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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돕헤드 2008-12-14 19:00:48, Hit : 1221
Subject   반항할 때 행복하다 - 볼리비아의 여성주의 아나키스트 그룹 '무헤레스 크레안도'

반항할 때 행복하다 - 볼리비아의 여성주의 아나키스트 그룹 ‘무헤레스 크레안도’(Mujeres Creando, 창조하는 여성들)


“우리는 열정으로 미친 사람들, 선동가들, 모반자들, 반항하는 사람들, 체제를 전복하는 자들, 마녀들, 길거리 예술가들, 낙서하는 자들, 아나키스트들, 여성주의자들, 여성 동성애자들, 이성애자들이다. 결혼을 했거나 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학생이고 사무원이다. 우리는 원주민이고, 소수민족 출신이다. 나이든 사람과 젊은이들도 우리들이다. 우리는 백인이며 유색인이다. 우리는 운동에 대한 헌신성이라는 물레로 연대라는 날실과 정체성이라는 씨실로 짠 피륙인 것이다. 우리는 여성, 바로 창조하는 여성들이다.”

- 무헤레스 크레안도

 


무헤레스 크레안도는 1992년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에서 첫발을 내디딘 여성주의 아나키스트 단체이다. 처음엔 세 명의 친구들, 즉 마리아 갈린도Maria Galindo, 훌리에타 파레데스Julieta Paredes 그리고 모니카 멘도사Monica Mendoza가 시작을 했다. 이들은 기존의 전통 좌파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원래 좌파 운동에서 출발하긴 했지만 모든 것들이 위에서 아래로 조직되는 방식에 신물이 났고, 좌파 내부의 여성들이 할 일이라곤 단지 차를 타거나 성적인 역할로 제한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여성은 비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안 돼요. 우리가 계속 이렇게 하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혁명을 믿어요. 우리는 사회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단 말입니다. 하지만 이 조직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죠.”


이것이 바로 무헤레스 크레안도가 정당이나 비정부기구(NGO), 국가, 그리고 패권주의적 단체들이나 노동조합의 지도자들로부터 모두 거리를 두고 자율성을 유지하는 이유다. 우리는 또 다른 사장이나 대표자, 급이 높은 지도자를 원치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 수평적으로 평등하게 조직하며, 어느 누구도 다른 이를 대표하지 않는다. 각자의 여성은 스스로를 대변할 뿐이다. 당신도 이해하겠지만 우리의 투쟁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다. ‘맑스주의 혁명’이나 ‘트로츠키주의 혁명’의 일부분이 아닌 것이다. 우리의 투쟁은 고유한 특징과 개성을 갖고 있다. 우리의 투쟁은 사회 전체를 향하고 있다, 단지 여성들에게만, 또는 단지 중산층 여성에게만, 원주민 여성들에게만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을 포함한 모두를 향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우리들이 어떻게 사람들과 연관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 우리 운동의 기본적인 토대를 이루는 핵심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무헤르 푸블리카(Mujer Publica, 공공여성)’라는 기관지를 스스로 편집하고 발행하며 판매한다. 또한 거리에서 창조적 활동을 펼치기도 한다.


우리는 벽화낙서(그래피티, pintada)를 그린다. 이는 우리에게 있어서 진실된 방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도구이다. 처음엔 현재의 좌파 그리고 보수우익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이 되었다. 그들이 거리에 ‘이번 선거에서 기호 몇 번을 찍어달라’는 식의 그림과 구호를 그려넣은 것에 대해 우리 나름대로 반격을 가한 것이다. 그들은 ‘선거에 반대한다’ 또는 ‘이 후보를 지지한다’ ‘이것에는 반대한다’ 등 긍정적 또는 부정적 단어를 사용했다. 우리는 그런 단어들 대신 시와 창의성에 호소하면서 단순히 ‘찬성’과 ‘반대’ 또는 ‘좌파’와 ‘우파’ 등으로는 나타낼 수 없는 생각들을 보여주려 한다. 우리가 그리는 모든 벽화와 낙서들에는 장소에 상관 없이 ‘무헤레스 크레안도’라는 서명이 여성주의 아나키즘의 표시와 함께 붙어있다.


