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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코프스키 2007-06-30 18:00:37, Hit : 1258
Subject   [우리모두]육식, 기아, 환경 - 피터 싱어에 대한 단상 [업데이트]


* 브릭 소리마당에 올렸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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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칼도   (2007-05-29 14:17:05   hit: 207   추천화분: 5)


Subject  
   육식, 기아, 환경 - 피터 싱어에 대한 단상



이번 해 초에 피터 싱어가 방한했을 당시 했던 강연들 가운데 하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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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해방론자들은 인간의 문제에 관심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육식과 기아 및 환경의 문제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기아의 문제를 고려해 보자. 언뜻 생각해 보았을 때, 공장식 농장에서 대량으로 사육되는 가축들은 우리의 식량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우리에게 필수적인 영양소인 단백질을 예로 들어보자. 분석에 따르면 약1단위의 동물 단백질을 생산하기 위해 송아지는 무려 21단위의 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 이와 같은 결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송아지가 고기로 팔리게 되기까지 먹어야 할 것을 감안해야 하며, 먹는 것이 모두 단백질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영양소에 있어서도 다를 바 없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처럼 곡물을 직접섭취하는 것보다 곡물을 고기로 전환시켜 섭취하는 것은 낭비적인 과정이다. 만약 우리가 고기를 먹기 위해 가축에게 주는 곡물들을 가축들에게 주지 않고 직접 활용한다면 전 세계적인 기아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미국인들이 1년에 10%만 고기 소비를 줄여도, 6천만의 인구가 기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단순히 미국의 가축 수를 절반으로 줄이기만 해도, 비사회주의 저개발국의 칼로리 부족액을 거의 4번 메우고도 남을 정도가 된다고 한다. 한편 가축들을 수용하기 위해선 일정한 땅이 필요하고, 그곳에 수용된 동물들로부터 오물이 배출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산림파괴, 수질과 토양 오염 등의 환경 문제를 초래한다. 특히 지구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열대우림지대는 하루가 다르게 파괴되고 있는데, 이러한 파괴의 원인 중의 하나는 소 목초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여기서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와 같은 목초지에서 생산되는 고기는 그 나라의 국민들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서구인들을 포함한 선진국 사람들을 위해 생산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열대우림의 훼손에 대한 책임은 선진국 사람들의 육식욕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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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현재 전지구상의 식량용 농작물 생산량은 목축지를 농경지로 전환하지 않아도 적어도 아직까지는 지구 전체의 인간을 먹여살릴 정도로 충분하다. 그러나 식량 자급률이 떨어져 독점적 지위를 갖는 초국적 곡물 기업에 매여야 하고 농민들이 피폐한 삶을 사는나라들에서 목축지의 일부가 농경지로 전환될 수 있다. 또한 농경이 가능한 여분의 땅으로 인해 전체 농경지를 단위 면적당 수확량이 더 높게 재편/조정할 수 있으며 농경지로 사용될 필요가 없게된 일부의 땅을 적절한 수준에서 원래의 자연상태로 되돌려 줄 수있다.  

물론 육식의 문제는 육식을 즐기는 이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고기산업의 문제이기도 하므로 그 산업의 맹주들은 결코 자신들의 시장이 축소되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또 초국적 곡물 기업들이 전통적으로 식량 자급이 가능했던 나라들에서 식량 자급률을 떨어뜨리고 곡물의 독점적인 판매-구매를 통한 가격 통제로 막대한 이윤을 챙기고 있는 이상 목축지의 축소와 농경지의 확대 및 재편이 야기할 수 있는 불안요인들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알기로 피터 싱어는 문제의 이런 구조적 성격에 무지한 사람이 아니다. 실천 윤리학의 대가가 사회과학적 교양이나 지식이 부족하기는 어려울게 분명하다. 그는 심지어 마르크스에 대한 책까지 썼다. 그리 호의적으로 쓰지는 않았지만 그가 전형적 의미의 자유(자본만세)주의자가 아니라는 것도 분명히 드러난다. 그는 요즘 들어 자신이 생각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형적인 인간 삶과는 꽤나 거리가 먼, 인간적-윤리적 삶의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종에 관한 사실들'(사회생물학, 게임 이론 등등)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으며 자신을 '다윈주의 좌파'라고 칭한다. 관심있는 분들은 알라딘에서 인명 검색을 해보시라. 제일 먼저 읽어볼 만한 책은

피터 싱어, <다윈의 대답-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은 있는가> (이음)

인데, 역자인 최정규 선생이 단 비판적 후기도 책 자체만큼이나 배울 만한 바가 많다.
(내가 보기엔 역자인 최정규 선생도 자본주의보다 더 나은 탈자본주의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인간종에 관한 사실들에 깊은 관심을 가진, 종합적인 학식을 가진 학자이다. 피터 싱어보다 조금 더 왼쪽에 있다. 자본주의 헤게모니국에 유학가 주류의 입김이 가장 센 경제학을 전공해서 삐딱해져 돌아왔으니 - 아마 유학가기 전부터 어느 정도 삐딱했을 것이다 - 얼마나 고마운가!^^ 나는 그의 저서 <이타적 인간의 출현>을 한장 한장 아껴 읽고 있다.)  



