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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짱돌뢸래 2006-05-28 17:30:46, Hit : 1148
Homepage   http://under-clocking.info/moni
Subject   우발적 유물론에 관한 글
우발적 유물론에 대한 개괄적 설명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항상 고민중인데.. 우발적 유물론과 자율, 다중.. 아나키.. 접점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잘 잡히지 않는..


진명석(연구공간 클리나멘)



1. 유쾌한 여행



'모든 것에 대한 물질(성), 존재(성)의 우위'가 유물론의 핵심 테제이다. 철학의 역사는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의 역사라는 유명한 '맑스주의적' 정식에서 이 양자를 가르는 칼날은 늘 물질의 객관적 존재의 승인과 의식에 대한 물질의 우위성 여부였다. 레닌이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지칠 줄 모르고 반복해서 주장하는 유물론의 근본전제는 "외적 세계, 즉 우리 의식 밖의, 그리고 독립적인 사물의 현존에 대한 승인"과 "물질이 제1차적인 것"의 승인 여부이다. 물질/의식, 물질/다른 모든 것 사이에 만리장성은 이런 식으로 맑스주의 내부에서 선포되었다. 선포된 이후는? 그것은 흘러 넘나드는 바람조차 호흡을 멈추고 주춤거리게 하는 성역이자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었다. 물질과 의식 사이, 물질과 다른 모든 것 사이에 심연의 장벽이 견고하게 들어선 것이다. 이 거대한 심연과 장벽에 구멍을 내어 소통하려는 모든 시도는 "절충주의라는 거지들의 꿀꿀이 죽"으로 매도되거나 침묵을 강요당했다. 이렇게 맑스주의에는 공백이 형성되었다. 적어도 맑스주의의 위기가 내적으로 흘러넘쳐 억압된 것들이 되돌아와 그 공백에 질문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공백 메우기의 다양한 시도들 중에 가히 '충격적인' 것이 알튀세르의 우발적 유물론이다. 그는 철학사를 유물론/관념론의 대립에서 우발적 유물론/나머지 모두의 대립으로 바꾸어놓는다. 그는 '진술되자마자 즉각 반박되고 억압된' 우발적 유물론을 맑스, 엥겔스, 레닌의 것이라고 간주되어온 모든 '검사필의 유물론', '필연성과 목적론의 유물론'에 대립시킨다. "철학사 속에 거의 완전히 진가를 인정받지 못한 유물론적 전통 하나가 실존한다. 비의, 편의의, 마주침의, 응고의 "유물론" 말이다. …하나의 전혀 유다른 사고로서 이러저러한 모든 검사필의 유물론들에 대립하는 마주침의 유물론, 따라서 우발성과 우연성의 유물론이라고 말이다. 이 검사필의 유물론에는 보통 맑스, 엥겔스, 레닌의 것으로 간주되는 저 유물론이 포함되거니와, 그것은 합리주의적 전통의 모든 유물론과 마찬가지로 필연성과 목적론의 유물론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 관념론의 변형되고 위장된 형태이다." 관념론의 탈을 쓴 유물론(휴머니즘적 주체이론, 목적론, 역사주의)에 대한 비판과, 맑스주의 이론의 혁신과 '공백 메우기'는 알튀세르의 일관된 작업이다. 그러나 1980년의 끔찍한 '사건'이후 "공적으로 말을 되찾"기 위해 집필한 ?마주침의 유물론이라는 은밀한 흐름에서 개진된 우발적 마주침의 유물론은 초기의 이론주의적 입장과 선명하게 대별되는 알튀세르의 새로운 시도이자 이론적 개입이다.
우발적 유물론은 알튀세르의 다음과 같은 진술, "우발적 유물론은 우발성까지 포함한 모든 것에 대해 물질성의 우위를 주장"한다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이른바 유물론의 '근본 전제'의 폐기가 아니라 확장, 심화이자 '공백 메우기'이다. 상부구조의 물질성, 이데올로기의 물질성 등이 초기 알튀세르의 주요한 작업이었다면, 후기 알튀세르는 우발성의 물질성을 추가해서 주장하는 셈이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물질의 우위성'이 아니라 '물질성의 우위성'이라는 테제이다. 물질과 물질성 사이의 거리는 의도적으로 취해진 거리이자, 알튀세르식으로 물질/의식의 만리장성을 넘어(passing- beyond), 뚫는(passing-through) 소통의 방식이다.
알튀세르는 '기차여행객'의 메타포를 이용하여 유쾌하게 유물론과 관념론(관념론의 위장되고 변형된 형태의 유물론까지 포함해서)을 대비시킨다. 관념론자는 "기차를 탈 때 출발역과 도착역, 즉 여정의 출발점과 종점을 처음부터 알고 있는 사람"인 반면 유물론자는 "그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것, 그리고 어디론가 가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언제나 그는 미국 서부영화에서 그런 것처럼 달리는 기차를 탄다. 자기가 어디서 와서(기원), 어디로 가는지(목적) 모르면서." 관념론자는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황혼녘에 날개짓을 시작할 때 여행을 떠나거나, 길은 사방으로 뻗어 유혹하나 한 곳에 여장을 풀고 견고한 집을 지어 정착한다. 그러나 유물론자는 어디서 와서(기원) 어디로 가는지(목적)도 모르는 기차를 타고서 유쾌하게 여행한다. 그는 여행 중에 우연히 마주치는 모든 것들과 유쾌하게 공명하며 소통하고, 끌리는 곳에 잠시 텐트를 치고 머물다 곧 떠난다. 그러므로 기원, 목적, 초월적 근거, 제1원인, 맹목적 필연성 등을 거부하며, 경쾌하게 세계와 마주치는 자가 '유쾌한' 유물론자이다.
질식할 듯한 맹목적 필연성의 구조, 혹은 자본주의적 법칙을 넘고, 뚫어, 숨을 쉬고 싶은 욕망(우발적 마주침이 빚어내는 새로운 결합과 연대에 대한 욕망)이 이 글을 쓰는 동력이다. 이 글은 맑스의 저작들(특히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1841와 {자본론}?1867)에서 우발적 유물론이 뚜렷하게, 때론 은밀하게 작동하는 것을 검토할 것이다.