“우리는 바쿠닌이나 CNT(프랑스의 아나키스트 노동조합총연맹)로 표상되는 아나키스트들이 아니다. 그대신 우리는 할머니들에게서 배운 아나키즘을 이어간다. 이것이야말로 아나키즘의 아름다운 유파가 아닌가.”

- 훌리에타 파레데스, 무헤레스 크레안도

 

우리는 여성주의적 관점을 견지하며 인종차별주의, 독재, 부채문제 등의 모든 억압에 맞서 싸운다. 우리의 목표가 항상 낙태, 월경권, 모성보호와 같은 여성들만의 문제에만 맞춰져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에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집중하는 것이 좋을 텐데요.”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뇨. 그런 문제들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에요. 낙태나 피임 같은 이슈들에 대해 우리도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를 멋대로 분류하려들지 마세요.” 우리는 모든 문제들에 연관되어 있다. 우리가 바로 이 사회의 부분부분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벽화낙서를 그리는 것이다. 우리의 벽화낙서를 보고 화를 내는 남성들도 있고, 정부로 하여금 분노를 자아내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성들만을 대상으로 한 벽화낙서들도 있으며, 정치적 상황에 대한 작품들도 있다.


우리에게 있어서 거리는 우리 투쟁의 가장 원초적인 공간이다. 우리에게 거리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정원 같은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가장 자신에게 솔직한 본연의 모습이 될 수 있다. 우리가 거리에서 하는 행동이 사람들과 서로 교감을 한다는 것이 우리에겐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사람들은 우리의 벽화낙서를 읽는다. 그리고 그것이 웃음이나 불편함 또는 분노를 유발시키기도 한다.


사람들이 우리보고 유럽은 완전히 끝장났다고들 이야기한다. 나는 유럽에 가본 적이 없는데, 가본 적이 있는 마리아와 훌리에타에 의하면 유럽에서는 모든 것이 통제되고 있단다. 길거리 행진이나 집회를 할 수 있건 없건 간에, 물건을 판매할 수 있건 없건 간에 말이다. 이곳 볼리비아에서는 길거리에 나가면 그곳이 민중들 소유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사람들은 거리에서 행동을 하고, 물건을 팔기도 한다. 거리는 우리 것이다. 유럽이나 다른 나라의 사정은 훨씬 나쁘다. 저들 즉 경찰과 국가, 지차체 당국이 사람들을 통제하는 것이다.


창의성은 인간적인 것이다. 모든 여성과 남성이 창의적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우리에게서 이 창의성을 빼앗아가려고 한다. 창의성은 바로 우리 것인데도 말이다. 그들은 창의성을 엘리트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 바꿔놓으려고 한다. 예술가들이야말로 창의적이고, 영감을 주는 존재들이라고 지껄이면서 말이다. 우리가 가진 투쟁의 중요한 수단을 이대로 빼앗기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 우리의 모든 행동과 우리가 만드는 모든 인쇄매체들 그리고 길거리 저항행동과 벽화낙서들 속에는 바로 우리의 이 중요한 요소가 녹아들어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원초적이며 중요한 것이다. 바로 창의성이다. 누군가는 우리들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네들도 예술가군요.” 그런데 우리는 예술가가 아니다. 우리는 거리의 활동가들이다. 우리의 모든 활동은 가장 인간적인 것을 활용하는 것이다. 바로 창의성이다.


