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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훈인 2011-06-05 13:32:09, Hit : 1536
Subject   [re] 대북전단 관련한 논제
답변이 좀 늦어졌네요.
이 글이 충분한 대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본래 상대를 억지로 설득하려거나 결론을 내려는 목적으로 얘기를 시작한 것이 아니고 저의 생각을 개진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이 글까지만 쓸까 합니다.

마르크시즘이나 아나키즘에선 국가를 부르주아지의 집행위원회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시조들이 활동하던 19세기 당시에는 확실히 보통선거권 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반면 자본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 법률들이 일방적으로 시행되었기 때문에 그런 비판이 타당했고, 따라서 국가가 민중의 의사를 반영할 리 없으니 부르주아 국가를 해체하고 대안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2차 대전 이후 서방세계의 모습을 보면 국가가 그렇게 일면적인 모습만을 보였다고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유럽의 많은 사민주의 정당들이 제 1당, 또는 제 2당이 되어 집권에 성공하면서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게 되었고, 그 일환으로 국유화와 보편적 복지를 상당한 수준까지 시행하게 된 것은 분명 자본의 이해만을 따랐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죠. 과거 서독 사민당의 사회적 시장경제 정책, 스웨덴 사민당의 임노동자 기금 정책 등의 패키지들을 보면 단순히 자본이 아젠다를 세팅한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그 정책들이 모두 그대로 실현된 것은 아니지만, 그건 자본이 논의를 통제해서라기보다는 그 요구 자체가 너무 급진적이거나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옌데나 미테랑 정권의 경우처럼 대의제 내에서도 급진적인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 중 상당수는 실패했는데, 물론 자본파업과 같은 반대 진영의 대응에도 원인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 정책 자체의 부적절성, 비현실성이 원인이었습니다. 단순히 자본의 간섭 때문만이 아니라 민중들 역시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좌절된 측면이 큽니다. 가능한 정책이라고 하더라도 따르는 부담이 크다면 그것을 지지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한데, 하물며 성공여부를 알기 어려운 급진적 정책을 시행해보자고 하면 리스크를 기꺼이 감수하고 사회적 실험에 동참하겠다고 나설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것이 단순히 자본이 장악한 헤게모니에 민중들이 포섭되어있기 때문일까요?

물론 자본주의가 현대사회를 규정하는 가장 큰 축이고, 그 가운데서도 노자갈등이 가장 주요한 갈등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대의 민주주의 체제가 이러한 문제들을 완벽하게 해결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 자본이 관료, 언론 등과 유착하여 지배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이런 점에서 마르크시즘과 아나키즘의 문제의식은 타당했고 역사적으로도 민중의 의식화에 일조했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시스트와 아나키스트들의 결정적인 과오는 현실에서 존재할 수 있는 제약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문제의 해결책으로 자본주의와 국가의 발본적 폐지만을 제시했다는 점입니다. 구체에서 추상으로의 분석을 통해 사회문제의 원인을 포착하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실천에 있어서 다시 구체적인 재구성 없이, 추상된 대상에 대한 타개책만을 제시했기에 현실에서 적용하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구성된 사회를 인간의 상상력만으로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급진적 구상일수록 좌절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귀하께선, 공론장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담론에 대한 관용을 가장하면서 본질적 변혁 가능성은 차단하는 ‘자유주의의 위선’ 같은 걸 지적하시려는 것 같은데, 그 다양한 전복적 논의들 중에 실제로 유효한 것이 얼마나 될지도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토빈세, 기본소득 등에 대한 논의도 걸음마 단계인 마당에 구체적인 구상도 없이 자본주의 폐지, 국가 폐지를 주장하면 수용 불가능한 게 당연합니다. 물론, 이념이나 사상에 대한 탄압은 지양되어야 마땅하지만, 급진주의가 거부되는 것은 그러한 탄압이나 물타기 때문만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명백히 존재하는 문제를 모르쇠하거나 도리어 정당화하는 보수주의도 문제이지만, 발본적인 해체만을 요구하는 급진주의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북한에 대의민주주의에 기반한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하면 그것이 현 독재정권과 다를 게 뭐냐고 하신 부분에서, 자본주의라는 문제틀에만 집중하신 나머지 형식주의적인 판단을 하고 계신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자본주의와 계급 갈등 문제가 현대사회를 파악함에 있어 주요한 프레임임에는 틀림없으나, 그것이 사회를 규정하는 유일한 요소는 아닙니다.

