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 본격적 핵무장?
아니면 북미협상을 위한 전술인가?
김용수 (기사입력: 2006/10/17 11:20)
많은 이들의 깊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북은 결국 핵실험을 강행하고 말았다. 이후 사태는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언론은 북의 제재 수위를 둘러싼 미국의 반응과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쉬지 않고 쏟아 내고 있고 일각에선 이 천인공노할 만행을 계기로 남북 간의 대화를 전면 중단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사회의 제재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현 정부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이제까지의 대북 정책에 대한 전면적 검토를 천명하고 있다.
북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한반도의 비핵화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원칙이었다. 적어도 통일을 이루기 전까지는. 그렇다면 이번 북의 핵실험으로 우리는 평화에 대한 희망과 통일을 향한 열정을 접어야 하는 것일까? 만약 북이 이번 핵실험을 계기로 본격적인 핵무장의 길로 들어선다면 이는 우리 민족에게 재앙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불행한 사태의 시작일 수도 있다. 과연 이번 북의 핵실험은 본격적 핵무장의 신호일까 아니면 직접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고 오기 위한 전술일까?
본격적인 핵무장을 위해서는 세 가지가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가 핵무장을 향한 의지이고 둘째는 핵폭탄을 만들고 터뜨릴 수 있는 기술이며 셋째는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의 원활한 공급이다. 근본적인 이유를 불문하고 북의 의지는 더 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둘째의 기술은 이번 핵실험을 통해 입증된 셈이다. 마지막 남은 것은 핵분열물질의 원활한 공급이다. (참고로 일본은 폭탄 제조 기술뿐만 아니라 원료 물질인 플루토늄도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고 또 계속적으로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재처리 시설도 가지고 있지만 핵무장을 위한 의지가 없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한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원료 물질은 우라늄과 플루토늄이다. 그런데 핵분열에 필요한 우라늄235는 자연에 존재하는 원소이지만 인공 원소인 플루토늄은 핵분열을 일으키는 원자로를 가동해야만 만들어진다. 우라늄235의 경우 같은 우라늄에서 우라늄235를 분리하는 물리적 분리이므로 핵폭탄 제조에 필요한 순도 90%이상의 농축은 상대적으로 쉽지 않은 과정이며 많은 전력을 요한다. (천연 우라늄 속에 우라늄235는 약 0.7% 밖에 없다) 비록 엄청난 전력이 필요한 기체 확산법이 아닌, 실험실 규모에서 조금씩 분리할 수 있는 원심분리법을 이용한다 하더라도 폭탄 제조에 필요한 만큼의 우라늄235(이론적으로 수백 그램으로도 충분하나 실제로는 10 ~ 20 킬로그램 정도로 알려져 있음)를 얻기 위해선 파키스탄의 예에서 보듯 적지 않은 시간과 전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플루토늄의 경우는 화학적 분리가 가능해 재처리 시설만 있으면 원자로에서 연소시킨 사용후핵연료로부터 상대적으로 쉽게 플루토늄을 추출해 낼 수 있다. 또 폭탄 제조에 필요한 임계양도 우라늄탄에 비해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 4 ~ 6킬로그램 정도라고 함.). 그래서 본격적인 핵무장에 나선 나라들은 대개 플루토늄탄으로 무장하고 있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 ‘little boy’는 우라늄탄이지만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fat man’만 해도 플루토늄탄이다.)
따라서 북도 본격적인 핵무장에 나선다면 플루토늄 기반의 핵무장을 하게 될 것이고 이럴 경우 플루토늄을 다량 생산할 수 있는 원자로가 필요하게 된다. 현재로는 북이 갖고 있는 영변의 30 MW급 원자로가 그 원자로인 셈인데 북은 핵사태 이후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고자 할 때마다 이 원자로에 핵연료의 장입과 그 사용후핵연료의 추출 그리고 재처리의 반복을 통해 국제 사회를 긴장시켜 왔다. (참고로 우리가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경수로는 발전 용량이 그 33배 이상에 달하는 1000 MW이지만 그 사용후핵연료에서 생성되는 플루토늄의 순도가 핵폭탄 제조에 필요한 최소 순도 70%에도 못 미친다. 그러나 영변의 Magnox형 원자로에서 연소되는 사용후핵연료는 생성 플루토늄의 순도가 이 최소 순도를 넘기 때문에 재처리만 하면 곧 바로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다. 실제 핵무장 초기 영국과 프랑스도 이 Magnox형 원자로를 이용하였다.)
