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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무리 2004-08-23 20:49:03, Hit : 1103
Homepage   http://www.galmuri.co.kr
Subject   [갈무리 신간] 『아나키스트의 초상』입니다.
안녕하세요. 다중의 활력과 지성 그리고 희망을 담아내는 [도서출판 갈무리]입니다. 『아나키스트의 초상』 출간 안내와 관련 정보를 보냅니다. 더 상세한 정보가 필요하시면 02)325-1485,4207[편집부]로 연락주십시요. 감사합니다.


★ 아나키스트의 초상
★ 21세기 반전과 평화, 저항정신의 뿌리



러시아의 유명한 지식인 미하일 바쿠닌과 표트르 크로포트킨부터 거의 알려지지 않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제화공이자 급진적인 연설가였던 플레밍까지, <아나키스트의 초상>은 아나키스트 운동에 참여했던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생각과 개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아나키스트들의 다양한 삶 자체만으로도 흥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전성기를 누렸던 아나키스트 운동과 1960년대와 1970년대 전 세계를 휩쓸었던 반전운동은 서로 밀접한 역사적 맥락을 지니고 있다. 폴 애브리치는 무덤 속의 아나키스트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되살려 냄으로써 사회 체제적 부조리와 전쟁에 맞선 오늘날 전 지구적 ‘반세계화’, ‘전쟁반대’ 시위로 분출되는 저항의 흐름을 새롭게 이해하게 해준다.



□ 도서명 : 『아나키스트의 초상』
□ 지은이 : 폴 애브리치
□ 옮긴이 : 하승우 옮김
□ 판형 : 신국판 | 제본 : 무선| 쪽수 : 480 쪽
정가 : 16,900원
□ 발행일 : 2004년 8월 16일
□ ISBN : 89-86114-70-4 040100



아나키즘의 부활과 <아나키스트의 초상>

1999년 11월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를 사실상 무산시킨 ‘반세계화 시위’는 어떤 단일한 중앙집중적 조직도, 엄격한 위계도 없이 통일되지 않은 다양한 복장과 몸짓으로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의 새 집행기구를 농락하며 아나키즘의 부활을 선언했다. 전체주의와 전쟁국가에 맞서 사회적 반란, 삶의 반란이 일어나야 한다는 바쿠닌을 비롯한 19세기 말, 20세기 초 아나키스트들의 주장은 오늘날 전쟁반대와 지구적 민주주의를 위한 시위들에 주요한 참조가 되고 있다. 특히 2003년 이라크 전쟁 발발 이후 이에 저항하는 반전운동에서 되살아난 아나키즘은 일시적인 현상이나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정작 그 내용을 설명해줄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오래 전에 나온 책들은 대부분 절판되었고, 새로 나온 책들은 아나키스트 운동의 과거와 현재를 제대로 이어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나키스트의 초상>의 출간은 열정적이지만 때로는 모순되게 살았던 아나키스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아나키즘 사상의 과거와 현재를 제대로 연결해준다. 아나키스트들의 삶보다 더 솔직하고 진지한 사상이 또 있을까?
<아나키스트의 초상>은 아나키즘에 대한 갈증을 충분히 해소시키는 것은 물론 그들의 사상과 저항정신을 가슴으로 느끼며 이해하게 해줄 더 없이 반가운 책이다. 여러 아나키스트의 삶을 통해 아나키즘 운동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전기적인 방식으로 쓰인 <아나키스트의 초상>은 우리의 ‘오해’와 달리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저항운동에서 아나키즘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우리가 잘 아는 바쿠닌이나 크로포트킨만이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여러 나라의 아나키스트들을 통해 아나키즘의 다양한 ‘각(角)’을, 그 각들의 미묘한 갈등까지도 그려낸다. 그리고 그런 각과 갈등이 1960, 70년대 서구사회의 저항운동과 어떤 관련을 맺는지도 그린다. 게다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애브리치는 한 개인의 삶을 통해 당시 아나키즘 운동의 대의와 방향, 노선 등을 그린다. 그래서 이런 다양한 각과 관계는 추상적이지 않고 아주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이런 구체적인 서술 속에서 우리는 흔히 아나키스트들을 구분짓는 무정부주의자, 테러리스트, 개인주의자와 같은 추상적이고 고정된 잣대들이 왜 위험한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아나키스트의 초상』 특징

1) 왜 ‘아나키스트의 초상’인가?

