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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대2 2004-03-02 23:45:15, Hit : 2729
Subject   [번역]J.6.7 "자유의지론적인 양육방식"은 아이를 그냥 내버려두어 망치는 것과 똑같은 것은 아닌가?
J.6.7 "자유의지론적인 양육방식"은 아이를 그냥 내버려두어 망치는 것과 똑같은 것은 아닌가?

아니다. 이 질문은 자유와 허락의 구별을 혼동하게 한다. 자유롭게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아이가 당신 몸 위를 마구 걸어다니게 내버려두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 그것은 "안돼"라는 말을 절대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자유롭게 양육되는 아이들과 처벌, 비합리적 권위, 또는 도덕적 훈계와는 거리가 먼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할 자유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닐(Neill)이 말하는 것처럼, "엄한 가정에서는, 아이들은 어떤 권리도 갖고 있지 못하다. 반대로, 뭘 하든지 그냥 내버려두는 집에서는, 아이들은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가정은 부모와 아이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아이가 막무가내로 행동하게 내버려두거나, 어떤 것을 미끼로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하게 허락하는 것은 아이에게 해로워서. 그것은 아이를 망쳐버리고, 망쳐진 아이는 또다시 불량 시민으로 되어버린다." [Summerhill, p. 107, 167]

부모와 아이들 사이에는 불가피하게 서로 의견 충돌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의견충돌을 해소하는 좋은 방법은 양자간에 어떤 상호동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좋지 않은 방법으로는, 강압적인 규율을 사용하거나, 아니면, 모든 사회적 권리를 아이에게 허락해 줌으로써 아이를 버릇없게 만드는 것이다. 자유의지론적인 심리학자들은 아이들에게 개인의 권리에 대해 강조하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도덕주의는 아이들에게 해를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옳고 그름의 개념을 가르치거나, "못된", "나쁜", "더러운"과 같은 죄의식을 유발하는 단어들을 사용할 때,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란다는 의미가,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할 자유가 있다고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자유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함을 의미한다. 어떤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돌을 던지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것과 그 아이에게 기하학을 배우라고 강요하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돌을 던지는 것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지만, 기하학을 배우는 것은 단지 그 아이에게만 한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손가락 대신에 포크를 가지고 밥 먹으라고 강요하는 것 ; 아이에게 "제발", "고마워"라고 말하는 것 ; 방을 깨끗이 정돈하라고 하는 것 등등도 마찬가지이다. 나쁜 습관이나 지저분함이 어른들에게는 화날 수 있지만, 그것들이 어른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어떤 이는 어른의 권리를, 아이가 하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어른이 짜증나서는 안 된다고 정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권위주의에 대한 인정일 뿐, 아이들의 어떤 권리도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자유를 준다고 해서 그것이 그 아이들이 다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도록 그냥 내버려둔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몸이 아픈 아이에게 밖으로 나가 놀던지 아니면 약을 복용하던지 결정하라고 물어 본다거나, 몹시 지치고 피곤하여 졸린 아이에게 잠을 잘 건지 말지 묻는 것은 이상할 것이다. 그러나, 몸이 아픈 아이에게는 쉬도록 하고, 피곤하여 졸린 아이에게는 잠을 자도록 해야 하겠지만, 그러한 상황에 대해 감당할 수 있는 연령대의 아이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감과 더불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할 것이다. 이런 식이어야만 그 아이들은 자신감을 계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모는 그들의 자녀에게 얼마나 많은 책임감이 주어져야 하는지 결정해야 할 때 그 기준에 대해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는 것은 중요하다. 예를 들어, 부모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에 조금이라도 누가 될까봐 아이에게 부모의 맘에 드는 옷을 입히려고 강요하는 경우는 안 될 것이다.

가정에서 지켜야 할 "규범"과 "순종"을 같은 것으로 볼 때의 그 순종은 어른이 가지는 권력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아이에게 보통 요구된다. 이런 가정에서 자율이 의미하는 것은 "넌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돼"라며 큰소리치지 않으면서 말하고, 아이와는 어떤 충돌도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비이성적이고 권력을 추구하는 권위가 자유의지론적인 가정에 는 없을지라도, 부모로서의 권리와 더불어 부모의 보살핌, 관심, 책무와 같은, 어떻게 보면 '권위'라고 불릴 만한 것들이 아직도 남아 있기도 하다. 닐이 볼 때는, "그러한 권위는 어떤 때는 순종을 요구하지만, 또 어떤 때는 순종을 요구받기도 한다. 나는 내 딸에게, "우리 거실로 흙탕물을 묻히고 들어오지 마라"라고 요구할 수 있고, 내 딸도 나에게, "아빠, 내 방에서 나가줘요, 나 혼자 있고 싶어요"라고 똑같이 요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유의지론적인 가정에서도 서로 지켜야 할 "규범"은 남아 있겠지만, 그것은 가족 구성원 각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함일 것이다.    