    



피카소 (2007-05-29 15:36:35)    

다윈의 진화론이 나온지 꽤 오래되었지만 요즘 만큼 크게 각광받는 시기가 있을까 할 정도로 각 학문에 적용이 이루어지고 있더군요.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 진화경제학, 신경 다위주의(Neuronal Darwinism), 다윈의학 등... 윤리학에 적용이 되어진다면 진화윤리학 정도 되겠군요.

이것은 일시적인 흐름이 아니라 대세에 가깝다고 할 것입니다. 진화에 대한 이해없이 인간사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고, 그동안 관념적인 길을 걸어왔던 철학에도 많은 수정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결국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인 에드워드 윌슨이 이야기한 'consilence'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같기道 (2007-05-29 19:45:10)    

450 킬로 나가는 소 나 hogzilla 키우는데 옥수수가 4500 킬로그램 필요한데 ,
450 킬로그램 나가는 사자 키우려면 옥수수 45000 킬로그램을 먹고 자란 소 10 마리 (= 4500 킬로그램)을 먹여야 한다는 내용과 유사하군요.
10마리면 총단백질로는 360 키로그람정도 어림되는 군요.

초식동물이 곡류만 먹는 것이 아닐 것이고 방목해서 풀 뜯어먹는 넘도 꽤 있지 않나요?
옥수수를 사람이 먹는 경우와 초식이들이 먹는 경우는 효율이 다를 것 같은 데요.

그나저나 문명의 발달에 가축도 한몫 단단히 역할을 한 것 같은데 어느새 고기 공장이 되버렸죠. 그나저다 고기도 먹어본 넘이 잘 먹겠죠.......  



초식동... (2007-05-29 20:38:56)    

식육용으로 키우는 초식동물의 먹이가 되는 것을 초식동물에게 주는 대신 그것을 인간이 먹으면 칼로리로나 단백질 소스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저런 식으로 단순 계산을 하면서 육식을 하는 인간이 무슨 부도덕한 양 표현하는가요? 인간이 초식만으로 균형있는 영양을 모두 섭취하고자 한다면 훨씬 비싼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정말 몰라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일까요? 동물만 생명이고 식물은 생명이 아니라서 이건 먹으면 안되고 저건 먹어도 된다고 하는 걸까요? 그래서 살아있는 양배추로 옷이랍시고 만들어서 입고는 모피사용에 반대한다고 시위하고는 그 먹거리를 쓰레기통에 버리나요? 칼로리니 단백질의 사용 효율을 말하는데 초식동물이 처리할 수 있는 영양성분이 인간이 처리할 수 있는 영양성분과 같다고 생각해서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우리가 지푸라기 먹으면 칼로리로 사용할 수 있던가요? 단백질 많이 들어 있는 식물이라고 인간이 먹으면 모두 소화시켜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런 주장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초식동물이 먹는 것을 인간이 먹어서 효율적인 칼로리 및 단백질의 사용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이런 얘기하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겠지요?

채식이냐 육식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먹이사슬의 문제이며, 먹거리에 대한 낭비냐 아니냐의 문제이지요. 생명존중이냐 생명학대냐의 문제는 식육용 동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형태의 생명에 대해 적용될 수 있는 것이지요. 탄소유기체로서의 생명의 존재 원리는 동물이고 식물이라고 그 근원에 있어서 다르지 않지요. 그러니 굳이 식육용 동물 안 먹으면 생명존중의 윤리적 인간이고, 살아있는 생명체인 식물을 갈기갈기 찢어서 엉터리 옷만들어서 시위용으로 쓰고 버리는 것이 괜찮은 짓일까요? 선지국 먹으면 야만이고 살아있는 녹색채소 그대로 갈아서 녹즙 만들어마시면 고상한 것일까요? 이런 식으로 대비하니 웃기지요?