2. 우발적 마주침: 클리나멘의 돌발



맑스는 자신의 박사학위논문인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에서 에피쿠로스를 "그리스적 계몽의 가장 위대한 대표자"로 평가하고, "세계를 정복하려고 하는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심장 안에서 단 한 방울의 피라도 고동치는 한, 철학은 에피쿠로스와 함께 자신의 반대자들에게 계속해서…외칠 것"이라고 하면서 곧바로 프로메테우스와 연관시킨다. 맑스에게 에피쿠로스는 철학에서의 프로메테우스인 셈이다. 청년 맑스가 이성의 이름으로 음탕한 '쾌락주의'로 낙인찍힌 에피쿠로스에 어떤 이유로 그토록 매료되었을까? 어떻게 유물론자가 '쾌락주의자'에게서 저항과 자유의 이미지를 읽었을까? 클리나멘(clinamen) 곧 무한히 작은 편위(Deklination)가 맑스에게 아리아드네(Ariadne)의 실이었다.
맑스의 말을 들어보자. "에피쿠로스는 허공에서 이뤄지는 원자들의 삼중의 운동을 가정했다. 첫 번째는 직선으로 낙하하는 운동이고, 두 번째는 원자가 직선에서 벗어나면서 생겨나는 운동이며, 세 번째는 많은 원자들의 충돌을 통해 정립되는 운동이다. 첫 번째와 세 번째 운동에 대해서는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모두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직선으로부터의 원자의 편위가 이 두 사람의 차이인 셈이다." 이 세계는 허공과 원자로 이뤄져 있다는 점과 원자들의 충돌에 의한 세계의 구성에 관한 데모크리토스의 중심이론에 에피쿠로스는 클리나멘을 추가함으로써 충돌의 우발적 원인, 더 나아가 세계의 우발적 기원과 조성을 설명한다. 그러므로 "직선으로부터의 원자들의 편위는 에피쿠로스 철학에 토대하고 있는 가장 심오하고 핵심적인 결론"이며 "이러한 원자의 편위가 없다면, 어떤 만남이나 충돌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직선으로 떨어지는, 평행으로 낙하하는 원자들의 우발적 마주침은 이 평행을 미세하게 교란하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나는지 모르는 클리나멘의 편위에 의한 우발적 충돌이다. 이 충돌이전에 세계는 무(허공)와 무질서(무한한 원자들의 집합) 속에 '추상적으로' 혹은 '유령적으로' 존재한다. 원자들의 편위와 마주침을 통해 '추상적이고 유령적인' 원자는 밀도와 실존을 갖는 현실성을 부여받고, 세계는 '원자들의 복합체'로 구성된다.
알튀세르는 원자들의 마주침 이후에는 요소들(원자들)에 대한 구조의 우위가 성립한다고 보았다. 원자들(요소들)의 마주침이 '응고하도록' 즉 '(새로운)형태(들)를 취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형태(구조)'에 대한 '아무것도 아닌 것(원자의 충돌)'의 우위, 즉 "형식주의에 대한 우발적 유물론의 우위가 성립"한다. 원자들이 구체적인 신체, 실존의 복합체를 형성하면 법칙과 필연성이 관철된다. 그러므로 필연성과 법칙은 '우연적인 것들의 마주침의 필연적 생성'이자 그 저류에는 원자들의 우발적 마주침이라는 '기원적' 우발성이 억압되어 '은밀하게' 흐르고 있다. 