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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도니스 2004-08-14 01:46:31, Hit : 1450
Subject   질문
진보누리라는 곳에 어떤 분이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라고 번역해야 한다며 아래와 같은 글들을 쓰고 있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무정부주의는 정치를 부정한다, 그런 명제들도 남발하는 것 같은데,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 사람인지 여러분들의 진단을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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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하누리


온갖 유령 찌질이들, 무식 굵은 아디들 다 상대하는 건 어리석다고 여기기 때문에(무식하지만 정중하게 가르침을 청하는 아디는 제외), 필요하면(재미삼아) 데리고 놀기도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그냥 무시해버린다. 하여 이 글도 예정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 노바리가 끼어들었는데 내가 답변 안 해 줄 수는 없다. 똑똑한 여자는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니까.

노바리는 '정부'와 '국가(권력)'를 구분하는데, 개념상으로는 구분될지 몰라도 실제 구별의 의의는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국가의 강제력은 정부를 통해서 행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국가는 '반드시' 정부를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아나키즘이 반대하는 건 가장 먼저 '국가'이지 정부가 아니라는 노바리의 주장은 그냥 말장난이다.

무정부주의가 어떤 내용을 갖는다 하는 건 대충 다들 아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내용을 굳이 거론할 필요가 있을까? 원한다면 해 주겠지만 무의미한 것 같으므로 생략하자. 사이트를 검색해서 나오는 내용이라면 굳이 글을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anarchy의 어원을 살펴 보자. 여기서 'arche(아르케)'는 '원인 또는 원리, 법칙'을 뜻한다. 그 앞의 'a(n)'는 부정 접두어이다. 그렇다면 'anarchy'는 원리 또는 법칙을 부정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어째서 'arche'는 '지배'를 뜻하기도 하고, '정체(政體)'를 뜻하기도 하는 것일까.

'원리, 법칙'은 반드시 복종을 요구하게 되어 있다. 그것이 자연 법칙이든 도덕 법칙이든 마찬가지다. 그래서 '법칙'은 그것을 '인식'한 사람을 '지배'한다.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그런 인식 체계 자체를 부정하면 된다. 중세 기독교 종파 중에 '그노시스(gnosis)'파가 이에 해당한다(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래서 그노시스파는 무정부주의의 두 조류, 즉 개인적 무정부주의와 집단(또는 공동체)적 무정부주의 중에서 개인주의적 무정부주의의 시원이 된다. 참고로 스토아 사상은 공동체적 무정부주의의 시원이다(세계 시민 '국가').

이제 '아르케'가 '지배'의 의미를 갖게 된 이유를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정체(政體)'인가. 이것은 사적인 영역-공적인 영역의 의미를 알아야 이해가 된다. 그리고 '노동'과 '작업'의 차이점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글이 길어지고 어렵기도 하니 아주 간단히 말한다.

사적인 영역에서 '경제(노동)'가 이루어지고(이리 말하면 꼭 그 당시 아테네는 교역 국가라는 걸 거론하면서, 근데 그게 어째서 사적인 영역이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는데, 공부 좀 하자.), 공적인 영역에서 '정치(언어와 행위)'가 이루어진다. 사적인 영역에서 순간적(일시적)일 수밖에 없는(죽을 수밖에 없는) 개인은 불변성(어느 정도의 지속성을 뜻하며, 영원성과는 좀 다른 개념)에 참여하기 위하여 공적인 영역으로 나아간다. 공적인 영역은 공간(아고라)에서 개인과 개인의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구조'이다. 그 구조란 다름 아닌 '폴리스(도시 공동체, 도시 국가)'이다.

폴리스는 몸체(구조)이며, 그것도 정치가 이루어지는 몸체이다. 몸체(구조)는 어느 정도 지속성과 불변성을 가진다. 불변성(법칙성)을 뜻하는 '아르케'가 '정체'의 의미를 갖게 되는 연유는 이러하다. 전체(폴리스, 몸체, 구조)는 지속성을 갖고, 결코 지속하지 않는 부분(개인)을 아우른다. 개인(부분)은 이런 폴리스(전체)에 참여함으로써 지속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된다. 부분(개인)이 전체(폴리스, 정체)에 참여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건 전체(폴리스)의 법칙성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법칙성(아르케)을 받아들이는 즉시 개인은 지배를 받는다.

이해되는가. 정치는 반드시 지배(권위)와 피지배(복종)를 야기한다. 그래서 무정부주의는 정치를 부정한다. 프루동도, 바쿠닌도 오직 경제만을 얘기한다. 이런 서양의 사유 방식을 모르면 왜 'anarchism'이 '무정부주의'로 번역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왜 프루동과 바쿠닌이 정치를 부정하는지가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아나키즘을 곡해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무정부주의'로 번역한 것이라는 뻘소리만 늘어 놓게 된다. 배워야 산다.

다시 'anarchy'의 어원 분석으로 돌아가자. 'arche(법칙, 원리, 정체)'를 'a(n)'(부정)한다. 그렇다면 '무정부주의' 즉, 정체를 부정한다고 번역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

이런 설명을 다른 어디에서라도 들어본 사람? 없줴?^^ 가열찬 노력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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