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클랜 게시판/링크/물물교환/파일공유/아나키즘 읽기자료
잡민잡론잡설/안티 다국적기업/관리자방/English

아나키즘저널발행준비위원회/투쟁과집/투쟁과밥/군대반대운동
아나키FAQ번역프로젝트/재활센터/여고생해방전선/전쟁저항자들

View Article     
Name
  . 2004-07-13 02:17:50, Hit : 1979
Subject   영덕의 농사짓는 찰학자 정상묵씨
영덕의 농사짓는 찰학자 정상묵씨 | 귀농을 품다  2004/05/11 01:34  

http://blog.naver.com/idxbi/80002338154

[이 사람이 사는 이야기] 영덕의 농사짓는 찰학자 정상묵씨
[사회] 2002년 01월 16일 (수) 11:05

사람들은 정상묵씨(42)를 ‘농사짓는 철학자’라 부른다.그는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지만,그가 걸어온 ‘이력’을 세속의 방식으로 요약하면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81년 모 지방 명문고를 졸업한뒤 고려대 건축과 입학.2년후 자퇴,방위 입대.재수 끝에 86년 감리교신학대학 종교철학과 입학.결혼을 위해 90년 출판사 입사한뒤 1년만에 결혼에 성공하고 퇴사. 91년 경기도 양주 풀무원 신앙공동체 들어갔으나 유기농법과 공동체 방향에 대한 입장 차이로 풀무원을 나와 두레마을(한응수목사)로 옮김. 6개월 뒤인 93년 강원도 화천에서 농사 시작.2000년 10월 현 거주지인 경북 영덕 산골로 이주.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멀었다.대구∼춘천간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됐다고는 하지만 서울에서 몇개의 고속도로를 갈아타고 7시간여만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경북 영덕군 지품면 용덕2리.주왕산 주봉 왕거암 자락이 동쪽으로 20여km 흘러내린 산골이다.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봉우리들이 만나 만들어내는 뽀족한 세모 모양 만큼만 하늘이 뚫려있었다.

마을에서 산길로 차를 몰아 10여분을 더 오르니 민가가 딱 두 채 나온다.한 채는 정씨 집이고 다른 한 채는 팔순의 노인 부부 집이다.정씨는 이 외딴집에서 노모(80)와 아내 김미경씨(35),한솔(11)·한빛(8)·한샘(5) 세 아들과 산다.집주인이 포항에 나가 사느라 버려진 집이었는데 1년에 집세로 3만원을 내기로 하고 둥지를 틀었다.집 뒷편 댓숲으로 한겨울 칼바람이 매섭게 몰아치지만 정씨집 구들은 설설 끓고 있었다.

“농사짓는 철학자라…쑥스럽네요.기자 양반이 이렇게 먼길을 발품 팔아 찾아올만한 사람이 못되는데요.요즘 생활이란 게 그렇잖아요.더 많이,더 빨리…저는 그렇게 사는 게 자신도 없고 의미도 못찾겠더라고요.해뜨면 나가서 일 하고 해 지면 들어와 몸을 뉘고,아이들과 놀고 책 읽으며 사는 게 얼마나 ‘호사’스럽습니까.그 호사 한번 누려보고 싶어서요.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드니 결코 도피는 아니지요”

누군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을까.그러나 그동안 세상과 맺은 ‘끈’ 때문에 심신이 지쳐가면서도 하루하루 부대끼며 살고 있는 저 ‘아랫마을’ 사람들이 오버랩된다.정씨가 일찌감치 이런 생활을 결심하게 된 동기가 궁금했다.

