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클랜 게시판/링크/물물교환/파일공유/아나키즘 읽기자료
잡민잡론잡설/안티 다국적기업/관리자방/English

아나키즘저널발행준비위원회/투쟁과집/투쟁과밥/군대반대운동
아나키FAQ번역프로젝트/재활센터/여고생해방전선/전쟁저항자들

View Article     
Name
  아낰(펌) 2004-02-16 02:42:08, Hit : 2021
Subject   일상을 축제로(수유 + 너머 펌)
1. 교포박, 교수가 되기를 포기한 박사


고·미·숙. 그냥 이름만 적어놓기 심심해서 앞에 붙일 말을 찾아보지만 다 마땅찮다.
국문학자, 문학평론가, 대학강사, 교포박― 그는 이 모든 것이지만, 어디에도 만만하게 갇히질 않는다.


그는 1960년,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났고 78년 고려대 독문학과에 입학했다.
고려대 국문학과 대학원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했고, 1994년 박사 학위를 땄다.
그리고 1997년, 문제의 수유연구실을 창립했다.
수유연구실이 조금씩 알려지며 다양한 분야의 젊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이 모이고 있다.
이 자유로운 공간을 통하여 고미숙은 새로운 방식의 공부하기,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를 실천 중이다.



- 권보드래(이하, 권): 수유연구실은 어떻게, 왜 만든 거냐?

- 고미숙(이하, 고): 다른 길이 봉쇄돼 있으니까 그런 거지. 처음부터 불만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 권: 어쨌든 당신은 한국 고전문학 연구자이자 문학평론가니까, 봉쇄라는 말도 그 맥락에서 해석해야겠지. 교수가 될 수 없었다는 뜻?

- 고: 그렇지.

- 권: 조금 자세히 얘기해 보자. 박사학위를 받은 게 1994년이었다고 알고 있는데.

- 고: 2월에 고려대에서 학위를 받았고. 이듬해부터 한 2년 간 교수되려고 열심히 노력했는데, 뜻대로 되질 않았다. 여기저기 원서 내고 면접보고 그랬지만 길이 열리지 않았지.
한번 면접을 보고 돌아올 때마다 엄청난 모멸감에 시달렸다. 누군가의 무시를 받아서가 아니라, 스스로 너무도 초라했기 때문에.
면접을 보고 돌아와선 1주일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고. 한 2년쯤 그렇게, 모멸감에 진저리내면서 살았다.

- 권: 그러다 교수 아닌 다른 길을 찾기로 결심한 건가?

- 고: 계산을 했지. 내 행복지수를 표준으로 해서. 이런 모멸을 맛보면서 굳이 교수되려고 애쓰는 까닭이 뭐냐? 연봉 챙겨먹으며 살 수 있다는 게 유일한 동기더라고. 그게 행복지수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건지 따져보고, 교수되지 않고는 먹고 살 능력이 없는지 따져보고, 그러니까 금방 답이 나온 거지.

- 권: 그래서 수유연구실을 차렸다?

- 고: 처음엔 차리고 자시고 있었나 뭐. 그저 개인 연구실을 내고 같이 공부할 사람들과 어울렸다 뿐인데. 사람들이 늘어나고, 어쩌다 보니 강좌를 열게 되고, 그 덕에 사람들이 또 늘어나고 하면서 여기까지 온 거지.

그건 그렇다. 지금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 대개는 그저 '수유연구실'로 알려져 있는 공간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아무도 이걸 기획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고미숙이 교수되겠다는 생각을 접고 수유리에 제법 널찍한 사무실을 잡은 것은 1997년 여름이었다. 처음부터 아무도 막질 않았고, 들르기만 하면 방도 너른데 좀 나오라고 붙들었으므로, 자연히 사람이 불었다. 갖가지 해괴한 발상 끝에 연구실 이름을 '수유연구실'이라 짓고 정식으로 문을 열 때는 함께 모여 기념 심포지움을 여는 유쾌한 행사까지 벌였다.
그렇지만 이때까지는 나그네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남의> 연구실에 짐을 풀기는 개운찮은 일이었으므로, 1주일에 한두 번 얼굴 비추는 것으로 인연 맺은 사람들이 많았다.