‘초상’이라는 말이 알려주듯 이 책에서 다뤄지는 아나키스트들은 모두 죽어버린 과거의 인물들이다. 하지만 ‘아나키스트의 초상’은 ‘아나키즘의 소멸’을, 그 치열했던 삶의 기록들이 묘지의 비명으로만 남게 되는 ‘쓸쓸한 몰락’을 암시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들의 육체적인 죽음이 그들을 ‘살아있게 했던’ 열정까지 모두 묻어버릴 순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아나키즘이 배반과 실패의 역사를 반복하며 몰락한 듯 보이지만, 아나키스트들은 국가와 자본이라는 괴물에 맞선 사람들에게 하나의 ‘유령’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아나키스트의 초상’을 그리는 애브리치의 세심하면서도 담백한 붓질은 각각의 아나키스트와 관련된 상반된 여러 정보들을 하나의 그림으로 드러내다. 이렇게 그려진 ‘아나키스트의 초상’은 화려한 귀족 저택에 걸린 가계를 ‘과시’하는 초상화나 승자의 위엄을 과시하는 기념비가 결코 아니다. 이 초상은 ‘감상용’이 아니라 아나키스트라는 오늘날의 ‘유령’과 만날 수 있는 거울이다. 여전히 반세계화 운동이나 지역자치운동, 교육운동, 환경운동, 반전운동, 꼬뮨운동과 같은 전 지구적 자본을 공격하는 자율적이고 다양한 운동들에서 드러나듯이, 억압과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유령의 ‘출현’과 ‘부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2) <아나키스트의 초상>은 무정부주의, 테러리즘이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고 아나키즘의 다양한 색깔을 볼 수 있게 해준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나키즘하면 무정부주의자이거나 테러리스트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아나키스트의 초상>이 가진 장점은 이런 생각들을 불식시킨다. 애브리치는 우리가 잘 아는 바쿠닌이나 크로포트킨만이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여러 아나키스트들을 통해 아나키스트들의 다양한 삶과 아나키즘 운동의 다채로운 면을 볼 수 있도록 한다. 각각의 아나키스트들의 삶을 통해 드러내는 아나키즘 운동의 대의와 방향, 노선, 갈등들은 아나키즘을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으로 다가오게 한다. 이런 구체적인 서술 속에서 우리는 흔히 아나키스트들을 구분짓는 무정부주의자, 테러리스트, 개인주의자와 같은 추상적이고 고정된 잣대들이 왜 위험한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아나키스트의 초상>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부는 바쿠닌과 크로포트킨, 네차예프, 젤레즈니아코프, 마흐노, 아이헨바움 같은 러시아 아나키스트들을 다룬다. 그리고 제2부는 미국에 영향을 미친 아나키스트들, 프루동과 터커, 모브레이, 사코와 반체티, 유대인 아나키스트들, 베르크만, 마공, 슈타이머 같은 아나키스트들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제3부는 유럽과 다른 지역을 포함해 파리꼬뮨의 의미와 브루스, 란다우어, 브라질 아나키스트, 플레밍을 다룬다. 이런 기록을 통해 우리는 개인적인 테러행위에서 공동체적인 꼬뮨주의 운동까지, 급진적인 이상주의에서 현실적인 개혁주의까지 아나키즘의 다양한 색깔을 볼 수 있다.


3) <아나키스트의 초상>은 ‘직접행동’과 ‘실행에 의한 선전’, ‘꼬뮨주의’라는 아나키스트의 개념들을 통해 해방을 향한 싸움은 뛰어난 영웅의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다중(多衆)의 몫임을 보여준다.

