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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대2 2003-09-04 13:11:08, Hit : 2741
Subject   [번역] J. 6.1'자유로운 아이들'로 키우는 주요 원칙들은 무엇이며, 또한, 그것들을 적용하는데 어떤 걸림돌이 있는가?
이번 번역은 꽤 힘들었습니다. 매끄럽지 못한 표현이 있더라도 양해를...

J. 6. 1  '자유로운 아이들'로 키우는 주요 원칙들은 무엇이며, 또한, 그것들을 적용하는데 어떤 걸림돌이 있는가?

먼저, 어떤 장애가 있는지 살펴보자. 라이히가 지적하듯이, 가장 큰 문제는 대부분의 부모, 학자, 교육자에 대한 훈련과 그들의 속성에 있다. 라이히는, 임상실험에 기초하여, 우리 사회의 모든 어른들은 어느 정도의 심리적 문제를 갖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단단하고 근육질의 '갑옷'(몸에서 나타나는 여러 군데의 만성적인 근육긴장과 경련)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갑옷'의 주요기능중의 하나는 삶의 기쁨을 느끼는 능력('갑옷'을 입지 않은 몸을 통해 흐르는 자연스러운 에너지)을 차단하는 것이다. 라이히는, 프로이트가 '리비도'라고 부른 것처럼, 우리 몸에는 기본적인 생체에너지('오르곤')가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세포와 조직을 만들뿐만 아니라, 섹스에너지이며, 감성에너지이다.(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대부분의 아나키스트는 라이히의 '오르곤'에 동의하지 않는다. - 그것의 존재는 증명되지 않았다. 그러나, 위계사회에 사는 개개인은 그들의 마음속에 심리적인 장벽을 만들어낸다는 '갑옷'에 대한 개념은 대부분의 아나키스트는 받아들인다. 그러한 벽은 분명히 한 개인의 정신적·육체적 상태에 영향을 미치며, 또한, 한 개인이 자유로운 삶과 행복을 경험하는데도 영향을 준다.) 우리 몸에서 생체에너지가 흐른다는 것은 에로틱하거나 '리비도'적인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생체에너지는 '갑옷'을 벗었을 때 느낄 수 있다. 이처럼 '갑옷'에 덮여지지 않은 유기체(새로 태어난 유아와 같은)는 매순간마다의 숨쉬는 기쁨, 몸 안에서 생체에너지의 흐름과정으로부터 나오는 어떤 기쁨 등을 자동적으로 경험한다. 그러한 존재가 있는 세상은 삶은 본질적으로 살 만한 가치가 있으며, '삶의 의미'나 '삶의 목적'에 관한 수많은 질문들이 불필요하게 여겨지게 만든다. -- 그런 질문들은 신체감각들의 생체 에너지의 주요기능을 상실한 '갑옷'입은 사람들에게만 생긴다.(또는, 그러한 주요기능이 뒤틀려 엉뚱하게 작동해서 삶의 기쁨의 원천이 고통의 원천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그것은 삶을 충만하게 즐길 수 있는 역량을 제한한다.

육아나 교육에 관계하는 사람들은 신생아에게 어떻게 '갑옷'이 입혀지는지 그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라이히는, 강제적 의무를 부과하고 쾌락을 부정하는 '도덕'의 영향하에서,  몸에서 자연스레 생기는 '삶 에너지'의 흐름을 억제하도록 아이들은 교육받는다. 비슷하게, 아이들은 그들이 느끼게 되는 대부분의 신체감각들에 대해 무시해버리도록 교육받는다. 가부장제 가족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인해(아래 참조),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들의 '삶 에너지'로부터 나오는 성적(性的) 표현들에 대해 가장 엄격한 도덕적 척도를 들이댄다. 그래서, 모든 에로틱한 감정이나, 그러한 기미가 보이는 어떤 감각도 '나쁘고', '동물적'이라고 간주해버린다. 이러한 인식은 아이들로부터 불안을 야기하며, 다른 무엇보다도, 이러한 인식과 불안에 방어적이거나 그것들을 없애버리는 과정에서 만성적인 근육긴장이라는 것이 유발된다. 예를 들어, 얕은 호흡(shallow breathing)은 '흥분'과 '감격'에 필요한 '삶 에너지'의 양을 줄인다. ; 골반이나 복부를 꽉 조이는 것은 성감(性感)을 줄인다. 이런 근육의 긴장이 만성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고 층층이 쌓이면서 근육질의 '갑옷'으로 변하게 되면, 이런 사람은 궁극적으로 '공허'나 '죽은 상태'의 느낌을 갖게 되어 삶의 기쁨을 잃어버린다.
                  
