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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pe 2002-08-02 00:51:12, Hit : 1790
Subject   임치윤의 양심적 병역거부 소견서
양심적 병역 거부 소견서

                                  임치윤(25세. D대 독문학과 99학번)


이제 저는 범죄를 저지르려 합니다. 하지만 너무 두려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저지르려는 범죄는 누군가에게 해를 입힌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제 죄는 남에게 해를 가하지 않으려는 제 양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한 죄가 있을까요? 저는 지금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려 합니다. 자신의 양심에 의한 병역거부. 사회는 이것을 범죄라 부르고 있습니다.

저는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총을 들고 군사훈련을 하는 것과 같은 전쟁준비 행위에도 가담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전쟁과 폭력에 관련된 어떤 직·간접적 행위에도 관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것은 제가 보고 배운 세상을 살아가는 제 나름의 신념이자 양심입니다. 즉 저는 반전과 평화의 가치를 실천함으로 타인의 생명을 존중하고 싶고 제 생명 역시 존중받고 싶습니다. 반전과 평화. 사실 이런 교훈은 흔하디 흔합니다. 전쟁영화 한편을 보더라도 소설 한 권을 읽더라도 우리는 전쟁과 폭력이 얼마나 참혹한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 흔하디 흔한 교훈은 제 감수성에 깊은 자국을 내었습니다. 또한 제가 읽은 책과 그 지은이들의 삶 역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컨대 헨리 데이빗 소로우 같은 이의 삶에서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많이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고민 끝에 저는 반전과 평화라는 가치를 제 인생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해야겠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신념은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행동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제 벗들은 이런 제게 그냥 속 편하게 ! 군대 갔다오라고 말합니다. 사서 고생 말고 남들 하는 것처럼 눈 딱 감고 갔다오면 된다고, 별 것 아니라고, 2년 2개월이란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고, 금방 가버린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전 제 신념과 양심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신념과 양심, 이게 없다면 인간이란 길에 다니는 개나 소와 하등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이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예컨대 도둑이 자기의 양심에 따라 도둑질을 했다면 이것도 이해 가능하냐고 말입니다. 제발 그런 식으로 '양심'이란 단어를 갖다 붙이지 말기 바랍니다. 타인에게 인정 가능한 '양심과 신념'이란 너와 나 사이의 공존을 위협하는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게는 군복무 중인 동생이 있습니다. 그 친구는 현재 육군 병장으로 제대를 4개월 정도 남겨두고 있습니다. 군인된 입장에서 그 친구는 제 생각이 마뜩찮을 수도 있고 저 역시 군인인 동생과 격이 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형제이기에 앞서 그 친구나 저나 서로의 생각과 행동을 존중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친구 중에서도 군대에 갔다 온 이들이 제법 있습니다. 그들과 많은 대화를 통해 저는 제 입장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고 그들 역시 제 생각의 많은 부분에 수긍하였습니다. 저는 군에서 수고하는 있는 이들 혹은 과거에 수고한 이들을 비양심적이라 생각하지 않으며 그들의 결정을 비하할 어떤 의사도 없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신념이란 개인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는 제 결정을 존중받고 싶을 뿐입니다.

한국은 휴전 상황입니다. 이 특수한 상황은 우리가 대체 복무제를 비롯한 개인 인권의 향상을 꿈꾸는데 적지 않은 걸림돌로 작용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혹은 어려운 상황이라 생각해온 지점에서 한 발짝 물러나 이성적으로 주판알을 튕겨봤으면 합니다. 과연 대체 복무제도가 시행됨으로 병역제도에 혼란이 일어날 것인지 또는 군인의 수와 비교해 소수의 병역 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를 하게 함으로써 국가 안보에 치명적인 손실이 올 것인지 하는 것들 말입니다. 그리고 한국과 같은 분단상태였던 독일이나 중국과 대치 중인 대만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본다면 이 물음에 긍정적인 답변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우리에겐 이런 문제들을 드러내놓고 토론할 기회는 물론이거니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꿈은 언제나 희망의 동의어입니다. 그리고 그 꿈이란 꿀 수 있을 때라야 실현 가능합니다. 우리에게 오랫동안 거세되었던 상상력과 꿈을 이제부터라도 복원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 상상력의 밑바닥엔 인권에 예외는 있을 수 없다는 명제를 깔았으면 합니다.

앞으로 병역거부자의 수는 점점 늘어날 것입니다. 각기 다른 개인의 상황과 처지에서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병역거부를 선택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사회는 언제까지 이들에게 일방적인 처벌만 가해야 합니까. 그것은 사려 깊지도, 이성적이지도, 신중하지도 못한 판단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논의할 수 있는 대체복무제도의 장단점을 다 제외하고서라도 한국사회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얼마만큼의 관용을 보여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한국이 성숙된 민주사회인가 하는 물음과도 연결됩니다. 민주주의는 정치적 소수자들에게 그 관용의 터를 넓힘으로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소수자에게 사려 깊지 못했던 사회는 지워버리고 싶은 수치스런 기억과도 같았습니다.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을 제게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저 뿐만이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언제든지 소수자가 될 수 있으며 이 물음에 답변을 준비하는 것은 한국 사회가 구체적인 인간의 삶에 귀 기울이는 사회가 되는데 조금의 힘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려는, 다시 말해 범죄를 저지르려는 제 심정은 답답합니다. 어쩌면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전과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절 힘들게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든 것은 나의 언어가 타인에게 이해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나라는 존재가 다수와 외떨어져 있다는 고립감입니다. 그래도 저의 결정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나의 신념을 오롯이 지켜내야겠다는 자존심과 어쩌면, 그랬으면 좋겠지만, 저의 결정이 같은 이유로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 때문입니다.

이천이년 무더운 여름 어느 날, 저는 이 기대가 실현된 개인의 양심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를 꿈꿔봅니다. 이것이 다만 '한 여름 밤의 꿈'이 아니라는 것을 전 확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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