이른바 '철의' 법칙과 필연성의 세계는 이와 같은 우발적 토대에 기초하면서 동시에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마주침이 빚어내는 이 우발적 복합체의 세계에는 그러므로 세계를 근거 짓는 제1원리, 초월적 근거, 기원, 목적은 없다. 우발적 클리나멘의 돌발과 편위에 의한 충돌만이 이 세계의 기원이 된다. 점의 부정으로서 직선, 직선의 부정으로서 편위가 맑스가 보는 '부정의 부정'이다. 따라서 원자의 이러한 '부정의 부정'은 헤겔식의 '긍정과 승인'의 폐쇄적인 '원환 체계'가 아니라, 끊임없는 부정과 이탈의 '편위와 변이'가 된다.(이 지점에서 맑스는 이미 헤겔의 변증법을 넘어선 근본적인 비판의 지점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부정과 이탈의 편위 속에서 맑스는 "원자의 반항과 고집" 그리고 자유의 가능성을 보았다.
이러한 우발적 마주침의 유물론은 '결과의 철학'이자 "인과성이 표면의 우발적 성질에 종속되는" '표면의 철학'이다. 결과와 표면의 철학은 어떤 초월적 목적과 기원을 거부하는 '내재성의 철학'이다. 서구의 전통적인 인과론은 결과에서 원인을 소급하는 하나의 선을 따라 원인의 원인으로 무한히 소급하여 궁극적 원인인 신에 도달한다. 원인(신)에 의해 규정되는 결과(존재). 이를 내재성의 철학자인 스피노자는 "무지로의 환원" 혹은 "무지의 피난처에 도피"라고 불렀다. 내재성의 인과론은 원인이 결과를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가 원인을 한정한다. 이는 원인의 선적 단일성이 아니라 다수성에 대한 승인이자, 더 나아가 진리의 복수성에 대한 승인이다. 마찬가지로 우발적이기 때문에 원인이 없는 결과이자, 우발적 마주침이 빚어내는 우연한 원자들의 복합체와 세계의 생성에 대한 긍정이다.
또한 우발적 유물론은 '사건의 철학'이다. 에피쿠로스에게 시간은 "사건의 사건으로, 즉 조성체로 그것들의 사건들로 간주"됐다. 그리고 곧바로 "에피쿠로스 철학의 실체는 어떤 전제들도 갖지 않고, 자의적이며 우발적이라는 사실과 연관"된다고 맑스는 쓰고 있다. 여기에는 시간 곧 역사는 사건의 사건이자 조성체(결합체, 복합체)이며, 역사는 우발적 사건의 생성과 연속이라는 '사건의 철학'의 핵심 테제가 언표되어 있다. 알튀세르는 이러한 우발적 유물론의 사건적 논리를 '우발적 미래'에 열려있는 '생성의 역사'로 파악한다. "독일어에서는 역사(Geschichte)라는 다른 용어를 사용합니다. 이것은 기성의?완료된 역사가 아니라 현재 속의 역사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물론 이미 완료된 과거에 의해 상당부분 결정되어 있지만, 그러나 부분적으로만 결정되어 있습니다. 현존하는, 살아있는 역사는 불확실하고 예견할 수 없는 미래, 아직 완료되지 않았고 따라서 우발적인 미래를 향해 열려있기 때문입니다." 우발적 미래는 어떠한 목적과 유토피아적 투사와의 무관계성과 '표면의 미결정성'을 함축한다. 결과는 표면의 내재성의 결과일 뿐 깊이(본질)와 이쪽 너머-저쪽을 상정하지 않을 뿐더러 초월적 원인으로의 소급과 미래에 대한 목적론적 필연성과도 관계없다.



