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골 게시판
dopehead zo's message board

 Total 654articles, Now page is 1 / 14pages
View Article     
Name   돕헤드
Homepage   http://blog.jinbo.net/dopehead/
Subject   나도 잘 모르겠어
오늘은 낮 1시에 남인사마당에서 콜트, 콜텍 노동자들의 기자회견이 있었어.
거기에 가서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했어.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는 그들의 소박한 바램이 이뤄졌으면 하고 말야.

기자회견 같은 행사를 진행할 때, 조직하는 사람은 뭔가 구색이 맞길 바라는 것 같아.
그러니까 발언도 배치하고, 노래도 넣고, 퍼포먼스도 적절히 넣고 해서 뭔가 그럴듯 하고 있어 보이도록 만들고 싶은 마음.
나도 알아, 그거.
그런데, 어쩔땐 그런 분위기에 불려가서 노래를 하는 것이 마치 하찮은 양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단다.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야 이것저것 할 것도 많고 신경을 써야 할 부분도 워낙에 많겠지.
활동가들이야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 아니겠니.
그들이 나에게 약간의 배려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쪼잔하게 기분이 나쁘거나 하면 이 판에서 굴러먹기 힘들지.

왜냐하면 그런 행사에 나같은 사람은 일종의 '단골메뉴'잖아.
공짜에다, 쉽고, 부담없고, 언제든 시키면 달려오는 그런.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혼자서 척척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오고, 까다로운 요구사항도 없고 말야.
노래야 그저 그렇지만, 가사는 제법 분위기에 어울리는 것도 있으니 구색을 맞추기에는 괜찮은 선택이겠지.
노래를 좀더 잘 부르고 해서 실력이 좋다면야 그야말로 금상첨화겠지만, 노래를 좀 못불러서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급할 때 연락하면 대부분 멀다않고 찾아오는 구원투수니까 그 정도로 만족해야겠지.
선수끼리, 이 정도쯤은 다 서로 아는 사항 아니겠어?
우리가 행사 한 두 번 해보는 것도 아니고 말야.
그러니 새삼스럽게 왜 그래, 아마추어 같이?

어쩌면 내가 음악운동을 시작한 것이 그런 이유 때문이었는지도 몰라.
난 물처럼 항상 낮은 곳으로 흘러가겠다는 다짐말야.
음악이, 노래가 자본의 논리로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불려지고, 사고 팔리고, 철저히 돈을 가진 자들의 입맛에 맞도록 재생산되는 현실의 체제에 전면적인 반기를 들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잖아.
그렇게 높고, 으리으리하고, 휘황찬란한 곳만 바라보는 짓은 원래 싫었으니까 나는 길바닥에서든, 앰프나 마이크 스탠드가 없는 곳에서든, 돈이 없는 곳에서든, 조명이 없든, 시설이 후지든, 장비가 열악하든 따지지 않고 항상 달려갔었잖아.

게다가 원래 진보진영에서 불려지던 노래들에도 거리를 두고 싶었잖아.
군가풍, 뽕짝풍, 행진곡풍의 노래들이 우글거리는데 도대체 '식민지성'이 무엇인지 제대로 반성도 하지 않은채 노동대중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노래들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고 있잖아.
집회에 한 번 가보면 알겠지만 20년전에 불리던 노래들 지금도 그대로 부르고 있어.
변화도, 진보도, 새로운 노래도 없고, 계속 그 나물에 그 밥이야.
(채식을 하는 나는 나물과 밥을 매일 먹고, 좋아하긴 하지만 말야 -_-)

이것이 이른바 진보진영이란 말인가, 좌절하면서 난 자본도 싫고, 기존의 판박이 같은 민중가요들 무한 재생하는 것도 싫은데, 싫어하고만 있자니 내가 원하는 노래는 평생 나올 기미도 안 보이고, 그래서 그렇게 기다릴 바에는 아예 내가 직접 뛰어들어보자고 시작한 것이잖아.
그런 마음으로 새로운 민중가요를 만들면 그래도 사람들이 들어줄 것 같았는데, 웬걸 그게 아니더라.
사람들이 집회 같은 공적인 자리에서는 엄숙하고 군가 같은 민중가요를 부르면서, 사적으로는 'Gee' '미쳤어' 같은 노래들이나 듣고, 소녀시대나 빅뱅이나 이런 가수들에 대해서도 좔좔 다 알고 있더라.
집회 같은 곳에서 내가 노래를 어쩌다 하게 되면 '어울리지도 않는 노래 왜 부르냐'는 투로 쳐다본다는 거 실은 나도 알고 있어.
내 노래들이 주 타겟으로 삼고 있는, 노동자니 농민이니 빈민이니 이런 이름들로 불려지는 사람들, 내 노래 싫어해.
알아, 나도.
그런데 낄려면 나도 어때야 한다는 거 이 판에 몇 십년 있었는데, 내가 왜 모르겠니.

