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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코프스키 2009-01-21 13:33:25, Hit : 1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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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참세상]체제 자체가 문제, 대응도 그 수준에서
체제 자체가 문제, 대응도 그 수준에서
[기고] 국민 살상 정부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고민택(사회주의노동자정당준비모임)  / 2009년01월21일 12시45분

용산 철거민은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인가?


이스라엘 정부의 가자 지구에 대한 무차별 폭격이 전 세계인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그와 유사한 끔찍한 일이 한국의 용산에서 재현되었다. 아니 한국 용산에서 벌어진 대참사는 그 보다도 훨씬 더 말문이 막히는 기막힌 사태다. 백번을 양보해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학살이, 물론 이스라엘 정부의 행위는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어쨌든 서로 다른 민족의 상호 무장 세력 사이의 충돌이라는 외양이라도 띠고 있는데 비해, 용산의 대참사는 자국민을 향한, 그것도 기껏(?) 대책 없는 철거에 대한 항의와 방어에 대해 군사작전과 다를 바 없는 경찰특공대를 투입해 진압작전을 펼쳤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용산 철거민의 주거권과 생존권은 마땅히 보장되고 보호되어야 한다. 이것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제 일 원칙이 되어야 한다. 국가와 정부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귀가 따갑게 들어왔던 바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금강산 관광에 나섰던 한 민간인의 죽음을 대하면서 ‘자국민의 목숨을 지키는 것이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며 남북관계를 전면 중단하는 일마저 주저하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위선적인 태도였는가가 지금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용산 철거민들을 마치 이스라엘 정부가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인 대하듯이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진압작전을 통해 목숨과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자본의 이권을 위해 철거민들을 장애물 취급


알다시피 용산 지구는 엄청난 재개발이 진행 중에 있다. 삼성물산, 대림, 포스코 등 건설 자본은 이를 통해 천문학적인 이권을 챙기는 일을 보장받고 있다. 서울시와 이명박 정부는 이를 통한 일자리와 성장 동력 창출을 말하고 있다. 그들에게 철거민의 주거권과 생존권은 안중에도 없다. 자본과 정권은 철거민을 국민 또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재개발을 가로막고 있는 한낱 장애물 정도로 취급하고 있을 뿐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일자리 창출이며, 무엇을 위한 성장 동력 창출이란 말인가? 그들이 말하는 일자리와 성장 동력 창출이란 결국 다수 노동자 민중의 삶을 위한 것이 아니라 소수 거대 자본의 이윤 창출과 정권 유지를 위한 한낱 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대로 드러났다. 다수 노동자 민중의 생존과 삶을 보호하고 향상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지금과 같은 대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어야 마땅하다.


지금 국회에는 이른바 MB악법이 숱하게 상정될 예정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법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그리고 거대 자본 권력은 한목소리로 전 국토에 건설과 개발의 망치 소리가 울려 퍼지게 하는 것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자면서 이를 위해 법과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아니 세상에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왜 법과 원칙을 강조해야 하는가?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데 어느 누가 그를 마다한단 말인가? 그들 스스로 경제위기 극복이란 것이 결국 다수 노동자 민중의 이해를 깡그리 짓밟는 것이라는 것을 폭로하고 있지 않은가! 때문에 그들은 이미 다수 노동자 민중의 저항과 투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충분히 대기하고 있다. 그들이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용산 대참사도 그러한 결과가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예고된 살인,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용산 대참사가 너무도 가슴 아프고 그 참상이 너무도 참혹해 마치 이와 같은 일이 용산에서만 벌어진 매우 특수한 일이며, 또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 개인의 출세욕이 불러온 우발적 사건이라는 점이 언론에서는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용산 대참사와 본질적 의미에서 다르지 않은 일은 이미 숱하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간 투쟁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금도 미포조선 노동자는 죽임을 강요당하는 투쟁에 어쩔 수 없이 매달리고 있다. 죽음까지는 아니더라도 거의 그에 근접하는 사태가 알게 모르게 우리 주변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다. 이제는 다수 노동자 민중 전체가 경제위기 앞에서 생존과 삶을 극단적으로 위협받고 있다. 이번 사태를 대하면서 그것이 정말 내일 같이 받아들여지고 분노가 치미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비극적 죽음으로까지 내몰리리라고는 미처 상상하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안일했다는 생각을 들게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지난 국회에서 벌어진 파행을 두고 국회에 그 책임을 떠넘긴 바 있으며, 지난 촛불 집회를 강경 진압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을 경찰청장으로 내정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사태를 일으킨 몸통은 바로 이명박 정부이다. 이번 사태는 이미 사전에 충분히 예정된 것이었으며, 예고된 것이었다.


경찰은 이번 사태의 원인을 철거민에게 돌리고 있다. 농성 시작 25시간 만에, 겨울철에,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하지 않은 채 강제 철거, 진압작전에 나선 것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번 사태가 갖는 폭력성을 좀 더 잘 드러내는 예에 불과하다. 더구나 이번 사태를 통해서도 자본과 정권의 태도는 전혀 달라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만약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면 이번 사태는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경찰은 이번 사태에 항의하는 촛불 집회 참가자들에게도 또 다시 폭력해산을 자행했다. 유가족도 확인하지 않은 상황에서 강제부검이 유례없이 빠른 일정으로 진행됐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앞으로 진행될 기나긴 경제위기 속에서 벌어질 일들에 대한 예고편이자 그 시작에 불과하다. 자본과 정권 및 다수 노동자 민중 사이에 벌어질 충돌과 격돌이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으며 그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결코 화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 사태가 웅변하고 있다.


