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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코프스키 2008-06-27 21:23:59, Hit : 1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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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최원][리뷰] 그래도 여전히 나는 윤소영 교수를 존경한다!
최원씨와 윤소영씨의 아나키즘 관을 파악할 수 있는 글이라 생각해 가지고 왔습니다. 중간에 민노당 등이 언급되어 있지만 이것들이 주요의제는 아닙니다.

알라딘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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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여전히 나는 윤소영 교수를 존경한다!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와 대안좌파 - 공감이론신서 31
윤소영 지음 / 공감 / 2008년 3월
평점 :



얼마전에 도착한 윤소영 교수의 신간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와 대안좌파]를 검토해 보았다. 우선 나는 그의 이번 책을 환영하는데, 왜냐하면 이 책은 이른바 "평의회 마르크스주의"의 주장에서 정점에 달했던 그의 "이론적 무정부주의"의 오류가 마침내 암묵적으로나마 청산되기 시작한 책으로 명확히 특징지어지기 때문이다.



윤교수가 비록 이 책의 한두군데에서 여전히 "평의회"를 언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언급은 매우 일회적이거나 심지어 역설적인 것이고(이 점은 후술하겠다), 무엇보다도 그는 "유럽 평의회 운동"과 같은 것을 좌파의 대안이라고 역설할 수 없었다.



게다가 윤교수가 이 책에서 전면화하는 사회운동적 정당으로서 이탈리아의 공산주의재건당의 사례를 그 동안 언급해 온 것을 보면, 그것은 무대의 중심을 차지하는(또는 차지해야만 하는) 사회운동/평의회운동을 옆에서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정당운동의 모델로서 (다소간 실용적인 방식으로) 논의되었을 뿐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서문에서 윤교수는 "이탈리아 공산주의재건당과 유럽좌파당의 경험은 좌파의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전망"이라고 선언함으로써 (비록 '사회운동적'이라는 수사가 붙는다고 할지라도 명백히 정당운동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정당 마르크스주의의 어떤 모델을 좌파의 "유일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그렇게 이전의 자신의 입장을 '전도'시킨다(나의 관점에서 이러한 그의 '전도'는 또 다른 편향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만 지금으로서 그것은 덜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전도가 (국가적) 제도들과 그것들의 변혁/전화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고민으로 이어지는 것은 어느정도 필연적이다.



따라서, 과거에 윤교수가 "평의회 마르크스주의"를 처음 주장하자마자 그것의 '자생성주의'와 '이론적 무정부주의'(그의 국가사멸론을 포함하여)를 일관되게 비판해온 나의 입장에서 보면, 이 책은 마침내 윤교수와 논쟁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지점에 도달했음을 알려주는 좋은 신호인 셈이다. 그러니 내가 어찌 이 책을 환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책에는 몇 가지 여전히 짚고 넘어가야할 것들이 있다. 적어도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나 개인에 관한 것이고, 또 하나는 (내가 회원으로 있기도 한) 사회진보연대에 관한 것이다.



1. 나 개인에 관한 것



윤교수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런데 2005년부터 몇몇 인터넷 논객과 소장 교수가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비판의 요지는 [대중의 공포]로 대표되는 발리바르의 작업이 알튀세르의 유언에 반대하여 마르크스주의를 해체한다는 것이며 또 [장기 20세기] 이후 마르크스가 아니라 브로델을 계승하는 아리기와 실버의 공동작업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미 있는 새로운 과학적, 정치적 결론을 도출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전혀 숙고되지 않은 '후위전'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런 비판은 사회진보연대의 일부 신세대 활동가에 의해 적극 수용되고 전파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 일일이 대응할 만큼 한가한 처지는 아니지만, 그러나 2008년 하반기에 출판될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세미나]에서 '의견집단'으로서 과천연구실의 입장을 밝힐 것이다."(6쪽)



