켰던 희망의 열차, 황금같은 휴가를 반납하고 몰려든 1만 2천여명의 사람들의 물결로 장관을 이루었던 3차, 걸어걸어 새벽까지 산복동 고개를 넘어가던 사람들, 4차 때 ‘모든 비정규직들의 행진’이 조직되던 과정, 그간 십수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안타깝게 고공농성에 들어가야 했던 노동자들의 100명의 연대, 그리고 이름없이 희망의 버스를 함께 지켜주었던 지역 희망의 버스의 승객들이 보여주었던 수많은 일들. 그 모든 이들의 뜨거움이 일순 한국사회의 지형을 바꿔나갔다. 모두가 모두에게 감동을 주며 함께 이겨왔던 지난 반년이었다.

물론 벽도 많이 느꼈다. 앞으로의 과제다.

재벌의 사설경비대가 되어 철통같이 영도를 지키던 경찰들의 차벽과 폭력을 쉽게 넘을 수 없었다. 정리해고 철회를 무슨 사회주의 운운하며 막아서던 이데올로기의 벽도 높았다. 희망버스를 절망버스라고, 훼방버스라고 공격하며, 희망버스의 운동이 한진이라는 단위사업장의 울타리를 넘어 악독한 재벌체재 전반에 대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전반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저항과 분노로 터져나오는 것을 막으려 했던 청와대와 보수수구 언론들의 벽도 완강했다. 재벌총수의 국회 출석은 있을 수 없다고 발악을 하던 전경련과 경총의 반사회적 저항도 넘어야 했다. 6.27 기만적인 노사협의서라는 합법의 울타리도 넘어야 했다. 무엇보다 지난 십수년 우리 내부를 좀먹어왔던 패배주의를 넘어야 했다.

결국 우리는 김진숙과 그의 동료들이 안전하게 이 평지로 내려올 수 있게 했다. 아니 그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 우리 모두의 미래를 조금은 안전한 곳으로 옮겨왔다. 감사하고 존경한다. 2차를 준비하던 때, 가장 크레인에 대한 탄압이 강경했을 때, ‘희생자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각오했다고 하던 크레인농성자 박성호의 전언을 들었을 때를 잊을 수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이를 악물던 때가 기억이 난다. 그들의 강고한 투쟁을 받아 우리가 예까지 함께 왔다. 희망의 버스는 그런 우리 모두의 공동운명체였다. 우리 모두가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함께 투쟁한 당사자들이었다. 그 모든 승객들 한 분 한 분이 진정한 우리 시대의 승자들이었다. 그 분들이 앞으로 더 나은 우리 사회를 열어가는 소중한 연대의 힘들이 될 것임을 믿는다.

잊지 말 것은 희망의 버스는 이제 막 출발한 새내기 버스라는 것이다. 십수년동안 자행된 수백만에 이르는 노동자들의 정리해고와 900만명에 이른 비정규직 노예노동 체재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사회적 연대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다시 19분이 죽어간 쌍차로 가야하는 것 아니겠냐고 하던 어떤 벗의 이야기처럼, 김진숙과 그의 동료들이 안전하게 우리 곁으로 내려오던 그날,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 가족들에게서는 열아홉번째의 죽음이 발견되었다. 전화를 드린 문정현 신부님은 그 순간에도 강정에서 경찰들과 대치 중이라고 경황이 없다고 했다. 이 억울함을, 이 분노를, 이 참담함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런 최소한의 조직도 없어 이름없이 일상속에서 매일매일 짓밟히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빼앗긴 노동과 삶의 고통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1400일을 싸우고도 다시 100일 결사투쟁을 결의했다는 재능교육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한을, 5년을 넘게 싸우고 있는 콜트콜텍의 기타만들던 노동자들의 소박한 꿈을, 다시 잘려나가고 있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단 한순간도 희망의 버스가 질 것이라고, 수많은 김진숙들이 질 거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멈추지 말고 다시 함께 달려가자. 더 나은 사회는 가능하다. 이젠 서로가 서로에게 기획자들이 되어주자. 이곳으로 가자고, 저곳으로 가자고, 서로 먼저 제안해주고, 실천해 가자. 1%에 맞선 99%의 승리는 멀지 않고 우리는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잃지 말자. 우리는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꿈을 잃지 말자. 과거의 썩은 관념들과 잔해들로부터 탄압을 한번씩 더 받을 때마다 나의 우리의 영혼이 한층 더 맑아지고 밝아지는 일이라는 기쁨을 잃지 말자.