각기 다른 여러 인물의 삶을 그리지만 <아나키스트의 초상>에서 드러나는 가장 분명한 메시지는 ‘직접행동’과 ‘실행에 의한 선전’이다. 그리고 이 두 개념은 ‘꼬뮨주의’라는 큰 틀로 묶여진다. 아나키스트들은 강요되거나 재단된 삶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려고 노력했고, 이론적인 주장이나 논증보다는 직접 몸으로 실행하며 자기 사상의 올바름을 증명하려 했다. 누가 나를 대신해 주길 기대하지 않고 직접 맞서 스스로 싸우는 것, ?아나키스트의 초상?은 다중들의 그런 힘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유대인 아나키스트들과 이탈리아 아나키스트들은 피크닉(picnic)이라는 독특한 대안문화활동을 즐겼다. 그들은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먹고 마시며 춤을 췄지만, 행사가 끝날 무렵엔 강연회나 책자를 발행하기 위한 기금을 모았다. 그들은 이탈리아 왕을 암살한 아나키스트의 미망인이 여는 찻집에서 옛날 신문을 뒤적이며 현재를 살아갈 힘을 얻는 동시에 미망인의 생계를 도왔다. 그들은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을 기리는 연극을 자체적으로 공연했고, 국가가 정한 휴일이 아니라 파리꼬뮨 기념일이나 헤이마켓 순교일 등을 기념일로 삼았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했지만 저녁이나 공휴일에는 자신들의 신념을 주장하는 책자와 잡지를 만들며 힘을 얻었다. <아나키스트의 초상>은 아나키스트들이 어떻게 ‘일상에서의 아나키즘’을, ‘가정에서의 아나키즘’을 조직해갔는지를 잘 보여준다.


4) <아나키스트의 초상>은 오늘날과 같은 전 지구적 전쟁 시대, 야만의 시대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제시해준다.

<아나키스트의 초상>이 다루는 시대는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이다. 즉 그 시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격동적이었다고 얘기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시기 동안 파리꼬뮨, 러시아 혁명과 크론슈타트 봉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 스페인 시민혁명 등 중요한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인류의 진보라는 이상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아나키스트의 초상>은 아나키스트들이 이러한 전쟁에 맞서 어떻게 주장하고 싸웠는지를 보여준다. 과연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는지,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는지, 아나키스트들은 전쟁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인지 등의 쟁점이 여러 아나키스트들의 대립적인 모습을 통해 드러난다. 오늘날과 같은 전 지구적 전쟁의 시대에야말로 대량파괴를 위한 핵무기와 생화학무기를 경고하며 “과학에 대항하는 삶의 반란, 과학의 지배에 대항하는 반란”을 주장했던 바쿠닌을 비롯한 아나키스트들과 아나키즘의 삶을 재조명하는 것은 절실하게 필요한 작업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라크 전쟁 파병이나 한반도의 위기 같은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판단해야 할 것인지에 관해서도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아나키스트들이 몸으로 부딪치며 주장했던 것보다 더 분명하고 강력한 반전의 메시지가 있을까? 폴 애브리치는 잊혀져가는 아나키스트들의 삶을 되살려 냄으로써 정치적?사회적 부조리와 전쟁에 맞선 전 세계적인 투쟁에서 아나키즘이 어떠한 참조를 줄 수 있고 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제시해준다. 이 책은 오늘날처럼 전쟁이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에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와 민주주의를 고무하는 데에 꼭 필요한 책이다.




『아나키스트의 초상』 추천사


★ “미국 내의 아나키즘에 관해 애브리치가 합성한 그림은 대표자들의 남다른 헌신과 개성적인 힘만이 아니라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아나키즘의 모순들과 장점, 단점들을 보여준다.”

- 제임스 졸, 뉴욕타임스 서평

★ “폭력적인 폭동에 대한 신념을 기계적으로 포기하는 것 이상을 탐구하려는 사람들과 아나키즘의 지지자들은 애브리치의 책에서 경험하기 힘든 지적인 향연을 누린다. 그는 분명하게 쓴다. 그의 지식은 조심스러우며 아나키즘에 공감하지만 아첨하진 않는다.”

- 콜만 맥카씨, 워싱턴포스트 서평

★ “애브리치는 노동계급운동과 사회개혁운동, 리버테리안 사상, 무엇보다도 좌파와 우파 모두의 전체주의에 맞서는 지속적인 싸움에서 아나키스트들의 중요한 공헌을 증명한다. 이 증명은 아주 강력해서 때때로 ?아나키스트의 초상?에서 불가능했던 꿈이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여기지지 않도록 만든다.”

- 게리 컨, 워싱턴 타임스

★ “아나키즘에 관해 애브리치는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미국 학자이다. … 이 책에는 바쿠닌과 크로포트킨 에 관한 에세이가 두 개씩 담겨 있다. 이 에세이들은 두 사람에 대한 인상과 그 시대 사회주의 세계에 미친 그들의 영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 애브리치는 열정적인 몰리 슈타이머, 아이작 바벨의 ?붉은 기병대?의 영웅이던 게릴라 두목 네스토르 마흐노처럼 거의 잊혀졌던 많은 인물들을 부활시킨다. 이 책은 이민자들의 아나키스트 문화에 관해서도 짧지만 매력적으로 다룬다.”