- 권: 서울사회과학연구소와 연결되면서 사정이 달라진 건가?

- 고: 그렇다. 서사연 철학 강의에 다니다가 서로 안면을 익히기 시작했고, 수유연구실에 출입하는 사람만으로도 숫자가 찰 것 같아 수유리에서 강의를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다 보니 서사연 사람들 중에서도 수유연구실에 나오는 사람들이 생기고, 일부가 아예 활동 공간을 옮기게 됐다. '연구공간 너머'가 생겨 공존하게 된 셈이랄까. 98년 대학로로 옮기면서 전세금이며 운영비도 여럿이 형편껏 내기 시작했고.

- 권: 그래도 당신이 시작한 일이고, 당신 돈이 종자돈이 된 셈이다. 안 그런가?

- 고: 지금은 아니야. 몫돈으로야 내가 맡은 부분이 많지만, 운영비는 드나드는 사람들이 조금씩 챙기지. 세미나하러 드나드는 사람이 오륙십 되는데 세미나 회비로 한 달에 만원씩 내고, 회원으로 정착한 사람이 따로 내는 회비도 있고, 강좌 수익금도 있다.  

- 권: 돈 얘기…중요하지. 더 구체적으로 들려줄 수 있나?

- 고: 얼마 전 공간을 65평으로 늘려 이사를 왔는데, 이번 달 운영비는 250만원이 나왔다. 회원들 회비로 150만원쯤, 세미나 회원 회비로 50만원쯤, 그리고 강좌 수익금이다 이월금이다 하다 보니 어찌어찌 수지는 맞았어.

- 권: 안정적이진 않다는 얘기겠다.

- 고: 조건은 그때그때 바뀐다. 내가 걱정하는 건 돈이 아니라 이 공간에 계속 새로운 사람들이 모여들 수 있느냐이다.

- 권: 참, 수유연구실은 성원이 고정되어 있는 체제가 아니라고?

- 고: 맞아. 매주, 혹은 격주로 하는 세미나가 총 열 개쯤 되는데 그게 다 개방이야.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면 되고. 누구라도 이 공간에 머물러 자리를 차지하고 공부할 수 있다. 그런 흐름이 없으면 이 공간은 죽는 거니까.

- 권: 그럼 온갖 학교, 온갖 전공 사람들이 다 모여 있겠다?

- 고: 당연. 대학물 먹은 사람들이란 게 그나마 공통점이랄까? 그것도 뭐, 별로.

- 권: 수유연구실이 조금씩 소문나기 시작한 것 같은데… 특히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길 바란 건가?

- 고: 파문이라기보다…. 이런 공간이 많으면 좋겠지. 연구자들이 가서 자기 표현을 할 수 있고 같이할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공간. 미리 기획한 일은 아니지만, 지식인의 공동체? 꼬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으면 한다. 전위적인 지식인들이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대학원 나와서 교수되고 중산층으로 편입되는, 그런 삶을 살길 다 똑같이 바라진 않을 테니까. 지식인 사회의 희망이나 대안을 찾는다고나 할까.






2. 평범 속에서 나온 힘, 일상을 축제로


- 권보드래: 당신 얘기를 좀 해 보자. 교수되기는 완전히 포기한 건가?

- 고미숙: 음.

- 권: 국문과에서 박사학위 받고 나서는 다들 교수되는 길밖에 없는 줄 아는데, 쉬운 결정은 아니었겠다.

- 고: 여자라서 훨씬 쉬웠지.

- 권: ? 생활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단 말인가?

- 고: 그게 아니고. 만약 남자가 교수되길 포기하고 이런 길을 택했다면 말들 많았겠지. 말리는 사람도 많고. 박사학위 받으면 교수 돼야지, 이런 식의 고정된 정체성에서 벗어나기에는 여자라는 조건이 훨씬 유리하다.

- 권: 그런가? 꽤 능동적인 힘을 갖고 있어야 할 수 있는 말이겠지…. 만약 교수가 되었다면 어떻게 살았을 것 같나?