이 부분을 읽고 와이프하고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다. 윤교수의 짐짓 점잔을 빼는 듯한 묘사가 너무 코믹해서 웃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인터넷 논객 중 하나가 나인 건 분명한 것 같은데, 왜냐하면 얼마전 [대중들의 공포]를 서관모 교수와 함께 번역해서 낸 것이 나이고, 또 내가 거기서 알튀세르와 발리바르 사이의 쟁점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비판에 대해서 말해보면, 나는 윤교수가 말하는 것과 달리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한 적이 없다. 나는 [대중들의 공포] 역자 해제에서 스피노자-맑스주의를 주장했는데, 나의 관점에서 이는 그 자체로 일반화된 맑스주의와 동의어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즉 생산양식에 대한 이론으로서 맑스주의를 스피노자적인 주체화양식의 이론과 절합함으로써 "일반화"하려는 시도를 스피노자 맑스주의를 주장하는 내가 비판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물론 나의 비판이 오히려 윤교수가 요즘들어 엉뚱하게 아무 근거도 없이 주장하고 있는 "헤겔-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것일 수는 있으며, 이때문에 '과천식으로 이해된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를 내가 비판한다고 윤교수가 말했다면 그것은 맞는 말일 것이다. 나는 발리바르가 "스피노자 또는(sive) 헤겔"의 입장에서 헤겔의 이론적 기여(특히 헤게모니에 대한 그의 논의)를 일정하게 받아들이지만 그 큰 틀은 여전히 스피노자-맑스주의이며, 발리바르가 받아들이는 헤겔은 그나마 스피노자를 통해 어느정도 비판적으로 걸러진 헤겔이라는 관점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윤교수는 아무런 텍스트적 근거도 없이 생뚱맞게 내가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한다고 주장한다.



또 내 비판의 요지가 "[대중의 공포]로 대표되는 발리바르의 작업이 알튀세르의 유언에 반대하여 마르크스주의를 해체한다"는 것이라는 윤교수의 말은 어떠한가? 이 구절만 보면 내가 마치 발리바르가 맑스주의를 포기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라도 한 듯하다. 내가 이것과 유사한 말을 했던 적이 있긴 하다. [대중들의 공포]의 역자해제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발리바르 작업의] 두번째 영역은 맑스와 엥엘스, 그리고 그 후계자들의 사상에 대한 해체작업이 진행된 영역으로, 여기서는 '변혁의 정치' 및 그 아포리아들에 대한 연구가 성찰된다." 여기서 내가 말한 "해체"란 단순한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의 사고되지 않은 전제들(또는 스피노자식으로 말하면 "전제 없는 결론들")을 드러내고 비판함으로써 이론을 전화시킨다는 의미에서의 해체, 즉 데리다적인 의미에서의 해체를 말하는 것이다. 사실 어느 인터뷰에서 발리바르는 자신이 맑스주의 영역에서 행한 작업을 실제로 데리다적 의미에서의 "해체"로 성격지었던 적이 있다. 게다가 이것은 따지고 보면 알튀세르 자신이 행한 작업이기도 하지 않은가? 알튀세르 자신이 역사적 맑스주의와 이론의 해체와 그것의 전화를 꾀했던 이론가이다. 더 나아가서 윤교수도 예전에는 종종 자신의 입장을 "마르크스주의의 전화"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윤소영 교수가 "알튀세르의 유언에 반대하여(???)" 운운하면서, 나의 비판의 요지를 알튀세르의 맑스주의 고수 입장에 반대한 발리바르의 맑스주의 포기의 입장에 서야한다는 식으로 정리하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것인지 독자들은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알다시피 내가 알튀세르와 발리바르 사이의 쟁점으로 나의 "역자해제"에서 지적한 것은 주로 국가 문제에 관련되어 있다(물론 스피노자를 둘러싼 문제가 조금 있지만 나는 그것을 알튀세르와 발리바르의 '쟁점'이라는 식으로 특징짓지는 않았다). 내가 거기에서 지적한 발리바르의 알튀세르 비판의 핵심은, 알튀세르가 (초자유주의와 맑스주의 전체를 관통하는) 이론적 무정부주의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에 있다. 물론 이를 통해 나는, 암묵적으로 윤교수의 과천연구소가 최근 평의회 맑스주의를 비롯한 이론적 무정부주의 경향을 보이는 것은 알튀세르-발리바르의 78년 논쟁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윤교수 스스로의 이론적 무정부주의의 문제점을 깨닫고 명확히 입장선회를 하기 시작하는 것 같은데, 그러한 이 책의 서문에서 나를 쓸모 없는 비판이나 제기하는 사람으로 몰고 있는 것은 참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것은 이번 책에서 묘하게 그가 '평의회'를 언급할 때 다시 발생한다. 따라서 나는 이를 거의 징후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실제로 징후적인 것인지는 독자들이 판단하기 바란다. 이 구절은 이 책에 실린 파우스토 베르티노티의 "공산주의 재건에서 대안좌파 건설로"라는 인터뷰에 나오는 말인데, 윤교수는 [ ] 괄호로 자신의 말을 삽입한다(지나가는 김에 한마디 하자면, 이런 삽입구를 남발하는 것은 그가 얼마나 자신의 독자들을 믿지 못하며 강박적으로 독자들의 독해를 통제하려고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 자유가 항상 평등을 지배해오지 않았나요?