우리의 활동을 우리는 스스로 ‘악시오네스 카예헤라스(Acciones Callejeras, 길거리 행동)’라고 부른다. 하지만 거리에서만 우리가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여러 공간에서도 우리는 개입한다. 우리는 예를 들어 금융기관장들의 회의장에서 저지행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곳은 은행소유주들의 회담이 열리던 곳이었다. 우리들 중 한 명은 치마를 입고 가발과 두꺼운 안경을 썼다. 그리곤 친구를 통해 얻은 초대장을 들고 회담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일반인들의 출입은 제한된 곳이었다. 그들은 점심으로 진수성찬과 와인을 즐기고 있었다. 무헤레스 크레안도의 활동가 한 명이 들어간 것은 그때였다. 그는 전단지를 살포하면서 은행의 높은 이자율을 비판하는 구호를 외쳤다. “은행은 부당하게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큰소리로 외치면서 가져간 전단지를 뿌렸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행동 역시 우리들 나름의 방식으로 진행했다. 예를 들어 신문에 실리는 코카콜라와 맥도날드를 반대하는 행동을 벌인 적도 있다. 신문에 이들 대기업의 광고가 실리기 전에 우리는 먼저 다자간투자협정(MAI)의 상세한 내용을 알린다. 그리고나서 시애틀과 프라하에서 벌어졌던 반세계화 운동을 상세하게 소개하기도 했다.


“해방이란 여성이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여성이 명쾌한 주장과 행동을 갈망할 때 모든 것은 반드시 가장 완전하고 풍부하게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가로막는 모든 인공적 장애물은 제거되어야 하고, 보다 큰 자유로 이르는 길에 있어서 지난 수 세기 동안 이어져온 복종과 노예제도의 모든 자취는 사라져야 한다.”

- 엠마 골드만, 저주받은 아나키즘

 


은행자본의 횡포에 맞서 최근에 우리가 조직한 반대행동은 매우 강력했다. 볼리비아에는 여성들에게 먼저, 그리고 물론 남성들과 농민들에게도 적은 금액을 대출해주는 제도가 있다. 이것이 소액대출제도인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라틴 아메리카의 빈곤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빈곤한 자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줄 수는 없어요. 그들에게 직업고용의 안전망을 제공할 수도 없죠. 빈민에게 건강이나 교육을 제공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빈민에게 소액의 금액을 대출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 돈으로 일단 무언가 시작해서 새로운 삶을 설계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은행자본가들은 이렇게 대출한 소액에 엄청난 이자율을 물린다. 그렇게 번 돈을 갖고 새로운 투자에 이용하는 것이다.


볼리비아에는 1992년에 소액대출제도가 도입되었다. 처음 이 제도가 도입될 때 길거리에서 행상을 하던 여성들에게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주머니, 자본금을 약간 대출해드릴께요. 아주머니도 돈이 필요하시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드리려는 거에요.” 그러고는 대출이 이뤄졌다. 대출에 필요한 담보는 개인재산이 아니었다. 이들은 가난했기에 집이나 자동차를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한 단체가 나서서 회원들끼리 서로 연대보증을 서게 했다. 그 결과 은행은 대출을 했고, 시간이 얼마 흐른 뒤 소액대출제도의 위기가 시작됐다. 사람들이 빌린 돈을 갚지 못했던 것이다. 이자율은 너무 높았고, 여성들은 같은 단체 회원인 다른 여성들과 언쟁을 벌였다. ‘내가 보증을 서줬는데, 못갚으면 어떻게 하느냐’며 서로를 비난했던 것이다.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자율은 터무니없이 높았다. 처음 100 달러를 대출받았는데, 나중에 가면 빚이 5,000 달러에 달했다. 빈민들은 은행으로부터 돈을 대출받고 8년에서 10년이 지나는 동안 꾸준히 원금을 갚아나갔지만 삶은 점점더 힘들어졌고, 빈곤은 전보다 더욱 심화됐다. 여성들은 소액대출제도가 도입되기 전보다 훨씬 더 혹독한 노동을 해야 했다.


