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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  :  돕헤드     * Go Home

프레시안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70221192541&s_menu=사회 에 원문이 있습니다.
    
  "우리의 노래는 총보다 강했다"  
  [인터뷰] '대추리와 평화' 노래하는 '평택 지킴이' 조약골  

  2007-03-02 오후 6:09:50    

  
  자신들의 마을과 논 위에 미군기지를 짓겠다는 미군기지 확장 이전 계획에 반대하며 4년간 싸워 왔던 경기도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 그러나 주민들은 자신들의 계획을 관철시키기 위해 주민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만 했던 정부와 지난달 이주에 합의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오는 31일까지 마을을 떠나야 하는 주민들에게는 이주 후에도 여전히 생계 문제 등 맞닥뜨린 문제들이 많다.
  
  그런데 이주가 다가오면서 고민이 늘어나는 이들이 또 있다. 길게는 3년, 짧게는 몇 개월씩 대추리, 도두리에서 주민들과 함께 마을을 지켰던 '평택 지킴이'들이다. 20명 가량 남아 있는 이들 중 어떤 이는 '들소리 방송' 활동가로, 어떤 이는 '솔부엉이 도서관' 관장으로, 또 어떤 이는 찻집 운영을 맡아 살고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마을을 지키고 가꿔 왔던 이들은 주민들에겐 한마을 식구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대추리가 너무 좋아 평생 살고 싶다던 이들도 이제 주민들과 함께 마을을 떠나야 한다.
  
  평화운동가이자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는 조약골 씨 역시 지난 8월부터 대추리에서 살고 있는 '지킴이' 중 한 명이다. 그는 매일 저녁 대추리 마을창고에서 열린 주민 '촛불문화제'에서 노래를 불렀다. 서울에서 열리는 평화 집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평택으로 가요', '서울에서 평택까지' 등 그가 개사해 평택에서 유행시킨 곡들도 꽤 많다.
  
  그가 최근 대추리에 살면서 만든 노래들을 모아 앨범을 냈다. '평화가 무엇이냐'라는 앨범의 제목은 그가 2004년 5월 평택 평화대축제에서 문정현 신부가 했던 연설에 곡을 붙여 만든 노래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에게 있어 평화는 무엇일까? 지난달 27일 서울 충정로 선교교육원에서 그를 만나 이번 앨범과 대추리, 그리고 평택 지킴이 활동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앨범 만드는 과정 자체가 '평화운동'이었다"
  
  
▲ '평화가 무엇이냐' 앨범 자켓. ⓒ조약골  

  <프레시안>: 음반이 예정보다 늦게 나왔다. 일일이 수작업을 했다고 들었다.
  
  조약골: 일반적으로 가수들은 자기 노래를 녹음한 다음부터는 손을 뗀다. 소위 '기획사'에서 생산 작업을 다 맡는다. 가수들이 자신의 음악과 음반에 대한 감독은 하지 않는 셈이다.
  
  나는 그런 부분들을 직접 했다. CD를 굽고, CD 자켓을 인쇄해서 붙이고, 케이스에 CD를 담았다.
  
  시간과의 싸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는가가 문제였다. 나는 만드는 과정 자체에 의미를 뒀다. 그 자체가 내겐 즐거운 일이고 하나의 운동이었다. 정성을 들여 한장 한장 만든 음반이 사람들에게 공감이나 감명을 일으킨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시간이 많이 드는 것 자체가 그렇게 나에게는 즐거움으로 치환된다. 이윤을 위해 만든다면 결코 그럴 수 없겠지만.
  
  <프레시안>: 특별히 수작업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조약골: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해서 만들려고 노력한 앨범이다. 부족한 자원들 때문에 많은 곳에서 평화를 위협받고 있다. 미국이 대표적인 예다.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게 되면 이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것이 평화에 더 가까이 가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노래에서 묻어나오는 대추리 정경"
  
  
▲ 조약골 ⓒ조약골

  <프레시안>: 앨범에 실린 노래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준다면?
  
  조약골: 사실 노래 하나하나마다 30분 이상 얘기할 수 있다. (웃음)
  
  평택 지킴이들이 다 같이 부른 '평화가 무엇이냐'는 문정현 신부님의 연설을 노래로 만든 건데 신부님도 정말 좋아하셨다. 가끔 신부님이 '내가 그때 얘기를 좀 잘 했지?'라면서 웃으신다.
  
  '희망을 노래하라'는 전국농민연합회의 문경식 의장님이 했던 연설이다. 당시 연설을 들은 감동이 정말 컸고 노래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지태 위원장이 했던 말씀 중에 '그 너른 들녘을 사시겠다고?'라는 말도 지금 노래 작업 중이다.
  
  평택 지킴이 중 한 명인 '나비'가 작사한 '내가 대추리에 사는 이유'는 그가 촛불문화제에 갔다오고 나서 너무 속상한 마음에 '마을에 살면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을 써놓은 글이라고 한다.
  
  <프레시안>: 앨범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조약골: 다들 좋다고 한다. 정성을 많이 들인 앨범이라는 걸 옆에서 보면서 아니까. '우리의 노래는 총보다 강하다' 같은 경우는 중간에 실제로 촛불행사에 참여했던 주민들의 함성소리도 녹음돼 있다.