- 현실사회주의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았지요. 평등이 지배하면서 자유가 억압되었지요. 이런 억압은 심지어 우리 역사의 최선의 순간에도 발생했습니다. [평의회 같은] 직접 민주주의의 형태에서조차 우리는 평등이 지배하는 것을 허용했고 차이 대신 동일성을 옹호했지요.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개별성과 개인을 희생시켰습니다." (66쪽)

여기서 베르티노티가 정확히 직접민주주의라는 말로 '평의회'를 지칭하는지는 열려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베르티노티는 "직접민주주의"가 평등의 지배를 혀용함으로써 동일성을 옹호하고 개별성과 개인을 희생시켰다고 부정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직접민주주의는 한계를 가질 뿐 아니라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교수는 마치 이 구절이 자신의 평의회 마르크스주의와 공산주의 재건당이 갖는 친화성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평의회 같은"이라는 구절을 삽입해 넣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는지 몇 줄 있다가 베르티노티가 "참여민주주의 찬성"이라는 말을 할 때도 그 앞에 "[직접민주주의를 토대로 하는 대표제라는 의미에서] 참여민주주의 찬성"이라고 또 삽입구를 넣고 있다. 정확히 평의회주의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윤교수가 인정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공산주의재건당은 평의회맑스주의의 일종이라는 것인지가 애매모호하다.



어쨌든 이 문제에 대한 발리바르의 입장은 (직접민주주의를 토대로 대의제적 요소를 가미하는 윤소영교수와는 반대로) 대의제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직접민주주의의 요소를 활용하는 것이라는 점만 간단하게 지적하자 (Balibar, "Democratic Citizenship or popular Sovereignty?", We, The People of Europe, Princeton, p. 187을 참조하라).



2. 사회진보연대 관련



이 문제는 조금 더 짧게 말하겠다. 사회진보연대에 대한 윤교수의 비판은 이 책의 39쪽에 나온다.



"마지막으로 민노당 외부의 피디인 사회진보연대에 대해서도 한 두 마디 해두자. 사회진보연대는 2002년 대선을 계기로 노동자의 힘과 결별하면서 대안세계화운동의 맥락에서 피디적 정체성을 재건하고 민노당 내부 피디와의 관계도 복원하려고 노력한 바 있다. 그러나 2005년 이후 신세대 활동가가 대거 진입하면서 아탁의 겨우와 유사하게 활동가 대학원생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세력이 출현한다.