육체적, 심리적 안정을 갖지 못하게 되면 아이들의 내부에는 매우 불쾌한 감정과 감각들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근육의 긴장은 척추와 호흡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 라이히는, 우리 사회의 보통 사람은 가슴과 복부를 이용하는 완전하고 깊은 자연적인 호흡을 스스로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대신에, 대부분의 사람들은(의식적인 노력을 할 때를 제외하고) 여러 근육의 무의식적인 긴장 때문에 그들의 호흡을 자연스럽게 하지 못한다. 호흡하는 능력의 장애로 나타나는 자연적인 반응이 '불안'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억압적인 문화에서 자라나게 된다. 마치 지금 우리가 만성적인 불안에 처해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이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더욱 겹겹이 '갑옷'으로 무장하게 되고, 그것은 점점 더 호흡하는 능력을 감소시키는 악순환으로 빠지게 한다. 다른 말로, 막스 슈티르너가 얘기한 다음의 말은 정말로 옳다. "처벌, 위협, 공포 등에 기반하는 자연스럽지 못한 분위기를 가진 권위주의적 사회에서는 누구도 제대로 숨 쉴 수 없다."

물론, 섹스만이 부모들이 아이들을 억누르는 삶 에너지의 유일한 표현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소리내기, 비명 지르기, 울부짖기, 울기, 그리고, 몸 움직임 등이 있다.
라이히에 따르면,
"어린아이들은 목소리 근육조직의 활발한 활동을 통해 발달의 과정을 밟는다. 아기들이 울고 비명 지르는 등 여러 형태의 소리를 냄으로써 얻는 기쁨은 부모들의 눈에는 병적인 공격성으로 보여진다. 그래서, 소리지르지 말고 조용히 하라고 아기들을 타이른다.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한 충동이 억제되면, 그것의 근육조직은 점점 수축되고, 아이들은 조용하고 '행실 바르게 길러지며' 그리고, 움츠리게 된다. 그렇게 잘못 다루어진 결과는 곧 식습관 장애, 무감정(無感情), 창백한 얼굴 등으로 나타난다. 언어장애나 언어발달의 지체는 아마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성인들을 살펴보면, 목소리의 여러 장애 형태로 이런 영향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성문(聲門)의 무의식적인 수축이나 머리와 목의 활동적인 움직임의 억제로 인해 두꺼워진 목청의 근육조직은 특히 특징적이다."

(그리고, 모든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움직이고자 하는 강한 충동'을 억제하는 것은, 가만히 있는 것을 못 참는 매우 활동적인 아이들 중의 약 15%에게는 가장 치명적이라는 것을 여기서 덧붙여둔다.)

