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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인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인권”
                                                

한홍구(성공회대 교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는 그 자체로 중요한 인권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로 구속되어 있는 이들이 모두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인 까닭에 특정종교의 교리문제로 취급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종교에 대한 일반인들의 태도는 이들을 이단시하는 경향까지 있어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려는 시도가 자주 ‘특정종교에 대한 특혜’를 주려는 것으로 치부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미 지난 수 십 년 동안 양심적 병역거부로 구속당한 젊은이들이 10,000여명에 이르고 현재 구속되어 있는 이들만도 1,600여명이나 되는 상황에서 이를 특정종교의 교리문제라며 덮어놓는 것은 우리 사회의 관용과 인권에 대한 감수성의 발전에 비추어 모순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이 자리를 빌어 ‘양심적 병역거부가 특정종교의 문제가 아닌 보편적 인권의 문제이며 이의 해결이 우리 사회의 모순된 병역문제의 해결에 실마리가 된다’는 것을 밝혀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는 ‘군대에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라는 말을 흔히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맞다고 한다면 여기 계신 어머님들이나 여성들은 모두 사람이 안 되었다는 말이 되겠지요. 이런 말들은 모두 군대에 가는 것을 당연시 여기게 하려는 군사문화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사람이 군대에 가는 것이지 군대에 다녀와야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저는 20년 전에 군대에 다녀왔습니다. 그 당시 이등병이었던 제가 받았던 월급이 2700원, 일당 90원, 24시간 근무니까 시간당 4원인 셈이지요. 요새는 많이 올랐다고들 하지만 평균 월급 만원, 일당 400원, 시간당 17원입니다. 돈으로만 사람의 가치를 계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보다 더 적나라하게 군대에서의 사병의 가치를 잘 말해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군인들의 식사나 의복지급 등에서는 개선이 되었지만 근본적인 것에서는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군에서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죽어가고 있는데 지난 1980년부터 1995년까지 이 숫자가 8,900명, 연 577명에 이릅니다. 물론 60만 명이라는 사람을 모아놓으면 그 안에서 질병도 일어날 수 있고 사고도 날 수 있지만 그것이 군에서 사망하는 이들의 사인의 전부가 아닌 것이지요. 1년에 군대에서 정신병에 걸리는 사람이 5천명, 한 해 사망자가 300여명(80년대 초반의 절반 정도라고 합니다), 탈영자가 천오백명이라고 합니다. 이는 젊은이들에게 군대에서 한창의 나이에 규율에 맞춰 26개월 동안 젊음을 속박 당하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이전에 한국에서의 군사문화에 대해 우리 모두 같이 생각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해서 여호와의 증인 문제를 이렇게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90년대에 한국인권문제의 상징인 장기수 할아버지들은 일제 시대부터 감옥에서 살아오셨습니다. 80년대 우리 친구, 동료, 아들들이 민주화운동으로 감옥에 갔을 때 그 분들도 계속 감옥에 계셨지요. 그런데 당시에는 장기수들이 있다는 사실을 감히 꺼내지 못했지요. 소위 ‘빨갱이’였으니까요. 그러다가 80년대에 사회안전법 문제 등이 대두되고 나서 우리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지요. ‘빨갱이’에게도 보편적 인권이 있다는 것, 이들의 인권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보호해야한다는 것이 받아들여진 것이지요. 여호와의 증인도 그런 경우라 할 수 있지요. 한국의 기존 종교단체들이 여호와의 증인을 소위 ‘왕따’시켜왔고 이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이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습니다. 그렇지만 종교의 자유라는 것은 인간 내면으로부터의 기본적 권리이고,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스스로 선택한 신앙에 바탕하여 남에게 해를 주지 않고 그 믿음을 실천하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60,70,80년대를 거쳐 금기시하던 빨갱이의 인권을 이야기 할 수 있게 된 한국사회가 이제는 배타시했던 여호와의 증인들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을 군법정에서 대해왔던 군법무관들과 언론인들도 처음 이 문제를 제기할 때는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할 거라는 기대를 크게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둘이 아니라 지금까지 일만여명, 현재 1,600명이나 되는 엄청난 수의 젊은이들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웠나 봅니다. 법원의 판결을 돌아봐도 70, 80년대에는 최고형인 2년을 언도했다가 후에는 동일한 죄를 두 번 저지른 경합범의 논리를 악용하여 3년형을 언도했다가 요즘에는 이들의 인권에 대한 사회의 인식변화를 반영하여 1년6개월을 언도하고 있습니다. 즉, 더 이상 양심적 병역거부의 문제가 특정 종교에 대한 특혜나 일부 광신도들의 문제가 아닌 전쟁을 거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인간의 보편적 권리의 문제로 다루어지고 있고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문제를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다루기 위해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이 몇 가지 더 남아있습니다. 우선, ‘양심적 병역거부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군대에 다녀온 사람들은 비양심적인 것이냐?’ 혹은 ‘누구는 2년 2개월 동안 군대에서 고생하고 오는데 누구는 종교를 핑계로 군대도 안 간다면 그 종교의 신도들이 마구 늘어나는 것 아니냐?’하는 일반 국민들과 종교계의 불만 섞인 의문들입니다. 