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기술도 알고보면 '특허'
“각 글자판에 몇개씩의 알파벳이 적혀 있는데 한 글자는 앞으로 40도 정도, 다른 글자는 뒤로 40도 정도 기울어져 있다. 글자판의 모양은 타원형이며 엄지손가락으로 누르기 쉽다. 이런 글자판 외에 위아래로 돌려서 작동시키는 휠(바퀴)형 입력 장치도 갖추고 있다.”
지난 9월17일 미국 특허청이 내준 ‘손에 쥐는 전자우편 관련 장치’ 특허에 대한 서술이다. 특허 하면 뭔가 참신한 것이리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이 서술을 잘 보면 최신 휴대전화기 또는 개인휴대단말기(PDA)의 모양새와 아주 흡사함을 알 수 있다.
“이런 것도 특허라니…” “이런 특허를 어디에 써먹을까”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본사를 둔 ‘리서치 인 모션’이라는 회사는 이 특허를 받자마자, 개인휴대단말기 제조업체인 핸드스프링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지난 5일 굴복시켰다. ‘자판 특허’의 사용료를 받고 소송을 취하하기로 것이다. 개인휴대단말기업계 1인자인 팜도 이틀만인 지난 7일 손을 들었다.
리서치 인 모션은 ‘로수트(소송) 인 모션’이라고 불릴 정도로 경쟁 기업에 대한 소송을 일삼기로 유명하다. 이 회사의 짐 볼실리 사장은 “업계를 선도하는 연구 및 개발 실적의 보급확대를 위해 유명 기업들에 꾸준히 특허사용권을 부여하고 있다”고 밝혀, ‘소송과 법정 밖 합의를 통한 수익 챙기기’를 계속할 뜻임을 내비쳤다.
물론 이런 ‘하찮은 특허’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가입할 때 주소나 신용카드번호 등의 정보를 등록해두고 그 이후 물건을 구입할 때는 마우스를 한번 누르는 것만으로 거래를 끝내는 온라인거래의 ‘상식적인 방법’에 대해 특허를 갖고 있다. 영국 통신업체 비티는 웹페이지의 하이퍼링크(마우스로 밑줄 쳐진 부분 등을 누르면 다른 정보로 연결되는 것) 기술에 대해 뒤늦게 특허를 주장했다가 법정에서 패소하기도 했다.
너무나 흔한 기술이나 디자인에 대한 특허가 남발되고 이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정보운동가들의 특허제도에 대한 전면 재검토 요구가 날로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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