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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국가없는 비폭력의 삶이 가능할까
국가없는 비폭력의 삶이 가능할까

조약골

레프 톨스토이 지음 조윤정 옮김
<국가는 폭력이다: 평화와 비폭력에 관한 성찰> (달팽이, 2008년)

마이클 네이글러 지음 이창희 옮김
<폭력없는 미래> (두레, 2008년)


며 칠 전 장례식장에서 밤을 샐 일이 있었다. 고인의 죽음은 전부터 예견되던 것이라 그리 슬픈 일이 아니었고, 상가집은 조용한 분위기였다. 날이 어두워지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앉아 휴대폰을 꺼내들고는 뭔가 열심히 시청하고 있는 듯 보였다. 지상파 DMB라는 것을 보고 있던 사람들의 분위기가 몇 번 술렁이는가 싶더니 '8회말인데, 3-2로 이기고 있다'는 식의 소식이 시시각각 전해졌다. 얼마 후 숨죽이던 사람들이 일제히 괴성을 지르더니, 그 중 한 명이 달려와 "우리가 이겼다. 금메달이야, 금메달!" 하면서 환호성을 질렸다. 쿠바와의 야구 올림픽 결승전이 끝나던 순간이었나 보다. 마치 자신이 승리라도 한 듯 의기양양해하던 그 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베이징 올림픽 기간 내내 숨이 막혀 견디기 힘들었다. 연일 금메달을 딴 한국 선수들 이야기로 도배가 되다시피한 대다수 언론이야 내가 간단히 무시한다고 쳐도, 평소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까지 어느새 애국자가 되어 한 국가의 대표팀을 열렬히 응원하는 모습을 보는 건 그리 마음 편한 일이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일 저녁 거리에서 촛불을 들며 민주주의를 지키던 사람들이 이젠 텔레비전 앞에 몰려 앉아 태극기를 들고 있는 것 같았다. 빼앗긴 주권이 금메달에서라도 되찾아진다는 말인가?

참 다 못해 친구에게 말했다. 올림픽 반대 행동을 조직해보자고 말이다. 그랬더니 정신 나갔냐며 잘못하면 '집단구타'를 당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 정신이 나간 건 내가 아니라 우리의 이성을 쏙 빼놓는 스포츠 국가주의인데 말이다. 그 친구도 이에 동의했겠지만, 즉흥적으로 벌이는 반대 퍼포먼스가 그리 의미있는 행동이 될 것 같지는 않아 포기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나 역시 그 집단광기의 그물에 빠지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좀더 차분히 주위를 돌아보고 나의 답답함과 국가에 대한 분노를 어떻게 하면 보다 유용한 형태의 힘(비폭력)으로 탈바꿈시킬 것인가 고민하기로 했다.

그 렇게 집어든 것이 바로 이 두 권의 책이다. 올림픽 기간 내내 텔레비전을 청취하며 알 수 없는 무력감과 공허감에 시달린 것은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메달 획득이라는 상징적 기쁨이 사라지고 남겨진 현실의 경쟁체제에서는 극소수만이 성공할 뿐 나는 어느새 순위권 밖이지 않은가. 감동의 역전 드라마는 나의 현실에서는 재현되지 않는다. 나는 다시 고립되고 소외된 삶으로 돌아가 텔레비전과 쇼핑에서 삶의 의미와 목표를 찾게 되지 않는가. 바로 이럴 때 폭력이 자라나고 되풀이된다는 것이 톨스토이와 네이글러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래서 이 저자들은 가장 분명하게 주장한다. 먼저 텔레비전을 끄라고 말이다. 비폭력과 평화를 위해 누구나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이 바로 이것이다. 텔레비전은 시청률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기에 '짜릿한' 것에 매료된다. 미디어는 비폭력 저항운동가들이 몇 년간에 걸쳐서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짜고 이를 통해 분쟁이 벌어지는 지역에서 장기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덮고 있는 증오의 안개를 벗겨내는 과정보다는 무슨 무기가 사용되어 몇 명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먼저 초점을 맞추게 된다. 사람들은 미디어를 통해 폭력을 매일 접하고 그렇게 폭력이 입력되면 결국 폭력이 출력된다. 이것이 <폭력없는 미래>의 기본 입장이다.

