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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코프스키 2009-12-10 13:00:37, Hit :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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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고뇌와 외침]이탈리아의 ‘뜨거운 가을’
이탈리아의 ‘뜨거운 가을’




‘뜨거운 가을’이란 1969년 이탈리아의 정치상황을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표현이다. 550만 명의 이탈리아 노동자들이 파업대열에 뛰어들었다. 같은 해 11월 19일 연금제도 개혁을 촉구하는 총파업 시위에는 무려 2,000만 명의 이탈리아인들이 합류했다!





이탈리아의 뜨거운 가을


60년대 말은 전세계적인 격변의 시기였다. 가까운 프랑스에서 노동자들과 학생들은 이미 68년에 큰 싸움을 치렀다. 미국에서도 학생과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신좌파운동이 등장했고, 독일과 일본에서도 각각 적군파와 전공투로 대표되는 매우 격렬한 운동이 등장했다. ‘프라하의 봄’으로 알려진 체코의 민주화운동이 타오른 것도 1968년이었다.

당시에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이탈리아의 경우에도 투쟁은 학생들로부터 시작되었다. 67년부터 여러 쟁점을 둘러싸고 학생들의 저항이 나타났는데, 이 투쟁의 불꽃은 그 무렵 중국의 이른바 문화혁명에 대한 환상(이들은 중국의 문화혁명이 매우 진보적인 것이라고 여겼고, 때 아닌 마오주의 열풍이 불었다), 미국의 베트남 침공에 맞선 반전운동, 68년 프랑스 5월 혁명의 영향력과 결합하면서 거대하게 타올랐다. 그 규모를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지표가 있다. 67년에서 68년까지 2,700명의 학생들이 ‘범죄’ 혐의로 탄압받은 것이다. 그런데 당시 사회적으로 축적된 모순을 둘러싼 충돌과 대결이 이루어지기에 대학이라는 무대는 너무나 비좁았다. 그곳은 중요한 격전지가 절대 아니었다. 진정한 전장에서 전투가 개시되어야 했다. 또한 다른 주인공이 등장해야만 했다. 프랑스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이제 노동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5~60년대 내내 짓눌리며 인내해 왔던 노동자들은 이제 투쟁대열로 결집할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게다가 이 노동자들은 위대한 계급투쟁을 전개했던 대단히 선진적이고 혁명적인 선배 노동자들을 아버지 세대로 두고 있었다. 이탈리아 노동자계급의 기억 속에는 공장평의회의 깃발 아래 이탈리아반도를 뒤흔들었던 1919~20년의 ‘붉은 2년’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비록 노동조합총연맹과 사회당의 배신 속에서 당시의 거대한 투쟁은 실패로 끝났지만, 적어도 그 기간 동안 노동자들은 이탈리아 역사의 실질적인 주인공이었다. 위대한 역사적 창의력이 불타올랐으며, 그 참다운 역동성은 이탈리아 노동자계급의 혈통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도 이탈리아 노동자들은 침묵하지 않고 파시즘에 맞선 전사회적인 투쟁의 중심에서 전선을 지휘했던 위대한 전통을 발휘했다. 이들은 파시즘에 맞서 총을 들고 선봉에서 싸웠다. 자본가들을 등에 업은 파시스트 반동으로부터 노동대중의 삶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들이 가장 앞장서서 싸웠고, 가장 많은 피를 흘렸다. 이런 식으로 이탈리아 노동자들은 69년 이전의 수십 년 동안 이미 역사적, 사회적으로 가장 책임감 있는 계급임을 이탈리아 전역에 선포해둔 상태였다. 바로 그런 위대한 전통과 권위를 갖고 있는 선진적인 이탈리아 노동자계급이, 다시 투쟁에 나섰다!





계급적 투쟁


2,000만이라는 기록적인 수치가 보여주는 것처럼, 1969년의 ‘뜨거운 가을’은 전형적인 대중파업의 양상을 띠면서 전개되었다.

무엇보다 특징적인 것은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요구가 어떤 성격을 띠었는가 하는 점이다. 투쟁은 대체로 임금인상과 같은 부분적 경제적 이익을 위한 투쟁을 뛰어넘어, 현장과 사회의 권력을 둘러싸고 자본가들과 충돌하는 근본적인 지점에 집중되었다. 당시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권리는 대단히 협소한 편이었다. 통상적으로 활개치고 있던 블랙리스트와 작업장에서의 일상적인 감시, 현장 활동가들에 대한 일방적인 해고, 전임 노조활동 불인정, 노동조합 민주주의의 파괴, 장시간 노동과 편파적 대우 등이 사회 전체적으로 만연해 있었다. ‘뜨거운 가을’은 이 모든 낡은 억압의 사슬을 날려버리는 폭풍의 계절이었다. 컨베이어 벨트 속도의 결정권을 더 이상 자본가들에게만 맡겨놓지 않겠다고 이탈리아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선포했다. 그것은 이후 현장에서 단결과 투쟁의 제반 권리를 쟁취하는 대결로 나아갔다. 전후 억압체제에서 잠시 숨죽이고 있던 노동자들은 그동안 응축해놓았던 거대한 힘을 일순간 드러냈으며, 이들은 투쟁 속에서 권리를 쟁취해나갔고 더 큰 목표를 향한 갈증을 드러냈다.