- 로버트 잘러, 필라델피아 인콰이러





지은이와 역자 소개


폴 애브리치 (Paul Avrich)
폴 애브리치는 뉴욕시립대학의 퀸스 컬리지와 대학원에서 러시아 역사를 가르친다. 그는 미국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운동사 연구자로 <러시아 아나키스트들>(1967), <1921년 크론슈타트>(1970), <1600~1800, 러시아의 반란자들>(1972), <러시아 혁명 속의 아나키스트들>(1973), <미국인 아나키스트, 볼테린느 드 클레이르의 삶>(1978), <근대학교운동: 미국 내의 아나키즘과 교육>(1980), <헤이마켓의 비극>(1984), <아나키스트의 초상>(1988), <사코와 반체티>(1991), <아나키스트의 목소리: 미국 아나키즘 구술사>(1995)를 썼다.

하승우 (Ha Seong Woo)
하승우는 경희대 정치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정치사상을 공부하고 있고 아나키즘, 자치운동, 공간정치 등에 관심이 있으며 자기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북매거진 ?텍스트?에 글을 쓰고 있고, 무크지 ?모색?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시민자치정책센터> 운영위원으로도 일하고 있다. ?풀뿌리는 느리게 질주한다?(공저, 갈무리, 2002), ?희망의 사회 윤리 똘레랑스?(책세상, 2003)를 썼다.  


『아나키스트의 초상』 저자서문


1970년 리버테리안(libertarian)의 한 전단은 “쉴리만(Schliemann)이 트로이를 발굴하듯 오늘날의 신좌파가 아나키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고 선언했다. 베트남 전쟁이 터지기 전까지 아나키즘은 소멸하고 반쯤 잊혀진 운동처럼 보였다. 1930년대 스페인 혁명에서 패배한 뒤, 아나키즘 모임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기력을 잃어버렸으며 결속력도 약해졌다. 이와 함께 그들의 문헌들도 사라져 갔다. 몇몇 역사가들이 아나키즘 운동의 묘비명을 쓰기 시작하던 바로 그때, 1960년대와 70년대의 사회적인 동요가 아나키즘에 다시 새로운 생명력을 주었다. 아나키스트 모임들이 부활하고 확산되었으며 아나키즘의 지지자들은 인종차별철폐와 핵무기감축에서 징병거부와 전쟁반대까지 다양한 사회활동에 참여했다. 팸플릿과 책, 성명서뿐 아니라 새로운 아나키스트 잡지가 발간되었고, 이런 인쇄물들은 국가권력을 근본적으로 비판하며 실질적으로 다른 모든 정치사상학파들이 내세운 전제들에 물음을 던졌다.

이런 활동에 발맞추어 아나키즘과 관련된 주제들-역사서들, 전기들, 선집(選集)들, 관련서적목록-에 관한 학술적인 연구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 책에 실린 글들도 그런 흐름의 일부이다. 내가 20년 넘게 써온 많은 글들은 주로 러시아와 미국에 초점을 맞췄다. 아나키즘은 전 세계로 퍼져나간 국제적인 운동이기에 다른 나라들도 포함해야 했지만, 나의 주요한 관심영역은 독일과 프랑스에서 오스트리아와 브라질까지로 제한되었다. 그리고 가장 긴 글 중 하나(13장 “미국의 유대인 아나키즘”)는 이 책을 위해 특별히 준비했다. 나머지 글들도 최근까지 수정?보완하여 손질했고 어떤 경우 너무 많이 고쳐서 거의 새로운 글이 되었다. 이전에 내가 아나키즘의 역사를 다뤘던 글들처럼, 이 책도 엄선한 아나키스트 활동가의 삶을 통해 아나키즘 운동의 향기를 발산하는 전기적인 방식을 주로 사용했다. 몇몇 인물들(예를 들어, 바쿠닌과 크로포트킨)은 세상에 널리 알려졌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흥미로운 삶을 살았고 비범한 인간적 자질을 타고났다. 나는 그들의 오류와 모순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그 비범한 자질을 짧게나마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유명하건 유명하지 않건, 이들 아나키스트들의 경력을 살펴볼 때, 다른 무엇보다도 한 가지 점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즉 이들은 부조리와 모든 형태의 압제를 열렬히 증오했으며 정치와 경제 모두에서 중앙집권적인 권력의 위험성을 경고하려 했다. 그들은 경찰국가의 성장, 개인의 종속, 노동의 탈인간화, 언어와 문화의 타락으로 규정되는, 좌파와 우파 모두에서 최초의 형태이자 가장 철저한 전체주의[볼셰비즘과 파시즘] 속에서 살았다. 즉 그들은 한 세기 전에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가 “다가오는 야만의 시대”라고 묘사했던 시대를 살았다. 일반적으로 중앙집권적인 권위, 특히 국가사회주의에 관한 스펜서의 예언은 우리 시대에 충분히 증명되었다. 근대의 독재체제 아래에서 진리와 정의, 품위와 명예,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는 무참히 짓밟혀 왔다. 중앙집권적인 권력에 대한 아나키스트의 비판을 곰곰이 생각하면 전체주의를 “영원히 인간의 얼굴을 짓밟는 군화발”로 묘사했던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 떠오른다. 또 해방 없는 사회주의는 최악의 노예제가 되리라는 프루동과 바쿠닌의 경고도 떠오른다. 25년의 시간 동안 나는 아나키즘에 관한 자료를 찾아 수많은 도서관과 문서보관소들(archives)을 방문했고 또 다시 방문했다.