- 고: 비슷하지 않았을까. 학생들하고 세미나 하면서 살았겠지, 새로운 길을 찾으면서.



- 권: 함께 공부하는 걸 무척 즐기는가 본데.

- 고: 중학교 때부터 세미날 했으니까.

- 권: 으응? 중학교 때부터?

- 고: 강원도 정선, 광산촌에서 자랐는데, 거긴 농촌하고 다르다. 농촌이야 애들 할 일이 태산이지만 광산촌에선 애들 할 일이 없어. 그렇다고 딱히 공부를 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때 우리 집 다락방에 애들 모아놓고 같이 책 읽고 한시 외우고 했지.

- 권: 모범생 기질이었을까?

- 고: 아니, 선생들하곤 사이 안 좋았다. 그저 애들 모아 조기 청소도 하고, 축구도 하고. 정치에 관심이 제일 많았을 때도 그때다.

- 권: 특이하군! 왜 그리 공부에 관심이 많았을까?

- 고: 그때야 뚜렷하지 않았지만, 내 공부의 목표는 강한 인간이 되는 거였어. 어디에도 얽매이
지 않는 실존적 자유를 누리고 싶었고, 공부를 통해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 종교에도 관심이 많았다. 학부 때는 안 좇아 다녀 본 종교가 없다.

- 권: 그럼 맑시즘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된 건가?

- 고: 오랫동안 받아들이질 못했지. 본래 아프거나 고통받는 사람을 보면 잘 견디질 못하는 편이다. 그런 사람을 보면 내 몸이 아파온다. 그러니 계급투쟁의 구도에 적응하기 힘들었지. 무척 늦게, 88년이나 89년쯤 맑시즘을 받아들였는데, 고달팠던 개인사, 가난한 이들에 대한 공감 같은 게 그때 갑작스레 맑시즘과 접속됐거든. 그 후엔 과격한 맑시스트였지.

그 후에는 과격한 맑시스트였다… 그럼 어떻게 변화가 찾아왔느냐고 묻는 게 순서겠다. 이 몇 년 사이 고미숙이 쓴 글에는 푸코와 들뢰즈의 흔적이 완연하니까. 그렇지만 내가 정말 이런 걸 궁금해하는 건지, 그것부터 자신이 없다. 질문도 익숙하고, 답변 역시 익숙할 것만 같다. 그러니 이 질문은 잠시 미뤄두도록 하자.

- 권: 굴곡이 많았군. 그 속에서 당신의 힘 또한 형성된 건지. 수유연구실을 보면 놀라운 역동성과 개방성을 느낄 때가 있고, 그건 상당 부분 당신에게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평범한 자들이 걷기 쉬운 길은 아니지 않은가?

- 고: 나야말로 평범한데.

- 권: 평범하다고?

- 고: 감각이 없다는 말이 맞겠지. 평범하지 않다는 말, 주변에서 종종 듣는데, 정말이지 감이 없다. 결혼 생활도 극히 무난했고, 대학원에서도 아주 평범하게 지냈다. 대학원에서 공부 시작할 때 나보다 심한 깡통은 없었을 정도다.

- 권: 학부는 독문과를 나온 걸로 아는데, 그래서 그랬나? 그래도 학부 때 공부 훈련은 했을 것 아닌가.

- 고: 무슨. 독문과는 공부하곤 거리가 멀었다. 김흥규 선생 수업을 한번 듣고 국문과 대학원을 택하긴 했지만 국문학 지식이라곤 전혀 없었고. 졸업하고 1년 출판사 다니다가 대학원에 들어갔는데, 아는 게 없잖아. 텃세가 없었을 리 없고. 석사논문 쓸 때까지 고생 무지했다. 그렇게 겨우겨우 나간 건데, 도무지 뛰어난 구석이나 총기 같은 건 없었다. 믿은 건 오로지 지구력!

- 권: 지구력?

- 고: 그래, 그리고 새로운 걸 조금씩 알아갈 때의 기쁨. 그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이 살았는데, 평범하지 않다는 둥 하면 감이 없을 수밖에 없지.

