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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코프스키 2008-07-18 13:38:32, Hit : 1121
Link #1    http://www.prometheus.co.kr/articles/108/20080710/20080710040800.html
Subject   [프로메테우스]촛불과 러시아 혁명, 그리고 한국의 지식인
촛불과 러시아 혁명, 그리고 한국의 지식인
토론회 “촛불시대에 다시 생각하는 레닌과 러시아혁명”
임세환 기자 메일보내기

8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촛불시대에 다시 생각하는 레닌과 러시아 혁명’ 토론회에서 사회를 맡은 김남섭 서울산업대 교수는 광화문 촛불에 대해 “1917년 10월 혁명 이후 러시아 국민들과 2008년 한국의 국민들이 전혀 다르다. 그 때보다 훨씬 똑똑한 대중들이 정치에 참여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 프로메테우스 임세환
토론회 주제는 김남섭 교수가 말한 것처럼 “(한국의 지식인들이) 이 대중들과 어떻게 호흡하고 조직해서 일정한 방향성을 부여할 것인가”였다. 90년 전의 유물인 레닌과 성공한 러시아 혁명은 촛불시대를 진단하기 위해 역사에서 끌어낸 교훈, 혹은 비교 대상이었다.

촛불시대와 한국의 지식인

현재를 진단하면 한국의 정당, 혹은 지식인들은 대중과 어떻게 호흡하고 조직해서 일정한 방향성을 부여한 것인가를 고민하고 제시하는 것에 무능하거나 게으르다.

진중권 중앙대 교수처럼 직접 광화문 촛불에 뛰어들어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고 촛불민심의 현장을 보도하는 지식인도 있지만 그것은 한국의 지식인들이 대중들과 어떻게 호흡하고 조직해서 일정한 방향성을 부여할 것인가의 문제와 무관한 활동이다. 촛불현장의 진중권 교수는 지식인이 아니라 그저 한 명의 시민이거나 혹은 기자일 뿐인 것이다.

진중권 교수만의 촛불 파퓰리즘은 성공했지만, 촛불의 미래와 과제에 대한 지식인들의 적극적인 고민과 개입은 부재했으며 이는 지식인으로서 직무유기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출판사 대표는 “촛불집회와 민주주의”라는 글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와 관련해 중요한 것은 한국의 진보파들이 새로운 제3당의 충격을 조직할만한 정치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촛불시대에 정당의 역할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지적이다. 그런데 정당과 마찬가지로 지식인도 이와 같은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진보적 지식인들은 새로운 사회, 혹은 관계를 조직할 만한 대안 담론을 발전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답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지식인들이 모인 ‘촛불시대에 다시 생각하는 레닌과 러시아 혁명’ 토론회에서도 “(한국의 지식인들이) 이 대중들과 어떻게 호흡하고 조직해서 일정한 방향성을 부여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촛불시대와 러시아혁명

물론 촛불시대를 이해하기 위해 굳이 90년 전의 러시아혁명을 끌어왔어야 했는가의 질문이 앞서 제기될 필요가 있다. “대안사회 구성의 측면에서도 현실적 효력의 측면에서도 모두 철저히 실패해버린 유토피아를 불러내는 일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기 때문(금민 사회비판아카데미 이사장, 전 사회당 대통령 후보)”이다. 러시아 혁명과 한국의 촛불집회의 상관성을 굳이 분석해서 얻고자 하는 바도 명확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촛불시대에 러시아 혁명의 외부성을 조명한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는 “지금 레닌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적어도 레닌에 관한 한 더 없이 적절해 보인다. 왜냐하면 지금처럼 레닌에 대해 말하는 것이 시대착오처럼 보이는 때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역설을 펼쳤다.

이진경 교수의 말처럼 “모든 혁명은 자신의 시대와 대결하고자 한다.” 따라서 “모든 혁명은 자신에게 주어진 세계,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전복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반시대적 사유’일 수밖에 없으며, 혁명이 ‘시대정신’에 충실하다고 보일 때조차도 그것에 반하여 사유한다.” 이명박 시대와 대결하는 ‘촛불시대’ 또한 이명박 시대에 대한 ‘반시대적 사유’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토론이 90년 전이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들에 관해서도’ 더 없이 적절한 것일 수 있는가에 있다.

