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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코프스키 2008-03-16 00:45:45, Hit : 1424
Subject   [한겨레21 외]이땅의 개인은 어떻게 시련을 겪었나 외 - 추억의 뉴스
이땅의 개인은 어떻게 시련을 겪었나

http://news.naver.com/news_read.php?office=hani21&article_id=1716  ...원문



[한겨레21] [속보, 주간지] 2003-05-08 16:18:00


개성의 자유로운 발현을 꿈꾸었던 이들의 좌절… 이젠 국가·민족의 중력을 넘어 개인으로

참으로 유감스러운 말이지만,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것은 하늘이 내려준 인간의 권리를 다하기 위해서가 아니며, 인간의 고유한 의무이자 권리인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개개인의 양심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거나 생명과 삶이 원하는 욕망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의연히 그 영향력을 상실하지 않고 있는 교육지표인 ‘국민교육헌장’이 명시한 것처럼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여왔고 지금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개인의 욕망과 양심을 감시하는 기제들

가족주의와 긴밀하게 연결된 민족중심주의 및 국가중심주의는 모든 가치판단의 척도로 기능해왔다. 그리하여 개인의 욕망과 양심에 따른 행동은 권력의 지속적 감시 대상일 수밖에 없었고, 감시의 시선을 벗어나 새로운 정신의 영토로 나아가려는 개인들은 소수자로 낙인찍혀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등 냉전 이데올로기의 산물인 악법이 양산한 비전향 장기수들과 양심수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 국적 포기를 선언한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육체적·정신적 고통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바로 민족 또는 국가중심주의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민족 또는 국가중심주의 이데올로기의 기원을 찾기 위해서는 근대 계몽기의 역사적 상황으로 거슬러올라가야 한다. 제국주의의 침략이 현실로 다가온 시점에서 근대 계몽기에 생산된 담론의 내용은 민족을 지키기 위한 국가의 독립으로 수렴한다. 일본 근대의 대표적 사상가인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는 그의 저서 <문명론의 개략>에서 개인의 독립이 국가의 독립에 우선할 수 없다고 단언한 바 있거니와, 그의 영향하에 있었던 유길준과 김옥균, 이광수 등 한국의 지식인들 역시 국가와 민족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펼쳤다. 예컨대 최초의 근대적 장편소설이라 일컬어지는 <무정>을 관통하는 금욕주의도 민족을 위해 일신을 바친다는 민족중심주의의 논리를 소설적으로 변용한 것이라 할 수 있을 터이다.

국가를 하나의 유기체로 인식하고 개인을 일개 구성분자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신채호나 박은식, 그리고 장지연 등 이른바 진보적 민족주의자들도 이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당면한 위기 상황하에서 그들이 보여준 고민을 무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잘 알려진 신채호의 <대아(大我)와 소아(小我)>에서 볼 수 있듯 ‘소아=개인의 욕망과 의지를, 전적으로 대아=국가 또는 민족으로 편입해야 한다’는 그의 발상법은 근대 계몽기의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시공간적 특수성을 넘어 한국 사회에서 일종의 ‘보편적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놓여 있다.

윤치호나 서재필 등 미국에서 공부한 개신교도들에게서 개인주의의 맹아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근대의 특수한 환경으로 인해 근대 계몽기에서 식민지 초기에 이르기까지 개인에 관한 이야기는  금기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근대가 발견한 핵심적 가치 중 하나인 개인과 관련된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것은 언제쯤일까

오래된 우상의 신화… <만세전>의 화초들

이른바 ‘고백록’이 개인의 양심과 내면을 드러내는 글쓰기 방법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바다.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고백’을 본격적으로 소설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인물은 김동인과 염상섭이다. 여기에서 김동인의 문학적 공과를 얘기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초기소설에서 고백이라는 문학적 장치를 빌려 지극히 개인적 고뇌를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개인의 발견을 향한 중요한 걸음을 내디뎠다는 평가에는 인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염상섭은 <개성과 예술> <지상선을 위하여> 등의 에세이를 통해 개인과 개성의 문제를 깊이 파고든다. 그는 ‘개개인이 부여받은 독이적(獨異的) 생명이 곧 각자의 개성’이라 정의하고, 개성의 자유 및 개성의 발전과 표현을 자아 확립 또는 자아 실현의 내용이라고 확언한다. 염상섭에게 생명과 욕망의 자유로운 발현을 방해하는 모든 것― 가족이나 민족 나아가 계급까지― 은 타파해야 할 우상이다. 그 확연한 예를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자 하는 주인공 이인화의 여로를 그린 <만세전>에서 볼 수 있다.

