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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혜민 2011-02-25 21:37:05, Hit : 1301
Subject   마르코스- 네이버 캐스트
낡은 군용 모자, 검은 복면, 그리고 담배 파이프. 복면 사이로 보이는 두 눈에는 분노의 살기가 아니라 지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소총과 폭탄이 아니라 언어와 인터넷으로 전 세계의 반(反)신자유주의 운동의 상징으로 떠오른 21세기형 게릴라이자 작가.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부사령관 마르코스다.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의 소칼로 광장. 2001년 3월11일 일요일 오후 2시가 조금 넘은 시각. 25만 군중이 눈물을 흘리며 환호한다. 군중 앞에 20여 명의 사람들이 나섰다. 군중의 눈과 귀는 그 가운데 한 사람을 향한다. 500살이 넘은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부사령관 마르코스,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도착 이후 계속된 수탈과 저항의 역사를 자신의 나이로 삼은 마르코스다. 2월 24일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의 민족해방군 근거지에서 출발한 3천 킬로미터 평화대장정이 이날 끝났다. 현장을 지켜본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말이다. “우리는 사파티스타의 투쟁이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여는 순간을 보고 있다. 우리가 시작해야 할 새로운 투쟁의 서막이다.” 이날 연설에서 마르코스는 “우리는 권력을 원하지 않으며, 이제 그들이 귀 기울여야 할 때”라 말하면서 “신중을 가장한 채 흥정과 이익에만 열중하는 사람이 있다”고 지적하고, 원주민 권익 보장법이 통과되기 전까지 비센테 폭스 대통령과 만날 뜻이 없음을 밝혔다.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마르코스를 인터뷰했다. “열광에 반대하는 사파티스타의 전통에 따라 말씀 드립니다. … 우리가 대통령궁 점령이나 무장봉기를 선동하리라 기대한 세력은 당황했겠지요.” 열광에 반대하고 무장봉기를 선동하지도 않는 민족해방군이 군대일까?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최악의 사태는 권력을 차지한 혁명군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기를 든 것은 단지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정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새로운 세상을 제안하려는 것입니다.” 왜 비무장 평화대장정인가? “이 세계는, 멕시코는 다양한 차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차이들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관용을 바탕으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이것은 지난날의 정치군사조직들의 이야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비록 스스로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마르코스는 1957년 6월 19일 타마울리파스의 탐피코에서 스페인 이민자의 후손으로 태어난 라파엘 세바스티안 기옌 빈센테다. 가구와 전자제품을 파는 상인인 아버지의 8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자라났다. 양친은 결혼 전 시골학교 교사를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르코스는 아버지의 권유로 마르케스, 푸엔테스, 요사, 세르반테스, 셰익스피어 등의 작품을 탐독했다고 말한 바 있다. 예수회가 설립한 탐피코 문화센터에서 공부하면서 빈민가에서 봉사활동을 했고 해방신학도 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멕시코시티의 수도자치대학(UAM)을 졸업하고 멕시코 국립자치대학(UNAM)에서 철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수도자치대학에서 가르치기도 했다. 마르코스는 국립자치대학에서 연설하면서, 자신이 예전에 그곳에 있었음을 밝힌 바 있다.



기옌 빈센테의 가족은 마르코스가 자신들의 가족인지 여부에 관해 침묵한다. 누나 메르세데스 델 카르멘 빈센테는 타마울리파스 주의 검찰총장이자 20세기 멕시코 정계를 사실상 지배했던 제도혁명당의 유력 인사이기도 하다. 마르코스의 대학 시절 멕시코는 제도혁명당의 부패와 경제 위기로 젊은이들에게 앞날이 보이지 않는 암울하기 짝이 없는 시기였다. 그는 동 시대의 많은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1968년의 이른바 ‘68혁명’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다. 1983년경 기옌 빈센테 시절의 마르코스는 치아파스 주 원주민 마을에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1910년대 멕시코 혁명운동가 에밀리아노 사파타의 이름과 정신을 따라 1983년 11월 17일 결성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에서 활동하면서 지금의 이름, 마르코스로 다시 태어났다. 이 이름은 군 검문소에서 사살 당한 동료 게릴라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다큐멘터리 ‘치아파스라 불리는 땅’에서 마르코스는 치아파스에서의 초기 생활에 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도시 문화의 세례를 깊이 받고 도시 생활에서 익숙해져 있는, 대학 교육을 받은 한 사람을 생각해보라. 다른 행성에 착륙한 셈이다. 말이나 환경이 모두 생소하다. 외계인과 비슷한 처지다. 모두 이렇게 말한다. “떠나! 이건 실수야. 넌 이곳에 어울리지 않아.” 낯선 사람들, 그들이 행동하는 방식, 기후, 비가 내리는 것, 태양, 대지(大地), 그것이 진창으로 바뀌는 것, 질병, 곤충, 향수병, 그들이 이런 것들을 알게 해준다. 그들이 다시 말한다. “넌 이곳에 어울리지 않아.” 이런 게 악몽이 아니라면 또 무엇이겠는가?’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94년 1월 1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날, 치아파스의 주요 지역 다섯 곳을 점령하면서부터였다. 사파티스타는 원주민에 대한 수탈이 심한 치아파스 지역에서 지주들이 고용한 사병(私兵)의 폭력에서 농민을 보호하는 활동을 해오다가, 1988년 선거에서 대규모 부정이 저질러지면서부터 농민들의 신망을 폭넓게 확보하기 시작했다. 선거를 통해 권익을 확보하기 힘들다는 자각이 일어났던 것.


