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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돕헤드 2008-03-10 17:31:41, Hit : 4035
Subject   루시 파슨스(Lucy Parsons)와 헤이마켓 아나키스트들 그리고 메이데이에 대하여
루시 파슨스(Lucy Parsons)와 헤이마켓 아나키스트들 그리고 메이데이에 대하여


루시 파슨스(1853-1942)는 산업자본주의의 모순과 억압이 가속화되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평생을 바쳐 빈민과 약자의 사회적 권리를 위해 싸운 아나키스트 투사이자 노동운동가였다. 루시 파슨스가 살았던 당시는 자본주의 철폐를 위해 투쟁하던 진보적 노동운동가들 역시 대부분 성차별과 인종차별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남성 운동가들조차도 여성이 있을 자리는 가정이라고 공공연히 말하던 시기였다. 루시 파슨스의 활동은 진본적(進本的, radical)일 수밖에 없었다.

1853년 미국 텍사스주에서 태어난 루시 파슨스는 아프리카계, 미국원주민계 그리고 멕시코계의 혈통을 모두 물려받았으며, 외형적으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가까웠다. 그의 부모들은 모두 노예였다고 한다. 당시는 아직 노예제도가 남아 있었으며, 남북전쟁을 벌이고 있었던 무렵이라 피부색이 진한 여성에 대한 차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루시는 노예여성이 받았던 억압에서 탈출하고자 멕시코계 성(姓)인 Gonzales를 사용하기도 했다. 짙은 피부색은 멕시코인들로부터 유래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말이다.

1870년 무렵 그는 이후 남편이 되는 앨버트 파슨스(백인)를 만나게 되고, 곧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결혼은 합법적인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법률은 백인들이 타인종과 결혼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흑백분리법안이 강력하게 실시되고 있던 미국 남부 텍사스에서 앨버트와 루시는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었다. 앨버트는 흑인참정권 운동을 펼치고 있었는데, 이것이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미움을 받게 된 것이다. 흑백 결혼 역시 백인의 순결한 핏줄을 더럽히는 일이라고 여긴 백인우월주의자들로부터 이들은 고문과 폭력의 위협에 시달렸고, 결국 다리에 총을 맞은 앨버트는 1873년 루시와 함께 텍사스를 떠나 시카고에 정착하게 된다.

시카고에 도착한 앨버트 파슨스는 시카고 타임스지의 인쇄공으로 취직을 한다. 당시 유럽 이민자들이 미국에 쏟아져들어오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노동자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고, 실업률이 치솟게 된다. 또한 유럽에서 태동한 아나키즘과 사회주의 사조가 미국으로 들어오면서 급진적 노동운동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여기에 마침 미국경제에 공황이 몰아닥치면서 1877년 여름 미국 역사에 기록될 정도의 큰 규모로 총파업이 일어난다. 임금삭감에 항의한 철도노동자들이 미국 전역에서 파업을 했고, 파업의 열기는 시카고로도 번진다. 시카고의 철도노동자들이 연일 경찰과 쫓고 쫓기는 파업투쟁을 벌이는 동안 앨버트 파슨스는 2만5천명이 모인 군중 앞에서 연설을 하며 일약 시카고 아나키 운동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이 일로 앨버트 파슨스는 해고되고, 요주의 인물 명단에 오르게 되어 직장을 구할 수 없게 된다. 루시 파슨스는 의류점을 열어 돈을 버는 한편 국제여성의류노동자연맹(ILGWU) 모임을 주최하면서 점점 적극적으로 정치활동을 벌이게 된다.

1883년에 루시와 앨버트는 다른 사람들과 힘을 모아 아나키스트들의 국제노동운동 단체인 국제노동자연합(International Working People's Association)을 창립하는데 공헌한다. 이 단체에서 발행하던 주간지인 The Alarm에 루시는 자신의 진본적 주장을 담은 정치칼럼을 정기적으로 기고한다. 여러 기고문에서 루시는 오직 직접행동만이 빈민과 노동자계급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고 썼는데, 직접행동론은 아나키즘의 고유한 투쟁방법이었다. 날카로운 정치평론과 조직활동으로 인해 루시는 앨버트보다 더욱 위험한 인물로 낙인이 찍히게 된다. 특히 여성들이 가정부로 머물러서는 안 되며, 주부의 역할을 거부하고 적극적으로 사회운동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루시의 주장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1886년 무렵이 되면 미 전역에서 노동운동이 들불처럼 타오르게 된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살인적인 노동시간 그리고 저임금에 항의한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집단행동에 나서게 된다. 이들은 5월 1일을 행동일로 잡았으며,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전략을 짰다. 미국 전역에서 35만명이 파업에 동참했고, 시카고에서는 4만명이 8시간 노동제와 임금삭감반대를 외치며 파업에 돌입했다. 이후 5월 1일은 노동자의 날이 되어 세계노동운동의 전환점이 된다.

파업은 계속되었고, 5월 3일 시카고의 한 공장에서 파업 중이던 노동자들에게 경찰이 발포하여 많은 사람들이 부상하고, 네 명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아나키스트들과 노동자들은 헤이마켓 광장에 모여 대책의 논의했다. 이 집회는 평화적으로 열렸는데,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한 사람이 폭탄을 던져 경찰 한 명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후 며칠 간 경찰은 발광을 거듭하며 시카고 전역에서 아나키스트들과 아나키스트로 의심되는 모든 사람들을 샅샅이 잡아들인다. 앨버트 파슨스는 당일에 헤이마켓 광장에 있지도 않았지만 아나키 운동의 중요인물이라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되었고, 폭탄투척 사건에 연관되었다는 혐의로 사형과 무기징역 등을 선고받는다.

