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클랜 게시판/링크/물물교환/파일공유/아나키즘 읽기자료
잡민잡론잡설/안티 다국적기업/관리자방/English

아나키즘저널발행준비위원회/투쟁과집/투쟁과밥/군대반대운동
아나키FAQ번역프로젝트/재활센터/여고생해방전선/전쟁저항자들

View Article     
Name
  보스코프스키 2008-08-10 18:08:00, Hit : 760
Subject   [하승우]촛불, 다시 민주주의를 밝히다(참여사회)
촛불, 다시 민주주의를 밝히다

: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위해

하승우(지행네트워크 연구활동가)



대의민주주의의 일그러진 자화상

  

몇 달 동안 거리에서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 외치는 경쾌한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다. 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언제나 그 노랫가락은 명박산성에 가로막히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재협상을 외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폭력과 협박을 일삼는 정부의 모습은 추하고 오만하기 그지없다.

우리의 현실이 서글픈 것은 이런 오만함이 아주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아무리 “이명박 OUT”, “이명박은 물러가라”를 외쳐도 대표자를 소환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은 대통령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남겨놓지 않았다. 더구나 대통령 탄핵이라는 수단까지 국회 다수당을 차지한 저들의 손에 있으니 그 오만함은 어떤 점에서는 자신감을 뜻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민중의 힘으로 그런 오만한 권력을 심판했던 자랑스러운 기억을 가지고 있다. 4․19는 오만한 이승만을 몰아냈고, 부마항쟁을 비롯한 70년대의 저항은 철옹성처럼 보이던 박정희의 유신권력을 무너뜨렸으며, 87년 6월항쟁은 권력을 서로 나눠 먹으려던 군부정치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런 변화의 흐름을 타고 시민들의 노래는 애국가를 넘어 민주공화국까지 왔지만 시민의 승리를 낙관하기는 어렵다.

촛불의 미래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논의들이 있지만 핵심은 우리가 어떤 민주주의를 ‘지향’할 것인가이다. 이와 관련해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런 논의들이 민주주의의 본질을 건드리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런 의문이 드는 건 민주주의에 관한 논의가 ‘대의’라는 틀에 여전히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의민주주의에 문제를 제기하는 수많은 논의들이 있었다. 참여민주주의, 토의민주주의, 결사체민주주의, 전자민주주의 등 여러 접두어를 단 민주주의가 등장한 것은 ‘대표의 실패’와 ‘공공성의 붕괴’ 때문이었다. 선거로 선출된 대표가 권력을 남용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정책을 밀어붙일 때 대의민주주의는 그것을 통제할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규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다는 대의민주주의는 오히려 대표와 유권자 사이의 거리를 계속 넓혀 왔다. 일단 당선되고 나면 대표는 유권자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고,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이용해서 유권자들을 자신의 후견인(client)으로 만들 수 있다. 유권자가 자신의 요구사항을 말해도 대표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유권자는 자신이 선거에서 당선자를 지지했음을 증명할 방법도 없다), 다음 선거를 기다리는 것 외에 유권자가 취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는 구조적으로 유권자를 소외시킨다.

그리고 대의민주주의는 지금처럼 강부자(강남 땅부자),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인맥)이라는 특정한 계급과 인맥이 권력을 사유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애초에 대의민주주의를 구상했던 사람들은 권력이 독점되는 현상을 두려워해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구상했지만 그 원리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사회세력의 힘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면 이런 원리가 그나마 작동을 하지만,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권력이 독점되어 왔다.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 권력을 독점해 온 세력들이 정치, 경제, 언론 등 사회 곳곳을 장악하고 ‘그들만의 국가’를 만들어왔다. 비단 국가만이 아니다. 서울시의회나 부산시의회 등의 비리에서도 증명되듯 지방과 지역사회에서도 독점된 권력구조가 존재한다. 이런 기득권층의 권력독점구조를 깨지 않는 이상 견제와 균형은 불가능하고 공공성은 권력을 쥔 자의 이해관계에 좌우된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표가 국가와 정치 공동체를 운영하는 최고 권력을 갖는 것이 옳다고 외치는 대의민주주의자들의 주장은 이런 문제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선거라는 민주적인 방식으로 선출된 기득권자들이 자신들 마음대로 나라를 뜯어고칠 때 평범한 사람들은 그것에 어떻게 저항해야 할까? 설령 국민소환제도나 국민투표제도가 도입된다 해도 그것이 대표들의 행동을 실제로 통제할 수 있을까?