- 권: 예외적인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나?

- 고: 없다.

- 권: 형이상학적 욕구가 강했다면서? 그건 곧 범속함을 초월하려는 욕구 아닌가?

- 고: 내 경우엔,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의 형식이었을 뿐야. 공감의 강도는 강했지만 실제로 고통에 함께 몸을 던진 경험은 없었다. 공장이나 감옥 근처에 가본 적도 없고. 평범하지 않다면, 교수되는 길을 포기하고 공동 연구공간을 마련하고 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이건 그저 <돈>을 함께 나누는 일이야. 돈이나 안락한 생활, 이런 데 별로 욕심이 없으니까 그냥 하는 거지. 세상을 위해서,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하는 일이 아니다.

- 권: 세상을 위해 이 정도의 희생은 해야지, 하는 사람은 하나도 놀랍지 않다. 그런 발상과 행동은 지극히 평범한 거다. 난 태연자약, 무심하게 자기를 던지는 사람이 신기하다. 당신이 신기한 것도 그 때문이고.

- 고: 글쎄, 그래도 내가 하는 일은 평범한 일인 것 같다. 어린 시절 참담했던 데 비하면 지금은 너무 평범하다. 재미있고.

- 권: 당신은 사실 전 재산을 털어놓고 있는 것 아닌가. 집 한 채 없는 신세라면서. 정년을 보장해 줄 교수 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식도 없잖은가. 뭘 믿고 그러는 건가?

- 고: 근데 정말들 경제적으로 불안한 건가? 먹고 살 만한 능력 있잖아?

- 권: 실제로 따져보면 불안할 이유가 없을지 모르지. 그럼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꼬박꼬박 월급 들어오고 나중에 연금 받아먹을 수 있다고 생각할 때의 안정감과, 계속 분주하게 몸을 움직여서 그때그때 생계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의 불안감.

전세가 바뀐 것 같다. 질문만 해 대던 편한 신세에서 갑자기 방어 태세로 돌입하려니 쉽지 않다. 그렇지만 공격수는 정말 궁금할 뿐이라는 투다. 공격수 고미숙, 자못 천진하게 물어온다. 다행히 자기 얘기로 돌아가면서.

- 고: 공부를 계속하면 능력은 더 커질 것 아닌가? 돈이 없다, 직업이 없다, 가족이 없다― 이런 말은 사실 현재를 걱정하는 말이라기보다 미래를 걱정하는 말 아냐? 지식인이라면 돈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 않나?  사업가라면 당연히 돈으로 자기를 표현해야겠지만, 지식인이 자기를 표현하는 경로는 다양하니까. 그리고 난 본래 물질을 욕심내는 회로가 없다.

- 권: 꼭 경제적인 것만 말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 수유연구실 드나드는 사람들이 언제까지 당신 곁에 있겠나? 불안하지 않은가?

- 고: 난 새로운 사람을 만날 거다.

- 권: 언제까지? 쉰 넘고 예순 넘고 칠순 넘기고까지? 당신도 벌써 마흔이 넘지 않았나.

- 고: 5년 이상 여기 돌보는 역할을 계속하진 않을 거다. 그 사이라도 사람들이 여기서 즐거움을 맛보지 못하게 되면 깨 버리면 그만이고. 여길 떠난 후엔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일을 할 거다. 혹 求道의 길을 걸으려나? 5년이면 나에겐 평생이다.

- 권: 당신이 말하는 역동성이 과연 시간을 이겨낼 수 있을까?

- 고: 시간을 이기지 못하면 혁명은 없다. 혁명은 일상을 극복할 때 온다. 일상 안에서 축제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일상을 축제화하지 못한다면 그건 혁명이 아니다. 길거리에서, 바리케이드 안에서 하는 혁명이 며칠 가겠나…
그런데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이런 말을 하기에는 너무 보잘것없다. 별것 아닌데 이론적으로 뻥을 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모르는 거다.
어떻게 계속 변화하면서 능력이 커질지― 그렇게 힘이 커지는 게 곧 혁명일 거다. 시간을 극복하는 것, 시간과 싸워 이기는 게 혁명 아닌가. 사랑도 그런 것 아닌가.

