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클랜 게시판/링크/물물교환/파일공유/아나키즘 읽기자료
잡민잡론잡설/안티 다국적기업/관리자방/English

아나키즘저널발행준비위원회/투쟁과집/투쟁과밥/군대반대운동
아나키FAQ번역프로젝트/재활센터/여고생해방전선/전쟁저항자들

View Article     
Name
  달팽이 2008-08-08 15:31:53, Hit : 1277
Subject   우직한 바보 국가를 거스르다-하승우
국가는 폭력이다 - 평화와 비폭력에 관한 성찰

레프 톨스토이 지음 / 조윤정 옮김 / 달팽이출판


우직한 바보, 국가를 거스르다


하승우-한양대 제3섹터 연구소 교수


내가 톨스토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글은 ‘바보 이반’이라는 소설이었다. 아이들의 눈높이로 보면 그 글은 참으로 유쾌하고 명쾌했다. 권력과 돈에 대한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악마들의 꼬임에 넘어가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두 형과, 우직하게 욕심 없는 삶을 살아 악마들조차 항복하게 만든 이반의 얘기는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를 알려주었다. 먹을 것과 살림살이를 스스로 장만하는, 손바닥에 굳은 살이 박힌 사람들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임을, 그리고 그런 우직한 바보들이 모인 나라야말로 어느 누구도 정복할 수 없는 건강한 나라임을 ‘바보 이반’은 알려주었다. 톨스토이는 권력이나 돈을 좇지 않고 타인과 함께 나누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살아야 모두가 즐거울 수 있다는 간단하고 분명한 진리를 알려주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시대에는 ‘잘난 사람들’과 ‘똑똑한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한다. 이들은 풀뿌리 민중이 자신들을 믿고 따르면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장담한다. 그래서 어리석은 두 형의 나라에서처럼 전쟁이 끊이지 않고 민중의 살림살이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잘나고 똑똑한 이들이 지배하는 어리석은 나라의 국민들은 파이를 더 키워야 나눌 수 있다는 속임수에 빠져 하나라도 더 가지려 바둥거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근본적인 불안감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무한경쟁의 승자는 누구일까? 불안감과 공포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제 우리는 톨스토이처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고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 곁에 욕망을 부추기는 악마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톨스토이는 왜 국가에 반대했는가?


톨스토이는 사람들의 일그러진 욕망을 부추기고 세계를 파멸로 밀어 넣는 악마가 바로 ‘국가’라고 봤다. 귀족으로 태어나 국가의 혜택을 받으며 자랐고 장교로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던 톨스토이가 왜 국가를 ‘악의 축’으로 지목했을까? 그의 생활조건이 국가권력과 멀지 않았기 때문에 톨스토이는 국가의 사악한 면을 분명하게 볼 수 있었을지 모른다.

톨스토이는 풀뿌리 민중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존재가 바로 국가라고 주장했다. 톨스토이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필요에 따라 스스로 생산한 물건은 관습이나 여론, 정의심과 상호합의에 의해 보호된다. 폭력으로 보호할 필요가 전혀 없다. 수만 에이커의 삼림지를 한 명의 지주가 소유하고 있고, 근처에 사는 수천 명의 사람에게 땔감이 없다면, 삼림지를 보호하는 데는 폭력이 필요하다.”(「우리 시대의 노예제」) 만일 서로가 각자 필요한 만큼만 누리고 산다면 굳이 폭력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한 사람이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리기 때문에 폭력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때 국가는 약자의 편이 아니라 강자의 편에 선다.

국가가 자연의 도리를 어기는 부조리한 착취를 정당화하고 다수를 억압하기 위해 공권력을 행사한다. 심지어 국가는 그런 부조리함에 저항하는 민중에게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폭행하고 심지어 목숨을 빼앗기도 한다. 더구나 국가는 그런 잘못을 미화하고 은폐하려 들기 때문에 더욱더 나쁜 존재이다.