정씨는 평온한 표정으로 느리게 말문을 틔워갔다.“고대 다닐 때 우연히 접한 함석헌 선생 글을 보고 제 인생이 바뀌었지요.대신동에서 열리던 퀘이커교도 모임에 나가 함선생을 직접 접하면서 그의 사상과 세계관에 빠졌고,기독교의 참 모습을 만났습니다.건축과를 나오면 갖은 고생하면서 저를 뒷바라지 해온 어머니에게 보람을 드릴 수야 있겠지요.그러나 제가 갈 길은 아니더군요.앎과 삶의 괴리를 최소화하려면 농사지으며 사는 게 가장 정직한 길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정씨는 인도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자퇴하고 방위로 병역을 마친 뒤 감신대에 입학,기독교를 바탕으로 여러 종교에 대한 공부를 했다.그러나 농사지으려는 사람에게 시집올 사람을 찾기가 어디 쉬운가.정씨는 출판사에 ‘위장취업’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노동운동 하느라 위장취업 하던 시절인데(웃음)…국민서관이라는 출판사에 들어갔지요.직장이라도 있어야 결혼하지 누가 농사짓겠다는 사람한테 오겠어요? 거기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는데 사귀어보니 뜻을 같이 할 수 있겠더라고요.같이 퇴사하고 원경선 선생이 하던 풀무원 공동체에 들어갔습니다”

그의 아내 김미경씨는 전북 군산 출신으로 한신대 국사학과 87학번이다.아내 역시 도회지에서의 삶에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던 터라 산골에서 농사짓고 사는 삶이 고생스럽기야 하겠지만 큰 고민없이 동의했다.

“유기농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겠다고 했으면 동의하지 않았을 거에요.사람이 살아가야 할 도리를 얘기하는 데 마음이 울렸지요.물론 도회지 아파트생활에 비하자면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지만 다 습관 문제에요.불과 20∼30년전만 해도 다들 이렇게 살았잖아요?” 아내 김씨의 말이다.

정씨네 집은 전형적인 재래식이다.아궁이에는 커다란 무쇠솥이 2개 걸려있고 장작불로 방을 덮힌다.물론 부엌에 수도꼭지도 없다.화장실은 일명 ‘푸세식’.정씨 내외가 기른 푸성귀로 차려진 밥상은 정갈하고,인공감미료가 없는 음식은 그러나 달디 달았다.상을 물리니 정씨가 산을 헤매며 구한 약초를 가마솥에서 은근한 불로 온종일 울궈냈다며 약초차를 내민다.씁쓸한 차에는 약기운과 함께 산 냄새가 담겨있다.

“도시에서 살다가 귀농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뭔 줄 아세요? 수세식 화장실에 입식 부엌,기름보일러로 고치는 겁니다.농촌이라고 편하고 따뜻하게 살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생명 살리는 유기농 하겠다면서 수세식으로 바꾸는 것은 모순이지요.동네 물과 개울이 오염되는 것은 물론,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비료를 물에 흘려보내버리는 것 아닙니까? 황토와 구들이 몸에 좋다고 도시에선 몇백만원씩 들여 황토매트다 적외선 찜질방이다 법석인데 왜 여기까지 와서 그렇게들 하는 지 이해가 안가요”

사는 방식을 남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애들을 강남 유명학원에 안보내면 큰 일 나는 것처럼 난리들인데,제발로 교육과 문화의 기회가 척박한 농촌에 들어와 살면서 난방이나 목욕 취사 같은 기본적 일상생활을 좀 편하게 하고 살겠다는 것도 나름대로 충분히 일리가 있을 터이다.

“편하게 살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고요,주변 환경에 어울리는 범위 안에서 편함을 구하자는 것이지요.저는 반문명주의자가 아닙니다.문명의 이기를 최소한으로 줄이면 손과 발이 부지런해지고,그러면 부질없는 욕심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현대는 음식물만 과영양상태가 아니라 문명의 편리함도 차고 넘쳐 병이 되는 세상 아닌가요?”