임금요구와 같은 부분적 경제적 요구를 쟁취하는 투쟁 또한 통상적인 조합주의 관점과는 아주 다른 기반 위에서 전개되었다. “공장 내 모든 직급 간의 차별을 금지하고 동일임금을 적용할 것!”, “생산직 노동자와 사무직 노동자 간의 차별을 없앨 것!”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들은 단순히 당장 자기 손에 쥐어지는 실리의 관점에서 임금투쟁을 전개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탈리아 노동자들은 계급적 단결을 성취해내는 하나의 수단이라는 의미를 임금투쟁에 부여했다. 이처럼 계급적 단결력과 투쟁력을 끌어내는 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이 힘을 바탕으로 실제 결과에서도 물가인상분을 크게 웃도는 임금인상을 쟁취할 수 있었다. 항상 ‘실리’를 떠들어대지만 실제로는 소심하게 자본가들에게 양보할 궁리만 하는 이른바 실리주의자들의 초라함과는 극적으로 대비되는 장면이지 않은가!





뜨거운 가을은 어떻게 식어갔는가?


프랑스 노동자들의 투쟁이 68년의 짧은 시기에만 제약되었던 것과는 달리, 69년에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이탈리아 노동자들은 그 후로도 약 10년 정도의 상당한 기간 동안 계속 격렬한 투쟁을 전개했다. 하지만 10년에 걸쳐 계속된 ‘뜨거운 가을’은 결국 겨울에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 그 과정을 보도록 하자.

무서운 기세로 성장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자본가체제를 뿌리에서부터 흔들어놓았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듯이, 노동자들의 급진적 투쟁에 맞서 우익 반동의 반응이 등장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퇴했던 파시스트들이 다시 등장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기존 자본가 정당은 이들에게 자본가계급에 대한 지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보수화 경쟁’을 벌였다. 이것이 뜨거운 가을에 대한 첫 번째 반응이었다.

두 번째 반응은 당시 노동자계급의 대변자임을 표방했던, 하지만 이미 스탈린주의 정책으로 오염되고 관료들의 수중에 장악당하면서 타락할 대로 타락했던 이탈리아공산당으로부터 나왔다. 전진하는 노동자대중보다 한참 더 뒤쳐졌고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합법적 거대야당이란 지위에 만족하고 있었던 이탈리아공산당은 우익 파시스트들이 다시 등장하고 정부가 점차 보수화된다는 사실에 극심한 두려움을 느꼈다. 이탈리아공산당이 신주 모시듯이 하고 있던 스탈린주의적인 ‘민중연합’ 노선에 의하면, 우익 파시스트 세력을 우선 격퇴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계급적 독립성을 내세워서는 안 되며, 역사적 주도권을 포기한 채 일단 ‘민주적’인 자본가세력과 연합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탈리아공산당은 바로 그 길로 나아갔다. 투쟁하는 노동자계급의 최선두에서 대담하게 지배계급 전체와 대결을 벌일 만한 의지도 능력도 없었던 이들은, 스스로를 이른바 ‘민주적’인 자본가정당(기독민주당)의 꼬리로 전락시켰다. 이탈리아공산당은 ‘역사적 타협’이라는 그럴듯한 구호 아래 반노동자적 정책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1919~20년의 ‘붉은 2년’ 시기에 이탈리아사회당이 노동자들의 투쟁을 배신했던 것처럼, 이제는 이탈리아공산당이 노동자들을 배신했다.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조직하고, 이끌어나가기는커녕, 자본가들과 정부에 의해 탄압받는 노동자들을 방어하기 위한 기초적인 행동조차도 하지 않았다. 공산당은 오직 기독민주당과의 타협을 통해 의회에서의 입지를 보호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였다. 역사적 역할을 다한 세력은 어떤 식으로든 사라지게 마련이다. 사회당이 노동자계급 내에서 정치적 생명을 잃고 단지 지배체제의 일원으로 전락해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공산당이 스스로 자신의 숨통을 조이며 정치적 사망을 향해 맥없이 걸어갔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최근 이탈리아공산당은 붕괴되었다. 그러나 좌익민주당으로 이름을 바꿔단 채 부르주아 체제의 야당 역할에 만족하면서 의회주의적으로 생존하는 소심한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주제로 더 파고들 수는 없다. 우리는 다른 기회에 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반작용. 기회주의에 대한 형벌