촛 불집회에서 '폭력이냐, 비폭력이냐'를 놓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길바닥에 마주 앉아 한 번이라도 토론을 벌여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언젠가 한 번은 읽어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경찰이 때리는데 가만히 있어야 할까. 아니면 맞장이라도 떠야 할까. 폭력과 비폭력은 옳고 그름에 관한 도덕적 문제도 아니고, 정세에 따라 바뀌는 전술적 선택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거듭남'에 관한 문제일 수 있다. 텔레비전이 시청률을 좇는 것처럼 기업은 수익률만을 좇으며, 자본주의 국가는 성장률만을 좇도록 되어 있다. 이런 체제에서 우리는 공격성, 경쟁심 그리고 승부를 위한 투쟁을 배운다. 그래서 '인간은 서로 고립되어 있고 인생은 전쟁이며, 행복은 밖에서 찾아야 하고, 인간은 모두 제한된 자원을 둘러싸고 끝없이 경쟁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250쪽)'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자연과 사회가 이런 원리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자라나 문화 전체나 규범이 폭력을 일으키는 쪽으로 가게 된다. 그런데 진짜로 자연과 사회가 이렇게 공격과 투쟁으로 짜여졌다면 벌써 옛날에 멸망했지 않았을까? 인간의 사회가 수많은 폭력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유지되고 있다면 거기엔 어떤 다른 원리가 근본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것이 아나키즘(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의 주장이었고, 뒤이은 간디의 생각이었다.

그 렇다면 우리가 기업이나 국가, 민족, 또는 성(性)이라는 상상적 집단에 따라 인간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중심에 놓고 본다면 어떨까. 이제 중요해지는 것은 감정을 갖는 개인이며, 이런 경향 속에서 개인을 비인간화시키는 요소들은 조금씩 사라지게 된다. 간디의 가르침에 기반해 비폭력 직접행동이 인류의 사회와 역사 속에서 기능해왔으며, 지금도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폭력없는 미래>에 의하면 폭력의 본질은 무엇보다도 '비인간화'에 있다고 한다. 사형제도나 감옥, 군대, 법 등의 국가의 통치방식을 이루는 폭력적 제도들이 모두 공격적 세계관에 기반해 남을 제압하는데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이다. 처벌 대신 개인을 중심에 둔 치유를 지향한다면 어떻게 될까? 인간성 회복이 폭력의 대안으로 제시되면서 사회의 패러다임이 건설적인 방향으로 변화해 사회가 차츰 개죄될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인티파다'라는 거대한 비폭력 저항운동을 펼치면서 마을과 도시에 어떤 변화가 생겨났는지 이 책에 실린 예를 살펴보자. 이스라엘의 탱크 앞에서 돌맹이라는 비폭력으로 대응을 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외부의 적보다는 내부의 사회적 관계의 복원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부서진 일상의 조각들을 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스스로 나서서 우유를 배달하고, 부상자를 병원으로 나르고, 자동차를 수리하게 되었고, 결국 육아의 필요에서 대가족제도가 부활하였다는 것이다. 나아가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가 창조된 것이야말로 비폭력적인 길을 택한 직접적 결과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이에 따라 개인들의 정신 건강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건강이 함양되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최근 우리 촛불집회의 경험이 떠올라 더욱 흥미롭게 읽힌다. 민중은 적당한 규모의 공동체를 이루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조절, 통제할 수 있는 자주관리의 능력이 있는데, 특히 저항의 시기에 이런 능력이 한껏 발휘되기도 한다. 집회와 시위의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한순간 주류 질서를 비웃고 새로운 관계의 그물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 때 비폭력이 자연에 뿌리 박은 힘이며, 모든 인간에 내재한다는 간디의 가르침이 내가 살아가는 현실의 모습에서 생생하게 다가오는 순간을 경험한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교육이다. 사람들은 어느새 정권에 대한 분노를 생산적, 건설적으로 표출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환자를 나르고, 음식을 나르고, 서로 소통하고, 필요한 모든 것을 자발적으로 마련해가면서 말이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 하나씩의 평등한 촛불을 든 채 사회적으로 의미와 가치가 있는 존재로 거듭나고 있었다. 비폭력 직접행동이야말로 국가체제의 폭력의 본질을 드러내며 이를 통해 스스로 고통을 직접 겪는 것처럼 만들어 마음을 울릴 수 있다는 톨스토이며, 간디며, 이밖에 수많은 아나키스트들이 백년도 더 오래 전에 적어온 글귀들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비폭력은 자제력의 최고 상태에서 이뤄지는 사랑의 행동'(173쪽)이라는 진리가 매일 저녁 거리에서 촛불을 든 사람들에 의해 밝혀지고 있었다.