얘기가 길어질수록,비슷한 시절에 태어나 비슷한 교육을 받은 또래와 함께 하고 있다기 보다는,도인이나 수행자 또는 월든 호숫가의 헨리 데이빗 소로(‘월든’ ‘시민불복종’의 저자.하바드대 졸업후 월든 숲속에서 은둔생활)를 마주 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제대로 된 유기농을 통해 생산자는 적정한 보상을 받고 소비자도 건강한 먹거리를 섭취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지요.그러나 지금 상업적으로 유기농을 하고 있는 곳 중에서 ‘비양심적’인 일을 하는 곳이 의외로 많습니다.쉽게 말하자면 생명운동 차원에서 시작한 일인데 수요가 급증하고 돈이 되니까 ‘사업’이 돼버렸다는 겁니다.상업화 자체는 나쁜 게 아니지만 상업화는 반드시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게 되고 그러자면 그른 일도 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정씨는 농사를 짓되 잉여나 축적을 추구하지 않는다.자연으로부터 최소한의 것만 얻고 나머지는 다시 자연으로 돌려주자는 것이다.일가족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얻기 위해 농사를 짓고 품을 팔 따름이다.

“화천에 있을 때는 밭농사를 3000평가량 일궜고 지금은 1000평쯤 짓고 있는데 버려졌던 땅이라 1000평도 힘에 부칩니다.건강보험료를 내거나 장을 보기 위해 약간의 현금이 필요하지만 그런 것들은 저와 아내가 품을 판 돈으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자급자족 합니다.그러니 축적을 위해 굳이 농사 규모를 늘릴 필요가 없지요”

한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막 이사왔을 때는 집배원이 정씨네 우편물을 아랫마을 이장집에 던져놓고 갔다.그러다 이들의 출신학교 동문회 같은 데서 보낸 우편물을 보고는 한참을 걸어올라와 직접 주고 간단다.마을에서도 처음 한동안은 정씨가 해소 기침을 해대는 것을 보고는 요양하러 들어온 사람들로 짐작하고 곁을 주지 않았으나 1년쯤 겪어본 뒤로는 오해가 많이 사그라들었다고 한다.

아이들의 장래나 교육 방침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찾아 나서겠다고 하면 그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때가 되면 자식이 부모 품을 떠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고….남을 쓰러뜨리기 위한 ‘강남식 교육’은 수능점수는 올릴 지 몰라도 결코 창의적인 아이를 길러내지는 못합니다.제 아이들이 이른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수단은 조금 떨어질 지 몰라도 앞으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와 창의력은 이 자연 속에서 충분히 키울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장성한 뒤 대처로 나간다면 당연히 보내는 것이지요”

자리를 털고 일어설 무렵,정씨 세 아이들이 썰매를 탄다며 집앞 얼어붙은 개울로 우르르 몰려나가고 있었다.


