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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자매연대 2011-03-25 14:42:49, Hit : 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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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주거와 인권] 미류 - 전세대란, 문제는 주거권이야
천주교인권위원회의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 2011년 3월호 (178호) 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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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와 인권] 전세대란, 문제는 주거권이야

        2011년 03월 23일 (수) 20:07:23         미류(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친할수록 큰돈을 함부로 빌려주지 말라는 얘기가 있다. 돈이 들고 나는 건 워낙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빌려준 사람은 빌려준 대로 마음이 불편하고 빌린 사람도 빌린 대로 불편하다. 약속한 날에 갚게 되면 말끔하지만 속절없이 늦어지다 보면 서로 얼굴 보기가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법적으로 빌려준 사람은 채‘권’자, 빌린 사람은 채‘무’자라, 굳이 따지면 빌려준 사람이 우위에 있다. 빌린 사람이 어지간히 더 눈치를 보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똑같은 돈이라도 전세보증금은 전혀 다르다. 돈을 빌려준 사람이 빌린 사람 눈치를 어지간히 봐야 한다. 돈을 그냥 빌려준 게 아니라 집을 빌리는 대신 돈을 빌려준 것이라 하더라도, 쌍방이 서로 눈치 보지 않는 게 상식적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집에 못 하나 박는 것도 눈치 보이지만 언제 돈을 더 달라 할까 안절부절 못한다. 심지어 집을 빼고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도 눈치를 봐야 한다. 집이니 더 눈치 보지 않아야 할 텐데 집이라 더 눈치 봐야 하는 현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전세대란’의 배경

전세제도는 한국에만 있는 임대차제도다. 세입자들은 월 임대료를 내는 일반적인 방식보다 전세제도를 선호한다. 월세가 전세보증금의 이자보다 훨씬 비싸기 때문이다. 전세보증금을 조금씩 불려서 궁극적으로 내 집으로 들어가는 것은 매우 익숙한 전략이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약간의 위험, 그러나 매우 타격이 큰 위험을 감수하고 전셋집을 구하게 된다. 그런데 전세제도가 성립하려면 월세보다 싼 전세보증금 이자에 만족하고 집을 빌려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 전세제도의 비밀이 있다. 수십 년 전부터 한국의 집값은 꾸준히, 그리고 큰 폭으로 상승했다. 집을 샀다가 충분히 오른 후 다시 파는 것이 짭짤한 장사가 된다. 그래서 굴릴 돈이 있는 사람들은 부동산 시장에 눈을 돌렸다. 전세보증금을 끼고 집을 사두면 곧 집값이 오르고 적절한 시점에 팔아 재산을 불릴 수 있다. 만약 집값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지 않으면? 시세차익을 노려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어들 테고 이미 집을 가진 사람들은 전세금을 올리거나 월세로 전환하려고 한다. 그게 ‘전세대란’이라고 불리는 현상의 배경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것을 ‘원인’으로 보고 엉뚱한 해결책을 내놓고 있다. 정부나 건설업자들이 말하듯 주택시장의 수요 공급이 ‘원인’이라면 우리는 전세 공급자를 늘리고 전세 수요자를 줄이는 정책을 선택해야 한다. 국토해양부는 작년에 전세대란을 우려하는 연구용역보고서를 받고도 “크게 우려할 일 아니다”, “내놓을 수 있는 대책은 다 내놨다”는 발언을 해왔다. 전세값이 계속 오르면 전세수요자들이 차라리 집을 살 것이라고 예측했기 때문이다. 전세 수요자가 쉽게 줄어들지 않자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하겠다거나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하겠다거나 하는 대책을 내놓은 이유도 그것이다. 집을 사서 전세로 공급할 사람들을 늘리고, 전세로 살려는 사람들은 집을 사도록 만들겠다는 것. 그래서 전세 시장이 안정되려면 집값이 올라야 한다는 당혹스러운 결론이 나온다.

한편, 전세시장이 균일하지 않다는 점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대표적인 버블 지역에서 2~3억 원의 전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과, 어딘가에 요행히 3~4천만 원의 전셋집을 구해 사는 저소득층에게 시장의 조건은 다르다. 저소득층은 이미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RIR)이 고소득층보다 높아, 덩달아 오르는 전세금 부담은 저소득층에게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할 때 선택할 수 있는 집도 훨씬 제한적이다. 주거환경을 개선하겠다며 여기저기 개발로 들쑤신 통에 중대형 빈집들이 남아도는 반면, 소형 저렴 주택은 줄어들었고 지금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집을 구할 지역의 선택 범위도 좁다. 소득이 낮고 고용이 불안정할수록, 직장에서 멀리 떨어진 집에 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보증부 월세로 가야 하는 경우도 많아진다. 시장에서 흔히 전세보증금의 월 1%. 연 12%를 월세로 받다 보니, 비싼 전세금은 고스란히 월세 부담으로 전환된다. 이들에게는 전세대란보다 비싼 월세가 더 문제다.