- 권: 난 시간과 더불어 성숙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 고: 그게 그 얘기다.

- 권: 반대되는 말처럼 들리는데?

- 고: 나한텐 아니다. 시간과 더불어 성숙하고, 더 많은 능력이 생기고 새로운 벗들이 생길 텐데 10년 후를 걱정하겠나? 게다가, 자식? 자식이 10년 후를 보장해 줄 수 있나? 20년 후에 친구가 될 것 같나? 난 그거야말로 허구라고 생각해. 자식과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일체감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자아가 생기면 각자 자기 길을 가야 한다. 어쨌든 내 팔자에 자식이 없으니까 종적인 연대감은 문제가 안 된다. 횡적인 유대가 관건인데, 친구는 어디서건 만날 수 있으니까.

- 권: 당신 모토는 사람인가?

- 고: 삶이겠지. 다 이렇게 사는 것 아닌가.






3. 괴물의 꿈틀거림 - 어떻게 살 것인가?




다들 이렇게 사는 게 아니냐고 하는데, 문득 답답해진다. 언제까지고 움직이고 있을 수는 없어. 언젠가 멈추기 마련이지. 썩기 시작하기 마련이라고. 조금씩 부패해 가는 노년에 대비하기 위해 다들 그렇게 안달하는 거야. 당신이 정말 마지막까지, 마지막 순간까지 행동하며 살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당신은 너무 외로워지지 않을까? 얼마나 성의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생각이 빠르게 머릿속을 오간다.
그러다 엉겁결에, 당신도 변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입 밖에 냈다. 역시. 고미숙은 피식 웃는다.  

- 고미숙: 그런 얘기하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많지 않은가. 벌써 40대인데. 난 극히 평범한 코스를 밟아왔다. 박사논문 쓸 때까지는 지금 여기저기서 교수하고 있는 사람들하고 똑같았다. 그러다 코스에서 배제되면서 달라진 거지. 그렇지만 이른바 정통의 코스를 가는 사람과 나 사이에는 종이 한 장 차이가 있을 뿐이다. 큰 차이가 아니다. 그래서 답답하기도 하지.
교수가 돼서 행복하게들 살면 좋겠는데, 내 눈엔 별로 그렇게 보이질 않아. 자유롭고 활기차기는커녕 잔뜩 찌들어 있지. 그건 삶의 욕망에 충실한 게 아니다.

- 권보드래: 자식도 있고 하면, 안정을 바라고 미래를 그리려는 욕심은 당연히 커지지 않을까.

- 고: 그럼 혈연이란 게 삶의 장애라는 얘기밖에 더 되나. 사랑은 기존의 삶을 벗어날 수 있게 해 주는 힘이어야 한다.

- 권: 자식에게 안정된 미래를 주고 싶어하는 게 문제란 말인가?

- 고: 그때 말하는 안정의 수준이 너무 높다는 거야. 자기가 정말 원하는 걸 자식을 위해서도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좋은 아파트나 좋은 직업, 정말 원하는 게 그건가? 자기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걸 자식에게 준다면 그건 사기다. 자본주의의 물상화된 삶을 자식한테 주면서, 자기는 꿈을 꾸겠다?

- 권: 그럼 어쩌란 말인가.

- 고: 기준을 바꾸면 자유로워진다. 여기, 수유연구실에선 내가 정말 원하는 걸 줄 수 있다. "나처럼 살아, 그럼 정말 행복해."라고 말해 줄 수 있다. 그렇지만 대학에서 지도학생을 대할 때라면? 순수한 지적 열정 외에 챙겨줘야 할 게 너무 많아지겠지. 너는 내 자식이라는 식의 감정으로.

- 권: 네게는 네 삶이 있다, 그런 자세를 갖는 것도 좋겠지. 그렇지만 쉬운 일이 아닌 게 분명하다.