더구나 대의민주주의는 대표가 중요한 결정을 독점하고 평범한 시민들이 정치주체로 성장하는 것을 가로막아 결과적으로 정치의 사라짐을 불러온다. 민주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좌절과 실패를 경험해 온 시민들은 정치에 대해 강한 불신감을 가지며 (이해관계를 위한 참여를 제외한) 공적인 참여에 대한 관심을 잃어가고 있다. 이런 현상이야말로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사회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것을 막고 있다. 이렇게 현실성이 아니라 지향의 관점에서 보면 대의민주주의는 우리의 좌표일 수 없다.



진부한 논의와 발랄한 현실



정당정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런 대의민주주의의 문제점을 정당이 보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정당이 민주주의의 수립과 정착 과정에서 대중의 정치적인 압력을 매개하는 역할을 맡기 때문에 정치적인 대표체계가 확립되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한국의 정당이 그런 역할을 맡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여러 보수적인 정당들은 기득권의 권력독점구조를 무너뜨리기는커녕 그것을 강화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처럼 노동하는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겠노라 주장하는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하면 민주주의가 이루어질까? 나는 그렇게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정당들 역시 자기 내부의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일상의 정치를 배제하고 정치를 독점하려 하기 때문이다. 진보적인 정당들도 대표의 실패를 해결할 방안을 가지고 있지 않고 공적인 의제를 독점하려 하지 그것을 소통하며 확산하는 논의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촛불과 정당이 조화롭게 만날 수 없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사실 정당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논리 뒤에는 대중정치에 대한 불신이 짙게 깔려 있다. 대중정치가 파시즘으로 이어진다고 믿는 그들은 정당을 통한 엘리트 경쟁이 민주주의를 정착시킬 수 있다고 믿지 대중이 정치를 주도해야 한다고 믿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번 촛불저항은 정당정치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관람’을 할지언정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는 속성을 이미 가지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지나치는 정당정치의 문제점은 그것이 ‘발전과 선진국’이라는 자본주의의 욕망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점이다. 자본주의가 물질적인 욕망을 자극하고 무자비하게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점은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정당정치가 발달된 서유럽 국가들 역시 그런 파괴와 무관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나라들의 계급타협은 나라 밖의 식민지 착취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정당의 민주주의는 자신의 계급이나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에게 지지를 보내는 교활하고 합리적인 유권자를 만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합리적인 개인이 느끼는 관계의 허전함은 민족주의나 종교라는 복음이 채워줬다. 제국주의나 제국의 건설은 그런 수순을 밟으며 진행되었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 뒤를 따라야 할 이유는 뭔가?

대의민주주의나 정당정치를 전제한 민주주의 논의는 미래의 정치를 보장할 수 없다. 만일 전 세계의 민주주의를, 다양한 생명들의 민주주의를 염두에 둔다면 그것은 지향으로의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 정당이나 제도정치가 앞으로 필요하지 않다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일 수 없다는 얘기이다.

아직까지 선거조차 공정하게 진행되지 못하는 한국이기에 정당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믿음을 가지는 걸 문제 삼을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믿음은 필요한 법이니까. 하지만 그런 믿음이 다른 정치적 가능성을 봉쇄하는 것으로 확대된다면 그것은 단지 믿음이 아니라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다.

사실 시민들의 저항은 그런 논의의 진부함을 조롱하고 비웃으며 확산되었다. 행진을 가로막는 그 지긋지긋한 경찰버스에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 의거해 전 민중의 힘으로 ‘견인’할 수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라는 불법주차딱지가 붙는다. 폭력을 행사하는 무시무시한 경찰이 마이크를 잡거나 버스에 오르면 “개인기”, “노래”, “춤춰라”며 그들을 머쓱하게 만든다. 이런 촛불의 ‘유머’는 저항의 아름다움과 발랄함을 북돋운다.

이렇게 발랄하고 즐겁기 때문에 사람들은 참여한다. 민주주의를 지속시키는 동력인 참여는 피곤하고 비용이 들며 때로는 위험도 무릅써야 한다. 그렇기에 언제나 참여는 당위였고 현실적인 가능성을 가지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그 피곤함과 비용과 위험을 무릅쓰고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기 위해 거리로 나오고 있다.

  

민주주의를 찾지 말고 민주적으로 살기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항상 어렵고 힘든 것이었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민주주의를 배우기만 했을 뿐 민주주의를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잘 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교육이 전혀 민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지 때 마련된 권위주의적인 교육지침과 방식이 아직도 남아 있고,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시장논리가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길들이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학교는 권위를 학습하고 수동성을 내면화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언제나 먼 가능성으로 존재했다.