물론 <만세전>의 주인공을 비롯한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의 모습이 사회적·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평등을 토대로 한 개인주의의 긍정적 측면에 비추어볼 때 적잖이 이기적인 ‘온실 속의 개인’이라는 비판을 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개성을 방기한 계급주의와 민족주의가 판을 치던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와 개성의 의미를 공론화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점만은 적극적으로 평가해야 마땅하리라.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분위기 속에서 1910년대 일본 문단을 풍미한 시라카바파(白樺派) 문학의 수용과 1920년대 유행하기 시작한 니체의 영향 등을 고려해야겠지만, 염상섭만이 아니라 많은 지식인들이 개인의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깊은 좌절을 경험한다. 윤심덕과의 ‘비련의 사랑’으로 유명한 희곡작가 김우진의 예에서 개성의 구현과 욕망의 실현을 향한 길이 얼마나 험난했는가를 단적으로 볼 수 있다. 니체의 사상에 기울어져 있던 김우진은 가족주의와 식민지 상황이라는 현실의 두꺼운 벽 앞에서 죽음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개성의 자유로운 발현’을 꿈꾸었던 사람들은 이들만이 아니다. 민족이라는 중력으로부터 벗어나, 대의명분을 실현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탈주하여 ‘세계인’으로서 근대문명을 비판하고 나선 일련의 모더니스트들도 개인으로서의 양식과 욕망에 충실하고자 했던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특이 한국 최고의 모더니스트 이상은 시와 소설 그리고 에세이들을 통해 개인을 균질화하는 근대의 폭력성을 간파하고 끊임없이 탈주를 시도한다. 그의 삶과 글이 보여주는 기존의 가치관과의 처절한 ‘투쟁’은 소수자로서 그가 감내해야만 했던 현실적 압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더니스트와 아나키스트의 ‘홀로 아리랑’

이상을 비롯한 모더니스트들과 더불어 계급과 민족 사이에서 제3의 길을 모색한 아나키스트들의 사상적 모험도 주목해야 한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비판하면서 자기가 자기 생명의 주인이 되고, 이런 이상을 실현할 수 있기 위해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었던 아나키스트 사상은 민족과 국가를 넘어선 사유를 발견하고자 애쓰고 있는 ‘지금-여기’의 사람들에게 유효한 참조사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와 혼동하거나 단순한 액세서리 정도로 여기는 이들에게 정치적 발언의 확대를 통한 개개인들의 연대가 얼마나 어려우면서도 소중한지를 새삼 되새기게 한다.

비록 소수이긴 했으나 한국 근대 사상에서 개인의 의미를 탐색하는 사람들의 노력은 그 명맥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일제 말기와 해방공간, 그리고 전쟁과 분단으로 이어지면서 ‘나’를 둘러싼 논의는 다시 한번 터부의 영역으로 밀려났다. 박정희 독재 아래서 부활한 충효의 논리는 ‘나라에 충성, 부모에 효도’라는 슬로건을 앞세우고 ‘나’의 양심과 욕망을 주장할 수 있는 공간을 극도로 위축시켜버렸다. 1950년대의 실존주의를 수용한 지식인들과 김수영 등이 ‘내재하는 외부’로서 개인의 문제를 제기하긴 했다. 그러나 민족-국가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우리는 유치원에서 대학에 이르는 제도권 훈육 시스템을 통과하면서 ‘국민교육헌장’의 지침을 숙지했으며, 보수적인 언론과 권위적인 관료제도, 그리고 군사문화가 유포한 국가중심적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했다. 그리하여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맹세합니다’는, 황국신민서사의 한국적 버전인 ‘국기에 대한 맹세’를 신체와 정신에 깊디깊게 새겨넣었다. 비장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새삼 국가를 향한 충성심으로 세차게 뛰는 심장을 어루만지며.

적어도 외면적으로는 국기하강식과 국민체조, 그리고 선생님과 선배들에 대한 거수경례 등으로 대표되는 군사문화의 찌꺼기들은 사라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 찌꺼기들이 우리 정신의 혈맥을 가로막고 있어 자유로운 사유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지연·혈연·학연으로 대표되는 연줄문화가 합리적 의사소통을 차단하기 일쑤이며, ‘완장’들의 권위적인 행태는 개인들의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과 행동마저 국가를 포함한 집단적 이익을 앞세워 폭력적으로 ‘진압’해버린다.

