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클랜 게시판/링크/물물교환/파일공유/아나키즘 읽기자료
잡민잡론잡설/안티 다국적기업/관리자방/English

아나키즘저널발행준비위원회/투쟁과집/투쟁과밥/군대반대운동
아나키FAQ번역프로젝트/재활센터/여고생해방전선/전쟁저항자들

View Article     
Name
  보스코프스키 2009-09-16 21:22:39, Hit : 751
Link #1    http://left21.com/article/6947
Link #2    http://left21.com/article/6947
Subject   [레프트21]청년 헤겔학파에 대한 마르크스의 계승과 단절

청년 헤겔학파에 대한 마르크스의 계승과 단절

폴 블랙리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활동가, 리즈 메트로폴리탄 대학 정치학과 교수)
기사 본문인쇄

마르크스주의는 부르주아 사회이론의 가장 선진적 조류들 ─ 영국 정치경제학, 프랑스 사회주의, 독일 고전 철학 ─ 을 종합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지금 봐도, 영국 정치경제학과 프랑스 사회주의가 마르크스주의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예컨대, 정치경제학자 중에서도 아담 스미스는 노동이 가치의 근원임을 보여 줬고, 데이비드 리카도는 비록 적[부르주아]의 편에 서 있기는 했지만, 노동계급 투쟁의 정당성을 지적했다.

또, 칼 마르크스가 파리에서 만난 사회주의 노동자들은 경제학자들이 당연시하던 이기주의적 개인주의에 대한 대안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실천은 계급투쟁이 단지 착취에 대한 반발일 뿐 아니라,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주의적 대안을 탄생시키는 산파 구실도 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반면에, 겉보기에는 독일 고전 철학과 사회주의 운동 간 관계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엥겔스는 후자가 전자의 직접적 “계승자”라고 주장했다.

G.W.F. 헤겔  엥겔스는 사회주의 운동이 헤겔 등 독일 고전 철학을 직접 “계승”했다고  말했다

△G.W.F. 헤겔 엥겔스는 사회주의 운동이 헤겔 등 독일 고전 철학을 직접 “계승”했다고 말했다

프랑스 혁명의 여진이 여전히 강한 상황에서, 독일 고전 철학의 두 거인, 임마누엘 칸트와 G.W.F. 헤겔은 프랑스 혁명가들처럼 자유가 인간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두 철학자 모두 인간 자유의 실현을 정치적 목표로 삼았지만, 그들은 아래로부터의 혁명보다는 위로부터의 개혁을 지지했다.

또, 칸트가 개인의 자율성을 강조한 것은 절대주의에 대한 급진적 비판을 고무하는 효과를 낳았지만, 부르주아 개인주의가 승리하자 칸트의 자유주의적 추종자들은 갈수록 보수화했다. 반면에 명목상 칸트보다 보수적 철학자로 여겨지던 헤겔의 이론은 훨씬 더 급진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헤겔은 비록 자유가 인간의 본질적 속성이지만, 그것은 특정한 사회ㆍ문화적 조건 속에서 실현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다양한 형태를 취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 사상이 혁명적 메시지를 담고 있음을 깨닫기는 어렵지 않다. 역사가 진보함에 따라 자유의 실현 가능성도 변하는데, 주로 기성질서를 위협하[고 자유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헤겔은 19세기 프러시아가 역사 진보의 종착점이라고 우기고 싶어 했다!

헤겔 사상의 두 측면[혁명적 메시지와 현존 프러시아 국가에 대한 찬양] 간 모순은 ‘실재하는 모든 것은 합리적이고, 모든 합리적인 것은 실재하는 것이다’라는 악명 높은 말에 압축적으로 표현돼 있다. 이 말은 기성질서를 옹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헤겔이 실재적[기저의 경향]인 것과 현재적[경험적ㆍ감각적 현실]인 것을 구분한 점을 고려하면, 과거에는 합리적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비합리적이 된 제도들을 개혁할 필요성을 제기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프러시아 국가가 개혁주의적 정책을 추구하는 동안에는 엥겔스가 말한 ‘헤겔의 보수적 학설과 혁명적 방법 사이의 모순’이 봉합될 수 있었다. 그러나 반동이 강화되자 헤겔주의의 모순이 첨예하게 드러나면서 헤겔 추종자들도 분열했다.

