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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코프스키 2008-06-02 19:17:20, Hit : 1084
Link #1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40080602170835
Subject   [프레시안]21세기 아나키즘 민주주의의 출현
21세기 아나키즘 민주주의의 출현  
  [김민웅 칼럼] 2008세대의 정치철학, 지도부 없는 지도력의 힘  

  2008-06-02 오후 5:30:31    


  

  
  과거의 눈으로 보면 지금 경찰이 시위대를 향한 폭력은 폭력 축에도 끼지 못한다. 그러나 오늘의 세대에게는, 방패를 휘두르는 동작만 보여도 그건 이미 폭력이다. 역대 군부정권과 비교해보자면 이명박 정권은 독재정권 명단에 올라가지도 못한다. 반면에 오늘의 세대에게는, 이 정도의 독선도 독재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옳다. 역사는 어느새 진전해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힘겹게 만들어내고 기대했던 온당한 변화 아니던가?
  
  "까짓것 이 정도 가지고", 했다가는
  
  기성세대는 너무 오랫동안 폭력과 독재의 관성에 익숙해서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자기도 모르게 둔감해지고 말았다. "까짓것 이 정도 가지고" 했다가 정말 큰 코 다친다. <성희롱>의 개념이 달라진 것을 보라. 상대를 바라보는 눈 빛 하나로도 성희롱 혐의로 문제 될 수 있는 세상이다.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에 대한 사회적 민감도가 높아진 것은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열매다. 그 과실을 <2008세대>가 따서 기성세대에게 나누어 주고 있다. 너무 사는데 바빠 미처 맛 볼 겨를도 없이 지내왔던 기성세대는 그걸 먹으면서 신기해하고 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 심은 자와 거두는 자가 달라지듯, 씨앗과 열매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모든 기성체제의 작동 방식은 이번 5월과 6월의 촛불집회로 순식간에 낡은 것이 되고 말았다. 그 어느 것도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렇게 하려고 드는 순간, 배척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만다. 모두 그걸 느끼고 자기 주제를 신속하게 알아서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청와대의 권부와 여당만이 아니다. 야당을 비롯해서 시민사회와 진보진영 역시 이 변화의 속도와 규모, 방향에 대해 당황하고 고뇌하고 있다.
  
  시민단체와 진보진영에게도 중대한 충격
  
  기존의 발상으로는 어떤 시스템도 먹혀들지 않는다. 정부와 여당은 변장하지 않으면 현장에 나올 수 없다. 그간 배후설이요, 미국 쇠고기 안전하다, 등의 주장을 펼치던 조.중.동은 시민들의 함성에 내쫓기고 있으며 통합민주당 국회의원들과 지도부는 시민들 사이에서 고개를 똑바로 들 수 없다. 시민단체의 확성기는 시민들의 요구에 그 내용이 좌우되고 있으며, 진보진영의 깃발은 선두에 서지 못하고 시민 권력의 속도를 쫓아가기에 바쁘다.
  
  현장의 소통방식은 과연 어떤가? 다양한 목소리들이 다양한 의견을 제출하고 그 가운데 대중들의 판단에 가장 적합하다고 하는 것들이 합의로 채택된다. 그 답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상황에 따라 정리될 것은 정리되고 새로운 요구와 새로운 대응이 매우 빠르게 이루어진다. 와 하고 여기 몰려가고 저기 쏠려가는 군중심리로 인한 움직임은 없다. 그건 각 개인의 주체성이 빈곤할 때나 가능한 사회적 상황이다. <2008세대>의 중심은 다채롭고 주체적이며, 서로 연대하는 방식은 철저하게 민주적이다.
  
  21세기 아나키즘 민주주의의 출현
  
  21세기 <아나키즘 민주주의>의 출현이다. 여기서 아나키즘은 무정부주의라고 흔히 번역되고 있는 바와 전혀 다르다. 아나키즘은 혼란과 무질서를 부각시키는 무정부주의가 아니다. 아나키즘은 시민 각자가 매우 개성적이고 주체적인 존재가 되어, 일체의 위계질서를 부정하는 "급진적인 민주적 평등"과 "형제자매애(fraternity/sisterhood)적 연대"를 이루어내는 시민 권력이다. 바로 그러한 관점에서 프랑스 혁명을 갈파한 크로포트킨이 말했던, 대중이 발휘하는 선도적 투쟁의 위력이 나온다. 그것이 만들어내는 공간은 직접 민주주의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공화국>은 그 토대 위에 건설될 것이다.
  
