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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돕헤드 2007-04-26 01:51:46, Hit :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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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편리함은 얼마나 불편한 것인가
피자매연대 소식지 '달거리' 02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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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함은 얼마나 불편한 것인가'
- 사회적 불편함에 대하여

대안생리대를 바느질로 만들어 쓰자는 피자매연대의 주장이 한국 사회에 퍼진 2003년 이후 제일 많이 들어야 했던 말은 '불편한데 그걸 어떻게 사용합니까' '시간도 없는데 언제 다 일일이 바느질해서 만들어요?' 등이었다. 처음 피자매연대는 '대안생리대는 불편하다'는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하지 않은 채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계속 사용하다보면 곧 익숙해지게 됩니다'고 답을 했었다.

그러다가 그 불편함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는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과연 대안생리대 자체가 그렇게 불편한 것인가? 바느질을 해서 또는 재봉틀로 대안생리대를 만든다는 것이 그렇게 불편한 것인가? 사용한 달거리대를 집에 가져와 손이나 세탁기로 하나하나 빤다는 것이 그렇게 불편한 것인가? 세탁한 달거리대를 남들이 볼 수 있도록 꺼내 건조대에 늘어놓고 말리는 것이 그렇게 불편한 것인가? 우리의 답은 물론 '그렇지 않다'다.

먼저 대안생리대가 불편하다고 할 때의 불편함은 대안생리대 자체에 내재된 불편함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통념이 월경을 감춰야 할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나오는 '사회적 불편함'이다. 이런 사회적 불편함이 사라지지 않는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은 월경을 감쪽같이 처리하는 것으로 제한되고 만다. 여성들에게 이것은 억압이다. 왜냐하면 자연스런 신체의 현상을 자연스럽지 못한 것으로 여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나긴 억압의 세월은 마침내 편리함의 의미마저 변형시키고, 왜곡시켰다. 즉 일회용 생리대가 등장한 1970년대 이후 월경에 있어서 편리함이란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해 아무도 모르게 쓰레기를 배출하는 것'이 된 것이다. 일회용 생리대에 수반되는 가려움증과 염증과 짓무름이 아무리 불편하고 괴로운 것이어도, 그리고 이에 따른 자궁질환이 아무리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도 우리는 여전히 '일회용 생리대가 편리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피자매연대가 형형색색의 알록달록한 달거리대를 길 바깥에 공개적으로 드러내놓은 것은 이런 거짓된 편리함을 실체를 까발리는 것이었다. 불편한 것은 달거리대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가진 차별이었고, 잘못된 인식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는 편리함을 갈망하는 사회다. 모든 것들이 '보다 편리해지고 싶다는 사람들의 갈망'에 따라 만들어지고 소비된다. 그런데 그 편리함이란 조작된 편리함에 불과하다. 이 사회는 끊임 없이 무엇이 편리한 것인지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어떻게 하면 보다 편리하게 예쁜 몸매를 가꿀 수 있는지 자본주의는 알려준다. 어떻게 하면 보다 편리하게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지 우리는 교육받는다. 홈쇼핑이 등장하고, 상품광고로 이 사회 전체가 도배되어 있다.

그 편리함이란 빠르게 돌아가는 체제에 제대로 순응하는 것, 상품이 어떻게 생산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나에게 도달하며, 어떻게 폐기되는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일회용 생리대가 얼마나 많은 나무를 베어내 만들어지는가 관심을 갖게 된다면, 또 그것이 사용되고 난 뒤에는 어떻게 소각되거나 매립되는지 알게 된다면 마음 편하게 그 상품을 소비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무관심한 존재가 되어 기계처럼 일을 하고 손에 쥔 쥐꼬리만한 돈으로 소비를 하며 편리하게 살다 죽어가지 않으려면 우리는 과감하게 불편함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그런데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사노동은 아무리 해도 표시도 나지 않고 지루하게 반복해도 알아주는 사람 하나도 없는 지겹고 힘든 노동이다. 나아가 이 사회는 월경을 금기시하고, 여성들을 억압함으로써 부당한 사회적 불편함까지 만들어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임금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대부분의 여성노동자들에게 가사노동의 압박은 이중고, 삼중고의 고통을 가져다주고 있다. 힘들고 괴로워서 더이상 가사노동은 거들떠 보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대안생리대는 손바느질로 만들고, 손으로 세탁까지 하라니??? 이건 정말 불편하고 힘든 노동 아닌가??? 과연 그 불편함을 우리는 꼭 무릅써야만 하는 것일까???

달거리대를 손으로 빠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억지로 하는 노동과는 그 질이 다르다. 대부분의 가사노동은 부담으로 다가오지만 어떤 일은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게 되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있다. 자기 몸을 돌보고, 환경을 돌본다는 뿌듯함이 느껴지는 일은 억지로 해야만 하는 가사노동이나 임금노동과는 본질이 다르다.
댤거리대를 만드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그러나 그 긴 시간은 우리가 노예노동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기 자신만을 위해 투입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괴롭지 않다. 흥에 겨워 일을 할 때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달거리대를 만들고, 이것을 사용하고, 세탁하는 일이 그렇다.
결국 달거리대를 사용한다는 것은 '바느질'과 '세탁'이라는 것의 개념을 본질적으로 전도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억지로 해야만 하는 괴로운 부담이 아니라 소중한 자신과 지구를 위해 시간을 가치있게 보내는 일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새롭게 깨닫게 된다. 우리가 알던 편리함이 실은 얼마나 불편한 것이었던가를.  

* 보스코프스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5-01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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