문제의 핵심은 동물을 먹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엉터리 칼로리 계산으로 본질을 호도할 일도 아닙니다. 먹거리에 대한 불필요한 낭비와 먹거리를 장난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가 문제인 것입니다. 생명은 모든 형태가 귀한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지요. 자연이 먹이사슬과 순환에서의 자신의 위치에 최소한 필요한 만큼만의 절제된 소비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엉뚱하게 채식주의가 생명존중이라고 착각하지 맙시다.  



육식 (2007-05-29 23:33:46)    

아래 피카소님 원글의 댓글에서 부터 전개되었던 칼도님과 무소의님의 논쟁을 관심있게 지켜보며 따라오고 있습니다.

사회적 소수자들로 구성된 집단의 급진적 활동가들이 다수 대중(광범위한 지적 수준과 다양한 지적 스펙트럼을 가진)을 상대로 선전을 하게 될 때 만들어 지는, 다분히 전술적인 측면이 강한, 다소 생뚱맞고 과격해 보이는 주장의 내용과 표현방식들에 대해서 코웃음 치는 수준으로 현재의 육식문화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바라보아서는 안되겠지요.

그리고 채식주의자들의 철학적 근간에 흔히 발견되는 생명존중 사상, 환경친화적 삶의 지향, 등등과 같은 요소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여 현재의 육식문화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간과하거나 부정할 이유는 없지요.

채식에 대한, 거의 척수반사적인, 반감이 표출되는 분들의 경우, 대개 채식주의 활동가들의 주장에서 취사선택하여 스스로 재구성한 희화화되고 극단화된 채식에 대한 이미지들을 스스로 설정해 놓고 조소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소나 양을 먹고 사는 삶의 방식에 대한 비판적 대안이 소나 양 처럼 먹고 사는 것이 아님은 너무 명백하지요. 채식주의자들의 견해가 이런 수준의 조악한 생각들에만 바탕하고 있다고 믿는 일이 없기를 바라겠습니다. 말씀드리다 보니 제가 마치 채식"주의"자를 대변하고 옹호하는 입장에서 발언하는 것 같이 되어 버렸네요. 저는 아래 글의 댓글에서도 언급한 부분이 있습니다만, 지금의 경제체제에서 지탱되는 육식문화는 정치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우려를 공유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토론된 주제가 생산적이지 못한 논점들에 걸려서 발전하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이 조금 고통스럽습니다.  



코요테 (2007-05-29 23:43:47)    

:) 칼도의 글이 어디가겠나? 그저 건방지게 '나'라는 표현이나 쓰고, 결국 그 삐딱하게 Monsanto나 Cargill 씹는게지.

그런데 그게 답이 아닌걸 어쩌하시나?

생각하는 방식이 결국 자본주의 고기산업? 에이그

모든 게 자본주의의 해악? 왜 모든 말을 아예 다 맨들지?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만생에 다 좋게 적용이야 안 되겠지만, 그 생각하는 방식이 완전히 paradigm에 굳어 있어서리 ㅉㅉ  



無所依 (2007-05-30 00:27:02)    

마빈 해리스는 세계의 음식문화(특히 음식터부)가 동물성 단백질 섭취를 사회적으로 가장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메카니즘이라는 주장을 담은 책을 썼었습니다. 그는 이런 관점에서 힌두교의 소고기 금기, 이슬람의 돼지고기 금기, 유대교의 복잡한 금기를 분석했습니다.

하도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제대로 기억나지 않지만 예를 들어 돼지고기 금기 같은 경우 돼지를 사육하는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상황에서 이를 금기시함으로서 돼지사육을 제한하고 그 대신 보다 효율적으로 사육할 수 있는 소나 가금류를 더 많이 사육함으로서 사회 전체의 동물성 단백질 섭취를 증대시킬 수 있다는 거지요.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는 자신들의 책에서 동물성 단백질의 섭취가 인간의 식생활의 지상과제인 것으로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 전제를 논증하는데 상당부분을 할애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적절한 수준의 동물성 단백질 섭취는 인간의 동물적 본성상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다수의 선진국(및 상당수의 개도국)에서 사람들의 현재의 육류소비가 과한 지는 모르겠습니다. 과학적인 차원의 논의가 있는지 또한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보다 육류소비를 줄여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육류소비의 감소가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얘기로 보입니다. 단순한 칼로리 베이스의 산술계산에 입각한 결론은 지나치게 대략이고 그에 기초한 결론을 신뢰하기는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의 육류소비가 감소하면 그 대신 야채와 과일 등의 소비가 늘어날 것입니다. 그러면 계산상 증대될 것으로 생각되는 농경지의 양에서 상당부분은 곡물이 아니라 야채와 과일재배로 돌아갈 것입니다. 현재수준의 곡물생산에서도 충분한 이익을 얻지 못하는 농가들은 경작지가 증대되면 거기 쌀이나 밀을 심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육류 소비 감소 이후 특정 야채나 과일의 수요가 높아져서 그것들의 시장가치가 높아지면 그것들을 재배하는 면적이 증대되겠지요. 시뮬레이션에는 이런 부분이 포함이 되어야 합니다.

