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골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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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돕헤드
Homepage   http://blog.jinbo.net/dopehead/
Subject   전문시위꾼
얼마 전까지 용산참사 현장에서 수요일마다 영화상영을 했었다.
그때 철거민들과 같이 본 영화 중 하나가 김준호 감독의 '길'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알다시피 평택 농민들의 투쟁을 다루고 있는데, 중간중간에 나를 비롯한 여러 지킴이들이 가끔 등장하기도 한다.
영화가 끝나고 철거민 몇 분이 날 보더니 '용산이 처음이 아니네요?' 하신다.
(내가 언뜻 보면 운동 경력이 별로 없어보이기 때문이리라)
옆에 있던 숲속홍길동 님이 날 가리키며 '저 친구는 전문시위꾼이에요'라고 대꾸한다.
그 말에, 철거민들이 안도하면서 '그러면 중간에 가거나 하는 일이 없겠네요' 하신다.
나는 '물론이죠. 한 번 들어왔으니 저는 끝까지 갈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철거민 분들은 고맙다면서 끝까지 싸워서 꼭 승리하자고 하신다.
그럽시다, 라고 나는 대답했다.

용산 현장에 들어오기 전까지 나는 용산4구역 철거민들을 몰랐고, 그분들 역시 내가 누군지 몰랐다.

그래요, 난 전국의 시위현장을 돌아다닌 전문시위꾼입니다.
적이 무엇이든 한 번 물면, 중간에 놓는 법이 절대로 없지요.
내가 죽든, 적이 죽든 저는 끝까지 물고 늘어집니다.
물기 전까지는 이런저런 계산도 하고, 고민도 하고, 방황도 합니다.
하지만 한 번 물겠다 마음 먹고 물기 시작하면 절대로 놓지 않아요.
그래서 용산도 끝까지 가려고 해요.

용산참사 현장에 들어와서 좋은 점이 많은데, 가장 좋은 점은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다.
일단 나는 현장에 있기 때문에 여기서 놀든 여기서 무엇을 하든 마음이 불편할 일이 없다.
바깥에 있을 땐 용산 현장에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못가보는 마음이 불편해서 힘들었었다.
바깥에서 밤이 새도록 일을 하다가 집에 돌아가 겨우 몇 시간 눈을 붙이고 다시 사무실에 나가 하루종일 일을 하고 밥을 먹을 시간도 없이 행동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연락하고 실행하고 노래하고 녹음하고 해봐도 마음 한 켠에는 항상 '나는 왜 이것밖에 못하는 것일까. 온몸을 던질 수는 없는 것일까' 하는 자책감이 있었던 것 같다.

현장에 있지 못한다는 마음에 괴로운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여러 이유로 이곳 용산4구역에 오지 못하는 사람들(박래군 같은 이들)이 얼마나 심적으로 괴로울까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이렇게 편하게 운동을 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여기게 된다.

이곳 생활은 실제로도 참 좋다.ㅎㅎ
특히 철거민 분들과 친해져서 너무 좋다.
게다가 텃밭 만드는 것을 진심으로 지지해주셔서 감사하다.

그저께는 상자텃밭 서너군데에 뿌려놓은 상추 씨앗에서 일제히 싹이 터 올라왔다.
그러더니 하루가 다르게 조금씩 커져간다.
얘네들,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처음엔 상추와 고추와 토마토와 오이 등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들깨도 심고, 비트도 심고, 신선초도 심었다.
작물의 종류를 앞으로도 더 늘려나갈 생각이고, 지금처럼 하루에 상자텃밭 하나 이상씩 계속 만들어갈 계획이다.
그렇게 해서 용산4구역 전체를 상자텃밭으로 덮어버리는 꿈을 꾼다.
아, 사실 그렇게 되기 전에 얼른 장례식 치르고, 이 투쟁을 승리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말이다.

용산4구역 콘크리트 땅을 파내고 거기에 한강에서 퍼온 흙과 지렁이 분변토를 섞어 게릴라 텃밭을 만든 것이 6월 10일 문화예술행동의 날이었고, 바로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용역깡패들이 몰려와 그 정성이 들어간 텃밭을 완전히 짓밟고 작살내버렸다고 이미 말한 적이 있다.
그 게릴라 텃밭을 용역들이 가장 먼저 타겟으로 삼고 복수를 했다고 한다.
용역깡패들이 아작을 내버린 그 텃밭의 모습은 너무나 끔찍해서 도저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곳곳에 저들의 발자국들이 널려 있었고, 가래침을 뱉어 놓았다.
그건 아주 잔인한 복수의 표시로 받아들여졌다.

용역깡패들은 채소들의 생명을 완전히 끊어놓기로 작정을 한 것 같았다.
식물들을 그냥 뽑아서 던져놓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끊어버리거나 짓이겨버리거나 아니면 잎사귀들을 모조리 뜯어놓은 것이다.
어쩌면, 식물의 강인한 생명력을 그 깡패들은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예 다른 곳에서도 일절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아예 고추 모종의 잎사귀들까지 주르륵 모두 긁어내버린 것이다.

그렇게 처참하게 부서진 게릴라 텃밭 주위를 마치 구천을 떠도는 유령처럼(아, 용산학살이 일어난지도 벌써 150일이다. 이 영령들이 어서 영면할 수 있기를) 배회하면서 나는 용케도 구석탱이에 던져져 방치되어 있던 몇 그루의 고추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잎사귀들이 모조리 벗겨져 앙상하게 길쭉한 가지만 남은 그 고추 모종들.
나는 정성껏 상자텃밭을 마련해 그 친구들을 레아 주변으로 옮겨 심었다.
뿌리는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그 친구들이 다시 살아나기를 간절하게 바라면서 말이다.
매일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그렇게 새로운 곳에 둥지를 튼 앙상하게 몸뚱아리만 남은 고추 모종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강해져야 한다고.

성 프란체스코는 작은 새들에게도 설교를 했다는 유명한 이야기를 나 역시 듣지 못한 바 아니다.
나는 고추 모종들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
너희들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고추 모종들이어야 한다고.
너희들은 경찰과 용역의 극악한 폭력을 견뎌내고 끝까지 살아남아 이 투쟁 승리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고.
경찰버스의 더러운 배기매연과 용역의 발길질에도 굴하지 말고 우리 견뎌내자고 나는 그 친구들에게 말을 건다.
분노를 꾹꾹 눌러담은 채 강해져야 한다고 수없이 되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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