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홉의 '6호실'였던가요. 레닌이 정신분열적인 짜르 체제 하의 러시아 상황을 압축하는 걸작이라 칭하며 늘 머리맡에 놓고 봤다는 그 소설 말입니다. 헌데 말입니다. 레닌은 번지수를 잘못 짚었지요. 혼란한 러시아 상황에서 실존을 잃고 방황하는 지식인의 정신 상태를 보며, 레닌은 일종의 '정리와 치유'를 하고픈 유혹을 느껴 그 책의 가치를 높이 쳐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권력에의 의지라고 부릅니다.
님이 지금 하는 작태는 인터넷 공해밖에 되지 않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우리가 과연 채시라인지 테시아인지 하는 분의 '굵은 로그인'을 보고 그 분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겠는지요? 설령 실명을 썼다고 해서 그 사람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건가요? 님은 님의 이름으로만 존재감을 보증받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정도로 그렇게 단순한 분인가요? 로그인제를 더 뛰어넘어 게시판 하단에 사진을 박아넣는 제로보드 스킨을 사용하면, 그때서야 우리는 님의 사진을 보고 님의 실존을 확인할 수 있는 건가요? 아니면 포르노 사이트처럼 주민번호와 기타 신상 내역을 박아넣은 다음에야 입장 가능한 시스템이면 되는 건가요?
나는 나의 이름이 싫습니다. 어머니 성을 함께 쓰기도 하고, 인터넷에서는 여러가지 아이디를 건너뛰며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게 인터넷이 주는 재미입니다.
외려 실명보다 자신의 캐릭터를 부모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결정하는 인터넷 아이디야 말로 외려 자기 실존에 가장 근사하게 닿아 있는 거처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님 역시 실명을 사용하지 않고 테시아라는 아이디를 쓰고 있는 거겠죠. ID는 욕망의 'id'이며, 이 욕망은 수시로 다른 거처로 부유하는 거겠죠.
로그인은 시스템입니다. 자신의 신원을 스스로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시스템이 요구하는 방향 대로 신원 확인을 강제하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 호모들 사이트에 가보세요. 거기에서의 로그인제는 정보 노출에 따른 위험을 최소한 방어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그것조차 두려워 '익명제'를 원하고 있습니다.
침묵이 곧 존재의 한 양태이듯 사람들은 자신을 익명으로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익명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떼를 쓰는 님의 논리가 그래서 사실 권력적이라는 뜻도 되겠지요. 익명이 존재하지 않으면 님이 그토록 선명하게 그리는 혁명이 선물로 오나요?
헌데 님은 로그인제를 '강제'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파시즘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자유로운 공간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에 전혀 개의치 않고, 외려 당신이 간직한 파시즘에 대한 조롱을 '나 살려줘!' 따위의 철딱서니 없는 떼로 방어하고자.
여기에다 님의 로그인제 주장의 하부구조에는 아나클랜을 '장소'로 여기는 많은 사람들의 바램을 거슬러 강력한 오프라인 조직 구성이라는 권력의지가 작동되고 있는 게 눈에 뻔히 들여다보입니다.
전 아나클랜 회원이거나 활동에 참여하지 않은 그저 떠돌이 눈팅이기 때문에 조직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에는 그닥 관심이 없습니다만, 자유로운 장소로 기능하고 있던 아나클랜에 줄기차게 혼자 외롭게 로그인제를 주장하고 있는 님을 보고 있자니 화도 많이 나고 당신의 권력의지에 침을 뱉고 싶단 유혹이 많이 듭니다. 적어도 아나클랜이 공유할 수 있는 최소 분모가 '권력에 대한 저항' 아니었던가요?
흩어져 있는 양떼를 한길로 인도하고픈 당신의 목자의 권력의지는 그래서 사실 아나클랜이 최소한 공유하고 있는 정체성에 정면으로 위배되고 있는 것으로밖엔 보이지 않습니다.
빨갱이 타령 같은 진보적 레토릭 몇 줄 써갈긴다고 해서 그 혐의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님은 님의 생각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인터넷 파시스트에 불과합니다.
강력한 오프라인 조직을 원한다면 다른 곳에 가서 하시기 바랍니다. 왜 원치 않은 곳에 와서 개구리 왕이 되려 하십니까?
님이 하는 작태는 개구리 왕이 되고자 혼자서 개굴개굴~ 하고 있는 것밖엔 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체홉의 '6호실'의 일독을 권해 드리지요. 당신부터 치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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