1993년 북미자유무역협정 체결은 농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멕시코 정부는 옥수수 수입제한, 커피 가격 보조금 등 농민의 기본적 생존권 보장을 위한 정책을 포기했다. 1917년 혁명헌법이 보장했던 제27조 공동토지소유 조항도 폐지했다. 1992년과 93년의 대규모 항의시위도 소용이 없었다. 정부군과 전투를 벌인 사파티스타는 1월 12일부터 정부와 협상을 시작해 잠정 합의안에 도달했지만, 1994년 대통령에 당선된 에르네스토 세디요는 원주민 권익 보호 등을 규정한 합의안을 이행하지 않는 것은 물론, 1995년 사파티스타 근거지에 대한 공격을 단행했다.



다시 무기를 들고 봉기할 것인가? 그러나 사파티스타는 무기 대신 매체와 캠페인을 택했다. 1995년 8월에는 정부와의 협상을 앞두고 민중투표를 실시하여 사파티스타가 정치 세력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중단과 원주민 자치를 요구하는 사파티스타의 목소리가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마르코스와 사파티스타는 신자유주의 물결에 저항하는 전 세계적 상징으로 떠올랐다. 특히 1996년 7월 27일에는 전 세계 43개국 3천여 명의 운동가들이 치아파스의 사파티스타 공동체에 모여 8월 3일까지 ‘신자유주의에 맞서 인류를 지키기 위한 제1차 대륙간회의’를 열기도 했다.  



“우리가 건설하는 나라는 모든 공동체와 모든 언어가 어울리는 나라, 모든 발걸음이 걸을 수 있는 나라, 모든 사람이 웃음을 가질 수 있는 나라, 모든 사람이 새벽을 살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들이 살 수 있게 우리는 싸웁니다. 그들이 살 수 있게 우리는 노래합니다 … 태어나고 삶으로써 우리는 죽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살 것입니다. 자신의 역사를 포기하는 사람만이 망각으로 되돌아갈 것입니다. 여기 우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항복하지 않습니다. 사파타는 살아있고,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투쟁은 계속됩니다.”


1996년에 정부와 맺은 ‘산 안드레스 협정’도 희망의 싹이었다. 협정에 따르면 정부는 새로운 법안을 만들어 원주민들에게 ‘멕시코 국가의 일부로서의 자치권’을 허용해야 한다. 그것은 원주민의 관습과 전통에 따른 독자적인 정치, 사회적 조직을 택하고, 땅과 자원을 스스로 통제하는 권리다. 그러나 협정 이행은 지지부진했다. 2000년 12월 취임한 비센테 폭스 대통령은 원주민 권리 법안을 의회에 보내 승인을 요청했고, 2001년 사파티스타의 평화대장정은 법안 통과를 호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2001년 7월 법안은 통과됐지만 많은 수정조항들 때문에 유명무실해져 버렸다. 마르코스와 사파티스타는 정부의 배신을 격렬히 비난하며 다시 기약 없는 투쟁의 길에 나서야 했다.



