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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대2 2003-08-04 19:42:35, Hit : 2778
Subject   [번역] J.6 아나키스트는 어떤 양육의 방식을 지지하는가?(서문)
아나키스트들은 오랫동안 아이들의 양육(養育)과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해오고 있다. "양육의 목표는 잘 형성된 하나의 인격체를 길러내는 것이지, 병적으로 일만 하는 사람이나 자동화기계처럼 전문화된 사람, 세금 잘 내는 시민 또는 대단한 도덕주의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Emma Goldman, Red Emma Speaks, p. 108]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섹션에서는, "아이들 양육은 어른이 되는 성장기에서 거쳐야 하는 중요한 과정이며, 현재의 교육방식은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억누르고 있다"[Ibid., p.107]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면서, 양육에 대한 아나키스트적인 접근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권위적인 가정이야말로 개인이 갖는 심리적 문제나 정치적 행동을 결정하는 근본적인 요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불안정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자기절제를 익히면서 자유와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 그러한 양육방법을 찾도록 아나키스트들은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자란 아이들을 "자유로운 아이들(Free Children)"이라고 부를 것이다.

양육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있다.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는 이 분야의 주요한 선구자인데,(그의 생각을 훌륭하고 간결하게 보여주는 글은 모리스 브린톤(Maurice Brinton)의 『The Irrational in Politics』에 소개되어 있다) 『미래의 아이들(Children of the Future)』에서 라이히는, 그의 연구와 임상실험에 기초하여, 자유주의적인 양육방법을 고민하는 부모, 심리학자, 교육자에게 많은 것을 제안했다.(그는 '자유주의적(libertarian)'이란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이 섹션과 다음섹션에서는 라이히의 주요사상과 더불어 라이히에게 영향받은 네일(A.S. Neill)이나 알렉산더 로웬(Alexander Lowen)과 같은 심리학자나 교육가의 사상을 요약할 것이다. 섹션 J. 6. 1에서는 이론적인 것을, 그리고 다음섹션들은 구체적인 예를 통한 실제적인 적용사례를 다룰 것이다. 마지막으로, J. 6. 8에서는 사춘기 십대의 문제를 아나키스트적인 접근을 통해 검토해볼 것이다.

양육문제에 대한 접근은 "아이들은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다 : 그들은 부모의 소유도, 사회의 소유도 아니며, 단지 그들의 자유로운 미래에 속해 있을 뿐이다"[Michael Bakunin, The Political Philosophy of Bakunin, p. 327]라는 생각을 기본전제로 한다. 자라나면서 아이들이 어떤 일을 경험하느냐 하는 것은 장차 어떤 어른이 될 것이며, 또, 그 아이들이 살아 갈 사회를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자유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중요한 질문은 "아이는 독립적 주체로서 다룰 것인지, 아니면, '자유'에 대한 어른들의 생각이나 이상에 따라 형상화되는 대상으로 다룰 것인가?"[Emma Goldman, Op. Cit., p. 107]라는 것이다. 자유주의적인 양육은 아이들이 독립적 주체로서 존중받으면서 커갈 때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 아래에 있다고 하는 전형적인 자본주의자들의 주장(또한 우리는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들의 주장도 주목해야 한다)과는 정반대이다. 아이들이 그들 부모의 소유물이라면, 그것은 곧 아이들이 개성과 자유를 추구하지 못한 채 노예상태로 유년기를 보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되고 만다. 물론, 대부분의 아나키스트들은 이런 주장을 거부한다. 대신에 "부모의 권리는 단지 그들의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며, 아이들의 도덕성, 정신적인 발달, 또, 미래의 자유에 반하는 권위적인 요소를 가져서는 안 된다."[Bakunin, Op. Cit., p327] 누구의 소유물이 된다는 것(노예처럼)은 앞서 언급한 모든 가치에 반하는 것이며, "적절한 교육과 양육에 그 미래가 달려있는 '사회'는 아이들을 돌 볼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Ibid., p. 327]

이와 같이, 양육은 사회의 일부분이며, 서로 함께 사는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중받으면서 하나의 인격체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다. 바쿠닌에 따르면, "진정한 자유는 - 각각의 개인이, 인간의 존엄성에 기초하여 타인의 자유와 인격에 대한 존중, 그리고, 정의(Justice)에 대한 완전한 인식과 그 인식을 실현하는데 있다. - 그러한 자유는 아이들의 정신, 성격, 의지의 이성적인 발달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Op. Cit., p.327]