지금 레닌을 의미 있게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내가 그의 시간으로 불려가 그의 시대에 충실한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레닌을 지금의 시간으로 불러내 새로운 반시대적 사유를 작동시키는 것”(이진경)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레닌을 의미 있게 이야기하는 것과 달리 촛불시대와 관련한 구체적인 어떤 것을 끌어 낼 수만 있다면 맑스를 사유하든, 레닌을 사유하든, 로자 룩셈부르크를 사유하든, 마오쩌뚱을 사유하든, 피델 카스트로를 사유하든, 80년의 광주를 사유하든, 87년의 민주화 항쟁을 사유하든, 심지어 박정희를 사유하든 무슨 상관인가.

레닌 시대를 사유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촛불시대의 성격을 정치적으로 부여하고 집단적 과제를 설정할 수 있어야만 “(한국의 지식인들이) 이 대중들과 어떻게 호흡하고 조직해서 일정한 방향성을 부여할 것인가”라는 토론회의 화두에 대한 답이 등장할 수 있다.

금민 이사장의 말대로 “대중의 자발성은 스스로 적절한 형식을 창출하거나 아니면 부여받아야 하며, 외부성의 정치는 반드시 대중 속으로의 경로를 확보해야만 한다.” 레닌과 러시아 혁명에 대한 외부성의 사유는 반드시 2008년 한국 대중운동으로의 경로를 확보해야만 한다.

이진경의 ‘레닌에 관한 외부성의 사유’

이진경 교수가 자주 사용하는 ‘외부성을 통한 사유’라는 개념은 예컨대 “현재적 장 속에서 레닌에게 다른 형상을 부여하는 것”이다. “원래의 레닌이 속했던 것과는 다른 조건, 2000년대 한국의 현실에 펼쳐진 현재의 장 속에 불러내는 것이고, 그 장 속에서 레닌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것”이 외부성으로 사유하는 방식이다.

시대와 장소, 사유하는 주체 등에 따라 레닌을 사유하는 방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그 시대와 장소, 사유하는 주체 그 자체와 그것에 따라 달라지는 사유의 방식을 ‘외부성’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 이진경 교수 ⓒ 프로메테우스 임세환
이진경 교수가 토론회에게 이야기 한 것은 ‘레닌이 생각한 것의 외부성’이다. “계급과 당, 국가와 혁명, 사회주의와 이행이라는 이 세 가지 주제에 대해서 사유한 살아있는 레닌에게 외부성은 어떤 식으로 작동했는지 추출”하려고 한 것이 이진경 교수의 토론회에서의 목표다.

레닌과 러시아혁명의 외부성에 대한 사유의 결론을 이진경 교수의 테제를 통해 요약하면 “∆프롤레타리아트란 이해관계의 외부성, 계급성의 외부를 자신의 본질 안에 포함하는 계급이라는 의미에서 혁명적 정치란 계급성을 초과하는 계급성, 계급이기를 그친 계급성 통해 정의할 수 있다는 것 ∆혁명, 혹은 혁명적 정치란 국가조차도 국가에 대해 외부적인 것을 통해 사유하고, 국가를 장악하거나 이용하고자 할 때조차도 국가에 대에 외부적인 것을 작동시키며 장악하거나 이용해야 한다는 것 ∆이행기로서 사회주의란 자신의 기본법칙에 대해 외부적인 것을 근본원리로 삼는 체제라는 것” 등이다.

따라서 이진경 교수에게 ‘맑스주의’에서 정치란 ‘외부를 통한 사유’이고 외부성을 통해 계급과 정치, 정치와 조직, 국가와 혁명을 사유하는 것이라고 해도 좋은 것이다.

조정환 “제헌권력의 열림과 닫힘”

이진경 교수와 함께 발제자로 참석한 조정환 다중네트워크센터 대표는 촛불시대에 대해서 “제헌의 과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1917년 이전의 레닌의 경우에 제헌의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제기했는데 촛불집회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전제했다.

