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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아 2006-07-06 13:08:29, Hit : 2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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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2004년 현재 Struggle and rice by Uhhm

으흠입니다.

2004년 여름, 논현동의 한 커플친구집에 한달여간
월세를 내고 지내던 중 작성해두었던 글입니다.
어떤 상태랄지, 분위기랄지가 마음에 남아있던 중이었던것이 기억납니다.

2006년 여름이 되었는데, 정확히 2년이란 시간이 흘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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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쟁과 밥 그 속과 밖



나는 투쟁과 밥 안에 있었다. 일주일에 하루는 시장에서 장을 보고, 하루는 백인분의 밥을 지어 이주노동자 명동성당 농성투쟁단이 있는 곳으로가 요리를 하고, 함께 장을 보고, 밥을 짓고, 투쟁과 밥 사람들, 이주노동자들, 그리고 방문객들과 함께 저녁한끼의 식사를 같이 했다.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은 지난 수년간 몇몇 이주노동자와 몇몇 한국인 활동가에 의해 시작되었고, 전개되어 왔으며, 전면적인 강제추방과 고용허가제 시행을 앞두고, 명동성당 농성돌입에 들어갔다. 이천이년 당시에도 명동성당 내에서의 농성이 열명을 넘지않는 이주노동자 (강제출국을 당한 비두씨도 당시 농성의 한 멤버였다)에 의해 있었지만, 이번 농성은 농성첫날 명동성당 앞 돌계단을 가득 채울 만큼 규모가 달랐다. 농성 첫째날밤은 몹시 추웠고, 두툼한 침낭에 들어가 누워 있자니 발밑이 축축했고, 코 끝은 시렸다. 함께 있었던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하루밤을 지낸 나는, 다음날 새벽 기상과 함께 철의 노동자를 부르고 있는 이주노동자를 보며 집으로 돌아갔고, 투쟁과 밥에 대한 아이디어를 몇몇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했다. 이후 이주노동자 지역방문에 합류했던 나는 이주노조 지부측 한국인 활동가와 한 명의 이주노동자에게 투쟁과 밥 이야기를 건넸고, 쌍문동에 위치한 인포샵에서 투쟁과 밥을 함께 해 나갈 사람들과 하루종일 계획을 세우고 논의를 했다.

투쟁과 밥은 명동성당 농성돌입 일주일 후 부터 시작되었고, 첫번째 메뉴는 생선카레와 가지카레였다.  

  



최초의 이유나 궁리, 동기가 정확히 기억이 안 날때가 있다. 나에게 있어서 투쟁과 밥은 일정기

간동안 생활의 일부였고, 일정기간동안 생활의 일부였기 때문에, 그 최초라고 하는것이 명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투쟁과 밥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성을 느꼈다. 실제로도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투쟁과 밥은 무엇을 하는 곳

이냐고 물어왔었다.  

간단하게 대답을 해보자면 투쟁과 밥은 투쟁을 위한 밥과, 밥을 위한 투쟁을

하는 곳. 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이 대답은 너무 간단하고,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 것 같다.

투쟁과 밥은 무엇을 하는 곳이냐고 물어올때, 그 물음을 하는 사람들의 층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투쟁과 밥속의 사람들에게 투쟁과 밥이라고 하는 것의 상이 같지 않은것과 같이, 그것을 물어오는

사람들이 그려볼 상이라고 하는 것도 같지 않을것임을 나는 안다. 나는 투쟁과 밥이 이주노동자

농성투쟁을 지원하는 곳.이라고 했었다. 또한 나는 투쟁과 밥이 단순히 이주노동자 농성투쟁만을

위해 지원하는 곳은 아니라고도 말했었다. 때로 나는 상호부조, 반위계성, 자체 생산성, 작은 것에서

의 성향, 반자본주의, 가능성,조직화 등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고, 때로 나는 재미, 취향,

일상생활 등의 말을 쓰기도 했다. 몇몇 영어권 사람들에게 나는 푸드 낫 밤과 비슷한 것이지만

같지는 않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눈치로 보건데 말을 말 그 액면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배경이나 생각에 비추어보고 이것저것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그것의 저의와 의도를 캐보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역시나 제각각이다. 제각각이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투쟁과 밥 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이고, 무슨 의미가 있으며, 무엇을 해 왔는지 잘

모르겠다.  사실은 잘 모르겠다 라기 보다, 몇가지 혼란스런 지점이 있다라고 하는 편이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현재 투쟁과 밥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고 백명이 훌쩍 넘었던 이주노동자 농성

인원은 그 수가 수십명 정도로 줄었다. 길어지는 농성에 따라 많은 이들이 떠나갔으며,

출입국 직원들에게 잡혀가 강제추방 되었다. 그 사이 개인적으로 나에게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많은 일들은 각각으로 보면 독립적인 일이었지만,  전체적인 그 어떤면에서 서로 연결점이 있었다.