- 고: 경제적으로 나누는 문제에서도 점차 경계를 넓혀가는 중이다. 그러다가도 한계를 느낄 때가 있지. 아끼는 후배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돈 백만원도 내놓기 어렵지만, 형제나 부모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백만원이고 천만원이고 내놓는다. 자식에겐 훨씬 더하고. 이게 대부분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가족과 공유하는 삶은 사실 별로 없는데, 그 경계만 넘으면 엄청난 벽을 쌓지. 전 세계 50억 대부분이 이렇게 산다는 건… 뭔가 비정상인 것 같아.

- 권: 수유연구실이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근거인가? 여기서도 떠나겠다면서.

- 고: 여기서 끝을 보겠다는 생각은 없다는 거지. 지금 이 순간에는 최선을 다한다. 전부를 투여한다. 미리 새로운 걸 계획하진 않는다. 이렇게 살다보면 또 새로운 게 나타날 테니까.

- 권: 당신이 떠난 후에도 이 공간이 유지될 수 있을까.

- 고: 바뀌겠지. 얼마 전 엘리베이터에 갇혀서, 어, 이렇게 죽을 수도 있구나 한 적이 있는데, 연구실은 별로 걱정되지 않았어. 내가 없어도 다시 새로운 힘이 채워질 것 같았다. 그럼 성공이고. 한두 명 사라졌다고 중단된다면 이 실험은 실패인 거다. 승부는 일단 2년 안에 날 거야. 뭔가가 생산될 거고, 거기서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기형이, 괴물이 나올 거다. 그럼 난 이 공간에서 자유로워지겠지.

- 권: 언제나 목표는 그거군. 자유로워지는 것.

- 고: 음, 그러면 또 새로운 일을 할 수 있겠지.

- 권: 외로울 때는 없나? 의심할 때는 없나?

- 고: 같이 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 싶을 때가 있지. 이 모든 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구나 싶을 때도 있고. 그럼 완전한 적막과 단절을 느낀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럴 때가 있어. 그렇지만 곧 같이 가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느낌, 유대가 견고해진다는 믿음이 생기니까 그 적막에서 벗어날 수 있다.






4. 와서 같이 놀자!


- 권: 요즘 써내는 글 보면 너무 쉽게 쓴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논문으로 발표할 때도 꼼꼼하게 실증하고 주 다는 게 거의 없고.

- 고: 박사논문 쓰고 평론 활동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내 글쓰기 방법은 기본적으로 정공법이었다. 성실하다는 인상을 쌓고 싶었고, 방어 욕구도 있었지. 나도 막 나가는 건 아냐, 아카데믹하잖아, 이런 식으로. 맑스 이후 푸코와 들뢰즈를 만나 자유로운 사유를 배우게 되면서, 또 1백년쯤 묵은 근대 계몽기의 글쓰기를 공부하면서 달라졌지.

- 권: 푸코나 들뢰즈의 영향이 그만큼 강했던 건가?

- 고: 맑스 이후에 새로운 사랑이 가능하다는 게 중요했어. 90년대 들어 포스트모더니즘 운운할 때도 난 『자본론』을 읽고 루카치를 공부하고 있었다. 인간으로 돌아가자는 식의 얘기도 들렸는데, 나로선 그건 맑스를 만나기 이전으로 돌아가잔 얘기였다. 거꾸로 갈 測?없었다. 그러나 푸코나 들뢰즈를 보고 다시 흥분을 느꼈다.



- 권: 맑스에 대한 사랑은?

- 고: 맑스야 지금도 사랑하지. 맑스주의로부터의 이탈이라고 해도 좋고 뭐라 해도 좋은데, 혁명의 방식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을 뿐이다. 80년대에 구상했던 혁명은 내게 잘 맞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결국 거리로 나가 바리케이드 치자는 주장이었으니까. 나는 지식을 통해, 지식인으로서 혁명을 하고 싶다. 일상 속에서, 일상의 축제화를 통해 기존의 가치에서 이탈하는 혁명을 하고 싶다. 이런 혁명이 없으면 정치적인 체제 변화가 내 삶에 무슨 변화를 줄 수 있나?