>소비자운동가의 귀농 13년’이순로씨
>
>
>
>홍천에 다녀왔습니다. 소비자운동가에서 농사꾼으로 변신해 첩첩산중으로 들어가 산다는 이순로씨(62)를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몇개인지 셀 수도 없을 만큼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비탈길을 덜컹대며 올라가서야 이씨의 집앞에 다다랐습니다.
>
>
>
>서울 토박이에다 ‘전직 운동가’라는 말을 듣고는 선입견도 가졌던 게 사실입니다. 본업인 농사는 대충 짓고 자연의 섭리가 어떻고 하며 말로만 떠드는 사람이나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
>아니었습니다. 밭일을 하다 달려와 저희를 맞아준 이순로씨는 영락없는 촌할머니였습니다. 작달막한 키에 ‘추리닝’ 바지와 고무털신 차림. 호미를 든 두툼한 손에는 먹물 대신 흙물이 꼬질꼬질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핫핫핫’ 하는 전원주 아주머니 비슷한 웃음을 만면에 퍼뜨렸습니다. ‘이순로씨’가 아니라 그냥 ‘할머니’로 부르는 게 더 낫겠습니다.
>
>농사를 짓고, 먹고, 씻고, ‘싸는’ 일까지 할머니의 모든 일상은 생태친화적 삶 그 자체입니다. 독성 있는 물질은 절대 쓰지 않고, 어느 것 하나 그냥 버리는 법이 없습니다. 농가를 개조한 할머니의 집 앞뒤로 펼쳐져 있는 밭에는 배추와 콩, 옥수수, 팥, 호박 등 수십가지의 채소와 곡식들이 농약이나 비료 없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
>음식을 조리하는 숯은 온돌방을 데운 장작이 타고 남은 것들입니다. 남은 음식은 퇴비로 쓰입니다. 설거지나 빨래, 세수를 하는 물은 계곡에서 끌어다 쓰고, 남은 물도 전부 밭에다 댑니다. 빨래도 세제 없이 물로만 하다보니 옷에는 누런 흙물이 가시질 않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이건 결코 더러운 게 아니다”라며 되레 자랑스레 말씀하십니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분뇨는 숯을 태우고 남은 재와 톱밥과 섞여 다시 밭에 뿌려집니다. 뒤처리도 표백제 들어간 휴지 대신 칡 잎이나 느릅나무 잎으로 대신하죠.
>
>새벽 4시쯤 산새 소리에 눈을 뜨며 시작되는 할머니의 하루는 종일 일로 시작해 일로 끝납니다. “신선놀음한다고요? 이 일 해보세요. 아침부터 눈코뜰새 없이 일만 하다보면 밥먹는 일도 잊어버려요. 딴 생각하거나 한눈팔 틈이 없어요. 한여름 대낮에 밭일 한번 해봐요. 숨이 턱턱 막히지. 생명과 땅에 대한 깊은 애정이 없으면 이 일 못해요”.
>
>
>
>할머니는 원래 유기농산물 직거래 생활공동체인 ‘한살림’의 초대 이사장을 지냈던 분입니다. 41세때 남편과 사별하고 그냥 평범한 주부로 살아오던 할머니는 1987년 수입밀에 농약을 퍼붓는 모습을 담은 비디오를 접하고 충격을 받게 됩니다. 수입식품의 위해성을 깨닫고 환경을 죽이는 상업농에 대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 할머니는 주위사람들을 ‘의식화’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몇명만으로 구성된 소모임은 88년 한살림 공동체가 만들어지며 결실을 맺었습니다. 한살림은 지금 5,000명이 넘는 회원을 거느린 단체로 성장했고, 유기농산물을 중심으로 도시 소비자와 농민을 공동체로 묶어주고 있습니다.
>
>한살림 일에 열심이던 할머니는 89년 어느날 홀연히 산속으로 들어갑니다. 진로를 고민하던 아들 휘철씨(38)와 휘광씨(34)가 귀농을 결심했고, 할머니도 이에 동참한 것입니다. 한살림운동을 하며 목격한 우리 농촌의 현실과 유기농업의 어려움도 할머니로 하여금 스스로 농사꾼이 되기로 결심하게 만들었습니다.
>
>낯선 땅으로 들어온 이들. 처음 해보는 농사도 힘들었지만 할머니 가족을 괴롭게 했던 건 마을사람들의 따돌림이었습니다. ‘도시사람들이 한가해서 저런다’는 식의 곱지 않은 시선. 게다가 마을사람들에게 농약과 비료를 쓰지 말도록 설득하고 다녔으니 “농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잘난 체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도 당연했지요.
>