3. 유령은 어떻게 사는가



두 가지 요소의 우발적 마주침이 {자본론}의 핵심에서 작동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탄생 배경이다. '돈 많은 자본가'와 '노동력을 제외한 모든 것을 박탈당한 자유로운 노동자' 혹은 "탈영토화된 노동자와 탈코드화된 화폐"의 우발적 마주침의 갑작스런 응고가 자본주의의 탄생 배경인 것이다. 두 가지 상이한 두 흐름들의 우발적 충돌 이후에 전개되는 자본주의적 법칙과 '공리계'에 대한 분석은 이 글의 진행과는 상당히 다른 분석틀과 지면이 요구되기 때문에 다음 기회로 미루고, 여기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탄생 비밀을 고스란히 간직한 '가치형태'에 관한 이론을 검토하겠다.
맑스는 {그룬트리세}에서 정치경제학의 방법은 "추상에서 구체로의 상승"이라고 서술한 후, "추상적 사유의 길을 따르는 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의 상승이 실재 역사과정에 조응할 것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고 쓰고 있다. 맑스의 이 진술은 추상적 과정과 역사적 과정의 마주침의 응고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뜻밖의' 예기치 않은 우발적 응고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일단 마주침의 충돌이 일어나면 그때부터 앞에서 살펴봤듯이, '요소에 대한 구조의', 흐름에 대한 응고의 우위가 개시된다. 물론 응고와 구조의 우발적 토대로 인한 미결정성과 흐름의 잉여는 여전히 남아 있겠지만.
우발적 마주침의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존재하는 '추상'은 어떤 실존과 물질성도 갖지 않은 '유령 같은' 추상이다. 그러면 {자본론} 1편에서 맑스가 전개하는 유령이 사는 법, 혹은 유령의 현실적 존재방식을 고찰해보자. 우선 맑스는 이 책에서 가치의 실체(substance)를 누누이 반복해서 강조한다. 그러나 가치는 만지거나 볼 수 있는 물질적인 실재가 아니다. "가치로서의 상품의 객관적 실재에는 단 한 분자의 물질도 들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어떤 하나의 상품을 아무리 돌려가며 만지면서 조사해 보더라도 그것이 가치를 가진 물건이라는 것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가치는 '추상적'으로, 혹은 유령적으로 존재하지 물질적으로 현존하는 것은 아니다. 가치는 인간 노동력의 단순한 응고물인 "유령적 대상성(phantom-like objec- tivity, gespenstige Gegenst ndlichkeit"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객체(Objekt)와 대상(Gegenstand)의 구별이다. (영어에서는 둘 다 object로 사용하기 때문에 혼동의 여지가 많다.) 맑스는 이 양자의 구별을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추상적 가능성은 실재적인 가능성의 직접적 대척점이다. 후자는 지성(Verstand)이 그렇듯이 날카로운 경계 안에 구속되는 반면 전자는 환상(Phantasie)이 그렇듯이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다. 실재적 가능성은 그 대상(Objekt)의 필연성과 현실성을 기초 지으려 하지만, 추상적 가능성은 설명되는 대상이 아니라 설명하는 주체에 관심을 갖는다. 대상(Gegenstand)은 단지 가능한 것, 사유될 수 있는 것으로 존재할 뿐이다." 요컨대 객체(Objekt)는 실재 대상이고 대상(Gegenstand)은 추상적 대상이다. 맑스는 이런 맥락에서 가치를 추상적인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혹은 유령적으로 대상화되어 있는 '대상성'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인간의 노동력 좀더 구체적으로 인간의 '추상적 노동'이 대상화되어 있는 것(그것도 유령적으로)이 '가치의 실체'인 것이다.
가치에 대한 이런 정의를 기반으로 우리는 맑스에게 있어 우발적 마주침의 형태인 '가치형태'의 전개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맑스가 "화폐형태의 맹아"라고 부른 것은 '단순한 개별적인 또는 우연적인 가치 형태'(20미터의 아마포 1개의 저고리)이다. "아마포는 자기의 가치를 저고리로 표현(express, ausdr cken)하며, 저고리는 이러한 가치표현의 재료가 된다." '단순한 개별적인 또는 우연적인'이라는 진술 속에는 우발적 마주침의 유물론의 저류가 '뚜렷하게' 흐르고 있다. 단순하게(추상적으로) 존재하는 개별적인 요소들(아마포/저고리, 원자들)의 우연한(우발적인, 예기치 않은, 돌발적인) 마주침의 충돌로 인한 가치의 실존성, 물질성의 현존의 드라마, 표현의 극장이 시작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화폐형태의 '기원'은 이런 식의 우연한 마주침의 충돌이다. 사건은 발생하고 (자본주의적) 역사의 생성은 이렇게 '우연히' 시작된다. 이렇게 일단 마주침이 일어나면, 연쇄적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마주침 이후 연쇄의 형성과 전개과정이 '전개된 가치형태'이다.