이런 국가의 폭력성과 은폐는 경찰과 군대로 증명된다. 톨스토이는 군대야말로 국가의 사악한 면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봤다. 톨스토이는 “모든 정부와 통치 계급은 기존의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군대를 필요로 한다”(「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라며 군대가 외부의 침략을 막기 위한 조직이라는 주장을 반박했다. 톨스토이는 “세금을 성공적으로 거두어들이기 위해 정부는 상비군을 유지한다”(「애국심과 정부」)며 국가가 자기 나라의 국민을 착취하기 위해 군대를 유지한다고 밝혔다. 톨스토이는 국가가 널리 퍼뜨리는 테러리즘과 세금강탈, 정신적인 세뇌가 사람들을 병사로 만들고 군대를 꾸린다고 비판했다.

국가는 폭력성을 비판받을 때면 언제나 외부의 적을 핑계로 대며 애국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그런 계략에 넘어가지 않고 애국심이란 국가가 만들어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국가는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부를 거두어갔고, 징집병으로 이루어진 군대를 훈련시켰을 뿐 아니라, 대중에게 정신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손아귀에 넣었다. 언론, 종교집단, 무엇보다 교육이 그런 수단들이다.”(「사회 개혁가에게 고함」) 애국심이란 국가가 만들어낸 비합리적이고 해로운 감정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국가의 사악한 면을 깨달았다고 해서 귀족이 자신의 특권을 포기하고 국가를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톨스토이가 국가에 맞서리라 마음을 먹은 것은 러시아 민중의 순박함과 평화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그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만일 러시아 민중이 귀족들처럼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그들이 조그만 땅을 나눠 경작할 수 있다면 평화가 찾아오리라고 그는 믿었다.

물론 완전한 평화라는 유토피아가 금방 찾아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무질서의 혼란보다 국가의 지배를 받는 질서가 더 위험하고 나쁘다고 봤다. “정부의 부재가 정말로 부정적인 의미에서 무정부 상태를, 이 단어가 내포하는 무질서한 측면을 뜻한다고 하더라도―사실은 결코 그렇지 않지만― 무정부적 혼란은 정부가 사람들에게 야기한 오늘날의 상황보다 나쁠 수 없다”(「애국심과 정부」)라는 말에서 우리는 톨스토이의 생각을 분명하게 읽을 수 있다. 이성적인 존재로 태어나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국가의 강제력 없이도 서로 자율적으로 토론하고 합의하며 사회를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시대를 훨씬 앞서 병역거부와 납세거부를 주장하기도 했다.

단순히 글에서 아나키스트들의 이론을 얘기하거나 그런 사람들과 사귀었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사람을 아나키스트라 부를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책의 곳곳에서 드러나듯이 톨스토이의 생각은 아나키스트들의 생각과 대부분 일치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톨스토이를 종교인이나 작가로 묘사할 뿐 아나키스트로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톨스토이는 왜 아나키스트와 사회주의를 비판했는가?


톨스토이는 자신을 아나키스트라 칭하지 않지만 아나키즘에 동의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는 “아나키스트들은 모든 점에서 옳다”(「아나키즘에 관하여」)라고 분명하게 선언했기 때문이다. 다만 톨스토이는 그 시대의 아나키스트들이 폭력을 즐겨 사용했기 때문에 자신을 아나키스트라 선언하는 것을 보류했을 뿐이다.

흔히 얘기되듯이 아나키즘의 특징을 테러와 폭력에서 찾는다면, 톨스토이는 결코 아나키스트라 불릴 수 없다. 톨스토이가 국가를 비판했던 여러 이유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폭력이기 때문이다. 설령 국가를 무너뜨리기 위한 방법이라 하더라도 폭력은 용납될 수 없었다. 평화적인 목적이 폭력적인 방법으로 실현될 수는 없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톨스토이에게는 특별히 세속의 이념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어떤 이념을 믿어야만 신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신념은 가장 기본적인 윤리, 즉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라는 원리를 지키는 것이다. 과학적인 이론의 증명보다는 가장 기본적인 윤리를 지키며 사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톨스토이는 그 시대의 사회주의를 인정할 수도 없었다. 톨스토이는 사회주의의 이상이 좌절될 수밖에 없다고 봤다. 그 시대의 유명한 아나키스트였던 프루동이나 크로포트킨처럼 톨스토이도 국가를 대신할 대안을 노동자보다 농민에서, 도시보다 농촌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도시 노동자들의 비참한 상황을 개선하는 방법이 농촌을 바로세우는 데 있다고 봤다. “경제학은, 농민들을 시골에서 몰아내는 원인에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고 어떻게 이런 원인을 제거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심을 쏟지도 않으며 오로지 기존의 공장과 작업장에서 노동자의 조건을 개선하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우리 시대의 노예제」)