차이를 인정해야 집단의 유령 사라져

입으로는 다양성을 말하지만 정작 ‘차이’를 말하면 혼란으로 받아들이고 위험시하는 풍토! 섬뜩한 국민교육헌장과 ‘국기에 대한 맹세’의 유령은 부지불식간 우리의 정신을 점령해버리고 만다. ‘나’를 방기할 때 , 그러니까 개인의 양심과 욕망에 충실하지 못할 때 남는 허망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유령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개인주의는 결코 몰역사적이지 않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여기’에 대한 깊은 관심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한국 근대사에서 개인이라는 문제를 고민한 사람들의 정신적 궤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들의 역동적 연대를 통해 시민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도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선태/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 연구원




  [문화] 개인은 진화하고 있다

개인주의의 역사

‘개인’(individual)은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개념이 아니다. 서양의 개인은 유일신 앞에서 얼굴을 감추고 엎드려 있어야 했고, 동양의 개인은 가족과 친척, 사회의 제도윤리에 칭칭 감겨 제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렇다면 개인의 자각은 언제 이루어졌을까 러시아의 역사가 아론 구레비치는 <개인주의의 등장>(이현주 옮김, 새물결 펴냄)에서 복잡다단한 개인의 역사를 파헤친다.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사람’(person)이란 말조차 없었다. 그리스어 ‘프로소폰’(prosopon)과 라틴어 ‘페르소나’(persona)는 무대에서 사용되는 가면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한명의 배우가 무대 위에서 여러 개의 가면을 바꿔 쓰며 그 가면에 맞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프로소폰 또는 페르소나는 한명의 개인을 가리키지 않았다. 성격(character)과도 유사한 개념의 페르소나는 제도와 사회가 정해준, 외부에서 결정된 정체성이었다. 프로소폰·페르소나가 한명의 사람으로 진화한 것은 중세 기독교 때였다. “그리스도 교회의 세례를 통해 인간(human being)은 한 사람이 된다”고 13세기 문헌은 말한다.

그러나 물론 이때의 사람은 여전히 현대적 의미에서의 ‘개인’이 아니다. 아론 구레비치에 따르면 개인은 “씨족적 존재에서 벗어나 사회적 신분에 따른 여러 제한에서 자유로워진 인간”이다. 지은이는 이런 개인의 전형이 르네상스 시대 때 갖춰졌다는 많은 역사가들의 지적을 거부하고, 중세 이전 스칸디나비아 문학의 전통까지 거슬러올라가 곳곳에서 출몰한 개인의 계보를 더듬는다.

고대 노르웨이 서사시에는 뛰어난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중 대표적 영웅인 ‘에갈’은 거친 바이킹이자 세련된 궁정시인, 자애로운 아버지, 부와 선물을 기대하는 남자이며 충성스런 친구 등 모순적인 성격의 인물로 나타나는데, 에갈이 구현하는 개인성은 집단의 윤리에 자신을 완전히 동화시키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인간적 겸손함을 요구하는 기독교가 개인에 대한 관심이 자라나는 것을 방해한 것은 확실하지만, 중세 시대에도 역시 개인의 탐구는 계속됐다. 이 중 <고백록>을 쓴 성 아우구스티누스(AD 354~430)는 기독교 안에서 개인의 ‘내적 공간’을 탐구하는 데 큰 진전을 이뤘다. 방종한 생활로 젊음을 탕진하며 살다 어느 날 진정한 신을 발견하게 된 그는 “나는 운명도 아니요, 숙명도 아니요, 악마도 아니다”라고 외쳤다. 그가 바라본 세계의 중심은 “창조자를 대면하는 에고”였다. 중세의 다른 저자들이 스스로를 이교도, 성서적 영웅, 복음서·역사·문학의 인물에 비교하는 것과 달리, 아구구스티누스는 자신에 대해 묵상하고 본래 그대로의 자신에 대해 판단을 내린다.

글을 쓰는 지식인 집단말고도 개인은 여러 계급에서 발견됐다. 8세기의 한 조각가 밀라노 대성당의 황금 제단 위에서 왕관을 씌워주는 성자 앞에 무릎을 꿇은 인물로 자기를 묘사했으며, 다른 장인들 역시 곳곳에 자기의 서명을 남겼다. 기독교 윤리에 직업의식이 덧씌워지면서 기사와 상인 역시 각자 소명대로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며 개인성을 형성해나갔다.