물론 북이 이 원자로를 계속 가동시키고 그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한다면 플루토늄을 계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소형 원자로 하나를 가지고 본격적인 핵무장의 길로 들어 설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시점에서 현재 북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30 ~ 40 킬로그램의 플루토늄을 갖고 북이 본격적인 핵무장의 길로 들어섰거나 곧장 들어설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북이 중국이나 러시아 등에서 이 핵폭탄 물질을 다량 입수했었을지도 모르지 않느냐는 추론도 가능하나 중국이나 러시아 모두 자신의 이웃 국가인 북이 핵무장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았을 것이므로 정론은 되지 못한다. 결국 북의 본격적인 핵무장에는 시간이 필요한 셈이다. 실제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 사회는 그 시간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계산하고 있다.
또 이번 핵실험에서 알 수 있듯 북의 폭탄 제조와 폭발 기술은 초보적인 수준으로 판단된다. 적어도 미사일에 장착해 날려 보낼 수 있는 첨단 소형 핵폭탄의 개발에는 훨씬 못 미쳐 보인다. 이러한 정황은 미국 반응의 행간에서도 읽을 수 있다. 만약 북이 당장 본격적인 핵무장에 나설 수 있고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을 정도의 핵폭탄 개발이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면 지금과 같이 북의 ‘핵무장의 위협’보단 ‘핵폭탄 제조 기술의 이전 방지’에 초점을 맞춘 듯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일부 언론들이 일단 북이 이번 핵실험을 통해 핵보유국이 되었으니 파키스탄의 예에서 보듯 미국도 어쩔 수 없이 북의 핵무장을 인정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추측은 그야말로 추측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실로부터 북이 본격적인 핵무장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보기 보다는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유인하기 위해 국제사회를 향해 돌이킬 수 없는 마지막 협상 카드를 시용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아직 우리에겐 우리의 열망을 실현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 것이다. 이 핵실험이 동북아의 동반 핵무장화를 야기시킬 정도의 충격은 되지 못함에도 이를 침소봉대해 자신들의 국가적 이익이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주변국들과 대화의 전면 단절과 사생결단식 접근만을 주장하는 사회 일각의 몰이해에서 벗어나 곱건 밉건 북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귀기울여야 한다. 솔직히 이번 사태는 미국 부시 정권의 협상 실패에 기인한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클링턴 정부 시절의 대미 접근 방식이 그리울 뿐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라는 사실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 사회와의 조율과 협력도 매우 중요하지만 우리에겐 우리의 역할이 필요하고 아직 그 역할이 작동할 수 있는 메카니즘이 살아 있다. 우리 정부와 국제 사회는 북을 제2, 제3의 핵실험으로 내몰지 말아야 한다. 서로 등지고 험악한 얼굴로 돌아 섰기 때문에 점점 더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북이 설사 악의 축이고 깡패라고 하더라도 대화하자고 6자 회담과 같은 판을 벌렸으면 유연하게 상대방을 다룰 줄 알아야 하지 않는가? 오히려 더 치열하게 북과 대화하고 설득해야 한다. 미국에게는 서로 얼굴을 붉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진정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연하고 창의적인 해결책을 주문해야 한다.
이번 북의 핵실험 사태에서 보여 준 우리 대다수 국민의 성숙해진 대응에 안도하며 무분별한 우리 사회 일각과 어쩔 없음을 되내이는 우리 정부에 좀 더 냉정하고 냉철한 접근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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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한양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미국버클리대학교 공학박사, 원자력공학/핵연료재료 전공, 전 천주교인권위원회 위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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