결국 가장 큰 공통 분모를 찾아보면, 간단한 단어를 나열 해 볼 수 있다. 그것은 태도. 분노. 막힘. 의욕 긍정.

인생. 일관성. 세계. 자신. 호랑이 이다. 이 문장에서 어울리지 않는 말을 찾아보면

답은 호랑이 이다. 호랑이는 아직 방글라데시에는 있다고 한다.

나의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적은, 아버지가 아주 어렸을 때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볼 때, 나는 이제 투쟁과 밥 안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때, 나는 투쟁과 밥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 있었을 때는 그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 밖에 있는 지금은

그 밖에 있기 때문에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투쟁과 밥을 둘러싼 그

모든것들을 생각하고 있다. 처음 투쟁과 밥 안에 있을때, 작은 팜플렛이나, 전단지나,

소책자같은 것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리는 만들지 못했다. 지금의 나는 오히려

그 밖에 있기 때문에 어쩌면, 다시 조금 여유로운 상태에 있기 때문에 어쩌면,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지금 짚어 볼 것은 좀 짚어보고, 정리해 볼 것은 좀 정리하고, 그것이 잘 안된다라고

하면 최소한 이것저것 나열해 볼 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한 지점에 있을땐, 그 한 지점밖에 보이지 않지만, 여러지점을 살펴볼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하면, 이것저것 볼 수 있는게 아닌가 싶다. 사실 지금으로서는 내가 쓰고 있고, 쓰고자 하는것이,

개인용 수필이 될지, 정치적 논의가 될지, 아니면 그 다른  무언가가 될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것을 지금 미리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나는 지금 방에 혼자 앉아있고,

편한 마음으로 글을 쓴다.

JOHN KIM
(2009-05-13 20:40:28)
Struggle and Rice, Its Insides and Out

I was in Struggle and Rice. One day out of the week, went to market and good supplies, another day out of the week, prepared food for 100 people and brought it to the Sit-In at Myongdong Cathederal. We cooked, went to market together, got the food ready, and with the people from Struggle and Rice, migrant workers, and people participating we did dinner together. The migrant worker struggle was happening for the past few years, migrant workers and korean activists began to understand each other. There was struggle with some progress and some disappointments, With the deportations and the recent crackdowns on migrant workers, it was decided to occupy the front of Myongdong Cathederal. Around 2002, inside the grounds of Myongdong Cathederal, not more than ten migrant workers (Bidu who was arrested for deportation by the Immigration authorities was one member present) had occupied that space, but this time the first night of this sit-in happened at the stone stairs in front of the cathederal, the flags and banners waving in the air filled the space. The first night of the sit-in was "mom-shi" cold, once going inside a "doo-toom han" sleeping bag, the bottom near the feet was damp, overall miserable conditions, i really didn't like it. With friends together we drank alcohol and I passed the night, the next day at dawn with everyone present we sang "Worker of Steel", looking at the migrant workers went back home. With a few friends we talked about the idea of Struggle and Rice. Afterwards, after visiting migrant workers outside of Seoul in their locality, and talking with a regional representative Korean activist for the union and migrant workers, I relayed previous discussions about Struggle and Rice. At the Ssangmoondong infoshop, people who wanted to participate with Struggle and Rice talked the whole day making plans and further discussing.

One week after, at the stone steps at the entrance of Myongdong Cathederal, Struggle and Rice started. The first menu was fish curry and eggplant curry.
uhhm
(2009-06-16 22:50:29)
아 이걸 이제서야 확인했다. I've just checked this now. 내가 한가지 빠트린게 있다. I skipped one thing.
내가 최초로 투쟁과 밥 아이디어에 대해 이야기 한 사람은 바로 너라는 것이다. The person who I talked with about struggle and rice was you.너가 없었다면 투쟁과 밥은 없었다. If you were not there no struggle and rice.nonononono. 너는 투쟁과 밥의 핵심이었다.You were the core of the struggle and r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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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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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헤드
  2006/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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