하지만 촛불의 시간은 다시 희망을 꿈꿀 수 있게 하는 시간이었다. 단지 많은 수의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서가 아니다. 다양한 목소리들이 자신의 요구를 분명히 말할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고, 미래의 시민인 청소년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청소년들을 동료 시민으로 인정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옳았다. 그리고 지금은 하나의 요구에서 시작된 목소리가 다양한 갈래로 뻗쳐 나가고 있기 때문에 정당하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이다.

분명히 민주주의는 참여로 생명력을 얻는다. 보통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 정도로 참여를 해석하는데 그건 잘못이다. 선거민주주의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서 참여민주주의는 아주 높은 이상으로 보이지만, 사실 참여민주주의는 열려진 제도화의 길을 따라 걷는 걸음이다. 대의민주주의가 투표로 참여를 제한한다면, 참여민주주의는 참여를 통해 시민의 덕성을 기르는 것을 강조했다. 일종의 ‘시민-되기’를 강조한 것이다. 대의민주주의는 참여를 통한 목적 달성을 강조한다면, 참여민주주의는 참여를 통한 시민성 기르기를 강조한다.

그런데 참여는 또 한 가지 의미를 더 가지고 있다. 그건 개인의 성장을 통한 자치(自治)이다.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을 스스로 결정하려는 것은 나의 현재 마음가짐만으로는 어렵다. 자본주의 논리에 길들여져 왔기 때문에 더 넓게 보고 더 많이 고민하며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며 연대해야 한다. 직접행동 또는 직접민주주의가 강조하는 참여는 그런 것이다.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 다르지 않고, ‘언제라도’ 내가 공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성장의 과정이 있어야만 민주주의가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지금의 촛불저항은 목적달성, 시민되기, 자치라는 참여의 세 가지 층위를 이루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 촛불집회가 앞으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새롭게 구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믿는다. 이제 서구의 대의민주주의를 우리 현실에 단순 대입할 필요가 없고, 우리의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과제만 남았다.

그런 민주주의 구성에서 중요한 과제는 촛불에서 드러난 민주적인 힘을 일상 속에 뿌리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다. 일상으로 돌아간 청소년들은 촛불저항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선생의 무시를 받고 폭행까지 당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민주주의는 가능성을 가질 수 없다. 두발자유화나 체벌, 입시제도, 청소년노동인권 등과 관련해 청소년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조중동을 절독하고 스스로 진실을 찾아나서는 청소년, 미래의 비정규직이기를 거부하는 청소년이 있어야 정치의 미래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나는 진보적이라 자처하는 정당 하나를 만드는 것보다 청소년들이 스스로 자신의 교육을 구성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청소년들‘을 위하는’ 어른들의 장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자율적인 정치공간의 구성은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가장 필요한 과제이다.

그리고 청소년과 함께 이번 촛불저항에서 드러난 여성정치의 가능성도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국가 차원의 정치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지만 7, 80년대를 거치면서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려온 여성들의 정치력이 이제 국가로 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여성들의 정치참여, 특히 주부들의 정치참여를 바라보는 남성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냉랭하다. 여성들이 ‘가정’이라는 가부장적인 틀로 다시 갇히지 않도록 다양한 정치적 노력이 필요하다.

정당정치를 중심으로 한 대의민주주의가 우리의 대안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의 정치가 철저히 성인 남성을 중심으로 작동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을 길들임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성인정치의 시각, 여성을 가정의 영역에 묶어두려는 남성정치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변화의 잠재력은 금방 기성체제로 흡수될 것이다. 따라서 이미 기성체제로 포섭된 성인 남성들의 정치를 다시 급진적으로 만들 새로운 정치주체의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이제 쇠고기라는 한 가지 이슈는 대운하, 민영화, 공영방송 등으로 확장되고 있고 운동방향 역시 소비자운동, 시민인권선언, 촛불당 등 다양한 흐름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냥 확장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은 학습을 하고 있다. 그 학습이 어디까지 진행될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단순히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그 이상으로,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무엇인지에 관한 것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세상이 삶과 분리되지 않은 민주주의, 자치와 자율의 삶을 실현해야 한다고 믿는다. 지방자치, 풀뿌리민주주의가 중요한 것은 정치적인 삶과 일상생활의 매개고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촛불은 진화하고 있다.