이와 같은 사유의 관점에서 조정환 대표가 주목하는 것은 “제헌권력이 구성적 역능, 즉 삶의 잠재력과 맺는 관계를 진지하게 고찰하는 일”이다. 조정환 대표가 제헌권력을 꿈꿨던 레닌의 혁명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는 방식도 역시 이와 같은 관점을 통해 이뤄졌다.

△ 조정환 대표 ⓒ 프로메테우스 임세환
조정환 대표는 “1917년 이전에 레닌에게서 형식적 헌법의 쟁취 과정과 물질적 헌법의 쟁취 과정을 동시에 사고하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을 그의 텍스트를 통해 읽었다”고 했다. “레닌은 물질적 제헌과 형식적 제헌을 구분하고 형식적 제헌보다 물질적 제헌이 더 우위에 있음을 혁명의 모든 순간에 깊이 고려했다”는 것이다.

조정환 대표가 이야기하는 물질적 제헌을 촛불집회로 끌어오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개입하지 않는 “시민들의 자유로운 의사결정 과정”(조정환)이다. 스티로폼으로 시민산성을 쌓은 다음 어떻게 할 것인가를 시민들이 자유롭게 논의하는 것, 즉 “어떤 선출과정과 대의과정 없이 행위를 하는 사람들의 집합적 의사결정 과정”이다.

이와 구분되는 형식적 제헌은 레닌에게서는 ‘국가’이고 촛불집회에서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다. 보다 분명하게 말하자면 조정환 대표의 사유 방식에서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국가’다.

조정환 대표는 토론회에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에 대해서 “대책회의가 지나치게 대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문제”라며 “대책회의에 선출되지 않은 임의의 파견자들이 나오고 소비에트적 파견 방법도 채택하지 않는다. 대충 나올 사람들이 나오고 거기에서 이루어질 것이 이루어지면 수많은 사람들의 행동이 제약된다”고 비판했다.

조정환 대표는 이런 맥락에서 “사회 외부에서 전문적으로 관념을 생산하고 입법을 하는 의회조직이나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폭력조직으로서의 국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오래된 관념은 제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레닌도 그랬듯이) 그것들이 지난 세기에 너무나 반혁명의 무기로 동원됐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래서 “(의회조직이나 국가가) 삶 속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한 ‘다중’들 자신의 직접적 토론과 행동적 표현을 통한 직접적 제헌적 결정과정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다. 그래야만 촛불시대에 “제헌권력이 구성적 역능, 즉 삶의 잠재력과 맺는 관계를 진지하게 고찰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조정환 대표의 사유에서 의회조직, 국가 혹은 광우병 대책회의는 근대적인 것이며, ‘구성적 역능, 삶의 잠재력’에 대한 폭력적 억압 주체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지식인들이) 이 대중들과 어떻게 호흡하고 조직해서 일정한 방향성을 부여할 것인가”라는 토론회 주제, 지식인들의 역할에 대한 기대 또한 촛불집회에 참가하는 시민들의 삶의 잠재력을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기제로 등장하는 것이다.

박노자 “레닌을 아무리 죽여 봤자 안 죽는다”

발제자로 참석한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박노자 교수와 논평자로 참석한 류한수 상명대 교수의 공통점은 역사학자라는 것이다. 토론회에서도 박노자 교수와 류한수 교수의 레닌과 러시아 혁명에 대한 실증적인 증언은 그 자체로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 박노자 교수 ⓒ 프로메테우스 임세환
박노자 교수는 “1991년 이후 레닌 일병 죽이기에 나선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 대부분은 소련 공산당 고위 간부 출신이었다. 북한도 어떤 이변이 생기면 주체사상 죽이기로 갈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박노자 교수는 “그런데 레닌을 아무리 죽여 봤자 안 죽는다. 러시아에서 아직도 국민 여론조사 하면 50% 이상이 레닌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본다”고 했다. 덧붙여 “소비에트가 레닌 일병을 살려내는 고리가 아닌가 생각한다”며 “소비에트는 대표자들의 모임인데 소비에트와 대의민주주의와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대의하는 사람 또한 그들이 대변하는 대중과 나눠지지 않는 유기성”이라고 말했다.