비 폭력은 이미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사회적 힘으로서, 처벌의 공포와 폭력의 두려움을 없애는 분명한 길인 것이다. <폭력없는 미래>는 간디의 비폭력 성공 사례로부터 배우고, 전 세계의 수많은 평화활동가들의 헌신적 노력들을 통해 풍부해진 결론을 제시한다. 보통 사람들도 조직적으로 비폭력 저항을 단련하면 전쟁이라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폭력마저도 사그라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풍부한 예들은 '민간기반방어'라는 이름으로 이 책에 소개되어 있다. 이 개념은 '사회적 방어'라는 이름으로도 한국에 소개된 적이 있다. 나는 지난 시기 미군기지 확장에 의해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평택 대추리 고향땅을 빼앗길 위기에 놓인 농민들과 함께 지낸 적이 있다. 군인에게 빼앗긴 안보를 농민들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지켜내겠다는 구체적인 삶의 문제였기에 나에겐 무척 감동적인 시기이기도 했다. 이 때 농민들이 원한 것은 돈도 정부도 아니었다. 마을에 남아 농사를 짓고 살 수 있는 주민자치를 바랬다. 극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자존감을 유지하며 자기결정권을 갖고자 투쟁했던 것이다.

오 래 전부터 아나키즘에 관심이 있던 나는 프루동이니 바쿠닌이니 하는 사람들 이름은 지겹도록 들었지만 레프 톨스토이가 아나키스트였다는 것을 납득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특히나 아나키즘의 역사에서 거의 최초로 비폭력 행동과 아나키즘을 본질적으로 결합시킨 사람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 하나라던 톨스토이였음을 알고는 더욱더 그의 삶과 사상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그런데 당시엔 한국에 소개된 책 가운데 톨스토이의 아나키즘을 다룬 책은 없었고, 이를 소개하는 자료도 찾을 수가 없었다. 말년에 그리스도교 개혁가, 도덕사상가 또는 그리스도교적 무정부주의자 정도로 언급이 되어 알려져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 인터넷에 있는 아나키즘 문서고에서 톨스토이의 글들을 모두 구해보고, <국가는 폭력이다>의 영어본을 보았을 때,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19세기 말 러시아에서는 아나키즘이 테러리즘과 동의어였기 때문에 톨스토이는 스스로 아나키스트라고 부르지는 않았지만, 지금 우리가 보기엔 어느 한 군데 흠잡을 수 없는 거의 완벽한 아나키스트로서 삶을 살아냈다.

< 국가는 폭력이다>는 톨스토이가 아나키스트로 변신한 뒤 쓴 글들을 한 권에 모은 책이다. 이 글들은 아직까지도 폭력적인 징병제가 유지되고 있으며, 군사주의가 국가주의와 결합되어 끔찍한 해악을 발휘하고 있는 21세기 한국의 상황에서 읽어보아도 도무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권력 기관의 토대는 물리적 폭력(29쪽)'이고 '양식을 땅에서 얻는 것은 인간 본연의 권리'라는 선언이라든가 병역 의무와 국민개병제의 의미, 통치계급의 본질, 불복종의 이익, 나아가 국가의 폐지 등에 대한 그의 주장 등을 읽는다면 그가 어떻게 이런 단호한 글들을 지금으로부터 백 년도 훨씬 전에 쓸 수 있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백작이라는 신분으로서 자신의 영지에서 평생 호화로운 삶을 살 수 있었던 대문호 톨스토이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명쾌한 아나키스트가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그가 '참회록'을 쓰기 시작한 것은 나이 50세가 되어서부터인데, 아마도 그 이전부터 자신의 과거와 단절하기 위한 힘든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이후 아나키즘에 기반한 비폭력 행동 사상을 설파하고 실천하면서 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하긴 했지만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그의 윤리적인 가르침을 이후의 사람들은 쉽게 종교와 등치시키곤 했다. 톨스토이가 정부와 마찬가지로 교회를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신의 권위까지는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톨스토이는 금욕과 사랑, 채식주의를 설교하다시피 했다.

