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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ㅋㅋ 2004-07-01 22:00:43, Hit : 1272
Subject   ㅎ 왈 ....나는 태초부터 있었다. 나는 신이다
"나는 태초부터 있었다. 나는 신이다. 이 말은 내가 깊이 생각해보고 '나는 신이다.'라고 결론 내렸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진실로 내가 신이라는 것을 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신이라고 선포하는 것을 신성모독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진실로 본다면 '나는 신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신성모독이다. "

"신인(神人)이 사람들 가운데 살아가는 이유는 그들에게 신에 대한 사랑을 일깨워주고 신의 실재를 자각하게 해주려는 것이다. 오로지 신만이 존재하며, 그 밖의 모든 것은 환상이며 꿈이다."

메허 바바는 자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추종자나 제자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그저 친구로 여겼다. 그는 자신이 어떤 종교에도 속하지 않으며, 오히려 모든 종교가 자신의 것이라고 선포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개인적인 종교는 태초부터 내려온 무한자, 즉 나의 존재 자체이다. 내가 나누어주고자 하는 종교는 신에 대한 사랑이다. 이것이 모든 종교의 본질이다."

메허 바바는 1894년 2월 25일 태어났다. 그는 파르시(parsi) 부부의 여덟 명의 자식 가운데 두 번째로, 마하라슈트라주(州)의 뿌나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메르완 쉐리아르 이라니(Merwan Sheriar Irani)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뿌나의 빈센트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17세 때 뿌나 시내의 데칸 컬리지에 입학했다. 그의 아버지는 수피 전통에 속해 있었다.

메르완은 크리켓과 하키를 아주 좋아했으며 학업에도 열심이었다. 잘 생긴 외모와 지적인 매력으로 인해 그는 급우들뿐만 아니라 선생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그는 문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특히 시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페르시아의 신비주의 시인인 하피즈(Hafiz)를 좋아했다. 하피즈의 시를 통해 깊은 영감을 받은 메르완은 마라티어(語)와 페르시아어, 영어로 시를 짓기 시작했다. 이 중의 일부는 그 당시의 신문과 잡지를 통해 발표되기도 했다.
메르완은 또한 음악을 아주 좋아했으며 감미로운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신비주의에 점점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신비적인 이야기들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 범 세계적인 안목을 갖고 있었다. 데칸 컬리지에서 그는 코스모폴리탄 클럽(Cosmopolitan Club)을 결성했는데, 이 클럽은 계급과 종파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문이 열려 있었다.
[ 깨달음 ]

1913년 5월, 열 아홉 살 되던 해에 메르완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어느 날, 그는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큰 니임(neem) 나무 밑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군중들 가운데에는 아주 늙은 노파 한 명이 앉아 있다가 메르완을 보고는 앞으로 달려나왔다. 메르완은 어른에 대한 공경의 표시로 자전거에서 내렸다. 이 순간 두 사람의 눈은 무엇에 홀린 것처럼 서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 노파는 위대한 신비주의자이며 완벽한 스승으로 이름이 높았던 하즈라트 바바잔(Hazrat Baba Zan)이었다. 바바잔은 메르완을 껴안고 그의 미간에 입을 맞추었다. 단 한마디 말도 오가지 않았다. 바바잔은 다시 군중 속으로 돌아갔고, 메르완 역시 집으로 돌아갔다. 겉으로 보기에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닌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이 사건은 의식의 차원에서 일어난 완벽한 전수 과정이었다. 이 사건 이후로 메르완은 엄청난 지복의 체험을 하기 시작했다.

1914년 1월의 어느 날 밤, 바바잔은 갑자기 메르완 앞에 나타나 그가 깨달을 것이라고 확언했다. 메르완의 의식은 가장 순수하고 높은 차원으로 녹아 들어갔으며, 그는 3일 동안 혼수 상태에 빠졌다. 4일 째 되는 날 그는 다소 의식을 회복했다. 메르완의 부모는 어떻게 해야 아들의 의식이 완전히 회복될 수 있는지 몰라서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바바잔은 "이 아이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것이며 인류를 위해 엄청난 일을 할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아주 즐거워했다.
메르완의 부모는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얼마 안가 메르완은 쉬르디의 사이 바바(Sai Baba)를 만나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낀다. 1915년 그는 쉬르디로 가서 사이 바바를 만난다. 사이 바바는 메르완을 보자마자 "오, 신의 사자가 오셨군!"하고 반색했다. 메르완은 사이 바바 앞에 엎드려 절했다.