이 분열이 처음으로 드러난 것은 다비드 스트라우스의 ≪예수의 생애≫(1835)였다. 헤겔은 자신의 사상과 프러시아 국가의 개신교 교리를 조화시키려고 [신약성서의] 복음서에 대한 논의를 회피했고, 그 덕분에 헤겔 철학은 1820년대에 사실상 국가 공식 철학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지만, 스트라우스가 헤겔주의의 관점에서 복음서를 신랄하게 비꼬면서 둘[헤겔 철학과 프러시아 국가의 개신교 교리] 간 조화의 한계가 드러났다. 그 뒤 헤겔 우파들은 헤겔 방법의 혁명적 의미를 탐구한 청년 헤겔학파에 맞서 헤겔의 보수적 측면을 방어했다.

스트라우스는 복음서의 역사적 정확성을 논박하며 프러시아의 루터파 엘리트들의 성서 근본주의를 공격했지만, 그는 초기 그리스도교 사회뿐 아니라 당대의 그리스도교 사회에도 그런 신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근거로 그리스도교의 신화 자체는 옹호했다. 그러나 브루노 바우어는 헤겔 방법의 혁명적 측면을 한층 더 밀고 나아가, 비록 그리스도교가 초기 그리스도교 사회의 필요를 반영했지만, 이제 더는 사회의 필요를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급진 정치의 초점은 이제 종교 비판으로 옮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다음에는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가 청년 헤겔주의의 급진적 사상을 대표하는 구실을 했는데, 그는 그리스도교적 신 관념은 기껏해야 인간의 집합적 속성이 왜곡돼 반영된 상(像)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포이에르바하의 추종자들은 이 주장을 확대해서 특정 계급 주체에 기반을 두지 않는 추상적인 ‘진정[true] 사회주의’를 주장했다. 동시에, 막스 스티르너는 종교뿐 아니라 사회주의를 포함한 모든 정치 제도를 아나키즘의 관점에서 비판했다. 그는 그 어떤 정치 제도도 결국 개인의 자아를 권위주의적으로 억누를 것이기 때문에 모든 정치 제도에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년 헤겔학파 사이에 차이가 있었지만, 그들은 급진 사상이 사회 변화의 열쇠라는 점에 동의했다. 이것은 모든 사회 변혁이 인간 생활방식의 근본 변화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말한 헤겔의 주장과 어긋나는 것이었다.

이런 헤겔적 관점에서 보면, 추상적인 도덕적 설교를 통해 부르주아적 이기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유를 확대하자는 것은 사자가 양 옆에 얌전히 누워 있기를 바라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오히려 자유의 확대는 새로운 생활방식을 지향하는 실천 형태가 미리 등장해 있을 때 가능한 것이었다.

역설이게도, 이런 헤겔주의적 테제의 영향으로 마르크스는 청년 헤겔학파와 단절할 수 있었다. 먼저 청년 헤겔학파의 추상적 정치를 비판한 후 마르크스는 청년 헤겔학파가 무시한 신생 노동자 운동이야말로 자유라는 이상을 진정으로 심화시키는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주의는 [추상적인] 선(포이에르바흐) 또는 악(스티르너)이 아니라 새로운 생활방식의 이데올로기적 표현이다. 이 새로운 생활방식은 현실적 필요 때문에 연대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스트라우스가 비판한] 성서 근본주의도, [바우어가 비판한] 종교 일반도 핵심적 사회 문제는 아닌 것이다. 마르크스는 그 둘이 근본적 문제들의 외적 증상들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근본적 문제들로 초점을 이동하자고 주장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혁명가인 척하는 청년 헤겔주의자들의 태도를 비판한 후, 현대 세계에서 진정으로 혁명적인 이데올로기는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현실의 노동자 운동을 반영하고 그들에게 호소하는 이데올로기라고 결론지었다.