>할머니 가족들은 마을의 일원이 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면 수십m 밖에서부터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고 주민들의 대소사 때에는 궂은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서서히 사람들은 그들을 마을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 가족의 환경농업에 대해서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저녁때면 마을사람들과 벌어지는 술판에서 술에 취해 덩실덩실 춤을 추는 할머니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
>귀농 13년째. 이젠 일도 익숙해졌고 서서히 농사가 무언지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두 아들은 90년부터 산 하나 너머쯤에 ‘조롱골 농장’이라는 목장을 만들어 산양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농사를, 아들들은 양 사육을 맡고 있지만 할머니도 아들들을 도와 종종 녀석들을 돌봅니다.
>
>“산업사회 자체가 반생명적이잖아요. ‘죽음의 문화’를 나 하나부터라도 바로잡아나가자는 거예요. 모두가 귀농을 할 수는 없지만 각자가 세제를 덜 쓴다든지 유기농산물을 애용한다든지 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생활양식을 바꿔나가다보면 세상이 변할 수 있어요. 땅이 살고 농촌이 살고 사람들이 살아나요”
>
>할머니는 가끔 서울로 올라와 주부들을 대상으로 강연도 다니십니다. 사람들에게 환경친화적 생활양식을 전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서울로 와서 다시 소비자운동을 계속할 생각은 없다고 합니다. “운동은 젊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해야죠. 대신 저는 비어 있는 농촌이나 지키렵니다. 평생 여기서 살아야죠. 도시 사는 친구들은 나보고 심심해서 어떻게 사느냐고 그래요. 그래봐야 친구들에겐 백화점 가서 예쁜 원피스 하나 사는 기쁨밖에 더 있나요. 그런 건 내겐 정말 하찮아 보여요. 대신 이곳에서는 자연과 땅과 어울릴 수 있다는 엄청난 축복이 있잖아요”.
>
>헤어질 때 할머니는 또다시 특유의 웃음으로 우리를 배웅해주셨습니다. 그 웃음을 뒤로 하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서울 공기가 유난히도 탁하더군요.
>
>-[취재수첩]젖소는 개울이 더럽혀지죠…그래서 산양 키우기 시작했죠-
>
>이순로 할머니 댁에서 비포장길을 한참동안 걸어가면 ‘조롱골 농장’이 나옵니다. 할머니의 두 아들 휘철씨와 휘광씨 가족들이 산양을 키우는 목장이죠.
>
>할머니와 휘광씨가 먹이로 줄 전나무 가지와 볏단더미를 들고 나타나자 하얀 털의 산양들이 주위로 우르르 몰려듭니다. 퇴근길에 선물을 사온 아버지 곁에 몰려드는 아이들 같습니다. 양치기 개 ‘미키’도 신나는지 컹컹대며 이리저리 뛰어다닙니다. 먹이를 주는 할머니 모자의 얼굴에서는 흐뭇한 표정이 절로 묻어납니다. “자식들 밥먹이는 심정이나 마찬가지예요”.
>
>1989년 이곳에 내려온 할머니 가족들은 처음에는 젖소를 키웠다고 합니다. 헌데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배합사료를 많이 먹여야 하는 데다 소똥으로 근처 개울이 더럽혀지기도 했습니다. 자신들이 고집하던 환경친화적 삶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서 고민을 하던 중 산양을 키우는 것이 좋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산악지형에서 방목이 가능하고 환경에 끼치는 피해도 거의 없는 데다 칼슘이 풍부한 양질의 젖도 생산한다는 점에 착안한 것입니다. 90년 사육 시작 당시만 해도 90마리밖에 안되던 산양들은 이젠 2,000마리 정도로 훌쩍 늘어났습니다. 지금은 녀석들 대부분을 다른 농가에 분양하고 있습니다.
>
>산양유도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낯선 데다 판로도 마땅찮아 애를 먹었지만 지금은 주문자가 줄을 서 공급량이 달릴 정도입니다. 이젠 산양사육법을 배우겠다는 젊은이들도 종종 농장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할머니 가족들은 “농장의 규모가 커지더라도 환경과 어우러지는 한도에서일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
>/홍천/이호승기자 jbravo@kyunghyang.com/
>
>
>최종 편집: 2002년 03월 25일 17:31:03
>




