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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코프스키 2009-10-15 20:14:49, Hit : 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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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희망을 위한 직접행동]우리 역사의 사라진 길, 아나키즘

식민지 시대 한국의 지식인들은 어떤 세상을 꿈꿨을까? 일본 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이 그들의 주된 관심사였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해방이 되고 난 뒤에 그들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었을까? ‘국사(國史)’를 배워온 우리들에게 그 사회는 그냥 민족‘국가’였고, 대학의 세미나에서 사회주의 사상을 접한 뒤에는 민족이 사회주의로 바뀌었을 뿐 대안은 여전히 ‘국가’였다. 이호룡의 『한국의 아나키즘』(지식산업사, 2001)은 1910년대 이후 한국의 지성사가 발전해온 과정을 아나키즘의 관점에서 조망한다는 점에서 국사를 재해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호룡은 우리가 근대의 지성사를 파악할 때 첫 단추를 잘못 꿰었기 때문에 한국의 근대사상 연구가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사회주의를 수용한 시기와 수

용한 동기가 잘못 파악되었고, 사회주의의 조류가 다양하다는 점을 알지 못했으며, 공산주의 수용의 사상적 배경을 놓쳤고, 1920년대 초 사상계의 분화를 잘못 이해했다고 한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우리는 한국 근대의 사회주의 운동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설령 안다고 해도 매우 편향되게 그 역사를 파악했다는 지적이다. 안재성의 『경성 트로이카』(사회평론, 2004)가 그동안 억눌려져 왔던 사상의 단면을 드러낸 것은 맞지만, 그 역시 빙산의 일각일 뿐 빙산을 드러내는 작업은 훨씬 더 많은 역사적인 추적과 분석을 요구한다. 이호룡은 이런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외의 사상을 그 아류로서가 아니라 독자적인 체계를 갖춘 사상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식민지 시기 한국의 민중에게는 제국주의를 뒷받침하던 사회진화론을 극복할 사상체계가 필요했고, 이를 준비하던 과정에서 사회주의와아나키즘이 함께 소개되었다. 그리고 대동사상이나 사회개조론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제국주의를 대체할 사회의 원리로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이호룡은 한국사회가 이미 1880년대부터 아나키즘을 접했고 19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아나키즘을 받아들였다고 주장한다. 더구나 이호룡은 1910년대 사회주의의 주류가 아나키즘이었다고 주장한다. 1905~1920년 동안 일본, 중국에서 아나키즘운동이 활발했고 그 영향을 받은 한국에서도 자연히 아나키즘운동이 대세였다는 해석이다.

사실 내 관심은 1919년 3월 1일 이후 한국사회의 민심(民心)과 운동이 어떻게 변화했는가이다. 닭이냐 달걀이냐, 아나키즘이냐, 사회주의냐를 떠나 어느 문헌에서건 3․1운동을 한국사회의 운동에서 핵심적인 변화의 지점으로 지적하기 때문이다. 3․1운동으로 드러난 민중의 폭발적인 힘은 외부의 힘이 아니라 내부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민중이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이론이 아니라 경험으로 학습하게 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그 힘에 주목하며 의식화, 조직화의 길로 나서게 된다. 아마도 아나키즘이 그 과정에서 주목을 받았던 것은 민중의 힘에 주목했던 사상이자 우리 몸에 익은 상호부조의 전통을 반제국주의 사상과 잘 결합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이호룡은 책에서 “‘문화정치’가 시행됨에 따라 언론․출판․집회․결사․사상 등의 부르주아민주주의적 자유가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한국인에게도 주어졌고, 그 합법공간을 이용하여 아나키즘 선전작업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런 지적은 조금 더 깊은 고민을 요구하는 듯하다.

또 하나 관심을 끄는 사건은 1920년 조선노동공제회의 창설이다. 이호룡은 조선노동공제회의 주축이 아나키즘 세력이었다고 얘기한다. 이는 사회주의운동 연구자들이 지적하는 바와 상당한 차이를 보이지만 그가 책에서 인용하듯이, 공제회의 기관지인 《공제》에 아나키즘 관련 글이 올라온 것도 사실이고, 보통 사회주의 계열로 분리되는 서울청년회의 김명식 등이 아나키즘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조선노동공제회의 구체적인 활동 상황을 추적하는 것 또한 중요한 함의를 가지고 있을 듯하다.

어쨌거나 이호룡은 일제 강점기에 아나키즘이 주된 사회운동의 흐름으로서 존재했음을 선언한다. 민족주의, 사회주의와 어깨를 나란히 겨누며 아나키즘은 한국사회에 자리를 잡았다. 이호룡은 얘기한다. “한국 사상계는 다양성을 상실하고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의 극단적인 좌우 대립으로 치달았다. 좌우 대립을 완충시킬 수 있는 제3의 사상의 존재가 사라짐으로써 민족의 사상적 통합에 많은 문제점이 초래되었다.” 민족의 사상적 통합에 많은 문제점이 초래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의 사상적 좌표가 상상력 없이 사라져버린 시대에 아나키즘은 새로운 상상력을 줄 수 있다.

우리가 다른 역사의 과정을 밟았다면 어땠을까라는 공상보다 지금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할 것인가라는 상상에서 아나키즘은 다시 질문을 던진다. 누구와 함께 어떻게 새로운 사회를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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