사실 톨스토이는 도시의 산업이 농업보다 중요하거나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연의 이치를 따르며 자율적으로 일하고 스스로 필요한 것을 채우는 농민의 자급과 자치가 단조롭고 중앙의 통제를 따르는 노동자의 계획경제보다 좋은 삶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공장 일이 언제나 유해하고 단조로운 반면 농업은 건강하고 다양성을 제공하는 일이다. 농업은 자유롭고 농민들은 자기 마음대로 일하거나 쉴 수 있는 반면 공장 일은 공장이 노동자들의 소유라고 하더라도 언제나 기계 작동에 따라 일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공장 일은 부차적인 반면 농사일은 일차적이다. 농업이 없으면, 공장은 존재할 수 없다.”(「우리 시대의 노예제」)

따라서 톨스토이는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던 것과 다른 혁명의 목적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들이 깨달아야 하는 사실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혁명의 목적이 보통 선거권과 개선된 사회주의적 제도를 갖춘 새로운 억압적 정치체제의 건설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혁명의 목적은 전 국민, 특히 국민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1억 명의 농민들을 온갖 종류의 억압에서 해방시키는데 있다.…이미 그들에게 어울리며 그들의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그런 형태의 사회생활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든 일원의 평등과 협동노동 체계, 토지공동소유에 바탕한 공동체 조직이다.”(「세상의 끝」)

농민과 소규모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생각은 톨스토이가 프루동에게 이어받았고 간디에게 이어준 이상이고, 산업화의 욕망을 벗어난 진보의 이상이다.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소농, 전 세계의 소농들이야말로 인류의 미래를 열 주체라고 봤다.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보면 톨스토이의 이런 주장은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산업자본이나 금융자본의 힘을 깨닫지 못한 순진한 주장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자급하지 못하는 공동체는 외부의 힘에 휘둘릴 수밖에 없기에, 세계화의 시대에도 농민과 농촌은 여전히 중요한 존재이다. 더구나 농업의 노동은 사람이 서로 협력하며 자연스럽게 상호부조의 정신을 기르도록 하기 때문에 무한경쟁의 폭력성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해결책이다. 어쩌면 시대착오적으로 보이는 톨스토이의 주장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가장 절실하고 근본적인 처방일 수 있다.

그렇다면 톨스토이는 이런 자신의 이상을 어떻게 실현하려 했을까? 아나키스트들의 폭력적인 방식이나 사회주의자들의 새로운 국가건설 외에 어떤 실천이 가능할까?


좋은 삶은 가능한가?


폭력은 그 사회의 건강성을 측정하는 기준이다. 폭력의 발생은 그 사회가 건강하지 않다는 점을 뜻하고, 그런 폭력의 원인을 제거할 때 그 사회의 건강은 회복된다. 따라서 폭력의 발생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고, 다만 그런 폭력에 대한 처방이 폭력을 반복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비폭력의 처방은 깊이 뿌리내린 폭력의 원인을 분명하게 제거할 수 있을 만큼 근본적이어야 한다.

톨스토이는 국가에 대한 폭력적인 저항이나 선거를 통한 집권이라는 그 시대의 혁명론이 그런 근본적인 처방이 아니라고 봤다. 그러면서 톨스토이는 폭력을 사용하지도, 정부조직에 참여하지도 말자고 주장했다. “정부 폭력을 없애버리는 길은 단 한가지다. 사람들이 거기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우리 시대의 노예제」) 정부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공직을 맡지 않을 뿐 아니라 정부를 도울 세금도 내지 말아야 한다는 점도 포함했다. 그 누구도 협력하지 않는다면 국가는 자신이 뜻하는 바를 마음대로 이룰 수 없다.