정부가 지난해 말 문제가 그리 녹녹치 않음을 깨닫고 전세금 대출 확대 등의 정책을 내놓았지만 이 역시 집주인들의 전세금 인상을 거드는 대책일 뿐, 정작 ‘전세대란’으로 저소득층이 겪는 고통을 해소할 수가 없다. 정부가 수요 공급을 원인으로 보면서 선택할 수 있는 방안 중 스스로 전세 공급자가 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는 시늉만 하고 있다. 결국 정부는 수요 공급의 불일치를 원인으로 지목하며 세입자의 고통에서 눈 돌리고 ‘주택 수요자’-누구나 집을 사야 하느니!-의 빈 지갑만 쳐다보며 현재의 상황을 방치하고 있다. 그것은 이명박 정부가 부동산 경기 부양을 끝내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입자들에게 힘을

시 세차익을 노려 집을 사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이고, 임대차제도가 월 임대료 방식으로 변화하는 것도 부정적인 현상은 아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말 그대로 ‘전세대란’의 배경이다. 지금 많은 세입자들이-전세든 월세든- 극심한 주거불안정을 경험하게 된 것은, 전세금 인상이든 전월세 전환이든 집주인이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임대차제도의 한계 때문이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리고 싶을 때, 남들 올리는데 올리지 않으면 손해 보는 것 같을 때, 월세로 전환하고 싶을 때, 부르는 게 값이다. 해달라는 대로 세입자가 못해 주면 협상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그냥 세입자가 나가야 한다. 정부는 주택시장의 수요 공급을 분석하며 그것을 원인으로 지목하지만, 우리가 문제의 해결을 도모하기 위해 ‘원인’을 지목한다면 그것은 임대차제도여야 한다.

원인을 해결할 방법은 많다. 이미 시민사회와 정당들에서 많은 대책들이 제안되고 있다. 집주인이 부르는 게 값이 되지 않도록 임대료의 적정선을 설정하자(공정임대료제도), 임대료 인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인상 폭을 제한하자(임대료상한제도), 임대료 부담이 너무 높아 적절한 주거를 유지할 수 없다면 임대료를 보조하자(임대료보조제도), 전세를 월세로 전환할 때 이자율을 제한해 전월세 전환의 동기나 부담을 낮추자(전월세전환이자율 제한), 무엇보다 2년밖에 보호되지 않는 임대차계약을 연장할 수 있는 권리를 세입자에게 주자(계약갱신청구권, 자동계약갱신제도). 이런 제도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임대주택이나 임대료 현황이 파악되어야 하니 지자체에 등록하도록 하자. 또한 집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주거비 부담에 짓눌리지 않고 안정적인 점유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공공임대주택을 확충하고 개발사업의 조건을 제한하는 등의 정책도 필요하다. 전세대란을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세입자들에게 힘이 없는 것이다.

집은 누구에게나 필수불가결하고 중요한 장소다. 그 점이 권리를 보장하는 근거가 되지 못하고 권리를 압수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한국의 현실이다. 국회에 상정된 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논의를 끝내 거부하던 한나라당은 여론을 의식해 전월세 상한제 일부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의 전월세 상한제는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다”며 자신들의 정책 정당성을 주장했다. 세입자들의 힘이 모여야 할 자리에 재산권이 완고하게 들어서 있다. 원하지 않은 퇴거나 이주로부터 안정적인 점유를 보장받고 주거비 부담이 생활수준을 제약하지 않을 정도의 적정선으로 보장되는 것은 주거권의 필수 요소다. 당연히 집을 소유하지 않은 세입자에게도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내 집 마련만을 주택 정책의 기조로 내세우며 세입자의 주거권 보장은 영원히 유예시키고 있다. 물론 주택은 재산이기도 하다. 그러나 재산권이 신성불가침의 것은 아니다. 재산권만 권리가 아닌데, 주거권은 저울 위에 올라가지도 못하는 현실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돈을 빌려주고 집을 빌리는 것, 화폐와 삶을 저울질하는 것이라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사회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삶을 선택하지 않았던 결과가 바로 ‘전세대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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