시뮬레이션에 포함되어야 하는 부분은 육류소비 감소 이후 인간의 식생활 패턴 변화도 있습니다. 육류소비가 감소되면 식사량이 더 많아질 수도 있습니다. 올리브유나 포도씨유 등의 기름의 소비가 현재보다 훨씬 더 늘어나서 이들 작물들의 재배면적이 증대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식품영양학이나 관련된 학문에 대한 소양이 없어서 보다 세밀한 추론을 하기 어렵습니다만 이런 세부적인 고려 없이 "가령 미국인들이 1년에 10%만 고기 소비를 줄여도, 6천만의 인구가 기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정치적 프로파겐다로서의 의미는 있을 지언정 과학적 가치를 가진 논증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다음의 두가지 표현을 구분해야 합니다. "6천만의 인구가 기아에서 벗어나는데 필요한 돈은 미국인들이 1년에 고기에 사용하는 비용의 10%에 불과하다"라는 표현과 "미국인들이 1년에 10%만 고기 소비를 줄여도, 6천만의 인구가 기아에서 벗어날 수 있다"라는 표현을 말입니다. 표현형만으로는 동일한 의미를 지닌 두 문장이지만 두 문장의 기능은 사뭇 다릅니다. 전자는 과학적, 객관적 기술이고 후자는 정치적 프로파겐다적 기술입니다.

육식님의 글 말미에 쓰여진 문장에 동의합니다. 학문을 하는 사람에게 언제나 필요한 것은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논증들이지 편가르기와 선험적 기준에 의한 도덕적 우월성 규정이 아닙니다. 육식님이 다른 글에서 제기하신 질문들은 채식이냐 육식이냐를 따지기 앞서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감당해 낼 수 있는 채식과 육식의 비율을 알아보고자 하시는 것으로 읽힙니다. 채식과 육식의 논의가 보다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려면 육식님이 제기하신 질문들에 대한 답이 알려져야 할 것 같습니다.  



육식 (2007-05-30 07:16:24)    

피카소 님께서 아래 달아 놓으신 답글 중 (현재의 육식 문화에 대한 대응의 방식으로) "차라리 '육식이 만병의 근원이다'로 쭉 밀어붙이면 이기적 본능을 이용할 수 있으므로 어느 정도 가능은 할 듯 싶습니다만..."라고 하신 부분이 사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제가 많이 주목하고 있는 논점입니다. 지금의 과도한 육식문화 현실이 발생시키는 다양한 차원에서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적 각성과 개인신념의 근본적 변화가 요구된다고 느끼는 한, 토론은 당파성의 마찰을 극복하고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 내기 힘들어 지리라 예상합니다.

현 수준의 육식을 유지하고 싶은 개인들의 권리를 철저히 보호하고 그 의사를 존중하는 동시에, 현재의 과도한 육식(특히 red meat 섭취)이 수반하는 건강에 대한 위협 및 최적의 건강을 위해 식단에서의 동물성 영양소의 섭취 비율이 어느 수준으로 축소되어야 하는지 강조하는 편이 더 수월하겠지요.

다만... 한가지 더하고 싶은 생각은 제 개인적인 시각으로 학계와 공공정책 기관에 의해 이루어지는 보건통계학적, 영양학적 지식의 전파 조차도 정치적 경제적 이해와 무관하게 이루어 지지만은 않더라는 것이지요. American Heart Association 이나 Mayo Clinic, 5-A-Day 프로그램이 권장하는 수준으로 육식이 감소되어도 (사실 상당한 수준의 감소입니다)소화기 질환, 심혈관, 뇌질환, 대사성 질환, 및 특정 종류의 암의 발생율이 많이 내려가고 육류 소비가 엄청나게 감소하겠지만, 적어도 미국에서의 상황을 보자면 이러한 정보가 대중에게 확산되는 것이 생각 만큼 수월하지 않고 오히려 방해되는 요소들이 큰 힘을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같더균요.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다시 정치적 토론으로 회귀될 것 같아 여기서 그만 합니다.

http://www.americanheart.org/presenter.jhtml?identifier=1200010
http://www.5aday.gov/
http://www.mayoclinic.com/health/food-and-nutrition/NU99999  



無所依 (2007-05-30 07:45:15)    

육류//
미국 자료를 좀 들여다봤는데 1인당 붉은 살코기 소비량의 경우 1980년에 126.4 파운드가 2004년에는 112.0파운드로 11.4%가 줄었습니다. 해당기간중 육류로서 소비가 늘어난 것은 가금류(40.8파운드->72.7파운드, 78% 증가), 어류(12.4파운드->16.5파운드, 33% 증가)입니다.