  '평화가 무엇이냐'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복직하는 것이 평화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이 서식처 잃지 않는 것이 평화
  가고 싶은 곳을 장애인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평화
  이 땅을 일궈 온 농민들이 더 이상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
  
  성매매 성폭력 성차별도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
  군대와 전쟁이 없는 세상 신나게 노래 부르는 것이 평화
  
  배고픔이 없는 세상 서러움이 없는 세상
  쫓겨나지 않는 세상 군림하지 않는 세상
  
  빼앗긴 자 힘없는 자 마주보고 손을 잡자
  새 세상이 다가온다 노래하며 춤을 추자

  "평화운동, 反국가권력 운동, 대안운동…모두 대추리에 있었다"
  
  <프레시안>: 대추리에서 '평택 지킴이' 활동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조약골 : 2003년 11월 '평화유랑단'이 만들어져서 이라크 파병 반대 등을 외치며 전국을 돌아다녔다. 나는 유랑단의 객원단원이었는데 2004년 5월 평택에서 열린 평화대축제에 가서 노래했다.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대추리 소식을 접했다.
  
  대추리에 오게 된 계기는, 내겐 일종의 숙명이었다. 대추리에는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이슈들이 모두 있었다. 대추리 투쟁은 평화운동이기도 하고, 국가권력에 반대하는 운동이기도 하고, 자립적이고 대안적인 마을을 만들어가는 활동이기도 했다. 몇백 명의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 거대한 제국에 맞서 싸우고, 자치를 선언하고 마을을 꾸려나가는 일은 내겐 너무 감동적이었다.
  
  마을에 들어와 '평택 지킴이'로 살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해 9월 '빈집철거'를 하러 경찰들이 온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정말 오래오래 있을 생각으로 이사를 왔다. 마을이 평화공동체가 되는 데 도움을 주자, 국가의 폭력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대추리를 잊지 않도록…씨를 뿌리겠다"
  
  <프레시안>: 지난 2월 주민-정부간 이주가 합의됐다. 지킴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조약골: 안타깝다. 그렇지만 주민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수십 배는 했으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도 다들 발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3월 31일까지는 나간다고 마음은 먹고 있지만 사실 거의 실감을 못하고 있다.
  
  정 들었던 이 땅을 떠난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는지, 난 얼마 살지도 않았는데 그런 생각이 든다. 겨울에 빈땅 위에 심었던 마늘에 싹이 나고 있다. 그것이 열매 맺는 걸 못보고 간다는 사실이 슬프다.
  
  <프레시안>: 이주 합의 이후에 '지킴이'들은 어떻게 지내나?
  
  조약골: 여전히 이런저런 계획들을 짜서 계속 해나간다. 그런 모습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2월에는 매우 바빴다. 2005년 11월에 펴냈던 첫번째 책 <들이 운다>에 이어 <들이 운다2>를 낼 계획을 세웠다. 첫번째 책이 주민들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는데, 그때 차마 못했던 이야기들을 모아서 낼 생각이다.
  
  또 오는 3일 대추리 '음식 나눔 모임'을 열 계획이다. 그 다음날인 4일은 정월 대보름이라 마을 자체 행사도 있다.
  
  이제 이 마을은 없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왔던 사람들이 씨앗을 심고 돌아간다면 어떨까? 그 땅에서 식물은 자라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 땅에 대한 애정을 계속 갖고 있을 수 있다. 그런 기회를 사람들에게 계속 제공하려고 한다. 없어질지도 모르는 땅이지만 농부의 마음처럼 씨를 뿌리는 활동을 계속할 계획이다.
  
  "지킴이들은 언제, 어디서든 계속 '지킴이'로 남을 것"
  
  <프레시안>: 주민 이주가 끝나는 3월 31일 이후의 계획은 없나?
  
  조약골: 지킴이들 사이에서 공식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자고 얘기된 건 없다. 하지만 대부분 지킴이들이 어디에 가서든 어떤 식으로든 이 활동을 계속할 것 같다. 지킴이들 가운데 몇몇은 주민들과 정이 많이 들어서 이주까지 할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할 일은 많다. 주민들이 이주한다고 해서 미군기지가 확장되는 것의 문제가 사라지나? 그렇지 않다. 한국이 손을 들어준 전략적 유연성의 의미, 이전 비용의 대부분을 한국이 부담한다는 점 등 문제제기할 것은 많다. 또 주민들이 받은 정신적 고통 등의 문제는 이주 후에도 우리 사회가 받아 안고 치료해줘야 할 부분이다.
  
  나는 이번 앨범에는 없지만 마을 사람들이 좋아했던 노래들, '평택으로 가요', '황새울 지킴이 노래', '서울에서 평택까지' 등 개사곡을 지킴이들과 불러 앨범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나눠줄 생각이다.
  
  내겐 음악과 운동이 그렇게 떨어져 있지 않다. 이런 일들을 하는 삶이 매우 즐겁다. 좋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 노래로 만들어서 퍼져나가는 것이 설레는 일이기도 하고 뿌듯하다. 그래서 운동도, 노래도 한다.
  
  지킴이들도 사실 그랬던 거다. 주민들은 '너희들 어떡 하냐, 다른 데 가서 일하면 돈도 많이 벌지 않냐'고 하지만, 사실 누구도 우리에게 들어가 살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자신이 하고 싶으니까. 도시에서 살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이 생활이 주는 의미가 컸다. 마을에서 살면서 느끼는 것들이 굉장히 컸다.
  
  조약골 씨의 앨범은 평소 그가 함께 연대활동을 하고 있는 사회단체(다산인권센터, 문화연대, 피자매연대, 인권운동사랑방 등)의 사무실에서 구할 수 있다. 그에게 직접 이메일(dopehead@jinbo.net)을 보내면 서울이나 평택 지역에서는 그가 여건이 허락하는 한 자전거를 타고 직접 배달도 해준다고 한다. 조약골 홈페이지(http://www.dopehead.net)에서 직접 곡을 다운로드 받아 들을 수도 있다.  
    
  

  강이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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