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클랜 게시판/링크/물물교환/파일공유/아나키즘 읽기자료
잡민잡론잡설/안티 다국적기업/관리자방/English

아나키즘저널발행준비위원회/투쟁과집/투쟁과밥/군대반대운동
아나키FAQ번역프로젝트/재활센터/여고생해방전선/전쟁저항자들

View Article     
Name
  돕헤드 2004-11-29 11:33:44, Hit : 1468
Subject   천황제와 군사주의
얼마 전 일본에 다녀왔다.
5일 동안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일본에 간 이유는 일본의 아나키스트들, 자율주의자들, 특정 분파에 속해 있지 않는 독립적 좌파 등등이 주최한 반전집회와 데모에 결합하기 위함이었다.

그날은 11월 20일 토요일이었는데, 행사 장소는 하라주쿠 역 근처에 있는 어느 구립회관이었다. 나는 오전에 일찍 숙소를 나서 신주쿠 역에서 내렸는데, 신주쿠 역에서 현대판 일본의 모습을 본 뒤에 하라주쿠 역까지 걸어가서 집회에 참가할 요량이었다.

신주쿠에서 하라주쿠까지 걸어가다보면 명치신궁(明治神宮)이라는 곳이 나온다.
일본 근대화의 서막을 알린 명치천황을 기념해 만든 곳이라고 한다.
명치신궁도 일종의 신사(神社)인데, 도교처럼 콘크리트 건물이 빼곡히 들어찬 도시에서 신사는 숲과 나무가 우거져 있어 일종의 허파 역할을 한다.
특히 명치신궁은 내가 가본 다른 신사들에 비해 그 규모가 훨씬 더 웅장하고 장대했다.

그런데 원래 나는 그 명치신궁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일본 천황제가 나쁜 것이야 다 알고 있었고, 굳이 없는 시간을 쪼개서 그놈의 천황 모셔놓은 곳을 들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침반과 지도를 들고 제일 빠른 길을 골라 걷던 나는 명치신궁을 거쳐가야 더 빨리 하라주쿠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민고민하다가 입장료가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 명치신궁으로 들어섰는데...

처음부터 장난이 아니었다.
그 신사가 뿜어내는 웅장하고 장엄한 분위기가 개인들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조용하지만 그 속에는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함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한 발 한 발 그 넓디넓은 신사를 통과해 가면서 어느새 나는 까닭모를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두려움마저 불러 일으키는 남성적인 엄숙함과 감히 함부로 머리를 들 수 없도록 만드는 신성한 권위.
이것이 그 신사 안에 깃들어 있었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천황을 향한 조아림이 느껴지고 있었다.
조그만 돌멩이 하나 하나에 권위에 대한 복종이 베어나오고 있었다.

아, 이것이 바로 천황제의 본질이구나!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파시즘이 시작된 것은 겨우 20세기 초반이지만 몇 천년의 역사를 가진 일본의 천황제야 말로 파시즘의 원형이었구나!
천황제는 일본인들로 하여금 일상 생활에서부터 상하관계를 유지시키고, 권위에 복종하는 마음을 자리잡도록 한 원흉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사실이구나!

아, 이미 죽어버린 천황이 나도 모르게 머리를 숙이도록 만들 정도라면 말 다하지 않았나.
눈물은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 이후 현인신으로서의 천황의 권위가 되살아나고, 곧이어 천황의 군대를 만들었다.
이 천황의 군대가 아시아와 세계를 침략하여 죽인 사람들은 또 얼마인가.
몇 천만 명에 이르지 아니한가.
천황이 가진 신성한 힘이 일본을 지켜줄 것이라는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자신의 목숨을 투하한 가미가제(神風)들은 또 얼마였던가.

이 모든 것들은 천황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찌의 머리꼭대기에 히틀러가 있었던 것처럼, 천황제의 꼭대기에 천황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아직도(!) 앉아 있는 것이다.
새해가 되면 천황의 온화한 미소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일본인들.
자신도 모르게 상관의 말에 복종하고, 권위에 움츠려드는 일본인들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는 아직도 천황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천황을 중심으로 일본인 모두가 일사분란한 대오가 되어 합심하고 단결하여 마침내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의 폐허를 딛고 고도의 경제성상을 이룩할 수 있었다.
천황에게 머리를 조아리듯 가정에서는 작은 천황 아버지에게 머리를 조아렸고, 학교에서는 작은 천황 교장에게 복종을 다짐했으며, 직장에서는 작은 천황 사장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랐던 것이다.
만화로 배우는 진짜 일본 역사 '천황을 알아야 일본이 보인다(세계인 刊)'를 보면 이 점을 더 생생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도 이런 천황제가, 일본처럼 제도로 남아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남아 횡행하고 있다.
일본의 천황제가 일본인들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얼마나 훌륭한 제도였는지 알아챈 사람은 맥아더뿐만이 아니었다.
(맥아더는 전후 일본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구심점이 필요하다고 보고 첫번째 전범인 천황을 그대로 살려두었다.)
천황의 군대에서 장교로 임관한 박정희 역시 그 점을 매우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스스로 천황의 자리에 오르기로 결심한다.
못사는 한국을 발전시키려면 최고 통치자를 정점으로 모든 국민이 피라미드 형태로 배열되어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 통치 아래 한국에서 충성과 복종은 최고의 가치가 되었다.
윗사람에 대한 존경심과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도록 매일같이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고, 애국조회를 하고, 교장의 훈시를 경청하고, 태극기를 바라보며 교과서를 읽었다.
모두 일본에서는 천황제 군대에서나 하던 일들이다.