곧 사이 바바는 메르완을 우파사니 마하라자(Upasani maharaj)라고 하는 다른 스승에게 보낸다. 메르완이 찾아갔을 때 우파사니 마하라자는 나무 밑에 벌거벗고 앉아있었다. 그는 메르완을 보자마자 메르완의 이마 한 가운데를 돌로 내리쳤다. 바바잔이 입을 맞추었던 그 부분이었다. 돌연 메르완은 정상적인 의식을 일부 회복했으며 점점 나아져 완전히 의식을 회복하게 되었다. 어느 날 우파사니 마하라자는 메르완에게 '너는 신의 화신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 앞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내가 가진 모든 보물은 메르완에게 넘어갔다. 이제 너희들은 메르완을 따르고 복종하라."

젊은 메르완은 이후에도 다른 두 명의 스승을 만난다. 한 명은 케드가온의 나라야나 마하라자(Narayana Maharaj of Kedgaon)였고, 다른 한 명은 나그푸르의 타주딘 바바(Tajuddin Baba of Nagpur)였다.
메허 바바는 다섯 명의 완벽한 스승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고 술회하곤 했다. 하즈라트 바바잔에게서 시작된 일련의 과정은 사이 바바와 우파사니 마하라자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바바잔은 날씨가 춥건 덥건 개의치 않고 니임 나무 밑에 벌거벗고 앉아있곤 했다. 메허 바바는 이렇게 말한다.
"바바잔은 형용할 수 없는 분위기만으로도 내 의식의 장막을 거두어 주고 내 본래 면목을 깨닫게 했다. 그 섬광 같은 순간을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메허 바바는 이 다섯 명의 깨달은 사람들을 자신의 '사드 구루(Sad gurus)'로 부르곤 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하즈라트 바바잔은 내게 신성한 지복을 안겨주었으며, 사이 바바는 신성한 힘을 주었다. 그리고 우파사니 마하라자는 내게 신성한 지혜를 주었다. 사이 바바는 나를 본래의 나로 만들어 주었으며, 바바잔은 본래의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느끼고 했고, 우파사니 마하라자는 본래의 나를 알게 했다."
[ 사랑의 신 ]
1921년 말, 메르완은 자신이 신인(神人), 또는 아바타르(Avatar)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당시 우파사니 마하라자는 메르완을 '이 시대의 진정한 스승'으로 선포했다. 이제 메르완은 사랑과 자비의 아버지라는 의미의 '메허 바바'로 이름이 바뀌었다. 1922년 그는 영적인 사명을 이행하기 시작했다. 이 사명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가르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그대들을 깨우기 위해서 왔다. 내가 가르치는 종교는 신에 대한 사랑이다. 우리 모두 안에는 하나의 신이 존재하며, 사랑을 통해 누구나 이 신과 만날 수 있다. 내가 계속해서 부르짖는 단 하나의 메시지는 '신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수십년 동안 내가 말해온 모든 것은 이 한마디로 압축된다."

1924년 메허 바바는 아메다나가르 기차역에서 6마일 떨어진 아랑가온(Arangaon)이라는 마을에 총본부를 설립한다. 그후 이 마을은 메허라바드(Meherabad)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다. 1925년 7월 10일, 메허 바바는 완벽한 침묵의 상태로 들어갔으며, 1969년 1월 31일 육신을 벗어 던지기까지 이 침묵은 깨지지 않는다.
1년 동안 그는 자신의 영적인 체험을 글로 기록했으며,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글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곤 했다. 그러나 1927년 1월 그는 갑자기 이 일을 중단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1954년 10월까지는 칠판 위에 써 있는 영어 알파벳을 손가락으로 가리킴으로써 의사 소통을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후로는 이 칠판마저 없어지고 몸짓을 통한 의사소통이 유일한 수단이 되었다. 이 몸짓은 그의 측근에 의해 언어로 해석되었다. 메허 바바에 의하면 그의 침묵 또한 내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이 침묵은 그가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신은 침묵을 통해 일한다. 그는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지만, 그의 무한한 침묵을 체험한 사람은 그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메허 바바는 인도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를 여행했다. 1931년 처음으로 영국을 방문한 이래 미국과 유럽을 6번 방문했으며, 열번 이상 다른 나라들을 방문했다. 영국, 미국, 오스트렐리아, 독일, 스워덴, 멕시코, 레바논, 뉴질랜드, 그리스, 이집트, 일본, 말레시아, 프랑스 등지에는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으며, 이란과 인도에서는 그를 '신의 화신'으로 존경한다. 그의 스승들 가운데 사이 바바는 1918년 10월 15일 세상을 떠났으며, 우파사니 마하라자는 1951년 12월 24일, 그리고 하즈라트 바바잔은 메허 바바가 처음으로 유럽을 방문하기 하루 전인 1931년 9월 21일 육신을 벗어버린다.