곡물류 소비는 해당기간동안 144.9파운드에서 191.5파운드로 24.3% 늘었습니다. 채소 및 과일의 소비 또한 608.8파운드에서 694.3파운드로 14.0% 늘었습니니다.

데이터는 오히려 사람들의 붉은살코기 소비가 줄어들고 있고 채소 및 과일의 소비가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패턴은 지난 20년동안 상당히 일관되게 존재합니다. 이거 보면 미국내에 건강에 대한 정보가 전파되는 것을 막는 세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활동이 그리 효과적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료출처: http://www.census.gov/compendia/statab/health_nutrition/  



無所依 (2007-05-30 08:52:44)    

물가를 고려한 분석을 올렸었는데 물가지수 계산상 오류가 있어서 지우고 나중에 다시 올리겠습니다.  



짝없다 (2007-05-30 09:27:30)    

코요테님/칼도님의 마지막 나는.. 하는 글은 자기 혼자 하는 소리이기 때문에 나라고 해도 상관없을 것 같기도하고요. 무슨 원한관계가 있는지 모르지만 코요테님의 이런 댓글은 무례하다고 보입니다. 그리고 모처럼 진지하게 나가는 토의에 재를 뿌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칼도 (2007-05-30 09:36:13)    

초식동님에게만 한 마디 드립니다. 동물해방같은 책을 읽어보면,그리고 초식동님이 비판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분이라면, 댓글에서 초식동님이 제기한 수준의 논박은 상대가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논증에 목숨거는 영미철학자들 중에서도 석학 대접받는 이의 주장이 그정도로 논박도 대비하고 있지 않은 수준이라면 말이 안됩니다. 마음같아서는 하루종일 걸려서라도 상세한 소개를 하고 싶지만 그 수고를 초식동님 스스로도 할 수 있습니다. 웹검색 잘해보면 충분한 자료들이 나옵니다.  



육식 (2007-05-30 09:40:23)    

무소의님, 전체 통계에서 그런 변화가 나타나고 있군요. 현존하는 보건통계와 영양학적 지식을 만들기 위해 공공부문에서 투자한 금전적 노력에 비해서 생각해 보자면, 지난 20여년간에 걸쳐 일어난 식생활 변화의 속도가 일관되었을지언정 바람직한 수준으로 빠른 것이었는지, 건강과 영양 정보가 현재 최적으로 전파되고 있는지, 육류소비를 지지하는 힘의 작용이 효과적이지 않은 것이었는지는 계속 생각해 보게 됩니다.

사실 gym과 yoga class를 채우고, 식탁에서 red meat과 carb 성분을 멀리하고 fiber와 antioxidant를 찾는 life style을 추구하는 집단들과, 그와는 반대의 life style (processed meat, 정제당으로 대표되는 저렴한 식재료와 식상품)을 유지하는 집단은 (어느 정도 소득과 교육수준에 의해 구분되는 집단과 겹쳐지는 경향이 있어 보입니다) 식단과 관련된 정보와 지식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방식과 정도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게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미국에서의 이야기지만 크게 보아 보편적 상황이지 않나 싶습니다. TV와 기타 대중매체에서 막강한 상업광고들에 비해 대중 설득의 기회를 덜 차지하고 있는 공공 기관의 보건 영양 정보를 접하고 자신의 삶에서 실행으로 옮기는 정도도 사회집단 마다 격차가 크겠죠. Obesity와 기타 만성 질환이 poverty-related disease가 되버린 현실에서 (적어도 미국에서는) 그 책임의 소재를 개인의 의지와 능력부족에 얼만큼 돌려야 하는지, 지식의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흐름의 작용은 없는지 생각할 부분이 없지 않을 거라 봅니다. (최대한 당파적 속성을 지니는 용어들을 피하며 조심스럽게 쓰다 보니 제 답글이 제가 보아도 모호한 표현들로 가득합니다)

결국 무소의님 덕분에 생물학적인 내용에 국한해서만 끼어들려 했던 제가 상당히 정치적 경제적 색채를 가릴 수 없는 발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 까지가 제가 나눌 수 있는 "생물학적"이지 않은 차원의 생각인 것 같고, 이와 관해서는 다른 분들의 더 정확한 생각을 듣고 싶군요.  

* 보스코프스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6-3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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