"임상실험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라이히가 결론 맺기를, "어린아이들이 좋아서 소리칠 때는 그대로 내버려둬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부모들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교육의 문제는 부모들이 아니라 전적으로 아이들의 입장에서 결정되어야만 한다."[Ibid]

'갑옷'의 존재는, 몸 안의 '삶 에너지'의 건강한 흐름을 차단하는 것 이외에, 반사회적이고, 무정하면서 비뚤어진 심리적 충동(라이히는 '2차 욕구'라고 부르는 것으로, 파괴욕, 사디즘, 물욕, 권력욕, 잔인성, 강간심리 등등)으로 인해 생기는 정신적인 불안상태를 극복하지 못하게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2차 욕구는 1차 욕구의 억압으로부터 나타나며(예를 들어, 성(性), 신체활동, 소리내기(vocal expression)에 대한 억압), 2차 욕구의 만족으로부터 즐거움을 얻기도 한다. '갑옷'이 제대로 갖추어지고 생명에너지와 그 밖의 감성적인 본능을 잃어버렸을 때, 그 두껍고 딱딱한 '갑옷'을 통과해 표출될 수 있는 감성적 표현은 뒤틀리고 난폭하며 무감정한 것들이기 때문에 2차 욕구는 계속 발달하게 된다. 이와 같이, 겹겹이 '갑옷'을 입은 사람이 사랑을 표현하려고 할 때, 그 사랑의 감정은 '갑옷'이라는 방해물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가학적 충동이라는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사디즘) -- 이런 충동은 불안의 원인이며 억눌러져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강제적 도덕(외부의 강요된 룰에 따라 행동하는)은 그 '강제' 자체가 만들어낸 2차 욕구를 통제하는데 필요하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권위적인 자녀양육은 정당화되어진다.

"심리분석학자들은 '본성'이라는 것과 뒤틀리고 무정(無情)한 '2차 욕구'를 구별하는데 실패해왔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 태어난 아이들의 '동물적인 성향'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계속적으로 아이들의 본성을 죽이고 있다. 그들의 이런 노력이야말로 뒤틀리고 무정한 후천적인 인간성을 만들어내고 있는 바로 그 원리라는 사실을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인위적이고 문화적으로 만들어지는 인간성은 강제적 도덕주의와 야만적인 법률들이 필요하게끔 한다."[Ibid., p. 17-18]

도덕주의는 2차 욕구로 인해 생기는 문제의 근원에 결코 도달할 수 없으며, 대신에 범죄와 죄의식에 대한 중압감만 가중시킬 뿐이다. 문제점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은 아이들로 하여금, 라이히의 용어로, 자연적인 자아조절능력을 개발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 능력은 아이들을 벌주고, 강제하고, 겁주거나, 도덕강의나 훈계를 하거나, 무관심 등과 같은, 자연스러운 삶의 충동에 대한 아이들의 자발적인 표현을 억제하는 시도로서는 얻어질 수 없다.  특히, 이런 것에 두드러진 경향을 가진 어린 아기들에게, 자아조절능력에 대한 체계적인 개발은 나중에 그들이 '사회화'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지 않도록 행동하게 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닐(A.S. Neill)이 지적한대로, "자아조절능력이 암시하는 것은 인간본성이 천성적으로 선하다고 하는 믿음이 있다는 것이다; 원죄라는 것은 지금도 없으며, 이전에도 있었던 적이 없다고 하는 믿음."[Op. Cit., p.103]

