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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코프스키 2007-05-10 00:30:21, Hit : 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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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우리힘]나는 꿈꾸고 싶다. 꿈을 말하고 싶다.
나는 꿈꾸고 싶다. 꿈을 말하고 싶다.
미국의 입장에서 미국을 위해 준비한 한미FTA

김대중의 뒤를 이은 노무현 정권의 탄생은 비로소 진정한 민주화 세력이라 자부하는 사람들의 집권이라는 데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역사의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민주화의 주역이었다 하더라도 민주화 운동을 한 경력이 곧 당연한 집권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뿐더러 대표성이나 상징성이 있어서 그것에 주목했던 것도 아니었다. 결과가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집권으로 나타난 것이지 화려한 민주화 운동의 경력 때문에 보상 차원에서 주어진 집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당연히 받아야 할 보상을 받은 것처럼 감격해 했고 자신들이야말로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으며, 이제야 비로소 흠결 없는 민주화 세력의 시대가 자신들에 의해 활짝 열렸다는 듯이 당당하게 청와대의 주인으로 입성했다.

허나 과거를 회상해보면 민주화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며 정말로 헌신했던 사람들은 민주화된 세상을 보지 못했으므로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 그 영광을 누릴 기회조차 없었다. 살아있는 자들 중에도 더 열정적으로 민주화를 위해 싸운 자들이 얼마든지 있고, 그 대가로 모진 고초를 당했으나 줄 대지 않고 조용히 묻혀 살기에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도 부지기수로 많다.

그에 비하면 민주화 경력을 내세워 집권 세력이 된 무리들은 고작 한줌 흙 밖에 안 되는 보잘것없는 자들일 수도 있다. 어찌 보면 그들은 민주화에 대한 공로로 주어진 표창장을 대리로 받는 영광을 누린 자들이다.

다른 많은 사람들의 희생 덕분에 한 배를 탔었다는 이유만으로 과분한 상을 받았으면 미안해 할 줄 알고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야 하거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고개를 있는 대로 높이 추켜세우고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자들 마냥 당당하게 행동했다.

그래서 노무현과 그 패거리들은 점령군처럼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들의 생각대로 세상을 바꾸어 가고 있다. 점령군 사령관마냥 위세를 떨며 거드름을 피우는 노무현을 보면 그간의 권위주의에서 탈피하여 더 위험한 권위주의에 빠진 신자유주의라는 시대가 낳은 제국주의의 사생아로 보인다.



그는 미국 중심의 세계화에 전적으로 추종하며 부시의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는 부시의 해바라기로 행세했다. 힘 있는 자에게 빌붙어 은연중에 일체감을 보이며 자신을 과시했고 주먹 세계의 논리를 대표하는 그와 닮고자 했다.

이게 바로 노무현의 인생철학을 발견할 수 있는 대목 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한미FTA를 통해 두목에게 모든 걸 다 받쳤다. 국민의 뜻도 묻지 않고 이 나라를 헐값에 다 넘겨주었다. 이 나라는 노무현과 그의 나라였다.

황우석이 국가적 영웅이었던 시절을 회상해보면 황우석의 연구가 곧 나라를 구하는 길이었다. 현재는 황우석보다 더 큰 영웅인 노무현의 결단 하나가 곧 우리나라를 선진국이 되게 만들었다고 장담한다. 이건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 가까이에는 이런 영웅들이 많다.

이런 영웅을 영웅으로 보는 사람들은 노빠와 황빠로 대표되는 사람들이다. 노빠는 황빠와 너무나 닮아 있다. 한 때에는 황우석을 문제 삼는 그 어떤 타당성 있는 비판도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되는 괜한 시비였다.

노무현은 부당하게 몰매를 맞는 것처럼 하소연하는 수법을 주로 써먹는다. 그러면 노빠로 불리는 추종자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그들의 영웅을 옹호한다. 내가 옳다는 것을 알기에 나를 볼 줄 아는 창조적 소수가 진가를 발휘한다는 망상 속에서 그는 자신이 언제나 옳았음을 확인하고 그 자신의 모든 행위를 정당화 시켜간다.