경찰의 삼엄한 감시를 받던 루시 역시 곧 체포되었으나 폭탄투척 사건의 혐의를 뒤집어쓰지는 않게 된다. 당시 사법부는 남성도 아닌 여성이 폭탄투척 음모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다는 것 자체가 납득하기 힘들다고 판단을 했다고 한다. 또한 사법부는 범인들 가운데 여성이 포함되었을 경우 사형이라는 법정최고형을 선고하는데 무리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여성이 이토록 과격한 행동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당시의 상식으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루시 파슨스는 전미를 순회하며 앨버트 파슨스와 다른 아나키스트들에 대한 사면석방운동을 벌인다. 이들은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 아나키즘에 대한 신념 때문에 잡혀간 것이었다. 성금을 모으고, 진실을 알리던 루시에게 경찰은 가는 곳마다 방해를 했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다.

당시 노동운동의 많은 활동가들과 노동자들이 아나키즘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모두가 루시나 앨버트처럼 전투적인 것은 아니었다. 폭탄투척 혐의를 아나키스트들에게 뒤집어 씌운 것은 아나키즘을 테러리즘과 연관지어 노동운동 내부에서의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한 국가기관의 술책이었다. 노동운동의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테렌스 파우덜리 같은 사람은 보다 소극적인 운동방법을 옹호했으며, 파업을 자제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그는 운동이 급진적이 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헤이마켓 사건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비판했다.

루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리노이 주 주지사는 사형을 집행하라는 압력에 굴복하고 말았다. 단지 헤이마켓 폭탄투척 사건과 정황적인 연관성만이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사형집행을 허가했던 것이다. 결국 1887년 11월 11일 앨버트 파슨스를 비롯한 네 명에 대한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이후 루시는 빈곤에 시달리면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는다. 많은 노동운동가들이 개혁주의에 영향을 받아 선거에서 민주당을 지지하는 경향으로 돌아선 다음에도 그는 독립적 입장을 유지하며 노동자들에 의한 자주관리와 이를 통해 자유연합 사회를 만들어갈 것을 주장한 생디칼리즘(아나키즘에 기반한 노동조합주의)을 옹호했다. 그는 계급에서의 위계야말로 억압적 사회체제를 작동시키는 근본원인으로 생각하였다. 성차별과 인종차별 그리고 계급차별에 맞서 싸우던 루시 파슨스에게 미국정부는 지속적인 탄압을 가했다. 감옥에 가두거나 연설을 금지하기도 했으며, 거리에서 아나키즘 잡지를 판매했다는 이유로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언론과 사상의 자유가 없었던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의 노력으로 마침내 1889년 미 사법부는 아나키스트들에게도 언론의 자유가 있다고 판결을 내린다.

루시 파슨스는 동료 리지 홈스와 더불어 1891년 아나키-코뮤니스트 월간지인 Freedom을 창간하고 펜실베니아 주 카네기 제철소의 노동쟁의와 아이다호 주 은광산에서의 파업 등, 광산과 철도 노동자들의 조직화에 힘을 쓰면서 아나키즘을 알려나간다.

당시 미국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으로 알려진 또 한 명의 여성 아나키스트 엠마 골드만이 명성을 얻고 있었다. 아나키즘의 많은 부분에 동의를 하면서도 둘은 몇 가지 주제에서 의견대립을 보인다. 특히 결혼제도에 대한 루시 파슨스와 엠마 골드만의 생각은 판이하게 달랐다. 루시 파슨스는 결혼제도는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것이라고 옹호하면서 아나키스트들이 결혼제도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엠마 골드만은 결혼제도는 여성을 억압한다고 하면서 ‘자유사랑’을 옹호했다. 루시 파슨스는 자본주의의 억압에 직접적으로 맞서기 위해서는 보다 중요한 이슈들이 있다고 하면서 자유사랑 같은 주제는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던 것이다. 당시 산업본주의 체제는 모순이 증폭되면서 파업 같은 노동자들의 저항운동이 분출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조직하는 것이 아나키스트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루시 파슨스는 주장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아나키스트들과 생디칼리스트 그리고 노동조합주의자들이 지속적인 모임을 통해 1905년 창립한 것이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이다. 세계산업노동자연맹은 노동자들의 직접행동을 옹호했으며, 총파업을 통한 공장의 접수, 즉 생산수단을 노동자들이 장악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루시 파슨스는 이를 통해 지도자를 없애고 노동자들이 평등하게 공장을 운영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엠마 골드만과 결혼제도를 놓고 대립했다고 하여 루시 파슨스가 여성문제를 도외시했던 것은 아니다. 세계산업노동자연맹의 기관지 The Liberator의 편집을 맡은 그는 이 매체를 통해 여성에게 이혼과 재혼의 권리가 있음을 알렸으며, 엠마 골드만과 마찬가지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주장으로 받아들여졌던 피임의 권리를 옹호했다. 또한 노동운동사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훌륭한 여성운동가들을 지속적으로 알려나가는 칼럼도 썼다. IWW 내에서도 특히 여성노동자들의 기아와 실업 부분에 힘을 쏟은 루시 파슨스는 1907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의 실업위원회 건물을 점거하고 단식투쟁을 벌여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이후 미 정부는 기아와 실업에 대한 정책을 세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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