다시 한번 이 모든 과정에 함께 했던 백기완 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이들께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이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힘이 하나 있다. 물대포도, 최류액도, 경찰의 차벽도, 온갖 허위 이데올로기와 어떤 구조적 벽들로도 그 눈부신 힘의 출현을 막을 수 없다. 그것은 사람이 사람다움을 실현하는 소박한 순간들이다. 끝내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권력도 명예도 아닌 이것뿐임을 기억한다. 희망의 버스의 어떤 구석 자리든 한 자리는 꼭 나의 자리여야 함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 더 기운차게, 밝게, 뚜렷하게, 투철하게 미래를 위한 모든 이들의 투쟁에 함께 하겠다.

한 명 한 명이 밝은 빛이 되어 이 모든 과정 지켜내 준 나의 소중한 깔깔깔 벗들에게, 그리고 묵묵히 나를 다시 지켜준 관호와 수정에게 고맙다는 말을 내려놓는다.

자, 이제 다시 웃으며, 끝까지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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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진보신당 비정규노동실장

희망의 버스를 함께 타고 한진중공업 해고자들과 연대하였던 많은 분들, 그리고 지지의 마음 모아주신 시민 여러분께 인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함께 준비하고, 운전하고, 탑승했던 많은 분들, 거리에서 처음 뵈었던 많은 분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장면들이 하나씩 떠오릅니다. 밤새도록 목이 쉬어가며 마이크를 잡고서 함께 참여한 분들의 마음과 의지를 표현했던 순간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서로를 느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기자회견을 하고, 다시 부산으로 간다는 사실이 조금은 낯설고 실감이 가질 않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참석하신 기자들, 그동안 희망의 버스와 함께 했던 많은 분들과 우리의 뜻을 다시 나눌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쁘고 행복합니다.

며칠전 85크레인에서 김진숙님이 내려오는 순간에는 트위터에 짧은 글조차 남기지 못했습니다. 손을 꼭 잡고 지켜보았습니다. 수천의 글이 동시에 쏟아졌고, 눈에 맺힌 눈물 때문에 화면을 읽기조차 어려웠습니다. 김진숙님과 함께 크레인을 지키셨던 분들이 무사히 조합원들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일요일 밤,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순간. 이제야 입을 열고 손을 풀고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저는 오늘 이렇게 당당하고 결연한 의지로 다시 부산을 찾지만, 경찰의 출석요구 때문에 가족들까지 피해를 당하며 고통을 받고 있는 분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저의 가족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 방학중에 여름캠프를 데려다주러 집을 나서려다가 잠복중인 부산 경찰에 의해 체포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체포를 당한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분들이 함께 항의를 하면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아이들을 많이 걱정해 주셨습니다. 그 후에 큰 아이는 가끔씩 저를 만나러 올 때마다 묻곤 했습니다. 해고자 아저씨들 언제 회사로 돌아가냐고.

아이들에게 비친 모습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그 뜨거웠던 여름날의 물대포와 색깔도 기억나지 않는 차벽, 새까맣게 거리를 점거한 전경들을. 그 고통의 순간에 아빠가 넘어서고 싶었던 것, 수많은 친구들과 함께 만들고 싶었던 희망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이곳에 갇힌 아빠가 보려고 찾아온 아이들에게 말하고 듣습니다.

희망의 버스는 거침없이 달렸습니다. 여름휴가를 거쳐 아침산행으로,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가을소풍으로. 이제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다시 써내려 갑니다.

여러분께 전하고 싶고, 함께 만들고 싶은 이야기는 아직 끝날 수 없습니다. 제가 떠나는 오늘의 부산행은 여전히 또 하나의 “희망의 버스”입니다. 정리해고의 고통과 비정규직의 굴레는 아직도 우리를 숨막히게 하고 있고, 저 거대한 절망의 벽은 별 탈이 없다는 듯이 우리를 협박하고 비웃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참여하는 경찰조사와 유치장, 재판정은 결코 폐쇄된 감옥이 아닙니다. 절망의 벽을 넘어서는 새로운 도전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낼 새로운 희망의 공간이 될 것입니다.

“시민여러분 무엇이 두렵습니까?”. 기억하시는지요? 그날, 그 어두웠던 밤, 그렇게 해서 방송은 끊겼습니다. 저들은 그렇게 케이블을 끊어버릴 수 있었지만, 우리의 소중한 연대와 마음의 선은 결코 중단시킬 수 없습니다.

그때 전하지 못했던 말, 꼭 하고 싶었던 말을 오늘 다시 이곳에서 전합니다.

“급하게 걷더라도 옆을 바라봅시다. 넘어진 분이 있으면 손을 내밉시다. 잡은 손 놓지 않고 함께 걸어가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함께 걷는다면 우린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희망입니다. 희망은 반드시 승리합니다. 우리는 승리합니다!”

2011년 11월15일. 희망의 버스 승객, 정진우(진보신당 비정규노동실장).