황우석과 노무현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추종자들을 늘 감동과 감격으로 몰아넣는 특유의 사기꾼적인 언변을 들 수 있다. 두 사람의 발언은 언제나 그들을 영웅시하는 관중들을 매료시킨다.

이들 영웅들은 밥 먹듯이 사기를 치지만 자신이 영웅이이기에 영웅임을 증명해주는 영웅적 행위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의 하나로 보는듯하다. 과거의 황우석이 그랬듯이 국책연구소가 합작으로 노무현의 요구와 구미에 맡게 자료를 조작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걸 보더라도 사기 행각은 앞으로 끝없이 이어질 것이 틀림없다.

두 영웅의 또 다른 공통점은 영웅의 사전에는 실수라는 것이 없으므로 실수를 결코 실수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무현이 살아있는 한은 한미FTA라는 괴물의 탄생은 절대적으로 옳은 고독한 구국의 결단이라는 신념 속에 정당화되어 무섭게 추진될 것이 뻔하다. 그 어떤 비판도 그에게는 괜한 트집이거나 주변적이고 작은 시행상의 불가피한 문제점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된다.

경제 관료들이 지나치게 친미 성향으로 기우러져 있기에 미국 중심으로만 몰아가는 잘못되고 무리한 정책을 추진하려는 시도가 있으면 청와대 회의를 통해 걸러지거나, 정말로 경제를 아는 대통령이라면 대통령 자신이 직접 나서서라도 제동을 걸었어야 했다. 개발 위주의 정책으로 환경이 크게 위협받는 상황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고 지구적 환경 위기가 목전에 도달해 있음을 조금이라도 감지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갖춘 대통령이라면 여기에 대해서도 마땅히 제동을 걸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관료들과 의기투합하여 함께 놀아났다. 허무 개그로 끝나야 할 무모한 개발 정책도 진지하게 다 관철되었다.

노련한 경제 관료들에게 있어 노무현은 구워 삼기에 가장 좋고 자신들의 뜻과 너무도 일치하는 둘도 없는 우군 중에 우군이었다. 경제 관료들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곧이곧대로 믿고 전적으로 수용하고 힘을 실어주고 추켜세워 주는 노무현은 경제 관료들의 대통령으로 부족함이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자만에 빠진 경제 관료들이 평소 꿈꿔왔던 미국화라는 꿈을 마음껏 추진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경제적 업적이라는 성과에 목매달고 있는 노무현에게 있어 관료들이 제시한 길은 확실한 성과물을 손에 쥐어주는 일이며, 동시에 미국과의 관계에서 여러 포석이 깔린 다목적용으로 적합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한미FTA는 국가의 운명을 도탄에 빠뜨릴 수 있는 엄청난 재앙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이는 개발주의 시대의 경제 관료들이 구시대적 시각으로 경제적 이익이 큰 것으로 보이는 미국이 던져준 미끼를 덥석 물고는 시대를 앞서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착각하고 벌이는 위험천만한 대국민 사기극이다.

이 사기극은 경제 관료들이 깊이 개입한 것이 사실이지만 노무현이라는 인물의 가진 기질을 그대로 반영한 사건이기도 하다. 사실 꼼수정치로 일관했던 그간의 정치적 행적을 보면 노무현과 그 패거리들은 구태 정치인들보다 더 구태의연했다.

그들은 장관직을 몇 달 경력을 쌓아 선거용으로 써먹는 선거용 자리로 이용했다. 국가의 중책을 맡는 장관직은 적재적소에 꼭 필요한 인물을 기용하여 소신껏 일할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해 주고 밀어주어 정권과는 관계없이 일관성 있게 국가 업무를 수행하게 해야 하거늘, 자신의 오른팔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들만 골라 여당의 선거용 자리로 이용하고도 그들은 일말의 반성이 없다.

그러기에 그는 국민을 바라보고 국민의 뜻을 헤아려 정치를 해야 한다는 원칙을 저버리고 한나라 당만을 상대로 정치를 해왔다. 정략적 야합도 서슴지 않았고 연정의 대상으로 삼아 일방적인 구애를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소신을 관철시키기 위해 능력보다는 자신과 잘 통하는 사람으로 장관직을 교체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용된 인물이 한미FTA 총리 한덕수이다. 이렇게 노무현 치하의 현 정권하에서는 노무현 중심의 일방통행만이 이루어진다.