그리고 톨스토이는 우리 자신의 욕망을 바꿔 소유의 욕망에서 벗어나 나누며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욕망의 변화는 국가의 힘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동력이다. 어떻게 그런 변화가 가능한가? 그것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계시하고, 부가 축복이 아니며 오히려 진정한 행복을 눈앞에서 감추고 시선을 빼앗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한 가지 방법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속세의 욕망의 구멍을 막는 것이다. 그래야만 집안 골고루 열을 보낼 수 있을 테다. 이 방법은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생산의 증가, 따라서 일반적인 부의 증가를 위해 노력하는 것―과는 정확히 반대된다.”(「사회주의 국가, 기독교도에 관하여」)

톨스토이는 이런 의식과 태도의 변화야 말로 “단 하나의 영구적인 혁명”, “도덕적인 혁명, ‘속사람’의 재생”(「아나키즘에 관하여」)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국가라 불리는 인위적인 연합체를 위해 삶과 자유를 희생하는 게 아니라 진정한 삶과 자유를 위해 국가라는 미신으로부터 그리고 그 고산―범죄라고 할 만한, 인간에 대한 복종―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국가와 권력기관에 대한 태도가 변화하면 한 세상이 끝나고 다른 세상이 시작될 것이다.”(「세상의 끝」)

이런 도덕적인 혁명이 자연스레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때로는 의도적인 개입도 필요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교육이다. 자유로운 교육이 확대되어 민중이 자신의 존재와 중요성에 눈을 뜨고 자신감을 회복하면 국가의 중요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톨스토이의 주장은 그가 믿던 기독교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종교적인 믿음을 강조하는 것이 반드시 특정 교파의 이론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근본적인 윤리에서 동일하고, 그것은 교육의 이성적인 힘을 보완하는 정서의 힘을 만들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동일한 이해를 통해 모든 사람을 결집시키는 이 같은 종교적 개념은 권력에 대한 복종이나 권력참여 행위와 양립할 수 없으며, 진정으로 권력을 소멸시킬 수 있는 무기”이자 “자기 자신과 사람들 사이에 더 굳건하고 훌륭한 사랑의 관계를 확립하는 것”이고 “스스로 훌륭한 삶을 사는 것”(「사회 개혁가에게 고함」)이다.


톨스토이의 이런 가르침에 우리는 뭐라고 답을 해야 할까? 우리는 당신과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고, 그래서 그런 가르침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얘기해야 할까? 그건 아니다. 오히려 바보처럼 사는 게 불가능하다고 영악하게 얘기하지 말고 내가 바로 바보라고 당당히 선언하며 다른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바보처럼 살았던 이반이 있었기에 모든 걸 잃어버린 두 형도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나 사회구조를 핑계 삼아 알리바이를 마련하지 말고 지금 당장 내 삶부터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그것이 결국엔 이 사회를 구하고 다른 생명을 구하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리 호이나키는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에서 이 시대를 살아있게 하는 사람들을 ‘거룩한 바보’라고 부르며 “‘거룩한 바보’들이 아직 우리들 사이에 존재하고, 그들의 연기 때문에 우리가 세계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지금 우리 모두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고 얘기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바보 이반의 소박한 진리를 따를 때 우리는 전쟁과 물신의 시대를 넘어 공생공락(共生共樂)의 시대를 누릴 것이다