  그리스 직접 민주주의 현장인 <아고라>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 걸쳐 존재하고 확대되고 있다. 운동의 지침과 토론과 구호의 수준이 격렬하게 교환되고 마침내 그 단계에 적절한 합의에 이른다. 교정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정작 지도부가 있는 제도권의 권력은 지도력이 없고, 지도부가 없는 거리의 시민들은 역사를 지휘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지도력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깨우친다. 이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력은 일사분란 한 명령체계가 아니다. 그건, 다양한 중심이 서로의 주체성을 존중하면서 하나가 되는 힘이다. 그 하나는 통제와 관리의 주체가 아니라, 다양한 표현과 주장, 그리고 무정형의 행동 방향을 지켜내는 대중적 열망이다.
  
  "다양한 중심"의 하나 되기
  
  각자가 맡은 역할이 충실히 이루어지고 그 많은 수의 대중적 합의는 생각 이상으로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직접 민주주의의 위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다, 이다. 선택이 분명하다. 그것이 다수의 형이상학적 폭력이 되어 소수자를 위협하는 그런 다중의 독재는 결코 아니다. 시민대중의 의식은 은화처럼 맑고 판단은 적절하다. 누가 시키거나 세뇌하거나 미리 만들어 주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최선의 답을 내놓는다. 시민 권력은 그래서 살아있는 사회적 유기체다. 역동적인 역사의 호흡, 그 자체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대중의 우매함을 탄식했던 사람들은, 2008년 5월과 6월의 광장에서 전혀 다른 현실과 마주섰다. 희망이란, 이렇게 기구한 곡절을 겪어서야 비로소 태어난다. 두 번의 선거가 없었다면, 우린 오늘의 이 격변의 현장을 만나지 못했다는 역설에 처한다. 굳이 변증법적 역사해석을 동원하지 않아도, 이제 이 21세기 한국형 아나키즘 민주주의는 기성의 발상과 제도를 뛰어넘는 방향을 만들어 낼 것이다.
  
  치열한 정치토론 시작되다
  
  이미 치열한 정치적 토론은 시작되었다. 시위 현장의 곳곳에서 모여 앉은 이들은 쇠고기 재협상 요구 정도의 수준을 벌써 넘어서고 있다. 그 다음을 내다보는 논박이 오고 간다. 대열 최전선에는 경찰버스와 치열하게 대치하고 있고 대열의 후미 다른 쪽에서는 토론장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역시 다양한 중심의 여유로운 결합방식이다. 선수는 계속 교체되고 있으며 역량은 비축되고 토론은 거침없다.
  
  그 주제 또한 다채롭기 그지없다. 이명박 퇴진 이후의 정치적 공간이 가설로 상정되는 가운데, 그 준비도 어느새 논의의 대상이다. 정부의 공식적 운영이 마비될 경우 문제가 없겠는가에 대한 논란도 잠정적 위기 수습 대책위 구성으로 풀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행정을 책임질 것인가는 이미 답이 나와 있다는 것이다. 언론을 통해 방향을 잡아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제 적 이야기인가 싶게도 제헌의회를 열자는 목소리조차 나온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극도의 불신이다.
  
  지속적인 우리의 정치적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그 어떤 방향을 잡아나가든 결국 이 모든 것들이 제도적 내용을 가지고 실현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아무리 열기가 뿜어 나와도 거리의 정치는 물론 지속적으로 일상화되기 어렵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일상도 모두 저버리고 그걸 계속 하겠다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모아진 목표를 하루 속히 이루어 내겠다는 것이다. 그 시간을 자꾸 소모적으로 연장하려 드는 세력은 시민 권력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거리의 정치가 우리에게 만들어 준 것은 무엇인가? 그건, 제도의 혁명적 변화를 가져오는, 지속적인 우리 일상의 정치적 영혼이다. 이걸 거슬러 만들어질 수 있는 미래는 이제 없다.
  
  이제 점차 다가오는 6월 10일 시민항쟁의 역사적 기억은 우리 모두의 정치적 육체가 되어, 근육으로 불거져 나오고 뜨거운 육성으로 터져 나오며 힘찬 발걸음과 서로 굳게 쥔 손이 되고 있다. 시민 권력의 새로운 지도부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탄생하게 될 것이다. 지도하지 않는 지도부. 그러나 역사의 방향을 정확히 대변하고 희생하는 지도부. 그래서 시민 모두가 지도부가 되는 위대한 역사를 열어나갈 것이다.
  
  이성으로 비관해도 의지로 낙관한다
  
  너무 쉽게 낙관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의 복잡다단한 전개과정을 무시해서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의지>다. 이성으로 혹여 비관해도, 의지로 낙관한다. 대안이 미리 있었던 시대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대안은 우리 모두가 창출한다. 우리는 이제 직접 민주주의의 시민이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우애의 <공화국>은 먼 나라의 소문이 아니었다. 그건 이제 우리의 생생한 역사의 현실이다. "권력에게 불온한 시민"이 될 때, 민주 공화국은 완성된다.
  
  우린 이미 충분히 불온하다.  
    
  

  김민웅/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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