지은이는 “개인은 단선적으로 발전하지 않았다”고 결론내린다. ‘개인’은 중세 이전부터 싹을 틔웠지만, 자아에 대한 개인의 태도, 자각을 의미하는 영어의 접두어 ‘self’는 종교개혁 이후에야 등장했다. ‘개인’은 느리고 더디고 힘겹게 일상의 영역으로 편입돼온 것이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021015000/2003/05/021015000200305080458062.html





[문화] 잃어버린 개인을 찾아서…

근현대 한국사에서 궤멸된 개인주의의 흔적을 복원한 박노자 교수의 <나를 배반한 역사>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학생 시절 조회시간마다 되뇌어야 했던 ‘국기에 대한 맹세’를 떠올리면 당황스럽다. 몸과 마음을 바쳐 ‘나’의 자아를 죽이고 집단 속으로 들어가라는 ‘거대한’ 주문에 대해, 그리고 한명도 빠짐 없이 가슴에 손을 올린 채 태극기를 바라보며 진심으로 충성을 다짐하도록 길들여진 어린 나와 친구들에 대해서.


국가주의·제국주의에 짓밟힌 사람들


이렇게 한국인의 마음속 깊이 주입된 절대적 민족·국가주의의 기원을 좇아서, 한국학 연구자 박노자 교수(노르웨이 오슬로대학)가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신문과 잡지, 개인문집 등 생생한 자료 속으로 들어가 촘촘히 짜낸 근현대 사상사가 <나를 배반한 역사>(인물과사상)로 묶여 나왔다. 여기서 역사에 배반당한 ‘나’는 ‘개인(주의)’이다. 박 교수는 국가주의와 제국주의 사상의 홍수 속에서 한국사가 잃어버린 개인주의를 안타깝게 되돌아본다.

‘대포가 없으면 권리도 없다’는 태도로, 휘청거리던 조선의 마지막 고혈까지 짜내기 위해 달려드는 제국주의 국가들을 보면서 당시 지식인들은 ‘부국강병’을 필연적인 목표로 삼았다. 그 목표 앞에서 개인주의는 없애버려야 할 이기주의이거나, 국가를 위해 양보해야 할 사소한 것이었다. 1924년 7월 <개벽>을 통해 박영희가 “개인주의는 일체 권력에 불복종하여 이기적 자아를 자라게 하는 것이다. 자기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으므로 국가사회를 원하지 않는다”고 비난한 것은 당시의 일반론이었다.

1920년대 일본과 한국에서 유행한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의 개인주의는 권위주의적 사회는 그대로 두고 카페의 자유로운 공간에서 이성교제와 에로틱 문학, 서양의 최신 유행 의상을 즐기며 고등교육이 보장하는 출세를 포기하지 않는 틀 안에서만 존재했다. 박 교수는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소비 취향의 자유나 또래 따라하기에 열중하는 현재 한국 대학가의 일부 신세대들이 허약한 근대 개인주의자들의 연장선에 있다”고 지적한다.

개인주의에 대한 오해는 현재까지도 좌·우파 지식인 모두가 극복하지 못한 부분이다. 한 학생회장이 1990년대 대학 학보에 쓴, ‘사회의 진보를 위해 애국·애족하는 학생들이 모든 것을 바쳤던 80년대’를 예찬하고 ‘개인주의가 독버섯처럼 번진 지금의 일그러진 시절’을 대조하는 훈시는 ‘개인을 소중한 존재로 여기면서 서로 배려하고, 억압적인 온갖 제도와 이념에 저항해 비타협적으로 싸울 수 있는 정신의 무기인’ 개인주의의 본뜻과는 먼 거리에 있다.


약육강식의 논리는 지금도 계속된다


박 교수는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은 외세의 침략을 받은 사람들이 제국주의의 반인륜적인 논리를 철저히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 점”이라고 말한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살아남기 위해’ 공포에 길들여지고 “내가 맞을 짓을 했지”라며 남편의 논리를 내면화하는 것처럼 제국주의의 힘 앞에 무릎을 꿇은 조선말 지식인들은 약육강식의 논리를 뼛속 깊이 받아들였다. 제국의 힘에 대항하려면 국가의 힘을 키우고 국민을 훈육하는 부국강병의 길밖에 없다는 것이 당시의 결론이었다. 개명 유학자 박은식이 <대한매일신보> 1909년 7월21일치에 쓴 “강권이 있는 자는 성현이며 군자며 영웅이요, 강권이 없는 자는 용렬한 놈이며 천한 놈이며 소와 말이며 개와 돼지다”라는 글은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주장에 못지않다. 그리고 그것은 미국의 세계질서를 그대로 따르고, 외국인 노동자에게 가혹한 지금 우리의 모습과 오싹하게 겹쳐진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021015000/2003/05/02101500020030508045804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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