<자료 3>

‘희망의 버스’ 송경동 시인 수사에 대한 문화예술단체 성명서

노동자․시민의 새로운 희망을 향해 ‘희망의 버스’는 언제나, 그곳으로 출발할 것이다.


우리에게 ‘희망’이란 단어는 낯설기만 하다. 비정규직, 실업, 자살, 출산 기피 등이 일반화된 한국 사회에서 희망을 입에 담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불편하다. 오랫동안 한국사회에서 희망이란 단어는 사회적 모순을 감추거나, 사회적 투쟁과 비판을 유예하거나, 사회적 착취를 미화하는 문법으로 오염되어 왔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2011년 송경동 시인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예술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제안하고 자발적으로 확산된 ‘희망의 버스’ 운동과 마주했다. 사실 희망의 버스는 사회적 절망에서 시작했다.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진숙과 85호 크레인을 바라보며 느껴야 했던 무기력함, 수많은 제2, 제3의 김진숙이 존재함에도 아무렇지 않게 폭주하고 있는 고장 난 자본주의 앞에서, 일상의 곳곳에서 강요당해야 했던 무수한 절망들 속에서.

희망의 버스는 패배주의 속에서 희망을 고대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을 강요당해야 하는 노동자, 시민들이 직접 자신의 힘으로 희망을 찾아 떠나는,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는 여행이었다. 그 여행의 정거장과 목적지에서 우리는 고장 난 자본주의를 넘어 노동자와 시민이 연대하고 우정을 나누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냈다. 기적처럼.

우리는 지난 11월 10일, 85호 크레인에서 309일 만에 살아서 돌아온 김진숙을 마주했다. 김진숙은 “즐겁게, 의연하게, 담대하게,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라는 약속을 지켰고, 그녀의 뜨거운 눈물과 환한 웃음은 이미 새로운 희망을 향해 있었다. 한진중공업의 노사합의와는 또 다르게 우리 사회의 반복되는 노동자 탄압, 고장 난 자본주의에 맞서 새로운 희망, 또 다른 희망의 버스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그녀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 희망의 버스는 결코 멈출 수 없다고 믿는 또 한 사람이 있다. 희망의 버스를 기획했던 사람 중의 한 명인 송경동 시인. 그는 11월 15일 오전 11시 스스로의 의지로 경찰에 출두한다. 그가 제안한 희망의 버스는 수많은 노동자와 시민들에게 희망을 전달했지만, 그는 희망의 버스를 기획했다는 이유만으로 오랜 시간 동안 경찰의 탄압을 받아왔다.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던 송경동의 상상력과 시 그리고 굳은 연대가 김진숙을 우리에게 돌려보냈지만, 이제 송경동은 희망을 두려워하는 경찰, 검찰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송경동은 김진숙이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오는 순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무사히 내려온 것은 다행스럽고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1400일 넘게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재능교육과 5년째 정리해고에 맞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콜트콜텍 노동자 등 수많은 노동자와 이웃에게 관심을 가져야 해요. 지금이 출발점이자 시작점이 돼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 역시 희망의 버스가 계속돼야 한다는,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탄압과 해고가 중단되는 그 날까지 수많은 희망의 버스가 계속 출발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경찰과 검찰은 송경동의 육신을 공권력과 법률이라는 올가미로 가두려 하겠지만, 그의 말과 시는 단 한 순간도 갇히지 않고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갈 것이다.

우리 문화예술인들 역시 김진숙과 송경동과 함께했던 우정과 연대 그리고 희망의 몸짓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 노동에 대한 존중, 문화예술의 상상력에서 시작된 우리들의 연대는 시인 송경동을 비롯한 문화예술의 표현을 둘러 싼 어떤 탄압에도 당당하게 맞설 것이다. 그 어떤 강고한 권력과 폭력도 문화예술을 결코 가두어 둘 수 없다는 역사적 사실을, 가두려고 하면 할수록 문화예술의 상상력과 열정은 시가 되고 그림이 되고 노래가 되어 더 깊고 넓게 퍼져나갈 것이라는 진실을 또 다른 희망의 버스로 확인시켜 줄 것이다.

송경동 시인의 출두는 그의 말처럼 ‘희망의 버스’ 운동의 종착점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또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노동자, 사회적 소수자 등을 위해 희망의 버스를 언제나, 그곳으로 출발시킬 것이다. 우리의 상상력과 열정을 가득 담아서.

2011. 11. 15.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 책 작가 모임, 리얼리스트100, 문화다양성포럼, 문화사회연구소, 문화연대, 서울독립영화제,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시민자치문화센터, 영화인회의, 우리만화연대, 인디다큐페스티발, 인디포럼작가회의, 최소한의 변화를 꿈꾸는 사진가 모임, 콜트콜텍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와 함께하는 문화노동자들, 파견미술팀,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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