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eautiful ones *  
  Name  :  돕헤드     * Go Home

* 또 원고청탁이 들어와 이번 음반에 대한 글을 썼다. 음반을 냈는데 와서 노래해달라는 사람은 없고 온통 음반에 대한 글만 써달라고 한다. 난 글쟁이보다 가수가 더 좋은데... 나에게 노래를 부르게 해달라.ㅠ_ㅠ

<점거하라, 저항하라, 생산하라>라는 장편 다큐멘터리가 있다. 자본가들이 임금을 체불한 채 떠나버리자 자동차 부품공장을 접수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노동자들 이야기다. 제8회 서울국제노동영화제에서 상영된 적이 있어 한국에서도 꽤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이번에 만든 음반 ‘평화가 무엇이냐’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 3개가 바로 점거, 저항, 생산인 듯 싶다. 나는 이 음반을 평택 대추리에 있는 빈집을 점거해 살면서 만들었다. 그 마을에 들어가 살면서 주민들과 함께 매일 촛불을 들고 정부와 미국에 저항하면서 작사 작곡을 했고, 그렇게 생산해낸 결과물이 이 음반이다.

빈집이나 버려진 공간을 점거해 활동을 펼치는 것을 보통 스쾃(squat)이라고도 하는데, 한국에서는 2004년 8월 홍대 주변의 예술가들이 부족한 창작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예술스쾃을 벌이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높은 임대료 때문에 작업공간을 쉽게 마련할 수 없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어차피 비어 있는 공간에 들어가 그곳에 거주하면서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저항예술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예술가들의 필사적인 노력은 ‘빈 건물을 차라리 그냥 놀릴지언정 임대료를 내지 않은 사람들이 무단으로 점거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는 자본가들들의 욕심 때문에 길게 지속되지 못하고 말았다.

그런데 비슷한 시각 한국의 다른 지역에서는 다른 식의 점거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바로 일방적이고 폭력적으로 확장을 추진하던 평택 미군기지에 맞서서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이 삶의 공간을 지키고자 싸웠던 것이다. 한국 정부는 결국 법적 절차를 동원해 마을과 논밭 자체를 모두 주민들의 손에서 빼앗아가버렸고, 주민들은 어느날 갑자기 주인이 국방부로 바뀌어버린 집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국방부는 불법점거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7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때리겠다면서 협박해들어왔다. 나는 그런 집에 점거자로 들어가 살 결심을 했다. 난 음악가이기도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침략전쟁을 벌이며 수 많은 애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보다 쉽게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평택의 기지에 주한미군 전부를 모아놓는다는 계획이 우리의 미래에 얼마나 끔찍한 파장을 일으킬지 알고 있는 평화활동가이며, 동시에 생명을 키워온 소중한 농토가 농민의 손에서 강탈되는 모습을 잠자코 지켜볼 수 없는 양심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내가 들어가 살고 있는 평택 대추리 불판집은 전기도 나오지 않고, 물도 나오지 않고, 보일러도 없는 완전히 망가져버린 빈집이었다. 내가 그렇게 열악한 조건이었던 불판집을 고치고 꾸며서 살 수 있었던 힘은 국가폭력이 없는 자유로운 공동체이자 평화예술마을로 거듭한 대추리라는 마을이 가진 활력에 있었다. 6, 70대 이상의 노인들이 대부분인 마을에 어느날부터 예술가들이 들어와 담장에 감동적인 그림들을 그려넣기 시작했고, 가슴을 울리는 벽시들을 써넣었다. 미술관에서나 볼 수 있었던 조각작품들과 판화와 설치미술들이 마을 곳곳에 들어서고 있었다. 아,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라면 나도 들어가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게다가 농토에 대한 농민들의 애정은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분들에게 토지란 자식과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에 별로 관심이 없는 세상 사람들은 왜 대추리 주민들이 돈을 그렇게 많이 받고도 마을에서 나가지 않느냐고 손가락질을 했지만 세상에 누가 ‘고향’의 값어치를 매길 수 있다는 말인가. 세상에 누가 자식의 값을 돈으로 계산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의 노래는 이들의 절절한 심정에서 나온 것이다. 주민들은 매일 촛불을 들고 외쳤다. 이 땅에서 나가지 않고 그저 한평생 살아온 고향땅에 이대로 묻히고 싶다고 말이다. 그 함성이 노래가 되어 이 음반에 실렸다. 마을에서 나와 함께 주민들과 살면서 농사를 짓고, 마을을 지켜온 ‘황새울 지킴이’들도 녹음 작업에 참여해 노래를 함께 불렀다. 우리가 노래를 잘 하거나 연주력이 뛰어난 뮤지션은 아니었지만 늙으신 주민들이 벌이는 감동적인 저항활동을 음악의 형식으로 담아내는데 성공했다고 나는 믿는다.

불판집 녹음실에는 모니터 스피커도 하나 제대로 없어서 나는 마을을 돌면서 떠난 사람들이 버리고 간 커다란 전축을 찾아야 했다. 모니터 헤드폰도 없어서 그렇게 주민들이 버리고 간 것들로 대신했다. 철조망이 둘러쳐진 마을은 경찰들에 의해 거의 고립되다시피 했으므로 필요한 모든 것을 마을 내부에서 구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악기는 소프트악기로 처리했고, 믹싱과 마스터링도 소프트웨어로 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좋았던 점이 있다면 녹음실에 따로 방음시설을 갖출 필요가 없었다는 점이다. 인구밀도가 그리 높지 않아서 새벽 4시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해도 널찍히 떨어진 옆집에 별다른 소음피해를 주지 않았다.

이 음반은 콘셉트 앨범이다.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구체적인 장소에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절실하게 싸우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채워져 있다. 그래서 대추리라는 공간이 없었더라면 이 음반은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주민들에게 감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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