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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설수 2004-04-20 10:31:33, Hit : 1634
Subject   구멍에게

나는 나만 아는 선각자처럼도 말한 적 없는데 뭐냐,
다들 아는 내용이고 다들 생각들을 하고 있는거면 그렇게 말할 필요도 없지 않니

나도 안다
얼마 전에 마야랑 이야기했을때 마야는
명동성당에 가서 투쟁구호 외쳐주고 가끔 신나기도 하는게
어쩔 수 없이 열우당찍는거같은 기분도 들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건 한정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마야가 무슨 의미로 그리 말했는지는 모르겠다만
명동에 있는 사람들이 그 '행동'을 확신하지도,
그 신념화 되어있는 텍스트에 갇혀있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나도 알고 있단 말이다
그럼 된거 아니냐?
너나 잘난척 하지 마라,
너의 그 영웅심에 내가 찬물을 쏴질러서 화딱지가 났니?


그리고 누구와의 연대를, 무엇을 위한 연대를 종용하는 거냐

나에게는 사회주의나 계급투쟁도 자본주의와 똑같은 거다
투쟁과 혁신을, 혹은 혁명을 부르짖는 그들이 제시하는
목적론적 미래에 대한 비전은 얼마나 환상적이며 허구인가?
그리고 얼마나 권력지향적인가?
나는 그러한 점에서 그들이 지향하는 목표가 파시스트와 무엇이 다른가, 하는 의혹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아래에 있는 가난한 사람, 소수자, 약자를 위해서라며
우습게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위를 향해 투쟁을 하려고 한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권력에 대한 욕망이다
사회주의와 자본, 그것은 중앙집중 권력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같은 어미에서 난 쌍둥이다.

바쿠닌의 말처럼 위를 향해 정치적 투쟁을 하는 작자들은
결국은 지배계급을 바꾸기만 할 뿐인 인텔리겐챠들이다
혁명이 백번 일어나고 지배계급이 백번 갈아엎어진대도
맨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에겐 그저 중앙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로밖에 안보일거다

투쟁하는 사람들과의 연대? 당치도 않다,
차라리 자본과 연대하라고 해라.
결국 그 둘은 같은 거니까,


그리고 내가 전에 '명동 농성투쟁단이 망하는게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더 낫다'
하는 식으로 말했던 적이 있었던 거 같은데

너는 그때의 내 말이나, 최근들어 하는 내 말이나,
그게 그들을 향해 겨눠진 칼날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거 같다
그러니 내가 하는 말을 듣고 분노니 증오니 하는 말을 하는거겠지

내가 명동 농성투쟁단이 당장 망했으면 좋겠다 하는 건
이주노동자에 대한 악의도, 증오도, 분노도 아니다.
근데 그걸 분노니 증오라고 해석하니 우습기만 하다

좀 과장된 비유를 들면 "한국 정부가 당장 망해버렸으면 좋겟어" 하는게
한국인들에게 겨눠진 증오의 칼날이냐?
지나치게 과장된 비유인거 같지만은 국민들로부터 유리된 정부나,
지역 이주노동자들로부터 유리된 명동의 뱅가드 조직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둘 다 차라리 없는게 더 좋은거다.

명동 농성투쟁이 길어질수록 이주노동자들은 더 괴로워질거다.
그걸 훌륭하신 사회주의자 분들, 평등노조 분들은
계속해서 미래에 대한 허구적인 환상을 보여주며 꼬드기겠지.

그러나 노동비자가 쟁취되고 고용허가제가 박살난다고 해서 실제 지역에 있는 이주노동자들,
찢어지게 가난하다 못해 이미 찢어져버린 그 사람들,
공장주에게 맞아 죽어서 닭털뽑는 기계에 처박혀도 어쩌지 못하는 그 사람들의
가난과 고통과 차별, 그리고 빚, 그런게 해결될 거 같냐?

나는 출입국관리소나 평등노조나 다 똑같은 걸로 본다.
샤말타파를 길고 긴 단식끝에 네팔로 쫓아버린건
출입국관리소와 평등노조의 합작품이다.