이 서문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아직도 양육이나 교육의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과제가 남아 있으며, 여기에서 말하는 것들은 앞으로의 연구에 단지 보탬이 될 뿐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밝혀둔다. '자유로운 아이들'로 키우기 위한 어떠한 규정집(rule book)도 없으며, 있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어떤 규칙에 따라 아이들을 기른다는 것은 모든 아이들은 처한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개성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유주의적인 양육원리를 규칙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부모들이 가지는 각기 다른 상황에 따른 이성적 판단과 결론을 양육에 적용하는 실험적 가설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은 교육의 원리와 같다. 즉, "아이들이 가진 잠재력을 자유롭게 성장시키고 발달시킬 수 있도록 하며, 이런 방법으로서만이 자유로운 개인,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유로운 사회를 희망할 수 있다. 또한, 이런 방법만이 인간성의 발달을 저해하고 억압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Goldman, Op. Cit., p. 115] 실로, 아이들 양육과 교육은 뗄 수 없는 것으로, 같은 원리를 공유하면서, "한 아이의 본능을 억압하면서 복종과 학습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본능을 개발하고 찾아내는"[Martha A. Ackelsberg, Free Women of Spain, p.132] 과정으로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더 나아가, '자유로운 아이들(free children)'로 키우기 위해서는 부모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아이들은 종종 그들의 부모를 따라하면서 배운다. - 아이들은 부모가 말하는 것을 하는 대신에, 부모가 행동하는 것을 따라한다. 그들의 부모가 거짓말하고, 소리치고, 싸우면, 아마도 아이들도 그렇게 할 것이다. 아이들의 행동은 그들이 자라난 환경의 산물이다.(부분적으로는, 적어도 그들의 부모를 그대로 닮음으로써). 아이들은 위협이나 명령이 아니라, 솔선수범의 예로부터 배운다. 부모가 어떻게 행동하느냐 하는 것은 '자유로운 아이(free child)'로 자라나는데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바른 것을 말하는 것 이상으로, '자유로운 아이들(free children)'로 클 수 있도록 아나키스트로서 행동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현대인들은 자유로운 아이들을 키우는 능력을 상실해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능력을 회복하는 것은 시행착오를 거치는 기나 긴 과정이 필요할 것이며, 부모가 되는 교육은 이전 세대로부터의 성공과 실패로부터 배우면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최선의 경우라면, 몇 세대를 거쳐 진보적인 부모들이 계속 많아져 '자유로운 아이들'을 만들어내면서, 여기서 더 나아가 더 진보적인 부모들이 생겨나고, 또 그러면서 점차적으로 사회는 자유주의적 교육방식이 널리 퍼지는 쪽으로 바뀌어질 것이다. 그러한 변화는, 전세계에 퍼져있는 다양한 공동체에서 볼 수 있듯이, 매우 빠르게 올 수 있다. 특히, 그러한 예로써,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키부츠는 자유주의적인 원리에 의해 사회가 형성되고 아이들은 주로 공동주택에서 자라난다. 라이히는 말한다 :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미래의 아이들' 세상이 오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새로운 것과 병들고 낡은 것이 공존하면서도 결국에는 점차 건강하고 새로운 것이 널리 퍼지는 사회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Children of the Future, pp. 38-39]

아나키스트는, 기존의 사회질서를 거부하면서, '자유'를 바탕으로 하여 다양한 양육과 교육방식을 통해서 권위적인 것으로부터 자유주의적인 것으로의 전 사회적인 패러다임의 변환을 위한 인식의 기초를 다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자유를 얻는 '점진적인 문화적 진화'라는 것은 정말로 존재하는 것 같다. 네일(A.S. Neill)은 『Summerhill』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은 성(性)적, 그리고, 기타의 해방을 향하는, 서서히 나아가는 하나의 조류가 있다. 내가 어렸을 적에, 여자들은 스타킹과 긴치마를 입고 목욕하러 갔다. 오늘날은, 다리나 몸 전체를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세대를 거쳐 점점 더 많은 자유를 획득하고 있다. 오늘날, 몇몇 사람들만이 아기들이 빨지 못하도록 매운 후추가루를 손가락에 바른다. 오늘날, 몇몇 지방에서만 아이들을 학교에서 체벌한다."[p. 115]

"자애는 가정에서 시작한다"라는 속담처럼, 대부분의 아나키스트들은 아나키한 사회변혁 또한 가정에서 출발한다고 믿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나키스트들은 직접 부모의 입장으로, 또는 다른 부모의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에 종사하면서, 사회변혁을 위해서 자유주의적인 원리에 따른 양육과 교육을 실천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여기서 좀 더 구체적으로 자유의지론적인 양육방식에 대해 논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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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
  2003/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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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
  2003/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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