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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코프스키 2007-07-27 19:59:51, Hit : 1455
Subject   [프로메테우스]이민의 나라가 이민을 막을 때
이민의 나라가 이민을 막을 때
미국 이민법의 역사
안효상 메일보내기

미국의 (반)이민법을 둘러싼 의회의 논란이 알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상원이, ‘불법 이민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 규정을 담은 하원의 법안과 달리 좀더 온건하고 긍정적인 시민권 부여 조항을 담은 합의안을 내놓았지만 부결되었다. 이민법의 향방은 1,100만이 넘는 ‘불법 체류자’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또한 미국의 정체성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역사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끊임없는 노동력의 부족 때문에 마치 자석처럼 전세계에서 이민을 끌어당긴 나라가 미국이긴 하지만 언제나 이민이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인종주의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미국의 탄생 조건이자 딜레마, 아니 모순이었다. 플랜테이션 식민지로 성공하기 위해 백인 미국인들은 흑인 노예제를 만들어냈으며,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인디언이라 불리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추방하고, 학살하고, ‘보호 구역’에 가두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인의 자유와 평등,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주장한 미국 혁명도 노예제를 폐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근대의 다른 모든 국민 국가와 마찬가지로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라 할 수 있다. 영국의 전제주의에 맞서 자유를 쟁취한 미국이긴 하지만 근대 세계의 압력과 경쟁 속에서 강력한 연방 국가를 건설했을 때 국민적 통합을 위한 민족주의는 당연한 원인이자 결과였고, 이것이 때에 따라 배타적인 모습을 띠는 것 또한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긴장 속에서 이민의 환영과 이미의 배척은 동전의 양면처럼 미국 역사에 새겨져 있으니 최근의 논란이 새삼스러운 일은 전혀 아니다. 1798년 연방주의자들이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국가 안보를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일련의 입법을 했는데, 이 가운데 귀화법이 있었다. 이 법으로 미국 시민권을 얻기 위한 체류 기간이 5년에서 14년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주로 아일랜드계와 프랑스계를 겨냥한 이 법은 정치적 반대파인 공화주의자들의 기반을 약화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배타적이고 인종주의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이민 관련법이 만들어진 것은 19세기 중반에 밀어닥친 거대한 이민의 물결 다음의 일이었다. 아일랜드의 대기근과 1848년의 유럽 혁명 이후 아일랜드와 독일에서 수백만의 이민자가 미국으로 향했다. 어느 정도의 재산과 기술을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간 독일계는 수공업자나 자영농으로 살아가면서 미국 사회에 좀더 수월하게 적응했지만, 오랜 세월 영국의 억압을 받던, 가난한 농민 출신의 아일랜드계는 영어를 사용한다는 것 이외에는 정말로 가진 것이 없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하얀 흑인”으로 취급받으며 대다수가 막노동과 하녀 일 등으로 생계를 꾸려야 했다.

그래도 아일랜드인들은 유럽인이었고, 1870년대가 지나면서 서서히 백인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된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 들어온 중국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중국인들이 본격적으로 미국에 오게 된 것은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되고 나서였다. 1849년에 345명의 중국인 도착한 이래 점차 그 수가 늘어 1852년에는 2만 명이, 1870년에는 6만 명 이상의 중국인이 미국 땅을 밟았고, 그 중 3/4 이상이 캘리포니아에 정착했다. 중국인 이민자들은 주로 금광에서 일하러 왔기 때문에, 골드 러시가 끝난 뒤에도 다른 광산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외에 중요한 일자리는 대륙 횡단 철도 공사였다. 1865년에 센트럴 퍼시픽 회사가 50명의 중국인 노동자를 고용했고, 그 숫자는 2년 만에 1만 명을 넘어섰다.

이렇게 광산이나 철도 공사장 등 힘든 일에 종사했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처음에 환영받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낮은 임금도 마다않고 일했기 때문에 백인 노동자들이 보기에 이들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중국인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생긴 상태에서 1882년 중국인을 배척하는 이민법이 만들어졌는데, 10년 간 중국인 이민을 금지하는 것이었다. 특정 민족을 이민에서 배제하는 이 법을 통해 미국은 그 이전까지 유지하던 자유 이민 정책을 포기하게 되었다.