닐(Neill)에 따르면, 태어날때부터 자유롭게 크고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강요받지 않은 아이들은 예의, 상식, 배움에 대한 호기심, 다른 사람들에 대한 존중 등과 같은 사회적 자질을 발달시키는 방법을 스스로 배운다(다음 장을 보라). 그러나, 아이들이 그러한 사회적 자질을 가지도록 권위적인 방식에 의해 강제되기 시작하면, 라이히가 말한 '감정을 주입 받는 생물(biopathic)'이 되어간다. -- 주체적인 삶으로부터 벗어나서 더 이상 자아조절능력을 개발할 수 없는 상태.  이 단계에서는 사회의 새로운 구성원이 되기 위해 필요한 친사회적 감정을 갖추는 것이 더욱 더 어려워지게 된다. 이 시점에서, 2차 욕구가 생기면, 부모의 권위적인 개입은 필수가 되어버린다. 라이히는 말한다.
"감정을 주입 받는 것과, 그에 따라 그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 권위적인 것이 개입하게 되는 것과의 밀접한 상관관계는 필연적인 것 같다. '자아조절'이란 것이 자리잡을 곳이 전혀 없게 되고, 자기 안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 아니라 바깥으로부터 주입되는 감정에 '자아조절'이라는 방법으로는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2차 욕구는 자아조절능력의 존재조건과는 양립 할 수 없기 때문에, 2차 욕구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선생이나 부모의 강력한 훈육이 있을 수밖에 없다. 2차 욕구를 가진 어린애는 오히려 지도나 간섭이 없으면 이상하게 느끼게 된다. 이것은 마치 건강한 어린애 안에 존재하는 자아조절능력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주위환경과의 관계와 흡사하다. 그런 환경에서는 어린애는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 '갑옷'을 걸친 아이들이 '자유'를 견디어낼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자아조절능력을 가진 아이들은 '훈육'을 견디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라면서 거의 필연적으로 얻게 되는, 자유를 견디어내는 이러한 무능력
[(inability to tolerate freedom) 그만큼 '자유'를 자연스럽게 여기지 못하는 이상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견디다'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 같다. (역자 주)]은 '갑옷'에 대한 모든 논의에서 아나키스트들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이다. 라이히는 결론짓기를, 만약 부모들이 처음부터 아이들의 본성을 억누르지 않는다면, 어떠한 반사회적 2차 욕구도 생겨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그것들을 억누르기 위한 권위주의도 필요치 않게 될 것이다 : "당신이 강압과 훈계에 의해 그렇게 절실하게, 어찌 보면 헛되게 얻으려고 하는 것은 막 태어난 어린애 안에서 이미 살아서 제 기능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그냥 그렇게 커나가도록 내버려두어라. 그리고, 그에 맞게 우리의 교육기관을 바꿔라." [Ibid., p.47, emphasis in original].

알렉산더 로웬(Alexander Lowen)이 『삶의 두려움(Fear of Life)』에서 지적한 것처럼, 부모들은, 그들 안에서 풀리지 않은 오이디푸스콤플렉스의 문제 때문에, 그들 자녀의 성적(性的) 표현을 억압하는데 특히 걱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심리학적으로 건강한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부모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형제자매의 경쟁심리, 그리고, 그 외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 어떻게 가족관계속에서 나타나는지 그리고, 그런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낼 지 스스로 배워 터득할 필요가 있다. 부모가 그러한 것을 스스로 배우고 터득하기까지의 어려움은 자아조절능력을 가진 아이로 키우는데 또 하나의 장애물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가장 커다란 장애물은 '갑옷'이 걸쳐지고 그 밖의 다른 여러 가지 뒤틀려진 체계들이 너무 빠르게 바로 태어나자마자 아이들 속으로 자리를 잡는다는 것이다. 라이히는 강조하기를, 첫 번째 '갑옷'조각을 걸치자마자, 막 태어난 아기는 자신의 자아조절능력을 잃어버리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아기들은 '갑옷'을 몸 전체에 걸쳐감에 따라 지속적으로 약해지게 되고, 마침내 그들이 주어진 환경에서 존재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제적인 도덕원칙들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Ibid., pp. 44-45] 그러므로, 부모들이 어떤 것이 '갑옷'이며, 그 밖의 다른 억압요소들은 무엇인지, 또 그것들이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들 안에서 형성되는 것을 처음부터 방지할(또는, 최소한 줄일)수 있다. 이런 것들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실제적인 예들은 다음 장에 논의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라이히는 개념의 혼동을 피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 '자아조절'이라는 것과 '도덕적 요구'라는 것은 절대로 섞여서 얘기될 수는 없다. 우리는 '본성'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선하고 자아조절이 가능하다는 것과, 아니면,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 둘 중의 하나를 믿는다. 본성이 스스로 조절가능하지 않다면, 강압적인 양육의 방식만이 있을 수 있다. 두 가지의 양육방식이 함께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Ibid., p.46]

매닉 (2003-09-04 14:17:53)
등대2, 수고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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