다음의 곳들이 특히 중요하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국제사회사 연구소(the International Institute of Social History), 미시간 대학의 라바디 문서보관소(the Labadie Collection of the University of Michigan), 뉴욕 대학의 타미멘트 도서관(the Tamiment Library of New York University), 뉴욕 공공 도서관, 의회 도서관, 하버드와 콜롬비아 대학의 도서관이 그곳들이다. 친절하고 효율적으로 도움을 준 그곳의 직원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또 나는 프린스턴 대학 출판부의 가일 울만(Gail Ullman)과 엘리자베스 그레츠(Elizabeth Gretz)에게도 고마움을 표한다. 그들은 초고를 꼼꼼히 읽고 세세한 점까지 충고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에 글을 다시 싣도록 허락해준 아래의 출판사와 잡지사들에게도 감사를 보낸다. 그들은 다음과 같다. Penguin Books(런던), Black Rose(보스턴), Dover Publications(뉴욕), Freedom(런던), the International Review of Social History(암스테르담), Charles H. Kerr Publishing Company(시카고), The Match!(터슨), The Nation(뉴욕), The New Republic(워싱턴), The Russian Review(매사추세츠주의 캠브리지). 그렇지만 이 책을 바치는 고(故) 아른 쏜(Ahrne Thorne)에게 가장 고마움을 느낀다. 아른은 1904년 12월 26일 폴란드 로츠(Lod?)의 하시디즘을 믿던 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청소년기에 그는 [그 사회의] 전통을 깨고 파리에서 고학을 했다. 그곳에서 그는 사코(Sacco)와 반체티(Vanzetti)를 위해 시위를 벌이면서 아나키즘에 귀의했다. 1930년 그는 토론토로 이주했고 엠마 골드만(Emma Goldman)과 친분을 맺었으며 뉴욕의 유대인 아나키스트 잡지인 ?프라이에 아르베터 슈티메?(Fraye Arbeter Shtime, 자유로운 노동자의 목소리)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른은 뉴욕으로 가서 1940년부터 유대인 출판사에서 인쇄공으로 일했으며 나중에 ?프라이에 아르베터 슈티메?의 편집장을 맡았다. 그가 편집장을 맡은 후 이 잡지는 유대교 지식세계와 문화세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했다. 이 잡지는 87년 동안 발행되다 1977년 문을 닫았다. 1985년 12월 13일 아른 자신도 81살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나는 20년 이상 아른과 알고 지내온 걸 기쁘게 생각한다. 그는 항상 정다운 동지였고 흥미로운 조언자였으며 헌신적인 친구였다. 그는 자유롭고 인간적인 정신을 가졌으며 끝없는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했다. 그의 말과 글 모두에서 많은 공정함과 품위를 느낄 수 있다. 그를 알던 우리 모두는 항상 그에게 진 빚을 의식할 게다. 특히 현명한 조언자와 공감하며 들어줄 사람이 필요할 때 그가 없다는 사실은 더 뼈저리게 느껴질 거다. 1987년 12월 뉴욕에서 폴 애브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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