평등노조가 약속하는 미래에 대한 허구, 헛된 꿈, 희망,
모두가 사기다. 로또복권같은거고
사회주의가 그래서 좃같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사회주의 투쟁가들이 보여주는 미래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지금 내가 사랑하는가 아닌가, 하는 현재적 감정 그 자체다.
그것이 아나키즘의 미학, 아니 내 방식이다.
아나키스트에게는 순간의 진실이 문제될 뿐이다.

마르크스의 추종자들에게는 혁명의 추억이 있지만
아나키즘에는 그런거 없다
단 한번도 승리해보지 않았기에 아니 단 한번도 승리하려고 하지 않았기에
다만 지금 자유롭고자 하는 (내 방식의 어휘로 풀면 '놀아보고자 하는') 움직임만 있는거다

이렇게 투쟁하면 뭔가 바뀔거야, 뭔가 나아질거야,
사회주의, 투쟁가들이 말하는 미래에 대한 그것들-
마치 자본주의가 대중매체와 상품광고를 이용해 황홀한 환상을 심어주는 것과 같다.

지금껏 그놈의 혁명, 말만 들어도 멋있고 폼나는 그놈의 혁명,
그놈의 혁명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느냐

너는 자본주의와 자본가, 지배계급을 미워하면서
그 혁명의 꿈과 희망을 조장해 사람들을 이용해먹고 권력을 탈취한
직업투쟁가들, 평등노조의 엘리트분들, 사회주의 인텔리겐챠들, 걔네는 밉지도 않냐?


위를 향한 투쟁, 권력투쟁, 중앙의 무엇을 어찌 해보겠다는 모든 시도들,
그런거에 함께하는건 결국 그것을 이끄는 소수 엘리트들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뻘짓일뿐이다

투쟁과 저항마저도 굴종의 한 방법이다!
노동자의 자주관리, 생산자의 자주관리는 얼어죽을, 그런 노예도덕이 또 어딨냐.

그래서 투쟁을 좀 때려치라는거다,
실제로 투쟁을 통해 구조적 모순을 뭐 어찌 바꿔놔도
원래가 중앙의 권력으로부터 '버려진' 대다수 하층민의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그들을 위한다며 투쟁하는 건 다 위선과 허풍에 불과하다.
명동성당의 농성투쟁으로 이득이 되는건 평등노조 지도부밖에 없다.

똥개가 지금껏 자길 학대하던 주인을 떠나 다른 주인 만나서
원래 주인한테 멍멍대는 꼴이라니, 그런다고 새 주인은 착하게 대해줄거 같냐?

불복종뿐이다.
투쟁과 저항이 아니라,
혁명의 아름답고 숭고한 개좃같은 꿈이 아니라,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다 싫다. 중앙권력을 향한 투쟁도 싫다.
조지부시도 싫고 노무현도 싫고 체게바라도 싫고 단병호도 싫다.

나는 자본의 꼬드김에 넘어가는 노예도 아닐 뿐더러,
투쟁의 덜떨어진 꿈에 넘어가는 노예도 아니다.

나는 나다. 그래서 내 의지대로 내가 선택해 귀농하겠다는 거다.
내가 선택해 춤추고 노래하겠다는 거다. 내가 선택해 막걸리 마시겠다는거다.
완전히 주위의 아무런 간섭도 없이, 내 의지대로 내가 행하는
그 선택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지 않느냐

그런데 그게 뭐가 잘못됐다는거냐
다 같이 투쟁에 내몰려는 사회주의 엘리트들의 심기를 건드렸냐?
평생 투쟁이나 하면서 살아라.
뭔가 바꾸겠다는, 지구를 120바퀴 돌아도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꿈이나 쫓아댕겨라.
혁명을 위해, 노조를 위해, 그것을 이끄는 훌륭하신 인텔리겐챠 혁명가분들을 위해,
네가 가진 노예로서의 만족감을 모두 누려라.

나는 나의 지금이 중요하고 나의 지구가 중요하니 나는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할꺼다.
아나클랜이 아니어도 같이 공동체 일구고 같이 씨뿌리고 같이 거둘 친구는 널렸다.
서울에서 버스타고 한시간 반만 가도 공동체가 있는 나라가 한국인데,
나는 투쟁이나 혁명의, 사기꾼같이 아름답고 행복한 꿈을 쫓기보다는
실제로 내 앞에 펼쳐진 산과 들과 강과 새들과 곤충들을 보며 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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