- 권: 정치야 삶의 근간 아닌가.

- 고: 정치적 혁명이란 노동자를 중산층으로 만들자는 얘기 아냐? 나는 지금 내 능력으로 체제 전복을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찾는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혁명을 통해 새로운 가치와 관게를 만드는 거지. 그렇게 믿는다. 아니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이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니까. 다 자기가 즐거워하는 일을 하는 것. 자기 욕망과 능력을 가깝게 일치시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혁명이다.

- 권: 당신 자신의 이름으로 뭘 남기고 싶진 않나?

- 고: 글에 대해서도 <내 것>이라는 느낌이 별로 없어. 내 생각이 계속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가는 과정이 행복하고. 내 의견을 지켜야 한다든가 반박당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없어졌고. 학자로서의 이력을 쌓는 데도 미련 없다.

- 권: 그럼 당신에게 글쓰기의 의미는?

- 고: 사람들을 격발시키고 나아가 변화시킬 수 있다면 행복할 따름이다.

마음을 다잡아도 별 수 없다. 난 어느덧 경청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맑스에서 푸코로 들뢰즈로, 하나의 고미숙에서 또 다른 고미숙으로― 그 과정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시비 걸고 싶지가 않아졌다.
고미숙이라는 사람과 말을 섞고 있다 보니, <인디애나 존스·2>의 한 장면이 머릿속에서 반복된다. 멋지게 터번을 두르고 휘황하게 칼 돌리고 있는 아랍인. 인디애나 존스는 잠시 갸우뚱 그를 바라보다가, 역시 갸우뚱한 표정으로 권총을 꺼내 쏜다.  혹은 신일숙의 만화 <리니지>에 나오는 행운의 마법사는 어떤가. 일껏 벼른 회심의 일격을 날릴 때마다 이 마법사는 땅에 떨어진 동전이라든가 길가에 열린 탐스러운 열매를 발견해 내곤 한다. 천진하게 허리 굽히고 길가를 향하는 동작이 無雙의 수비가 되고, '응? 급소가 바로 저긴데?' 하는 갸우뚱한 표정이 최고의 秘急이 된다.
이 天衣無縫의 공격수를 내가 어찌 감당하랴. 그저, 쓸데없는 걱정이나 해 보는 수밖에.

- 권: 돈은 어떻게 버나.

- 고: 매번 다른데. 글쓰고 강의하고, 요즘은 연구원이라는 명목으로 벌고. 이번 학기는 한 달에 150쯤? 원고료는 제때 들어오는 게 별로 없지만 합치면 170쯤? 예전에 많이 벌 때는 많이 벌었지. 지금 그거 쓰고 있는 거야.

- 권: 자기 자신을 잘 아는 편인가?

- 고: 글쎄. 자기를 잃어버림으로써 자기의 본래 면목을 본다는 말 있잖아. 저자거리에서 禪하는 거다. 사람들과 어울려야 자기를 볼 수 있고, 벗어날 수 있다. 나도 여기서 자꾸 나를 보게 된다. 안 좋은 모습도 보고 뜻밖의 능력도 보지.
고립해서 보는 자기란 허상이다. 그러나 공식적인 관계나 가끔 만나는 관계에서는 자기를 비춰볼 수가 없다. 일상을 공유해야 모르는 새 자기가 드러난다. 어떤 사람의 미덕이나 문제점을 아주 짧은 시간 안에 확인할 수 있다.

- 권: 어울릴 줄 알면 되겠나?

- 고: 일단은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게 중요해. 다른 사회적 가치나 관습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좋아하는 일을 찾고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 권: 당신처럼 살고 싶어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할 말은?

- 고 : 그냥, 와서 같이 놀자!