일본에서 천황이 마음 속 깊은 곳에 남아있다면 그것을 뒤늦게 수입한 한국에서는 아직도 제도로 당당히 남아있는 것이다.

명치신궁에 들어선 내가 알 수 없는 눈물을 쏟으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바로 한국식 위계질서의 원형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일본과 한국이 이런 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정말 슬펐다.

일본에서는 상징으로 남아있는 천황제를 없애기 위해 많은 친구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물론 대다수의 일본 사람들은 천황제를 없애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 폐해가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한국에서 천황제의 폐해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곳은 군대다.
모든 사람이 평등해야 하는 민주주의와는 절대로 양립할 수 없는 곳이 바로 군대이다.
그런 군대의 가치가 한국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이것을 사람들은 군사주의라고 부른다.

한국인들의 일상생활에 뿌리박혀 있는 군사주의를 없애기 위해 우리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No
Subject
Name
Date
Hit
5130    촛불시위와 전쟁반대 [2] 아나르고 2003/02/08  1477
5129    촛불시위같이갈필요없다 [3] 붕어 2003/01/10  1406
5128    초이화평교회 아낰 2004/02/02  1474
5127    초록 바람이 불어요 兒樂喜 2004/04/21  2079
5126    초기화면 링크 교체요... 보스코프스키 2005/07/25  1377
5125    초 청 합 니 다 [4] 녹색정치준비모임 2003/04/12  1622
5124    체르노빌의 악몽을 잊지말자 돕헤드 2006/04/21  1441
5123    청춘의 도망 -으흠 uhhm 2009/09/13  2255
5122    청춘의 도망 uhhm 2009/09/13  2264
5121    청와대진격투쟁 12시50분 현재 상황 전철연 2004/09/11  1391
5120    청와대를 아이들의 놀이터로 만들어요 아낰 2004/04/20  1449
5119    청소년독립신문 바이러스라고 아나요? [5] 룰루 2003/04/22  1471
5118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학교 [1] 인권학교 2003/07/25  1445
5117    청년환경센터 회원이 됩시다! 청년환경센터 2003/05/30  1471
5116    청년학생들의 미대사관 진입시위와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 돕헤드 2003/03/26  1299
5115    청계천을 막지 못하다니 - 개발파쇼, 밀실행정, 환경미화 돕헤드 2003/07/01  1363
5114    청계천을 걸으며 [2] 빨갱이 2006/04/27  1444
5113    첫화면에 대해 [3] 2004/06/24  1404
5112    첫 글 [3] 몽환 2009/01/18  2053
5111    첨바왐바와 아나키즘 [2] 돕헤드 2004/11/02  1427
5110    첨 뵙습니다. [7] sk 2002/07/26  1634
5109    철학이 필요한 시대 A 2008/06/22  2822
5108    철학의 빈곤인가 일상의 부재인가. [2] 아낰 2004/04/08  1415
5107    철학사적인 질문하나 드리겠습니다 [4] 모가비 2009/12/26  2603
5106    철수한다 [1] 닥터 보스코노비치 2004/07/03  1477
5105    철민이에게 편지 보낼 주소... 나동혁 2004/01/05  1435
5104    철도. 아부지. [1] Ohho 2002/01/11  2174
5103    철거투쟁기금마련 파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1] 아샬 2003/12/24  1462
5102    철거민과 함께 [1] 오리대장 2004/05/27  1449
   천황제와 군사주의 돕헤드 2004/11/29  1468
5100    천천히 올라가는 음악 uhhm 2007/05/16  1332
5099    천주교신자 고동주, 평화운동가 오정록 병역거부선언 기자회견 병역거부자 2005/10/18  1444
5098    천성산 살리기, 도롱뇽 소송 100만인 서명운동에 동참하여 주세요~ 천성산 2004/06/22  1318
5097    천도 이전에 연방제 실시해야 [11] 지역분권 2004/06/15  1470
5096    처음뵙겠습니다. [6] 나루 2006/11/23  1934
5095    처음 [3] venuspluto 2002/12/20  1402
5094    책임감의 정도 [1] 바람돌이 2002/01/13  1715
5093    책: 한국 아나키즘 100년, 지은이 구승회 등등 김승현 2008/07/28  2508
5092    책 추천좀 부탁드릴께요. [5] 루시퍼 2003/10/28  1320
5091    책 <나는 지금 싸이질로 세상을 바꾼다>를 출간했습니다. 임승수 2007/07/12  1725
Prev [1][2][3][4][5][6][7][8][9][10][11][12] 13 [14][15]..[141] Next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lifes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