마르코스는 2006년 1월 1일, 사파티스타 무장봉기 12주년에 맞춰 6개월 일정으로 멕시코 전국 31개 주를 검정색 오토바이를 타고 도는 대장정에 나섰다. 체 게바라가 1951년 의사 친구 알베르토와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했던 일에 견주는 사람들이 많다. 7월 2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광범위한 대안 세력의 결집을 목표로 한 ‘제3의 캠페인’이었다. “정당들은 3년마다, 6년마다 똑같은 거짓말로 우리를 팔아 치운다.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고, 우리에게 유용한 것도 없다. 변화는 밑에서부터 올 것이다.” 그러한 밑으로부터의 변화는 침묵하지 않고 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권력은 자신의 침묵의 제국을 강요하려고 말을 사용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새롭게 하려고 말을 사용합니다. 권력은 자신의 범죄를 감추려고 침묵을 사용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귀 기울이려고, 서로에게 가 닿으려고 침묵을 사용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이 무기입니다. 우리는 말을 외칩니다. 우리는 말을 들어올려, 말로 우리 국민의 침묵을 깹니다. 우리는 말을 살게 함으로써 침묵을 죽입니다. 거짓말이 말하고 숨기는 것에는 권력 혼자 있게 내버려둡시다. 그리고 우리는 해방하는 말과 침묵으로 서로 손을 잡읍시다.” “우리는 모든 노동자와 가난한 소작농, 교사, 학생, 진보적이고 정직한 지식인, 주부 전문가와 자주적인 정치조직들이 모두 여러분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의 투쟁에 합류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모든 멕시코인이 바라는 정의와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무기를 반환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용서나 자선이 아니라 정의를 원합니다!”

이미지 연출로 게릴라 환타지를 충족시킬 뿐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 마르코스

‘탈현대적 해방운동의 모델을 제시한 탁월한 전략가’, ‘포스트모던 혁명가’, ‘체 게바라의 환생’, ‘폭발물보다 인터넷을 더 잘 다루는 21세기형 혁명운동가’,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저항운동의 상징적 아이콘이자 영웅.’ ‘무기가 아니라 담론(談論)으로 싸우는 투사’, ‘민주주의로 위장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 ‘화약 냄새도 제대로 맡아보지 못한 얼치기 게릴라’, ‘미디어의 속성을 절묘하게 활용하는 스타’, ‘스타일을 연출하는 데 능숙한 배우.’ ‘특유의 이미지 연출을 통해 게릴라 환타지를 충족시켜줄 뿐인 인물’, ‘세계 좌파들의 혁명에 대한 철 지난 낭만적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인물’ 등. 마르코스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평가들이다.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활동과 공과에 대한 논란도 분분하다. 사파티스타는 결국 마르코스를 정점으로 한 소수 지도부가 통제하는 위계적 수직구조의 정치군사조직이며, 그런 조직이 치아파스 지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한 것은 민주주의와 거리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심지어 사파티스타가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원주민들을 암살하기까지 했다는 주장, 사파티스타 게릴라들이 원주민의 돈, 가축, 살림살이를 훔치고 투옥, 강제노동, 추방, 폭력 등을 저질렀다는 주장도 있다. 사파티스타가 반드시 원주민들에게 구원의 손길만은 아니며 또 하나의 권위주의적 권력이라는 주장이다. 사파티스타와 마르코스로 인해 치아파스 주민들의 삶에서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나아졌는가? 라는 질문도 제기된다.

반면 사파티스타가 민주적 자치 공동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사파티스타 최고 지도부는 23명의 사령관들로 구성된 원주민 혁명위원회인데, 사령관들은 각자가 소속된 자치 공동체에 의해 선출되고 공동체의 의사를 따른다. 자치 공동체의 협의와 토론을 거친 결론에 따라서만 활동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자치적 민주주의 체제에 가깝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논란과 질문에 대한 답은 마르코스와 사파티스타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모든 전위는 스스로를 다수의 대표로 가정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소망일뿐입니다. 우리는 늘 자신에게 정직해지려 애씁니다. 예컨대 우리가 멕시코 남동부 지역 원주민 마을들만을 대표한다고 말할 때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말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룬 것은 바로 거기까지입니다. 그 이상은 아닙니다.”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마르코스 지음, 해냄)

멕시코의 정치사회 상황에 대한 견해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인 글, 게릴라 활동 경험담이나 작가들에게 보낸 편지를 포함한 사색적이고 문학적인 글, 그리고 직접 창작한 우화 등을 담고 있다. 마르코스의 생각에 접근하기 위한 가장 좋은 책이다.

<마르코스 : 21세기 게릴라의 전설> (베르트랑 데 라 그랑쥬 지음, 휴머니스트)


마르코스에 대한 열광을 접어두고 다양한 취재와 자료를 바탕으로 ‘차가운 머리’로 접근한 책이다. 저자는 ‘마르코스 현상’뿐 아니라 마르코스와 사파티스타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보여준다. 마르코스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되새겨보게 만든다.



<불의 기억> (전 3권,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음, 따님)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라틴아메리카를 담은 연대기 형식의 서사시적 역사. 픽션과 논픽션이 갈마들면서 억압받고 배제당한 이들의 목소리가 펼쳐진다. 갈레아노가 만신이 되어 펼치는 해원굿과도 같다.




-표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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