“소비에트는 말 그대로 우리와 같은 몸과 마음인 사람들이 우리의 문제를 결정하고 논의하고 대변하는 직접 민주주의에 가까운 형태였고, 지금의 촛불집회처럼 자연발생적인 것이었으며 그것이 당시 공장노동자의 생존방법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박노자 교수는 덧붙여 “볼셰비키 대부분이 소비에트에 회의적이었고 맑스주의 정통 이론에서도 소비에트에 회의적이었던 반면 레닌은 그런 맑스주의의 보수적 정통성을 깨고 소비에트를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 점에서 “1917년 10월까지만 해도 레닌은 모범적인 소비에트 민주주의자였다. 민중의 자율의 힘을 맑스주의자로서는 거의 최초로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점에서 레닌이 기억에 남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박노자 교수는 또 10월 혁명 이전의 멘셰비키 임시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비교하면서 “러시아 국민의 종전 요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 대해 돈을 많이 주는 프랑스에 미움 받으면서 독자적으로 강화 협상을 하면 죽는다고 생각했던 멘셰비키와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상당한 의존성을 갖는 이명박 정부는 비슷하다”고 했다. 또 “멘셰비키와 이명박 정부 둘 다 대중적으로 안 좋게 보이는 것(제1차 세계대전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하는 것도 비슷한 점”이라고 했다.

류한수 “레닌의 권위는 러시아 전통과 밀접한 연관”

류한수 교수도 박노자 교수가 레닌에 대해 “민중의 자율의 힘을 맑스주의자로서는 거의 최초로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이라고 평가한 것과 마찬가지로 “1917년까지 레닌의 모습에는 발랄하고 대중과 함께 호흡하려는 모습이 있었다”고 평했다.

류한수 교수는 “1917년 4월에 레닌은 핀란드 역 광장에 도착해 연설하면서 연설의 맨 마지막에 ‘사회주의 혁명 만세’를 외쳤다”며 “그 말을 듣는 순간 멘셰비키 등 과거의 동지들은 레닌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레닌이 사회주의 혁명 만세를 외쳤을 때 제일 좋아한 사람들은 아나키스트다. 그래서 조금 과장하면 1917년의 레닌은 아나키스트와 맞닿아있었다”고 했다.

△ 류한수 교수 ⓒ 프로메테우스 임세환
덧붙여 “레닌 자신은 권위와 상관없는 사람이며 우상화와 아첨을 멀리하고 껄끄러워 했는데, 이렇게 민주주의자로서 면모를 갖춘 레닌이 집권한 다음 권위주의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은 러시아 전통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했다.

류한수 교수는 레닌의 권위(주의)를 러시아 전통과의 관련성으로 설명했다. “레닌의 시신이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방부 처리 돼 안치돼 있는데, 이것은 성자의 유해는 썩지 않는다는 러시아 전통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 공산당이 반종교 투쟁을 벌일 때 성당에 있는 관의 뚜껑을 열고 성자라고 불리던 사람들의 유해가 썩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줬는데, 반대로 레닌의 후계자들이 레닌을 방부 처리한 것은 (이를 역이용해) 무지몽매한 러시아 민중들에게 러시아 공산당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노자 교수의 레닌과 러시아 혁명에 대한 역사적 사유에 있어서는 거의 다를 바 없던 류한수 교수는 조정환 교수의 당과 국가에 대한 부정적인 사유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태도를 드러냈다.