‘붉은 2년’ 시기에 이어 1969년에도 이탈리아 노동자들은 다시 한 번 사회적 격변을 일으킬 수 있는 역량과 가능성을 드러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노동조합 차원에서든 정당 차원에서든 노동운동의 공식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지도자이기를 포기했다. 아니 거부했다. 사회당에 이어 공산당까지도 지도력을 포기한 상황에서 운동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도력이 반드시 등장해야만 했다. 그런데 기존 노동자 정당들의 배신은 단지 ‘이탈리아적 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었으며, 또한 그것은 단지 ‘정당’이라는 그릇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그릇에 채워 넣는 정치의 문제였다. 이탈리아에서든 어디에서든 스탈린주의 개량정당을 뛰어넘어 진정한 노동자 투쟁정당을 창출하는 것, 그것은 당시에 보편적으로 통용되던 정치적 관점(대표적으로 민중연합 노선 같은 것)을 근본에서 뛰어넘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당시의 운동은 아직 그런 성숙도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처럼 새로운 정치적 대안이 등장하지 않을 경우, 그 한계 속에서 전진하려는 세력은 불가피하게 낡은 대안에 새로운 옷을 입혀 깃발로 치켜 올리곤 한다. 이곳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이탈리아에서 전통적으로 뿌리 깊었던 무정부주의 경향이 여러 가지 이름으로 전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노동조합 관료들에게 걷어 채이고 사회당, 공산당에 등을 찔린 노동자들은 거역할 수 없는 부름을 받은 듯 자연스럽게 무정부주의적 지향으로 기울어졌다. 옛말에 “무정부주의는 노동운동의 기회주의적 범죄에 대한 일종의 형벌”이라고 했던 것처럼, 이탈리아 노동자들은 총연맹과 사회당, 공산당의 기회주의적 범죄에 대한 형벌로서 무정부주의라는 멍에를 걸머지게 된 것이다. 무정부주의 조직들은 정부요인들을 납치하거나 테러를 가하는 방식으로 체제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그 정점에는, 1978년 3월 ‘붉은여단’이라는 조직에 의한 모로 수상 납치와 살해 사건이 있다.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지배계급에게 충격과 공포를 주고 그 결과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계급적 단결력과 투쟁력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이와 같은 테러는 항상 의도와는 달리 지배계급의 입지를 넓혀주는 역할만을 했다. 이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탄압의 빌미를 획득한 이탈리아 정부는 바로 다음 해 체계적인 ‘1979년 4월 대탄압’을 감행했다. 이 탄압은 단지 붉은여단만을 노린 것이 아니었다. 우익의 반격이 항상 그렇듯이, 그것은 노동자계급 전체를 향한 것이었다. 지배자들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았던 모든 진지한 투사들은 체포와 구속의 대상이 되었다. 이 대대적인 반격 속에서 10년 간 이탈리아를 뒤흔들었던 뜨거운 가을은 종말을 고했다. 노동운동 내의 기회주의적 범죄자들이 노동자투쟁에서 무기력했던 것만큼이나, 무정부주의 경향 또한 노동자투쟁을 올바른 방향으로 곧게 밀어가는 데에서는 무기력했다. 배신적인 노동관료들과 무정부주의자들은 서로를 보완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성공하지 못한, 거대한 투쟁의 물결이 사라진 자리에는 패배감과 낙담뿐만 아니라 관념론적 일탈, 이론적 변종, 정치적 타락이 뒤따르게 된다. 사회당과 공산당이 정치적 타락의 길로 갔다면, 무정부주의 전통에서 배출된 흐름은 이른바 자율주의라는 관념적 일탈의 길로 나아갔다.





뜨거운 가을이 남긴 이야기


이탈리아의 뜨거운 가을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 기회주의 지도자들에 맞서 노동운동을 끌어갈 새로운 정치적 대안이 조직되지 않는 한, 노동운동 내의 기회주의적 범죄에 대한 형벌로서 무정부주의 경향이 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그러나 이 두 흐름은 단지 서로를 비난하고 서로의 존재 근거가 되어줄 뿐 새로운 운동을 건설하는 초점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교훈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다름 아니라 점차 굳어가는 한국노동운동의 관료화 경향과 무기력 속에서, 기회주의 지도자들에게 분노하고 있지만 명확한 정치적 대안을 발견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무정부주의와 기회주의라는 두 암초 사이에서 침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열사투쟁에서도 희미하게 나타났듯이, 배신적 노조관료들에 대한 정당한 분노가 무정부주의 심리와 돌출 행동으로 이어지는 현상이 한국에서도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그것은 지금 상황에서 과장되게 부풀려질 필요는 조금도 없다. 그러나 보다 빠르게 진정한 정치적 대안과 새로운 노동운동을 건설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이탈리아의 ‘과거’는 한국의 ‘미래’가 될 것이다.

이미 이탈리아의 노동자들이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하지 않았는가! 우리가 과거의 패배로부터 배우지 못한다면 그것은 ‘후발자의 이득’을, 즉 후대의 정치적 권리와 의무를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 될 것이다. 반대로 우리가 쓰라린 패배로부터 배우는 데 게으르지 않고, 오늘의 과제에 충실하게 응답할 수 있다면, ‘뜨거운 가을’이 우리를 찾아올 때 우리는 그것을 ‘노동해방의 봄’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 것이다. 동지들, 한국의 ‘노동해방의 봄’을 준비하기 위해 힘차게 전진해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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