No
Subject
Name
Date
Hit
5170    읽고 조금만 생각해 주세요. [3] 멍청이 2002/02/16  2021
5169    한국징병제와 인권문제 그리고 관계하고 있는 일본 [7] kimbros 2007/07/31  2016
5168    군대반대자유게시판에서'군대안갈래'라는느자구에게 eclipse 2002/02/04  2015
5167    자전거 행진 [2] 김승현 2008/08/09  2014
5166     SAT(아나키에스페란티스토들)의 이라크 반대 성명 [1] Esperanto 2003/02/26  2008
5165    Ebonics [1] dope 2002/01/09  2008
5164    [특별인터뷰]아나키스트 활동가 ‘그레이버’ [1] 2009/07/22  2007
5163    [안내] 이번 토요일 대학로 살바에서 열 예정이던 여고생해방전선 공연 취소 [2] dope 2002/06/19  2007
5162    군대 반대 논쟁.. [8] 아낰 2004/02/18  2006
5161    인터뷰/사회당 김영규 대표 ‘민노당은 보수 제3당이다’ [21] 돕헤드 2002/08/15  2006
5160    히야 명쾌하다. 언제봐도. [3] 개구멍 2004/07/02  2004
5159              [re] 대북전단 관련한 논제 박훈인 2011/06/05  2003
5158    0 a 2008/08/06  2003
5157    여기 써도 될런지 모르겠지만..... [2] 할리퀸 2008/12/11  2001
5156    학벌 컴플렉스 [5] 인드라 2004/05/25  2000
5155    필요한 것은 이라크 파병이 아니라 미국 파병 [1] 혹시 2003/09/18  1997
5154    cookbook version 5 일것입니다. cookbook 2003/06/24  1997
5153    중앙대학생들: 아나키즘 동아리를 조직합시다 [1] 김승현 2008/09/12  1996
5152    방금 신촌로타리에서 돌아왔습니다 [7] 돕헤드 2008/05/26  1996
5151    빅토르 하라 [1] dope 2002/03/13  1996
5150    한겨레21 펌) '노조탄압 한수 배우시죠' [1] 빨갱이 푸른하늘 2003/07/26  1993
5149    베이징 올림픽 성화 꺼졌다. 노원 2008/04/09  1992
5148    게시판만 들어오면 바이러스가.... [580] b 2008/04/28  1988
5147    [격주간 다함께]여전히 강력한, 그러나 위기를 겪는 조직 좌파 - PD 일부 계열의 아나키즘 관 등?? [10] 보스코프스키 2008/03/02  1985
5146    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4] ... 2002/02/02  1984
5145    [네이트도서]세 깃발 아래에서 - 아나키즘과 반식민주의적 상상력 [1] 보스코프스키 2009/09/01  1983
5144    반항할 때 행복하다 - 볼리비아의 여성주의 아나키스트 그룹 '무헤레스 크레안도' 돕헤드 2008/12/14  1983
5143     [퍼옴] 팀 로빈스 : 내가 '진보적 독자후보'를 지지한 이유 [6] Funkadelic 2002/12/27  1983
5142    직장인 인생 [1] uhhm 2009/06/29  1981
5141    非戰 非美 非자본 비폭력...풍동안의 팔루자 팔루자 안의 풍동 퍼포먼스 [2] 노마드 2004/05/13  1980
     영덕의 농사짓는 찰학자 정상묵씨 . 2004/07/13  1979
5139    혁명가와 정신분열환자 [21] blackanarchy 2002/11/28  1979
5138    일상을 축제로(수유 + 너머 펌) [1] 아낰(펌) 2004/02/16  1976
5137    [모에 해방전선]기독교와 파시즘 보스코프스키 2007/08/05  1972
5136    우직한 바보 국가를 거스르다-하승우 [4] 달팽이 2008/08/08  1971
5135    [펌] 초임 의무전투경찰순경 인사발령(제820기) dope 2002/06/19  1971
5134    내가 생각하는 아나클랜 최고 미녀 리스트! [7] 2002/09/29  1970
5133    [노이에자이트]스페인 내전 등 DUO 보스코프스키 2009/05/18  1968
5132    [참세상뉴스] 발전노조 이호동 위원장 연행 dope 2002/06/26  1967
5131    그리스 연대 시위 12월 24일에 하는 것이 어떨까요 [5] 돕헤드 2008/12/17  1964
Prev [1][2][3][4][5][6][7][8][9][10][11] 12 [13][14][15]..[141] Next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lifes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