류한수 교수는 “대중을 지도하는 당, 혹은 조직된 지도부를 좋지 않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대중의 열정이라는 것은 지속될 수 없다. 특정 시기에 강조점을 찍어주고, 판단을 내려야 할 때 지도부가 필요하다”며 “1917년을 잘라 보면 볼셰비키와 대중의 관계가 정치학에서 모범적이라고 할 만큼 상당히 유기적이고 상호 보완적이었다. 1917년 7월에 러시아에서 대중이 봉기하는데 레닌은 ‘아직까지 상황이 늦지 않았다. (소비에트에서 과반 이상의 권력을 획득하기 전까지) 시간을 두고 기다려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나는 이것이 당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금민 “레닌 불러내는 것은 좌파 정치기반 활성화를 위해 중요한 일”

토론자와 논평자 중에서 유일하게 현실정치에 몸담고 있는 금민 사회비판아카데미 이사장(전 사회당 대통령 후보)의 최초의 질문은 앞서 말한 것처럼 “대안사회 구성의 측면에서도 현실적 효력의 측면에서도 모두 철저히 실패해버린 유토피아를 불러내는 일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데 도대체 왜 다시 레닌을 불러내야 하는가”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오늘날의 많은 조건이 1917년의 러시아와 다르지만 레닌을 불러내는 것은 적어도 좌파의 정치기반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금민 이사장은 “마키아벨리 이후의 근대 정치는 주체와 주체의 계획의 틀에서 움직이는 것이었는데 제2인터내셔널 맑스주의에서는 근대정치가 기동할 수 있는 틀이 없었다”며 주체를 배제한 전근대적 맑스주의 목적론에 대한 비판을 전제했다.

△ 금민 이사장 ⓒ 프로메테우스 임세환
금민 이사장은 “이진경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현존하는 것의 외부에 대한 사유를 통해서 현존하는 것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생각하고 행동했다는 점에서 레닌은 좌파정치의 근대정치적인 복원자로서의 위치를 가진다”고 했다. 즉 오늘날 한국 좌파정치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여전히 전근대적 맑스주의와의 대결이 필요한데, 레닌에게서 배울 것이 그 점이라는 것이다.

금민 이사장은 이진경 교수, 조정환 대표의 레닌과 러시아혁명에 대한 사유에 대해서는 그것의 비내부성(?), 혹은 비현실성을 비판했다.

이진경 교수가 말한 것처럼 “계급과 당, 국가와 혁명, 사회주의와 이행이라는 이 세 가지 주제에 대해서 사유한 살아있는 레닌에게 외부성은 어떤 식으로 작동했는지 추출”할 수도 있지만 결국 “이진경도 인정하듯이 우리는 결국 외부를 통해 내부를 사유할 수 있을 따름”이라는 것이 금민 이사장의 논평이다.

즉 살아있는 레닌의 사유에 대해서 후대의 학자가 외부성을 추출해 극대화시킨다고 하더라도 결국 레닌은 러시아 혁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러시아 내부(당대의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맑스주의의 외부성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금민 이사장은 마찬가지로 러시아혁명과 촛불시대에 대한 사유를 통해서 “오늘날 소환과 탄핵과 해임을 전제로 한 선출에 대한 요구는 근대적 대의제에 대한 요구라기보다 삶의 공통적이고 네트워크적이며 자율적인 운영에 대한 ‘상상 속에서 나오는 요구’”라고 한 조정환 대표에 대해서도 “그 요구 또한 단순한 초월이 아니라” 삶의 공통적이고 네트워크적이며 자율적인 운영을 욕망하는 “개별자(국민, 혹은 촛불시민)들과 마찬가지로 내재성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조정환 대표가 “오늘날 소환과 탄핵과 해임을 전제로 한 선출에 대한 요구”를 “상상 속에서 나오는 요구”로 이해하는 반면, “그 요구 또한 내재성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 금민 이사장의 ‘요구’에 대한 이해 방식은 “주권권력 자체의 성격의 변화에 대한 요구”다.