정리, 대담 : 권보드래(bdr0047@yahoo.co.kr)







No
Subject
Name
Date
Hit
5170    [특별인터뷰]아나키스트 활동가 ‘그레이버’ [1] 2009/07/22  2110
5169    3회 이주노동자 영화제 오늘부터 서울 조계사에서 열립니다 돕헤드 2008/08/08  2108
5168      [re] ㅎ 교환가치에 관한 내 생각 [2] 화두가 머죠 ㅎ? 2004/07/06  2108
5167    베이징 올림픽 성화 꺼졌다. 노원 2008/04/09  2107
5166    여기 써도 될런지 모르겠지만..... [2] 할리퀸 2008/12/11  2106
5165    Ebonics [1] dope 2002/01/09  2106
5164    읽고 조금만 생각해 주세요. [3] 멍청이 2002/02/16  2103
5163    [오마이뉴스]'아! 김형율' 추모 원폭영상제 열린다 보스코프스키 2008/08/12  2102
5162    중앙대학생들: 아나키즘 동아리를 조직합시다 [1] 김승현 2008/09/12  2100
5161    녹색평론과 아나키즘 중독자 2002/01/18  2100
5160    게시판만 들어오면 바이러스가.... [580] b 2008/04/28  2098
5159     SAT(아나키에스페란티스토들)의 이라크 반대 성명 [1] Esperanto 2003/02/26  2098
5158    직장인 인생 [1] uhhm 2009/06/29  2093
5157    짜르방~ (2) 문화파괴 2010/04/16  2090
5156    [안내] 이번 토요일 대학로 살바에서 열 예정이던 여고생해방전선 공연 취소 [2] dope 2002/06/19  2089
5155    심층생태학(Deep Ecology) or 이문재와 김지하의 대담 [2] 아낰 2004/05/24  2088
5154    방금 신촌로타리에서 돌아왔습니다 [7] 돕헤드 2008/05/26  2084
5153     아나키의 여름 행사말인데여..... [2] ★스치는별 2002/07/10  2083
5152    학벌 컴플렉스 [5] 인드라 2004/05/25  2082
5151    반항할 때 행복하다 - 볼리비아의 여성주의 아나키스트 그룹 '무헤레스 크레안도' 돕헤드 2008/12/14  2081
5150    한국징병제와 인권문제 그리고 관계하고 있는 일본 [7] kimbros 2007/07/31  2080
5149     [퍼옴] 팀 로빈스 : 내가 '진보적 독자후보'를 지지한 이유 [6] Funkadelic 2002/12/27  2078
5148    우직한 바보 국가를 거스르다-하승우 [4] 달팽이 2008/08/08  2077
5147    빅토르 하라 [1] dope 2002/03/13  2077
5146    군대반대자유게시판에서'군대안갈래'라는느자구에게 eclipse 2002/02/04  2077
5145    4회 이주노동자영화제 [3] uhhm 2009/07/20  2076
5144    2009 cold play uhhm 2009/06/27  2075
5143    [네이트도서]세 깃발 아래에서 - 아나키즘과 반식민주의적 상상력 [1] 보스코프스키 2009/09/01  2074
5142    [노이에자이트]스페인 내전 등 DUO 보스코프스키 2009/05/18  2074
5141    cookbook version 5 일것입니다. cookbook 2003/06/24  2072
5140        [re] 갑자기 실례지만.. [4] Isie 2009/08/01  2071
5139    필요한 것은 이라크 파병이 아니라 미국 파병 [1] 혹시 2003/09/18  2071
5138    인터뷰/사회당 김영규 대표 ‘민노당은 보수 제3당이다’ [21] 돕헤드 2002/08/15  2069
5137    [레프트21]좌파의 관점에서, 좌파를 위해 글을 쓴 작가 보스코프스키 2010/02/01  2067
5136    그리스 연대 시위 12월 24일에 하는 것이 어떨까요 [5] 돕헤드 2008/12/17  2065
5135    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4] ... 2002/02/02  2065
5134    [참세상뉴스] 발전노조 이호동 위원장 연행 dope 2002/06/26  2064
5133    히야 명쾌하다. 언제봐도. [3] 개구멍 2004/07/02  2061
5132    짜르방~ [1] 문화파괴 2010/04/02  2060
5131    갑자기 실례지만.. Isie 2009/07/31  2060
Prev [1][2][3][4][5][6][7][8][9][10][11] 12 [13][14][15]..[141] Next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lifes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