No
Subject
Name
Date
Hit
5212    함께 모여 아나키 티셔츠 만들기 워크샵을 합니다 [4] 돕헤드 2008/09/25  1770
5211    [메이데이]엠마 골드만, 누굴까요? 보스코프스키 2008/09/25  1957
5210    [메이데이/도서]상상력에 권력을? 보스코프스키 2008/09/25  1082
5209    [오마이뉴스/Daum도서]정치성이 뜨겁다는 건 그만큼 인간애가 뜨겁다는 얘기 보스코프스키 2008/09/25  1151
5208    [새온]이명박의 거짓 과 착각 보스코프스키 2008/09/24  1559
5207    [붉은 수염]스쾃하라! 저항하라! 창작하라! 보스코프스키 2008/09/24  1399
5206    [새사연]정말 악법도 법인가 [1] 보스코프스키 2008/09/22  1131
5205    제가 만들어보는 아나키즘에 대한 전단 [4] 김승현 2008/09/22  1142
5204    10월 1일 국군의날 군사퍼레이드 반대 - 대안퍼레이드 함께 만들자! [3] 돕헤드 2008/09/16  1298
5203    중앙대학생들: 아나키즘 동아리를 조직합시다 [1] 김승현 2008/09/12  1329
5202    [인권오름][하승우의 인권이야기] 편견과 망각의 정치 보스코프스키 2008/09/10  898
5201    [프레시안]뉴라이트는 아마노 미치오의 뒤를 따르는가? 보스코프스키 2008/09/10  1133
5200    [교보문고 북로그/도서]아래로부터 바라본 혁명사 - 히드라 보스코프스키 2008/09/10  1083
5199    [ICC]ICC가 보는 크론슈타트와 아나키즘, 아나키스트... 보스코프스키 2008/09/09  1717
5198    [Daum도서/뉴시스]아 대한민국 저들의 공화국-지승호 인터뷰 보스코프스키 2008/09/08  1171
5197    아편 링크 주소 바꿔 주세요 [3] 최원하 2008/09/08  1148
5196    [사회주의 정치신문 해방][서평] 빼앗긴 자들 보스코프스키 2008/09/07  1074
5195    [시계소리/도끼]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까(뜨인돌) 보스코프스키 2008/09/07  1069
5194     "한가위 전에 정든 일터로" -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1차 행동의 날 돕헤드 2008/09/06  1479
5193    SPACEHIJACKERS Anida 2008/08/27  1655
5192    아닐 것 같아 ^^ 2008/08/27  1110
5191    시티 에필로그 "아현별곡" _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문화우리 2008/08/26  979
5190    사회과학아카데미 2008년 2학기 수강신청 해요~~ 사회과학아카데미 2008/08/23  776
5189    2008 평화캠프에 같이 가요 돕헤드 2008/08/21  1080
5188    보고 싶어.. [2] 김태형 2008/08/16  1074
5187    [오마이뉴스]'아! 김형율' 추모 원폭영상제 열린다 보스코프스키 2008/08/12  1287
5186    국민 모금 [1] 송림 2008/08/12  997
5185    고용허가제 4년 규탄! 야만적 이주노동자 단속추방 중단, 노동권 보장 촉구 결의대회 돕헤드 2008/08/11  1076
5184    [하승우]비민주적인, 너무나 비민주적인 사법권력(경인일보) 보스코프스키 2008/08/10  966
5183    [하승우]촛불, 다시 민주주의를 밝히다(참여사회) 보스코프스키 2008/08/10  917
5182    [하승우]누가 역사의 발목을 잡는가?(경인일보) 보스코프스키 2008/08/10  950
5181    [하승우]휴식, 일상의 변화시키는 힘(민들레) 보스코프스키 2008/08/10  1123
5180    [하승우]국가 없는 삶은 어떨까(실천문학) 보스코프스키 2008/08/10  1356
5179    [하승우]왜 다시 아나키즘인가?(책세상) 보스코프스키 2008/08/09  1098
5178    자전거 행진 [2] 김승현 2008/08/09  1307
5177    No! G8 Actio 투쟁의 기록 돕헤드 2008/08/08  1070
5176    3회 이주노동자 영화제 오늘부터 서울 조계사에서 열립니다 돕헤드 2008/08/08  1238
5175    주말엔 기륭전자에서!!! 박래군(퍼옴) 2008/08/08  1063
   우직한 바보 국가를 거스르다-하승우 [4] 달팽이 2008/08/08  1277
5173    0 a 2008/08/06  1169
Prev [1][2][3][4][5][6][7][8][9][10] 11 [12][13][14][15]..[141] Next
Copyright 1999-2017 Zeroboard / skin by lifes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