“대의제의 형태는 동일하지만 대의제에 근거한 근대국가의 주권권력의 성격은 경찰국가, 사회국가, 포스트 민주주의 등으로 바뀌어 왔으며 이러한 변화는 개별시민들이 어떠한 주권의식을 가지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개별자 1의 생명, 재산권에 대한 요구+개별자 2의 생명, 재산권에 대한 요구+...=경찰국가’인 시대가 있었고, ‘개별자 1의 사회권 요구+개별자 2의 사회권 요구+...=사회국가’인 시대가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등식에서 우항은 개별자들의 공통성이고, 좌항(개별자들의 주권의식)의 성격이 변하면 우항 또한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즉 개별자(국민)들이 먹거리 안전, 교육, 물 등을 자신의 주권의 요소로 이해하는 촛불시대의 우항은 새롭게 정립되어야 하지만 이는 조정환 대표가 말한 “상상 속에서 나오는 요구”가 아니라 “삶의 공통적이고 네트워크적이며 자율적인 운영을 욕망하는 개별자들의 새로운 공통성(we the people)을 수립하는 것이고, 이에 상응하는 주권권력의 변화가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금민 이사장의 토론회 논평의 내용을 짧게 정리하자면 ‘레닌 시대의 현실정치(내부성), 촛불시대에 한국 좌파의 현실정치(내부성)’다. 더 분명하게 말하면 무엇이든 “반드시 내부화되어야 사유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유하는 사람은 언제나 내부(현실)에 대해서 사유하기 때문이다.

촛불시대의 승리의 조건은 무엇인가?

레닌과 러시아 혁명의 긴 사유의 끝에서 발제자들과 논평자들이 답해야 할 문제는 “(한국의 지식인들이) 이 시대의 대중들과 어떻게 호흡하고 조직해서 일정한 방향성을 부여할 것인가”의 문제다. 금민 이사장의 표현을 다시 반복하자면 ‘촛불시대에 다시 생각하는 레닌과 러시아 혁명’도 반드시 내부화되어야 촛불시대의 사유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토론회는 과거의 러시아혁명에 대한 지식인들의 말잔치이고 ‘촛불’은 그 들러리가 아니겠는가?

이진경 교수와 금민 이사장은 모두 이 문제와 관련해 ‘촛불의 승리’를 선언한 광우병 국민 대책회의에 대해서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이진경 교수는 “ 며칠 전에 촛불집회에서 국민승리를 선언하는 것을 봤는데, 승리는 선언했는데 정부는 아무 것도 듣지 않았다. 승리를 선언할 시점이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퇴진할 것인지를 고민할 시점으로 보인다”며 비관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촛불이 사그라지면 이명박 정부가 앞으로 못할 것이 없다. 이명박 정부를 퇴진시키려고 하지 않으면 이겨도 이긴 싸움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진경 교수는 또 “촛불집회가 한국 국민들의 대다수를 좌파로 돌려놓았다는 점에서 성과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이명박 정부뿐만 아니라 변화에 대한) 냉소주의로 바뀔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비폭력에 대해서도 “문턱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고 했다.

금민 이사장도 촛불집회를 통해 광장에서는 국민주권의 의식의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촛불집회의 성급한 승리 선언은 진화된 의식에 대한 형식의 부여를 가로막는다고 비판했다.

금민 이사장은 “촛불집회를 통해 국민들은 투표용지 한 장 받는 것이 주권이 아니라 먹거리 안전, 교육, 물 등의 문제를 자신들의 국민주권으로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단지 국민들이 그것을 인식했다는 것만으로 승리를 선언하면 진화된 국민주권에 대한 새로운 형식화가 일어날 수 없다”고 했다.

새로운 형식화란 이를테면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 기조를 바꿀 수 있을 만큼의 집단 지성(혹은 사회적 합의)”(금민)이거나 진화된 주권의식을 반영한 개헌을 포함한 대한민국 법 제도의 변화일 것이다. 혹은 진화된 주권의식의 구체화, 일반화, 새로운 형식화를 위한 촛불집회 이후의 소통과정, 매개체 그 자체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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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민 2008.07.10 17:01삭제
연구실의 교수님들이 모이셔서 마이크 들고 현장으로 간 진중권은 포퓰리스트이고 교수의 직분을 벗어났다고 까는군요.

이거 조선일보에서 자주 보던 광경 아닌가요? '제 자리를 찾자?'

http://www.prometheus.co.kr/articles/108/20080710/200807100408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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