폭 력이 아니라는 의미의 비폭력이라는 반대로서의 개념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개념으로서의 비폭력에 해당하는 어휘를 찾기 위해 많은 이들이 노력했다. 이에 해당하는 어휘가 없다고 단호히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달라이 라마는 이것을 동정심이라고 불렀다. 톨스토이는 이것을 그저 '사랑'이라고 불렀던 듯 싶다. 그의 가르침은 약간은 금욕적인 '톨스토이주의'로 확대되어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세계 전역에서 늘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참회록을 쓰면서 '전향(어떤 사람들은 개종이라고도 부르는데)'을 한 이후 주장한 많은 내용들은 그리스도교의 개혁이나 윤리적 삶이라기 보다는 순수한 아나키즘에 더욱 가깝다. <국가는 폭력이다>의 어떤 쪽을 펼쳐서 읽어보기만 해도 나의 이 주장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나키즘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폭력을 철저하게 배격한 톨스토이에게서 아나키즘과 비폭력이 아무런 모순없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에게 국가란 폭력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폭력은 곧바로 비국가 즉 국가없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톨스토이에게 비폭력을 실천한다는 의미는 권위에 기반한 일체의 국가제도와 위계질서 그리고 폭력이 없는 상태에서 살아간다는 뜻이었고, 이것이 전향한 뒤의 톨스토이에게는 일종의 지상명령이 되었던 것이다.

그 렇다면 톨스토이의 비폭력은 누구를 대상으로 한 것인가?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톨스토이가 왜 그 모든 물질적 풍요로움을 자발적으로 버리고 스스로 가난하고 힘들지만 행복의 길을 택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19세기 제정러시아의 한 시골 마을에서 귀족으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농노들의 근면한 삶을 가까이서 접하면서 힘들게 일해서 얻는 정신적 보람과 만족의 의미에 대해 체득하게 된다. 부르조아나 정치가들의 위선적인 모습에 신물이 난 그는 차르체제의 극단적인 수탈과 억압을 꿋꿋하게 견뎌내는 농민의 모습에 커다란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젊은 시절 귀족의 관행에 따라 장교가 되어 크림전쟁에 참전한 바 있었던 그에게 전쟁과 징병제 그리고 국가의 폭력은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을 것이고, 휴식을 위해 떠난 프랑스 여행에서 우연히 길거리에서의 공개 '길로틴 처형' 장면을 목격하고는 아나키즘에 공감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후 차르 황제의 폭력에 굴하지 않는 강인한 러시아 농민들과 함께 살면서 그는 마침내 영혼이 치유되는 경험을 한다. 새로 거듭난 것이다. 남은 생은 가난한 자들이 서로 아끼며 사랑하는 공동체를 자신의 영지인 야스나야 폴랴나에 만들고 집필을 하며 보내게 된다.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의 개념이 톨스토이에서는 '사랑'으로 발전한 것이다.

톨 스토이는 <국가는 폭력이다>에서 비폭력은 현실에 존재하던 강압적 권위들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교회나 국가 같은 것, 즉 인간을 지배와 종속 관계에 놓이도록 하는 모든 제도들이 없어지도록 하는 것이 바로 비폭력이었던 것이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자본주의와 차르체제를 없애기 위해 폭력혁명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는 폭력혁명은 사회를 진정으로 바꿀 수 없다고 주장했으며, 농민들과 노동자들이 현실에서 비폭력을 실천하며  살아갈 때 국가나 전쟁 또는 교회 등이 필요 없게 됨으로 소멸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에 따라 그는 솔선수범하여 사랑을 전파했으며 나이, 신분, 성별에 따라 인간을 차별하지 않았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억압하기 위해 만든 것이 법이라고 생각한 톨스토이는 법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사회혁명이 아니라 개인들이 모두 자각하여 고결한 도덕적 삶을 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가능할까? 이 질문은 우문이다. 제정러시아의 차르보다도 더 폭력적인 자본독재가 우리를 노예화시키고 있는 요즘 우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고민하고 있다면 이미 백여년전 직접 농민이자 노동자로 살다간 소박하고 겸손한 아나키스트 문호를 만나보자. <국가는 폭력이다>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 처음 이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참 반가웠다. 몇 년간 이 책이 한국에 소개되길 바라고 있었는데, 역시 누군가는 이런 의미있는 작업을 묵묵히 해왔던 것이다.

*녹색평론 2008년 9-10월호(통권 102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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