메허 바바는 평생동안 독신으로 지냈으며 간혹 장기간의 단식을 하기도 했다. 그는 언제나 평범한 옷차림을 즐겼으며, 자유분방하게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는 한번도 자신을 스승이나 선생으로 내세우지 않았다. 다만 그는 "나는 내면에 있는 신성한 사랑을 깨달았을 뿐이다. 이 사랑은 모든 사람들 안에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어떤 고정적인 형식도 따르지 않았으며, 그의 의식은 언제나 더 높은 차원에서 작용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의 종교적인 믿음에 간섭하지 않았으며, 제자를 만들거나 입문 의식을 마련하는 등의 어떤 형식도 만들지 않았다. 그는 예배 의식, 만트라, 또는 종교적 의례를 만들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그대들에게 세상 속에 살면서도 언제나 내적으로 나와 커뮤니케이션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친다."
[나는 누구인가? ]


메허 바바는 자신을 신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인격화된 신이다. 나의 사랑이 넘치는 현존과 만날 기회를 가진 그대들은 참으로 큰 행운을 차지한 것이다. 한때 나는 라마(Rama)였으며 크리슈나였다. 나는 이런 존재 또는 저런 존재였으며, 지금은 메허 바바이다. 인간들이 한편으로는 숭배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무시하고, 한편으로는 기억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망각하고 있는 태초의 존재, 나는 그 태초의 존재와 똑같은 고대인이다. 나를 믿어라, 나는 태초부터 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육체적 형상에 연연해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절대적 존재를 깨달았으며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이 육체적 형상 안에 갇혀있지 않다. 나는 그대들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이 육신을 장신구처럼 걸치고 있을 뿐이다. 그대들이 보는 이 육신은 내가 아니다. 이 몸은 내가 그대를 방문할 때 걸치고 있는 겉옷에 불과하다."

1953년 11월 1일, 데라둔(Dehradun)에서 메허 바바는 이렇게 말한다.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영적인 지혜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완벽한 스승들이 돌아와야 한다. 고통은 무지 때문에 생기는 것이며, 미망(迷妄) 때문에 집착이 생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들처럼 미망에 빠져 있다. 이 세상의 덧없는 것에 매달리고 환상에 빠져 있다면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것이다."

메허 바바는 기적을 믿지 않았다. 그는 말한다.
"그대가 참된 자유를 얻는 것은 기적을 통해서가 아니다. 진정한 자유는 이해를 통해서 온다."
메허바바는 방문객들을 솔직담백하게 대했다. 그는 점잖을 떨거나 겉만 번지르한 말을 늘어놓지 않았다.
"나는 마하트마도 아니며 성자도 아니다. 나는 사두(Sadhu)도 아니고 요기(Yogi)도 아니다. 재물을 얻거나 소유물을 지키겠다는 욕심으로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 내게 의지해 고통과 불행의 짐을 덜겠다고 오는 사람들,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내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분명하게 선언한다. 나를 통해 이런 것들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실망만을 맛볼 것이다."
[ 세상 속에 살아라 ]

메허 바바에 의하면 신을 사랑하는 데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세상 속에 살면서 신을 섬기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두 번째 길이 좋다. 아무 것도 포기할 필요가 없다. 가정 생활을 하고, 직장을 갖고, 돈벌이를 하고, 극장에 가고, 파티에 가고, 이 모든 것을 즐겨도 좋다. 다만 언제나 한 가지를 기억하라. 그대의 행복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남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길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의 가슴속에 삶의 씨앗을 뿌려줄 것이다."

메허 바바는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다. 죽음이 영혼이 아니라 육신의 차원에서 일어난다고 보면 이 말은 사실이었다. 육체에 관한 한, 한번 태어난 모든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메허 바바는 1961년 1월 31일 헌신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육신을 버렸다. 그리고 2월 7일에 장례식이 행해졌다.
메허 바바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전세계에 퍼져 있다. 헌신자들은 그를 기리는 센터를 세우고 그의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
"삶의 목표는 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삶의 목적은 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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