계급 프레임에서만 보면 자본주의는 계급사회이고 현실사회주의는 지니계수가 아주 낮은 무계급사회입니다(노멘클라투라는 사적 자본을 소유한 계급은 아니므로). 그러나 우리는 현실사회주의를 더 우월한 체제로 보진 않죠. 계급만 없을 뿐 의사표현과 신념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생활수준 면에서도 자본주의보다 낫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서 모두 같다고 보지도 않죠. 우리는 80년대의 칠레 사회보다 스웨덴 사회가 당연히 낫다고 판단합니다. 같은 자본주의라도 정치적 자유, 인권의 보장, 사회 안전망의 구축 등 여타 요소들의 유무가 이런 차이를 좌우합니다. 북한의 경우 역시 자본주의와 계급문제 이외의 인권과 후생의 측면에서 보면 아시아 최악의 수준인데, 이런 요소들을 전부 사상시키고 현 체제나 대의제에 기반한 자본주의나 그게 그거라고 보는 것은 지극히 관념적인 견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극단적으로 말하자면'이라는 단서를 붙이셨는데 말 그대로 정말 극단적인 비약입니다.)

북한이 ‘그 나물에 그 밥’인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 국가를 지양해야 한다면 과연 (국가를 배제한)지역공동체가 그보다 유의미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국가단위에서만 해결할 수 있는 운송, 통신, 국방 등의 문제들이 지역공동체와는 무관한 것처럼 말씀하시면서 피해가시는 경향이 있는데, 무주공산에 세워진 공동체가 아닌 이상 보통의 사회와 마찬가지의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홍수나 산불, 지진과 같은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지역 공동체 단위에서 방재와 복구를 얼마나 충분히 해낼 수 있을까요? 더군다나 교통, 통신망이 결핍된 상태에서 이웃 공동체의 신속한 도움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위생, 보건 문제를 지역 단위에서 얼마나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갖춘 인력을 어떻게 양성하고 임상과 연구는 어떻게 진행하며 각종 의약품들은 어떻게 생산해낼 것입니까? 전염병이라도 돌면 현재와 같은 수준의 역학조사와 대응책 마련이 가능할까요? 그리고 좋든 싫든 간에 존재하고 있는 외국과의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특히 북한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이해가 상충되는 지점인데 이 국가들과의 외교는 누가 담당해야 할까요? 남한과의 교류는 또 어떻고요. 주변국들로부터 주권을 지키기 위해선 군대가 필요하고, 코스타리카처럼 군대를 두지 않는다고 해도 그러기 위해서는 외교력이 필요한데 국가 없이 그것이 가능하시리라 보십니까?

물론 북한의 현 체제가 붕괴한 후, 러시아나 동구권처럼 가장 안좋은 형태의 자본주의로 전환될 위험성이 존재하고 이것은 굉장히 우려스러운 일인 것이 사실이지만,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국가가 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시장주의의 범람에 가장 강력히 대응하고 그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는 것 역시 국가이니까요. 국가가 배제된 상태에서 지역적 공동체만이 존재한다면 오히려 그러한 조류에 무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충분한 식량과 전기, 위생적인 상수도, 양질의 의료서비스이지 오래된 미래일 것 같진 않거든요. 그런 현실을 무시하고 아무런 대책도 세워두지 않는다면 시장에 잠식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애초에 꽤 높은 수준의 도시화가 진행되어있는 북한에서 지역적 공동체만 꾸려나가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요.

대의제에 기반한 자본주의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20세기 동안 자본주의를 통해 생활수준이 향상되었고 대의제를 통해 상당한 수준까지 노동, 복지 관련 입법이 이루어졌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고 봅니다. 천연두와 소아마비를 퇴치하고 전기를 보급한 것은 현대 국민국가이며, 고등교육을 제공하고 사회보험, 실업구제를 모색하는 것 역시 국가입니다. 물론 대의제를 통해 노동시장 유연화와 같은 반대의 움직임도 이뤄질 수 있고, 법치주의라는 명분으로 이에 대한 저항을 봉쇄해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의제 자체를 폐기해버린다면 교각살우와 다름없다고 봅니다.
지구화, 도시화, 관료주의, 자본주의의 폐해를 시정하기 위해 혁신 지자체, 대안 공동체, 생협, 워커즈 콜렉티브, 노동자 경영 등의 실험을 하는 것은 고무적이고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것이 국가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문제들의 층위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현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는 중앙과 지역 모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P.S. 소비에트 민주주의의 실패를 단순히 볼셰비키의 잘못으로 돌리시고 소비에트를 너무 이상적으로 보시는 것 같은데,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지역 소비에트에서 우글거리는 사람들로 인해 결정을 내리는 데 한참 걸리기 일쑤였으며, 공장위원회가 장악한 공장들 역시 생산력이 급하락했습니다. 한편, 규율도 해이해져서 공장에서 음주를 하거나 관리자를 폭행하고 작업장에서 정치 얘기를 하면서 시간을 떼우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소비에트나 공장위원회가 노동자 투쟁의 산물임은 맞지만, 그것이 꼭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기능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고, 혁명 초기에 볼셰비키가 소비에트의 가능성을 너무 과대평가했기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단순히 볼셰비키에 의한 변질 사례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소비에트가 의회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무리였음을 보여주는 사례인 것입니다. 도의적으로 옳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실현되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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