그거 아니?
나에겐 소녀시대든 원더걸스든 빅뱅이든 무슨 꽃미남 그룹이든 이명박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거 말야.
그러니까 정치판에 한나라당이나 이명박이나 민주당이나 그런 것들이 있다면 대중가요판에는 양현석이나 이수만이나 그런 기획사들이 있고, 완전히 똑같은 논리와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잖아.
사람들이 미쳤어에 열광하며 의자춤을 추는 것이나, 2007년 대선에서 압도적인 표차이로 이명박이를 찍어준 것이나 사실 하나도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더라.

현실이 너무 힘들어 위안이라도 삼으려는 것일까?
그런데 왜 내겐 그게 투항으로 보이는 것일까.
그게 당황스러워.
내 인식과 현실의 괴리 말야.
내 현실은 무슨 현실일까?
우리의, 너희의 현실과 너무도 동떨어져 있는 것일까?

내가 음악운동을 시작하고, 지금의 나를 존재할 수 있도록 하게 하는 그 기반 같은 것이 있잖아.
그것이 뭘까?
난 왜 오늘도 밤마다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면서 풀리지 않는 가슴의 응어리를 쏟아내보려고 하는 것일까?
하루하루 음반은 쏟아져나오고, 새로운 신곡이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는데, 그런 곡들 가운데 적절하게 마음에 드는 곡들을 골라서 블로그에도 올려놓고, 컬러링으로도 올려놓고 그러면 되잖아.
노래 잘 하고, 얼굴 예쁜 가수들이 어디 한 둘이야?
불편하지도 않고 세련된 곡들 일 년에 오천, 육천 곡씩 테레비로, 포탈 사이트로, 영화로, 광고로 흘러나오는데, 과연 조약골 같은 노래는 있어서 뭐하자는 건가 싶기도 해.

그냥 행사 있으면 가서 깔짝깔짝 기타 좀 치고, 노래 한 두곡 하고 들어가면 되지, 뭐 그리 거기에 신경을 쓰나.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
기획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닐테고, 기획사에서 만들어낸 예쁘장하고 편한 곡들은 앞으로도 매연처럼 쏟아질텐데, 어차피 서민을 위한다면서 거짓말 하는 정치권이나 대중들의 노래라는 대중가요나 공해라는 측면에서는 사라지지 않을 거야.

난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까.
난 어디서 노래를 해야 할까.
내 노래는 어떻게 불려져야 할까.

무시 당해도 괘념치 말고 꿋꿋하게 노래하자고 다짐하고 시작했는데, 십년이 지나니까, 나도 나이가 드는 것일까, 정말 내 혼신의 노력을 다해 한 곡 한 곡 노래를 만들고나면 정말이지 정당한 대접을 받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이 들기도 해.
젊었을 땐 앞으로 살 날이 많이 남았을테니까 지금은 서러워도 괜찮다 했는데, 이젠 살 날이 살아온 날보다 더 적게 남아서인지, 그렇게 무시당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더라.
내 노래들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니, 아니 세상엔 제대로 대접 받고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기껏 노래 하나가 대접을 제대로 못받는다고 뭐 그리 큰일이겠어.
용산 철거민들 아직도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잖아.
공장에서 억울하게 쫓겨난 노동자들 서러움 누가 하나 알아주는 이 없잖아.
그런 것에 비하면 난 그래도 행복한 편이라고 위로하면서 지냈지만, 모르겠어.
내가 욕심을 부리는 것일까?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일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단골메뉴로, 구원투수로 만족하면서 살면 안 되는 것일까?

요즘처럼 불황인데, 음반 만들어서 5백장 팔리면 큰 성공한 것 아냐?
뭘 더 바라겠니.
니 실력에.
늙어가는 처지에.
별로 인간적 매력도 없는 주제에.

안다, 알어.
그래서 또 밤이 되면 다시 또 무슨 서부지역 공공성 연대회의 등등이 주최하는 서대문, 은평, 마포 연합 촛불문화제에 기타를 들고 가서 노래 하고, 또 내일이 되면 무슨 집회에 가서 노래하고, 또 다음주에는 어디서 공연하고 그렇게 지내겠지.
노동자들 나오고, 활동가들 나오고, 촛불시민 나오는 자리에서 그렇게 노래하고 그렇겠지.
언젠가부터 '정치적 올바름'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면서 나 자신을 '이래야 한다' '그건 틀려' '그렇게 말하면 안 돼'라고 억압해왔다는 것도 알고, 그 때문에 내 자아가 얼마나 심하게 쪼그라들었는지도 나 다 알아.
믿음, 사상, 신념 이런 것들로 채워넣고 즐거워했다는 것도 잘 안다.
실제로 즐거웠으니까.
아니면, 즐겁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으니까 즐겁다고 강력하게 주문을 걸면서 지내왔는지도 모르지.
그건 괜찮았어, 왜냐면 어쨌든 난 즐거웠거나 즐겁게 살았다고 믿었으니까.

그런데, 왜 이제와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나도 잘 모르겠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일까.
나도 몰라.
정말 모르겠다.
지겨워.
그냥 지겨워.
모든 것이 지겨워.
라는 말이 왜 하루에도 수십번씩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새나오는 것일까.

 Prev    시대의 봄 spring of the era
돕헤드
  2009/03/06 
 Next    기타와 자전거
돕헤드
  2009/02/26 



Copyright 1999-2017 Zeroboard / skin by lifesay
돌아가기 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