2001년 대부분 가장 빈곤한 지역에 사는 여성들로 구성된 한 단체가 수도 라파스에 올라와 항의집회를 열었다. 이 단체의 이름은 ‘데우도라(Deudora, 채무자)’였다. 우리는 이들과 연대해 함께 고민하고, 행동을 같이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들과 평화주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은행과 초고이자율 그리고 돈에 맞선 창의적 행동들을 벌여나갔다. 길거리에 벽화를 그려 넣었다. 우리는 페인트를 가져왔고, 데우도라 회원들은 각자 신발을 벗어던지고 페인트통에 발을 담갔다. 그리고 서로를 일으켜 세우고 벽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겼다. 이들이 수도 라파스에 이르기까지의 오랜 여정을 표현한 것이었다. 우리는 행진을 했고, 경찰이 탄압을 하면 길바닥으로 피하기도 했다. 그렇게 싸웠다.


“정당이나 조직된 단체들만이 정치적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스스로의 행위와 결정에 대해 자각하는 순간 정치적 행동을 벌이는 것이다. 그것은 직관에 따른 페미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을 통해 여성들은 자신과 서로에 대해 인식하게 된다. 우리가 가진 모든 잠재적 능력과 힘 그리고 약점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자유를 발견하고 계속 발전시켜나간다.”

- 무헤레스 크레안도

 


우리는 스스로를 방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평화롭게 투쟁하는 전략에 호소한다. 하지만 상대로 하여금 폭력을 일으키도록 자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페인트통을 던지거나 누군가를 때리거나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합법적인 방어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나를 때린다면,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대해서 우리는 주의를 기울인다. 왜냐하면 대응을 한다는 것은 보통 경찰폭력을 당한다는 뜻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3개월 반이 지난 뒤 우리는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우리는 거대 은행 및 금융사들과 자리를 마주하고 앉아서 협상을 했다. 우리는 갖가지 불만과 요구사항을 하나하나 제기했고, 결국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은행은 약간의 잘못을 시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맞습니다. 우리가 당신들에게 정당하지 않은 행위를 약간 하긴 했어요. 그러니까 채무를 면제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간 사람들이 계속 그 집에서 거주할 수 있게 됐다. 자본주의에 통쾌한 한 방 슛을 날린 셈이다. 왜냐하면 볼리비아에서 금융자본의 힘은 막강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투자자들의 이익을 돌보기에 혈안이다. 은행과 뮤추얼 펀드, 비정부기구 등에 돈을 투자하거나 빌려주는 사람들 말이다.


우리에게는 이런 국가기구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시작부터 매우 힘든 일이었다. 우리는 지금도 계속 투쟁을 하고 있다.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합의를 이끌어내긴 했지만, 소액대출제도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국제세미나를 통해 행동을 이어갈 것이다. 소액대출제도는 그저 돈을 벌고, 또 벌고, 또 벌기만 할 뿐이다.


채무자들의 빚을 탕감하기로 합의한 뒤 우리는 꽃과 빵의 축제를 열었다. 아이들은 빵을 모두 함께 나눠 먹었다. 이는 빈민들의 오야(olla, 공동으로 사용하는 솥 같은 주방기구)를 상징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것을 서로 나누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 인터뷰 진행 - 캐서린 에인저Katharine Ainger / Notes From Nowhere


* 무헤레스 크레안도와 연락을 하려면

Carcajada Cultural Cafe, Almirante Grau, 525 Central, La Paz, Bolivia

전자우편 creando@ceibo.entelnet.bo


* 무헤레스 크레안도에 관해 좀더 알고자 한다면 영어로 된 다음의 책이 있다.

Quiet Rumors ; an Anarcha-Feminist Reader, 다크 스타Dark Star 편집, 2002년 AK Press 출간


* 이 글의 원문은 Notes from Nowhere가 편집한 책 We Are Everywhere (2003년 Verso 출간)에 실려 있습니다. 이 글은 카피레프트입니다.

번역 - 조약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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