두 번째 질문에 먼저 답하자면, 제가 아는 바에 따르면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되려면 일주일의 5일을 교리공부와 기도 모임에 투자해야 합니다. 즉 신도가 되기도, 신도로서 생활을 하기도 쉽지가 않은 것이지요.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군대생활과 군대면제, 대체복무의 형평성에 대해서 먼저 따져봐야겠죠. 군입대와 관련해서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지요. 면제자 중에서 외국시민권 소지자나 특기자, 연예인들은 ‘바람의 아들’, 정?재계의 고위급 자녀들은 ‘신의 아들’, ‘장군의 아들’이라 불리고 보통 입대자는 사람의 아들‘, 전방배치자는 ’어둠의 자식들‘. 이들 외에도 전문연구요원, 상근예비역, 공익근무요원 등등으로 병역특례로 분류되는 사람이 거의 20만에 가깝고 전투경찰, 의무경찰을 포함하면 60만이 되는 현역군인의 절반 이상이 군대에 가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까 국민개병제가 아니라 ‘빈민개병제’, 즉 돈과 권력 있는 사람은 가지 않고 돈과 권력 없는 사람만 가는 곳이 군대라는 자조적인 말들이 나오는 것이지요. 따라서 대체복무제를 실시하고 불평등한 병역특례제의 수혜자를 줄인다면 군대를 유지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징병제 군대라는 것은 프랑스 나폴레옹의 부대로부터 유래한 것입니다. 당시 징집된 병사는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어 국가의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획득한 것에 대한 의무였습니다. 이와는 달리 한국에서의 징병제는 일제시대 말기에 일본을 위해 동남아, 중국 등의 전선에서의 총알받이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것이 50년 이상 유지된 것입니다. 군인징병제 50년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은 1950년 12월부터 불과 2~3개월 사이에 일어났었던 ‘국민방위군사건’입니다. 그 당시 무려 68만을 데리고 갔는데 최소 5만명이 굶어죽거나 얼어죽었습니다. 국가가 이들을 죽일 목적으로 징집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의 환경을 마련하지도 않고 징집한 것은, 이들의 죽음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것이지요. 또한 이들을 징집한 목적이 군인의 수를 늘려서 미국으로부터의 군사비용원조를 확대하기 위한 것이었음이 밝혀졌기에 군인의 인권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는 우리사회의 군대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른 대체복무제의 도입이 군생활의 개선에 획기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대만의 경우처럼 종교적인 이유에 따른 대체 복무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이유에 대해서도 그것을 허용한다면 비종교인들에게도 형평성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대만에서 대체복무제를 실시한 첫 해에는 9천명의 모집인원을 초과하여 추첨을 했지만 그 다음 해에는 오히려 미달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대체복무가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돈과 권력의 유무에 의해 군입대자와 면제자가 나뉘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성과 상황에 따른 선택에 따라 군입대자와 대체복무자가 가려져야 하는 것이지요. 동시에 현역복무기간을 줄이고 군생활도 더욱 개선하여 대체복무와 군입대 중에서 진정으로 선택이 가능하도록 한다면 대체복무제를 반대하는 이들의 우려처럼 군입대자가 하나도 없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복무기간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하자면 현 상황에서도 복무기간이 더 긴 해군이나 공군을 지원하는 사람들도 있고 더 짧은 육군을 지원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처럼 기간자체가 선택의 절대적인 기준은 아닌 것이고, 대체복무의 업무성격도 선택에 영향을 주는 것이겠지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대체복무를 신청하는 사람들을 사회복지시설로 많이 배정해야 할 것 같은데요, 국방비에 많은 예산이 들어가기에 사회복지시설에의 투자가 그만큼 열악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픈 이들을 돌보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은 일이기에 무조건 대체복무를 선택할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어 스스로 군대를 선택한 사람들이 군에 복무하게 된다면 군대자체의 여건 개선이나 전력강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현재 양심적 병역거부로 감옥에 있는 사람들과 앞으로 감옥에 올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 될 것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도 문제는 지난 1년 동안 저희도 믿기 힘들 정도로 빨리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부 보수적인 종교는 예외라 하더라도 천주교, 불교 등의 종교단체, 시민단체는 물론 법조계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6월말 서울지법남부지원의 박시환 판사가 현행 병역법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제기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문제로 인해 우리 사회의 민주의식과 인권의식이 향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최근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하여 한국인권의 현주소를 나타내는 지표로서의 사상의 자유, 이념의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의 근본인 양심의 자유가 사회 곳곳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더 이상 국가가 국민을 훈육하려 하지 않고 시민들도 자신의 근본적인 권리를 인식하여 국가와 시민의 새로운 관계정립에까지 이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일시 : 2002년 2월 26일 오후 3시 / 장소 : 프란치스꼬 교육회관 4층

정리 : 김연옥(자원활동가)




<민주가족> 34호, 민가협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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