No
Subject
Name
Date
Hit
5212    함께 모여 아나키 티셔츠 만들기 워크샵을 합니다 [4] 돕헤드 2008/09/25  1440
5211    [메이데이]엠마 골드만, 누굴까요? 보스코프스키 2008/09/25  1623
5210    [메이데이/도서]상상력에 권력을? 보스코프스키 2008/09/25  906
5209    [오마이뉴스/Daum도서]정치성이 뜨겁다는 건 그만큼 인간애가 뜨겁다는 얘기 보스코프스키 2008/09/25  956
5208    [새온]이명박의 거짓 과 착각 보스코프스키 2008/09/24  1312
5207    [붉은 수염]스쾃하라! 저항하라! 창작하라! 보스코프스키 2008/09/24  1146
5206    [새사연]정말 악법도 법인가 [1] 보스코프스키 2008/09/22  935
5205    제가 만들어보는 아나키즘에 대한 전단 [4] 김승현 2008/09/22  949
5204    10월 1일 국군의날 군사퍼레이드 반대 - 대안퍼레이드 함께 만들자! [3] 돕헤드 2008/09/16  1009
5203    중앙대학생들: 아나키즘 동아리를 조직합시다 [1] 김승현 2008/09/12  1090
5202    [인권오름][하승우의 인권이야기] 편견과 망각의 정치 보스코프스키 2008/09/10  735
5201    [프레시안]뉴라이트는 아마노 미치오의 뒤를 따르는가? 보스코프스키 2008/09/10  950
5200    [교보문고 북로그/도서]아래로부터 바라본 혁명사 - 히드라 보스코프스키 2008/09/10  849
5199    [ICC]ICC가 보는 크론슈타트와 아나키즘, 아나키스트... 보스코프스키 2008/09/09  1437
5198    [Daum도서/뉴시스]아 대한민국 저들의 공화국-지승호 인터뷰 보스코프스키 2008/09/08  968
5197    아편 링크 주소 바꿔 주세요 [3] 최원하 2008/09/08  903
5196    [사회주의 정치신문 해방][서평] 빼앗긴 자들 보스코프스키 2008/09/07  865
5195    [시계소리/도끼]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까(뜨인돌) 보스코프스키 2008/09/07  821
5194     "한가위 전에 정든 일터로" -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1차 행동의 날 돕헤드 2008/09/06  1087
5193    SPACEHIJACKERS Anida 2008/08/27  1388
5192    아닐 것 같아 ^^ 2008/08/27  916
5191    시티 에필로그 "아현별곡" _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문화우리 2008/08/26  807
5190    사회과학아카데미 2008년 2학기 수강신청 해요~~ 사회과학아카데미 2008/08/23  637
5189    2008 평화캠프에 같이 가요 돕헤드 2008/08/21  856
5188    보고 싶어.. [2] 김태형 2008/08/16  884
5187    [오마이뉴스]'아! 김형율' 추모 원폭영상제 열린다 보스코프스키 2008/08/12  1050
5186    국민 모금 [1] 송림 2008/08/12  811
5185    고용허가제 4년 규탄! 야만적 이주노동자 단속추방 중단, 노동권 보장 촉구 결의대회 돕헤드 2008/08/11  898
5184    [하승우]비민주적인, 너무나 비민주적인 사법권력(경인일보) 보스코프스키 2008/08/10  794
   [하승우]촛불, 다시 민주주의를 밝히다(참여사회) 보스코프스키 2008/08/10  760
5182    [하승우]누가 역사의 발목을 잡는가?(경인일보) 보스코프스키 2008/08/10  788
5181    [하승우]휴식, 일상의 변화시키는 힘(민들레) 보스코프스키 2008/08/10  925
5180    [하승우]국가 없는 삶은 어떨까(실천문학) 보스코프스키 2008/08/10  1122
5179    [하승우]왜 다시 아나키즘인가?(책세상) 보스코프스키 2008/08/09  903
5178    자전거 행진 [2] 김승현 2008/08/09  1067
5177    No! G8 Actio 투쟁의 기록 돕헤드 2008/08/08  884
5176    3회 이주노동자 영화제 오늘부터 서울 조계사에서 열립니다 돕헤드 2008/08/08  973
5175    주말엔 기륭전자에서!!! 박래군(퍼옴) 2008/08/08  891
5174    우직한 바보 국가를 거스르다-하승우 [4] 달팽이 2008/08/08  1052
5173    0 a 2008/08/06  853
Prev [1][2][3][4][5][6][7][8][9][10] 11 [12][13][14][15]..[141] Next
Copyright 1999-2017 Zeroboard / skin by lifes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