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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대2 2003-11-20 23:27:21, Hit : 2910
Subject   [번역]J. 6. 4 아이들이 무서워할 것이 없다면, 어떻게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는가?
J. 6. 4 아이들이 무서워할 것이 없다면, 어떻게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는가?

처벌의 두려움 때문에 생기는 복종은 진정으로 선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단지 비겁함일 뿐이다. 진정한 도덕(즉, 타인과 자기자신에 대한 존경)은, 경험에 기초한, 마음속의 확신으로부터 오는 것이지 두려움에 의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진정한 도덕은 칭찬이나 천국에로의 약속 등, 어떤 기대심리에 의해서 생길 수도 없는 것이다. 이전 섹션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아이들에게 출생한 그날부터 가능한 한 많은 자유가 주어지고, 부모의 기대에 따르도록 강압 받지 않는다면, 그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청결, 예의 등등 사회의 기본적인 행동원칙들을 배울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배워 나가는 시기는 부모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각자 그들에게 맞는 자연스러운 성장의 단계에서 배울 수 있도록 배려되어야만 한다. 그 '자연스러운 시기'가 언제인지는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라 아이에 대한 꾸준한 관찰을 통해 알 수 있어야만 한다.

정말로 벌을 주지 않으면서, 지저분하지 않고 깨끗하게 놀 수 있도록 한 아이를 가르칠 수 있을까? 많은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이것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 아이의 정신건강에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처벌받는 아이는 신체기능상으로 고정되어지는, 어떤 억압적인 것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라이히와 로웬이 밝힌 것처럼, 예를 들면, 강박 관념적인 여러 종류의 신경증은 용변교육을 할 때  주어지기도 하는 벌주기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개, 고양이, 말, 소는 '배설'에 대해 어떤 콤플렉스도 없다. 인간의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콤플렉스는 그 교육방식에 기인하는 것이다.

닐(Neill)이 관찰한 것처럼, "엄마가 아이에게 버릇없다거나, 더럽다거나, 하지 말라고 말할 때, 옳고 그름의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 문제는 도덕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 그것이 형이하학적인 것으로 남아있어야만 할 때."
아이가 똥을 가지고 노는 경우에, 더럽다고 그 아이에게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닐은 얘기한다. "옳은 방법은, 진흙 같은 것을 그 아이에게 줘서 그 배설물에 대한 관심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하면, 그 아이는 어떤 강압도 없이 그의 흥미를 전화(轉化)할 것이다. 그래서, 그의 흥미를 그대로 가지면서 똥 만지는 행위를 자연스럽게 그만둘 것이다."[Summerhill, p. 174]

비슷하게, 회의론자들은, 아이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몸에 좋은 음식을 어떻게 먹게 유도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 대답은 간단한 실험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 캔디, 아이스크림에서부터 밀빵, 상추, 양배추 등등 온갖 종류의 먹을 것을 테이블 위에 차려 놓고, 그 중에서 어떤 것을 골라 먹게 하던지, 아니면 배고프지 않으면 아무 것도 먹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아이들에게 주도록 해보자. 평소에 먹지 말라고 하거나, 조금만 먹으라고 얘기 듣는  음식을 실컷 먹고 만족한 다음에 일주일정도 지나면, 보통의 아이들은 균형 있게 영양가 있는 음식을 고르게 먹기 시작한다는 것을 부모들은 알게 될 것이다. 이 예는 소위 '신뢰로 만들어지는 성격(trusting nature)'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이를 골고루 먹도록 어떻게 '훈련'시키느냐 하는 것이 이슈가 된다는 것은 '아이들을 위한 자유'에 대한 개념이 얼마나 우리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이해되지 못하는지 잘 보여준다. 불행하게도, '훈련'이란 개념은 이 분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다른 곳에서도 그대로 남아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물건은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 말은 아이들이 마음껏 놀 때 항상 어떤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그리고, 어린 시절에는 '어른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원 없이 노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놀이'야말로 아이들이 자기 스스로 하는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자유 의지론적 관점으로 보면, 아이들은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서 어떤 가치를 획득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얘기는 물건을 부수는 아이들을 꾸짖지 말고, 벌주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물건에 대해 무관심한 어린 시절의 단계를 벗어나게 되면, 아이들은 자연적으로 물건을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적어도 도둑질에 대해서는 아이들을 벌주어야 하지 않는가?" 라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그 대답은 '신뢰로 만들어지는 성격(trusting nature)'이라는 생각 안에 있다. '내것', '남의 것' 하는 개념은 어른들에게 있는 것으로, 아이들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그 개념으로 나아가는 것이지 어릴 때부터 그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보통의 아이들은 '훔친다'는 것이다. -- 비록 그들이 그것을 훔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아이들은 그저 갖고자 하는 충동을 만족시키려고 노력할 뿐이다.; 또는 친구들과 함께 있다면, 모험심으로 그렇게 할 수도 있다. 소유에 대한 관념이 뿌리깊이 박혀있는 우리 사회와 같은 데서, 부모가 '도둑질'에 대해 아이를 벌주지 않고 그냥 넘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아이를 믿음으로서 돌아오는 것은, 나중에 이 아이는 벌받을까 두려워서 안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 자신의 성격이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물건에 대해서는 존중할 줄 아는 그러한 건강한 청년으로 자라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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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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