용산 대참사는 단지 한국 민주주의의 후진성의 발로 때문만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촛불 정국에서 이미 국민들로부터 정권의 정당성을 잃었다. 법적으로는 정부가 유지되고 있지만 정치적, 도덕적 차원에서 이명박 정권은 적어도 다수 노동자 민중에게는 식물 정권이나 다름없다. 선거를 통해 집권한 정권이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미 국가 폭력을 앞세우지 않고는 그 유지가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다. 아니 이미 이명박 정권 스스로 국가 폭력을 최대의 무기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이를 서구에 비해 한국 민주주의가 처한 후진성을 보여주는 예로 들고 있으며, 이명박 정권이 갖는 독재적 성격을 드러내는 증거로 삼고 있다. 또 일부에서는 그렇다하더라도 거리에서의 투쟁이나 직접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행위라고 말하고 있다. 둘 모두 마치 민주주의만 정상적으로 가동된다면 문제가 없다는 투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도 민주주의 이름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자행되고 있는 착취와 수탈, 억압과 배제가 지배계급이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는 민주주의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제국주의의 행태, 무차별한 전쟁과 살육이 모두 민주주의 체제에서 행해지고 있다.


이번 참사는 결코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한국 민주주의가 특별히 후진적이어서 벌어진 일만도 아니다. 오히려 본질적인 것은 자본주의체제에서 모순이 첨예하고 부딪히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자본과 정권의 폭력성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참사는 한국 사회의 계급 대립과 그 갈등이 얼마나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생생한 예다. 따라서 단지 이를 부르주아민주주의의 진전이라는 협소한 관점으로 묶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이명박 정권 퇴진 투쟁은 반자본주의 투쟁과 결합되어야 한다. 20일 긴급하게 구성된 가칭)용산철거 살인진압 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이명박 정권 퇴진을 언급했다. 현재 상황은 이명박 정권 퇴진 투쟁으로 전면화 될 전망이다.


지난 1987년 이후로도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정권 퇴진’ 투쟁이 있어왔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아닌, 선거로 집권한 역대 정권에서, 특히 김대중, 노무현의 자유주의 정권에서조차 정권 퇴진 투쟁은 이어졌다. 이명박 정권 퇴진을 외치는 목소리는 지난 촛불 정국에서, 특별히 운동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미 대중적 차원에서 터져 나온 바 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당시 촛불 정국에서 광우병은 단지 뇌관이었을 뿐, 그 몸통은 적어도 반신자유주의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었다. 정권 퇴진은 반신자유주의를 위한 상징적, 집중적 표적이었던 것이다. 한국에서의 정권 퇴진은, 그 출발은 부르주아민주주의 아래에서의 독재 정권에 대한 항거의 의미에서 출발했지만 점점 부르주아민주주의 체제 자체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성격으로 발전하였다. 이는 앞서 말했듯이 한국 사회가 처한 계급투쟁의 성격을 반영하는 데서 오는 자연스런 경로이다.


이번 용산의 대참사가 만약 인명 살상이 벌어지지 않은 채, 자본과 정권의 의도대로 전광석화 같은 진압작전으로만 그쳤다면 우리는 또 많은 것을 보지 못한 채 그저 이명박 정권이 행한 폭력성을 드러내는 목록을 하나 더 추가하는 것에서 그쳤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대참사를 대하면서 그 참혹한 극적 요소에만 너무 빠져들어도 역시 사태가 갖는 진실 또는 본질을 놓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이미 부르주아민주주의 자체,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문제 삼지 않으면 안 되는 차원에서 계급 대립과 갈등이 펼쳐지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응도 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세계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제위기 속에서, 한국의 양상은 제국주의에 비해 훨씬 더 심각하고 첨예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것은 비정규직 문제였다. 이와 함께 양극화, 20대 80 사회, 88만 원 세대 등이 한국 사회를 집약해서 표현했다. 그러나 이 정도는 이제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정규직이 누렸던(?) 상대적 안정성도 이제 막을 내리고 있다. 쌍용자동차 사태는 그 시작일 뿐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명박 정권의 퇴진을 외치는 목소리와 투쟁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앞으로 줄줄이 터져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이명박 정권의 반노동자적, 반민주적 행태와 맞물려 그러한 요구는 더욱 증폭될 수 있다. 따라서 이명박 정권 퇴진을 내거는 문제는 더 이상 논쟁거리가 아니다. 다만 이명박 정권 퇴진을 외치는 목소리 속에는 다양한 정치적 견해가 섞여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반신자유주의, 나아가 반자본주의 투쟁과 결합될 때 그 정치적 의미를 살릴 수 있으며 투쟁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단지 당위나 논리의 제기만으로 현실화될 수 없다. 이를 주장하고 제기하는 세력이 나서서 이를 실질적으로 현실화시킬 때 비로소 설득력과 힘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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