모든 요직과 장관직도 다 들러리에 불과하다. 대통령의 지시나 결단을 추진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장관은 목이 달아나든지 침묵을 지키든지 해야 한다.

국가 체계라는 큰 틀의 정부 기능이 청와대라는 조폭적 체제 속에 와해되어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한 기능으로 변질되었다. 정부 간 견제 기능은 없다. 사라졌다. 이래서 문민독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한미FTA의 타결은 경제 동물인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자극하여 노무현 자신의 지지율을 끌어 올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연정의 대상이었던 한나라 당 지지자들이 밀어준 덕을 톡톡히 봤으므로 연정의 효과까지 누린 셈이다. 지지율 상승에 고무된 노무현의 거침없는 행보는 과속 페달을 밟게 될 것이 뻔하다.

이제는 남북 관계마저 정략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지금까지도 미국과의 관계를 우선순위에 놓고 종속 변수로 남북 관계를 다뤄왔듯이 한미FTA의 완결용이나 부시와의 밀거래용으로 활용될 것임에 틀림없다.

가히 엽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북한의 선택은 이제 노무현의 입지를 키워주고 차기 정권 창출에까지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게 될 노무현의 정략적 계산에 의해 조절될 운명에 처해 있다.

효과 만점인 전략은 물론 남북정상회담이다. 남과 북이 주체가 되어 통일된 조국의 미래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자리가 미국의 시혜에서 연결된 부시와의 합작품으로 연출된 결과물에 불과하고, 미국과 통합된 경제 체제의 일원을 하나 더 만들어 내는 작업을 조율하는 자리가 되어 버린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노무현에게는 위대한 치적이지만 말이다.

노무현은 부시와 개인적으로 절친한 친구가 될 수는 있어도 우리나라를 미국을 지향하는 국가로 귀속시켜서는 가서는 아니 된다. 미국은 우리와 여건이 달라도 너무나 다른 나라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미국화는 미국보다 더 땅이 넓고 자원이 풍부해야만 가능해진다. 미국은 영토와 자원뿐만이 아니라 달러의 힘과 군사력이라는 토대가 뒷받침되어 있기에 현재의 지위와 영향력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이 가진 유리한 점을 하나도 갖지 못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미국식 삶을 이상향으로 삼아 그 길을 답습해 가려고 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지속 불가능한 삶을 추구하며 힘의 논리로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주의 방식으로 지탱해가는 나라는 미국 한 나라로 족하다.

일찍이 이를 간파한 유럽 국가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답을 만들어 왔다. 경제적 이익만을 놓고 생각한다면 똑같은 작물을 생산하여 먹고 사는 유럽은 값싼 미국의 농산물을 수입하여 해결하는 것이 백번 이익이다.

그러나 농업은 경제 논리로만 풀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린 경험으로 체득했고 안전판의 역할을 하는 농업이 어려워지자 경제 전체가 흔들려 위기 상황이 도래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들은 농업을 지켜서 경제를 일으켜 세웠다. 유럽은 각자 자국의 농업을 지키기 위해 아낌없이 보조금을 쓴다.

우리에게는 유럽과 같은 차원 높은 대책을 기대할 수 없다. 잘났다는 경제 관료의 머리 속에서 나오는 발상이라는 것이 시장만능주의에 입각한 당장의 눈에 보이는 속물적 잇속 챙기기 밖에 없다. 돈 버는데 무슨 짓인들 못하겠냐고 덤비는 장사치들에게는 그게 옳을 수도 있다.

유럽에서는 미래를 내다보고 다가올 환경적 위기를 준비하는 대안적 삶이 모색된다는 데서 일말의 희망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 비하면 노무현에겐 답이 없다. 절망과 악몽만 있을 뿐이다. 미국식 삶이 가져다주는 천국과 지옥을 나누는 파괴적 삶이 있을 뿐이다. 노무현에게 있어 파괴는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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