20미터의 아마포 1개의 저고리
또는 10그램의 차
또는 40그램의 커피
또는 1커터의 밀
또는 기타 등등.



"어떤 하나의 상품의 가치는 이제 상품세계의 무수한 다른 요소들로 표현(express, ausdr cken)된다." 이제 가치(혹은 유령)는 무수히 많은 다른 요소들(원자들)의 연쇄적 충돌로 인해 다양하게 자신을 '표현'하며,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요소들인 상품들을 '숙주삼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시작한다. 한 상품의 가치는 하나의 동일성으로 환원되어 억압되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다양성' 속에서 자신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들뢰즈와 가타리의 용어를 빌려서 말하자면 "내포적 이접"(inclusive disjunction)의 종합 혹은 전체이다.
이접적 다양성의 세계가 이제 '이전과는 전혀 상이한' 새로운 형태의 복합체를 구성하기 시작한다. '일반적 가치형태'와 '화폐형태'로의 전환이 그것이다.



1개의 저고리
10그램의 차
40그램의 커피 20미터의 아마포(2온스의 금)
1쿼터의 밀
기타 등등의 상품



이제 "여러 가지 상품들은 각각의 가치를 단순하게, 통일적으로 연출(present, darstellen)한다." 맑스에 따르면 "일반적 상대적 가치는 상대적 가치형태로부터 제외된 등가물 상품인 아마포(혹은 금: 인용자 삽입)에 일반적 등가물의 성격을 부여한다." 요소들의 우발적 마주침의 연쇄는 이제 일반적 등가형태에서 굳어져 '응고'되어,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요소들에 대한 구조의 우위'가 성립되어 자본주의적 법칙들의 필연성의 구조 속으로 진입한다(들뢰즈와 가타리식의 표현을 빌자면 '배타택일적 이접의 관계'). 개별 노동생산물들(요소들의) 질적 위치들의 우발적 마주침의 성격이 여기에서는 양적 흐름의 '추상량'(quantitas) 혹은 (추상적 노동의) 추상량의 대수적 체계(들뢰즈와 가타리는 이를 자본주의적 공리계라고 부른다)로 진입한다. 가치가 화폐(순수한 기호인 지폐)로 자립화되면서, 유령은 숙주(등가형태인 상품) 없이 이 세계를 활보하게 된다. 유령이 도처에 '이마'에 차가운 '숫자'와 '기호'를 붙이고 배회하는 세계가 도래한 것이다(이른바 유령의 세계지배, 혹은 화폐의 물신성).
알튀세르는 가치가 이런 식으로 '연출'(Darstellung)되는 것을 "구조적 인과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연출(Darstellung)이라는 개념은 맑스주의 가치이론 전체의 핵심적인 인식론적 개념이며, 그 개념의 대상은 효과들 속에 있는 구조의 현존양식과 구조적 인과성 그 자체를 정확하게 지시한다." 유령(가치)은 어떤 일정한 구조 밖에서는 현실성과 자립성을 획득하지 못하나, 요소에 대한 구조의 우위가 정립되어 구조가 작동되기 시작하면 자기 실존을 부여받아(효과들 속에 존재함으로써) 자기-운동을 시작한다. 맑스에 따르면, 자본주의적 체계가 정립되면 "인물들은 경제적 관계들의 인격화"에 지나지 않으며, 자본주의적 과정의 주체는 "자동적인 주체"인 "자기 증식하는 가치"이다. 요소들에 대한 구조의 승리이후 조성된 자본주의적 복합체는 이런 식으로 유령적 가치들의 자기증식 운동이 관철되는 법칙의 체계이자 통일성의 체계가 되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자본주의적 복합체의 통일성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통일성이란 유일한 본질이나 기원적이고 단순한 실체의 단순한 전개는 아닙니다. 그것은 복합성의 조직양식과 절합(articulation)양식이 통일성으로 전환시킨 복합성 그 자체의 통일성입니다. 복잡한 전체는 지배적인 것이 있도록 절합된 구조의 통일성을 지닙니다." 실체(우리의 논의에서는 가치)가 본질과 기원을 갖지 않고, 다양하고 복잡한 흐름들의 마주침에 의한 복합체라고 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가치 법칙'이 철의 법칙으로서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이 법칙을 지탱하는 우발적 토대가 저류에 억압되어 '은밀하게' 흐르고 있음을 뜻한다. 이처럼 억압된 우발적 토대는 어떤 '사건'과 우발적으로 마주치면, 이유 없이 돌발적으로 돌출하여 법칙을 뒤엎는다(억압된 것의 귀환, 혹은 전복의 가능성으로서의 우발적 토대). 그러므로 절합되어 봉합된 통일체를 돌파(passing-through)할 가능성의 한 지점을 자본주의에 '낯설고 이질적인' 것들의 우발적 마주침으로 인한 생성의 흐름들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소수자 운동, 여성운동, 동성애 운동, 반-세계화 운동 등등)