특정 민족에 대한 배척을 넘어서서 전반적인 배외주의가 판을 친 것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였다. 앞서 말한 중국인에 더해 일본인 등 아시아계 이민에 대해 배척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미국인들은 남유럽과 동유럽에서 들어오는 이민자들까지 적대시하였다. 사실 세기 전환기에 2천만이 넘는 이민자가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왔는데, 이들 중 대다수가 남유럽과 동유럽 등 당시로서는 후진적인 지역 출신이었다. 이들은 앞선 아일랜드계와 마찬가지로 막노동일을 하거나, 당시 확산되기 시작한 기계제 공장의 단순 직공으로 일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미국 산업화의 역군이었다. 하지만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배외주의가 강해졌고,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적색 공포’가 확산되면서 이들의 이민을 막자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이런 분위기에서 만들어진 것이 1921년의 이민 제한법이었다. 이민 제한법은 1910년의 인구 조사에 근거하여 이민자 수를 미국에 거주하는 민족별 3%로 제한하고, 거기에 더해 연간 이민자 수를 357,000명으로 한정하였다. 더 나아가 1924년에는 이 법을 개정하여 민족별 인구 기준을 1890년 인구 구성으로 하고, 쿼터도 2%로 낮추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남유럽과 동유럽 이민을 더욱 제한할 수 있게 되었다. (1927년에는 연간 이민자 수를 15만으로 제한했고, 민족별 쿼터를 1920년 인구 조사에 따라 배정하였다.)

쿼터제가 폐지된 것은 1965년의 이민법을 통해서였다. 이 법을 통해 쿼터제가 폐지되고 대신 동반구에서 오는 이민자에 대한 비자 발급수를 17만으로 정했고, 한 나라에서의 이민이 2만을 넘지 않도록 했다. 이렇게 민족별 쿼터제를 폐지하는 이민법이 만들어진 것은 민권 운동의 영향 때문이었다. 1955년 마틴 루터 킹 2세가 주도한 몽고메리 시의 버스 보이콧 운동에서 시작된 흑인 민권 운동은 최소한 법 앞에서의 평등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 결과가 1964년의 민권법과 1965년의 투표권법이었다. 이 두 법을 통해 정치적, 법률적인 인종 차별이 철폐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흑인 민권 운동의 영향 속에서 다른 소수계의 운동이 자극을 받아, 저마다 겪은 차별을 철폐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운동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이 1960년대였다.

1965년에 만들어진 새로운 이민법으로, 특히 아시아계 이민에 대한 제한이 풀렸고 이로 인해 이민 구성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베트남, 태국, 필리핀, 인도, 중국, 일본, 한국 등 아시아계 이민자와 중남미계 이민자 수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특히 중남미계의 팽창은 놀라울 정도여서 이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제치고 가장 수가 많은 소수 민족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불법 체류자’의 문제가 1980년대 다시금 떠올랐다. 1970년대 이후의 경제 불황과 보수주의의 대두로 이민자, 특히 불법 체류자가 미국인의 일자리와 복지를 빼앗는 존재로 부각된 것이다. 이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1986년의 이민 개혁과 통제법이다. 이 법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멕시코에서 오는 불법 이민자를 막는 것이었데, 불법 체류자를 고용하는 것을 범죄시하여 사용자에게 제재를 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미국-멕시코 국경에 대한 경비를 강화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1982년 이후에 미국에서 일하고 있는 불법 체류자에 대해서는 일 년간의 사면 조치를 취해서,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기도 했다.

이번에 논란이 되고 있는 이민법도 경제 불황과 국제 정세의 변동 속에서 언제나 튀어나왔던 미국의 배외주의의 최신 표현일 뿐이다. 하지만 국내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민주당이 강경한 이민법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공화당 내에서도 하원의 이민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불법 체류자’의 (경제적) 필요성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미국의 구성 원리인 이민의 역사적 힘이 표현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물론 미국이라는 틀을 넘어서는 보편적 인권의 논리로 그러한 긴장을 해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마 민족(주의)을 넘어서는 또 다른 도약이 필요하겠지만...


안효상 프로메테우스 편집위원, 서양사, 사회비판 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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