또한, 자유롭게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은 그들에게 인형이나 돈 등을 많이 준다는 뜻은 아니다. 라이히의 지지자들은 말하기를, 아이들이 원한다고 해서 다 주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많이 주는 것보다 적게 주는 편이 더 낫다고 한다. 오늘날 끊임없는 상업광고의 홍수 속에서, 일반적으로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너무 많이 주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이들은 선물에 감사할 줄 모르고, 그들이 소유하는 물건도 그렇게 가치 있게 생각하지 않는다. 돈도 마찬가지로, 너무 많이 주게 되면, 아이들이 창조성을 기르거나 삶을 즐기는 데 해가 될 수도 있다. 만약 아이들에게 그렇게 많은 인형이 없다면, 그 아이들은 무엇이든지 주위에 있는 것들로 인형을 대신하는 나름대로의 그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창조적 즐거움을 맛 볼 것이다. -- 지금까진 너무 넘쳐서 잃어버렸던 기쁨 말이다. 심리학자들은 지적하기를, 너무 많은 선물을 주는 부모들은 그들이 주지 못하는 사랑에 대한 보상으로 종종 그렇게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벌주는 것보다는 보상해주는 것이 덜 위험하기는 하지만, 보상 또한 아이들의 도덕형성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그 이유는, 첫째, 보상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며, 사실 아이들의 동기유발과 창의성을 감소시키곤 한다.(심리학적 연구에 대해서는 섹션 I.4.10을 보라). 창의적인 사람들은 창작의 기쁨을 위해 일한다. ; 돈은 창작의 과정에서 그리 중요하지(필요하지도) 않다. 둘째, 보상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다. 즉, 보상을 위해 하는 일은, 일 그 자체를 위해서나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이 주는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할 가치는 없다고 여길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고, 셋째, 보상은 경쟁구조의 사회에서 가장 나쁜 측면을 부각시켜서, 돈이야말로 이 사회에서 사람들이 일하도록 동기 부여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아이를 자유롭게 키우고 있는지 아닌지를 구별하는데는 몇 가지 고려사항이 있다. 실제로, 어린 시절의 행복을 빼앗고, 비뚤어진 성격을 형성하는 원인이 되는 엄격한 가정 분위기와 처벌은 정말로 아이를 망치는 것이다. 이런 훈육주의의 희생자가 되어 성장한 어른들은 일반적으로 억눌린 분노와 공포뿐만 아니라 사디즘, 과격한 주장, 탐욕, 변태성욕 등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반사회적 행태를 보이게 된다. 한 사람의 의식 표면 바로 아래에 존재하는 그러한 감정들은 불안을 유발하고, 거기에서 발전하여, 그 사람은 까다롭고, 비참하며, 신경질적이며, 공허감까지 갖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쉽사리 소비지상적인 자본주의의 희생자가 되는 것이다. 즉, 돈을 가지고 쇼핑을 함으로써 사람들의 공허감을 채워줄 수 있다는 자본주의의 약속 말이다. -- 물론, 그 약속은 진실이 아니다.

또한, 노이로제에 가까운 이상감정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의 좌절과 분노를 탓할 수 있는 희생양을 찾는 경향이 있으며, 그 희생양을 통해 억눌린 분노를 풀어버리기도 한다. 대중 심리를 잘 아는 정치인들은 이런 사람들의 감정을 이용하여 소수자그룹이나 "적대 국가"들에 대해 지배 엘리트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한 선전술을 사용하는 방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엄한 가정에서 자라면서 얻어진 사디스트적 감정들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권위에 대한 갈망은 전형적으로 복종적이고/권위주의적인 성격을 만들게 된다. -- 가정이나 국가, 회사에서 윗사람들에게는 맹목적으로 따르면서, 아래 사람들에게는 권위를 행사하려는 사람들이 바로 그렇다. 이런 점에서, "전통적인"(예를 들어, 권위주의적인, 훈육적인, 가부장적인) 가정형태는 권위주의적 문명의 유지를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기초가 되는, 세대를 넘어 나타나는 사회악인 것이다. 어빙 스토브(Irving Staub)의 『악의 근원들』에는 감옥에 있는 독일 비밀경찰과의 인터뷰가 담겨 있으며, 이 인터뷰는 겉으로는 "정상"인 사람들이 얼마나 잔혹하고 폭력적인 행위를 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는데, 그 사람들은 놀랍게도 모두 권위주의적이고 매우 엄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이었다.                

크로폿킨 (2004-03-16 17:22:25)
수고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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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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