"만일 사회진보연대가 일종의 '한국사회포럼'으로변모한다면, 남한의 대안좌파 건설은 그 만큼 더 곤란해질 것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경험을 참조할 때 남한 좌파의 위기의 궁극적 원인은 공산주의 재건 없는 대안좌파 건설의불가능성에서 발견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일부 신세대 활동가의 포스트 아나키스트적인 기질(능력, 성격)이 '과학적 무지와 정치적 방종'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다."(39쪽)



이 쯤 되면 거의 소설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2005년 이후 진입한 신세대 활동가(??)를 "포스트아나키스트"로 규정하는 부분이 가관이다. "포스트"라는 말이 붙었지만, 그건 아나키스트 이후의 아타키스트라는 말로 그냥 아나키스트라는 말이다. 이쯤 되면 윤교수의 자기부인(denegation)은 심각한 정도에 이른 것 같다. 자신이야말로 이제껏 국가사멸을 주장하고, 국가의 노동자 연합으로의 대체를 주장했으며, 평의회 맑스주의라는 이론적 무정부주의를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아마 이렇게 말하면, 윤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자신이 이러저러한 아나키즘을 비판해왔음을 들어 자신의 무정부주의 혐의를 부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윤교수가 비판한 것은 '이론적 아나키즘'이 아니라 '실천적 아나키즘'이었음을 이해해야 한다. 이론적 아나키즘은 실천적 아나키즘 또는 역사적 아나키즘으로 환원되지 않는 것으로서, 판네쿠크는 물론 레닌처럼 이행에서의 국가의 중요성을 주장했던 자들까지 포함하여, (마침내 맑스주의의 위기가!의) 알튀세르까지 포함하여 대부분의 맑스주의자들이 포함되는 것으로 훨씬 더 광범위한 것이다. 윤교수는 실제로 알튀세르의 '마침내 맑스주의의 위기가!'에서 자신의 평의회맑스주의의 이론적 근거를 가져왔음을 우리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게다가 거기에서 우리는 그가 발리바르의 알튀세르에 대한 비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발리바르가 오히려 알튀세르를 옹호했다는 말을 함으로써 쟁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윤소영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과 평의회 마르크스주의], 41쪽 이하).



오히려 그가 "포스트 아나키스트적 신세대 활동가"로 지목하는 활동가들(하지만 이들은 2005년보다 훨씬 이전에 이미 사회진보연대에 진입해있었다)은 그 동안 이론적 무정부주의 비판이라는 발리바르의 입장을 자신의 입장으로 삼아 사회진보연대 내부의 토론에 임했던 일군의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참으로, 윤소영 교수의 이런 이론적 입장의 도둑질(!)은 그가 그의 서문 끝에서 했던 말을 다시 한 번 음미하게 한다: "논쟁은 불가피하겠지만, 그러나 모든 논쟁은 ... 정직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사실 사회진보연대에서 민노당을 사회운동적 정당으로 개조하려는 첫번째 시도는 2002년 대선을 위한 공투본 투쟁에서였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이 때부터 나는 비제도적 투쟁정당만 중시하는 노동자의 힘의 입장을 비판하면서 사회운동적 좌파와 정당 좌파의 연합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른바 "신세대 활동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투본 투쟁에 참여했으며, 이후 나는 심지어 노동자의 힘에 대한 비판 글을 사회진보연대 기관지 컬럼에 쓰기도 했다("계급과 대중의 미완의 변증법"). 윤교수는 2005년 부터 대거 신세대 활동가가 대거 진입했으며 이들이 문제를 일으켰다고 하는데, 이는 전혀 사실 무근인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이번 윤소영 교수의 책의 기본적인 방향은 어느정도 동의할만한 것이다. 특히 제르볼리노의 "정치의 재발견, 민주주의의 재발명"은 현재 우리의 고민을 전진시키기 위한 훌륭한 준거점 가운데 하나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되며, 모든 진지한 좌파의 일독이 요구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윤소영 교수를 여전히 존경하고, 그와 동의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알튀세르와 발리바르의 소개작업에 있어 윤교수와 과천연구소의 업적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윤소영 교수는 올해 하반기에 나에 대한 반비판을 하겠다고 공언했는데, 지금과 같은 잡아 떼기의 연속이 아니길 바란다. 그러한 행동은 사실 어떤 도움도 되지 않으며 슬픈 정념만을 생산할 뿐이다.

2008. 4. 12.

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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