4. 떠들썩한 전쟁놀이



우발적 유물론은 이 세계를 하나의 전쟁터("원자들의 떠들썩한 전쟁놀이")로 본다. 그것은 원자들이 편위하며 충돌하는 전쟁으로 인해 내적으로 찢어진 세계이다. "원자들의 조합의 형성, 그리고 반발과 견인은 소란스러운 일이다. 떠들썩한 경쟁, 적대적 긴장이 세계의 작업장과 대장간을 구성한다. 그러한 소란이 있는 그 심장의 깊은 곳에서 세계는 내적으로 찢어진다. 그늘진 곳에 떨어지는 태양광선조차 이러한 영원한 전쟁의 이미지다." 내적으로 찢어져 갈등하는 세계에서 이론적으로 개입한다는 것은 '이론적 전투'를 개시하는 것이다(칸트적 의미에서 철학적 전장?Kampfplatz).
이런 의미에서 알튀세르는 철학은 그것이 취하는 하나의 '입장(테제)'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맑스'의 유물론적 철학이라 하더라도 배타적으로 유물론적 진리를 점취할 수는 없다. 유물론이 배타적인 진리로 '선포' 되는 순간, 관념론이 점취하고 있는 입장과의 전투는 포기되고, 끊임없이 유물론의 '근본 전제'만을 암송하는 유물론 '신자'가 되기 때문이다. 맹목적 진리, 진리의 유일성은 없다. 진리의 순수성 또한 없다. 내적으로 찢겨 갈등하는 세계에서 입장들의 갈등과 마주침을 통해 세계는 진리들의 외연을 넓혀 나간다. 또한 이러한 갈등과 마주침을 통해, 단 하나의 진리에 대한 '병적' 맹신이 아니라, 진리의 복수성에 대한 승인과 우발적 미래의 생성 가능성을 긍정하게 될 것이다. 사건들의 우발적 마주침의 장(field)인 '역사'(Geschichte) 생성의 시끌벅적함 속에서 유물론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은 복수의 진리와 가능한 세계의 다수성(multiplicity), 목적론이 배제된 우발적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인정과 승인을 통해서이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우발적 유물론은 '표상체계'에 사로잡힌 주체 개념과 목적론이 배제된 '과정의 유물론'이다.
맑스에게 클리나멘은 "원자들의 반항이고, 고집이며, 가슴 속에 있는 어떤 것"이자 "원자들의 영혼"이다. 클리나멘은 에피쿠로스에게뿐만 아니라 맑스에게도 자유의 근거, 세계의 우발적 형성의 '기원'이자 저항과 전복의 근거이다. 그런데 원자들의 '영혼'이라니? 전통적인 유물론의 '근본 전제'에서 보자면, 전형적인 '절충주의의 꿀꿀이 죽'이다. 그러나 맑스에게 애초부터 물질/의식의 만리장성은 없다. 다만 확장된 의미의 물질성의 우위를 주장했을 뿐이다. 유산은 상속받은 자들의 손에 귀속되어 마땅한가? 알튀세르의 말대로 "패를 다시 분배하고 주사위를 빈 탁자 위에 다시 던져야 하는 날이 올 것이다." 유물론의 저류에서 흐르는 원자들의 아우성과 함께. 이론 '외부'의 원자들의 편위적 실천과 함께. 우리에게 떨어지는 사건들의 우발적 마주침의 생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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