출처 영국의 반자본주의 월간지 <소셜리스트 리뷰>
번역 김용욱 기자

http://left21.com/article/6947





No
Subject
Name
Date
Hit
5492    마땅히 감당할만한 어려움과 감당케하심의 비밀 복음의문 2009/10/15  722
5491    일제고사, 또 봐?? 2009/10/13  731
5490    [성명서] 이주노동자 문화 활동가 미누를 석방하라! [5] 2009/10/10  697
5489    [속보] 밴드 스탑크랙다운 보컬 미누 오늘 출입국단속반에 의해 폭력 연행, 내일중 강제출국 위기!! [3] 2009/10/08  1012
5488    Anarchy is what states make of it 이라던 한 남자 RichBelzer 2009/10/08  999
5487    용산국민법정의 모든 것을 알려줘 2009/10/03  929
5486    어제 [1] 문화파괴 2009/09/28  813
5485    미니피켓을 만들어 보자. [5] 문화파괴 2009/09/25  938
5484    [레프트21]대중매체는 전능한가? 보스코프스키 2009/09/18  839
5483    [동영상] 용산참사 8개월 추모제에 오세요 2009/09/17  796
5482    [해방]언론이 저지른 ‘살인’의 추억 보스코프스키 2009/09/17  681
   [레프트21]청년 헤겔학파에 대한 마르크스의 계승과 단절 보스코프스키 2009/09/16  751
5480    청춘의 도망 -으흠 uhhm 2009/09/13  750
5479    청춘의 도망 uhhm 2009/09/13  785
5478    라디오로 듣는 용산참사 현장소식 (2009년 9월 11일) 2009/09/12  656
5477    사회과학아카데미 2009-2학기 개강 사회과학아카데미 2009/09/11  581
5476    [레프트21]자본주의와 예술 & 자본주의와 예술을 읽고 보스코프스키 2009/09/10  712
5475    외할아버지 돌아가시다 uhhm 2009/09/08  1065
5474    글 일 uhhm 2009/09/01  698
5473    [네이트도서]세 깃발 아래에서 - 아나키즘과 반식민주의적 상상력 [1] 보스코프스키 2009/09/01  844
5472    노란색 꽃 식물 쇼 uhhm 2009/08/31  847
5471    어제 [1] uhhm 2009/08/31  712
5470     [2] uhhm 2009/08/31  826
5469    아나방 [2] 문화파괴 2009/08/28  739
5468    [해방]국가의 폭력은 정당한가? 보스코프스키 2009/08/27  736
5467    용산 찍고! uhhm 2009/08/24  734
5466    과거 붕어의 글 uhhm 2009/08/23  827
5465    아나키즘에 대해 [4] uhhm 2009/08/16  1008
5464    아나키의 여름.. 요이 2009/08/16  732
5463    오늘, 아니 어제(15일)에 마로니에 공원에 있었는데.. zara 2009/08/16  749
5462    문득 uhhm 2009/08/15  664
5461    ㅎㅎ 떨거지 uhhm 2009/08/15  704
5460    땀 이빠이 잠 uhhm 2009/08/15  797
5459    직접행동 [7] 2009/08/09  918
5458    [월간사회운동][혁명운동과 여성] 엘러너 마르크스 <-- 아나키스트에 대한 ***없는 인식을 보시라! [2] 보스코프스키 2009/08/08  910
5457    한 블로그 포스트의 비난어 아나키스트!!! [1] 보스코프스키 2009/08/08  1052
5456    용산참사 200일 추모제가 열립니다 2009/08/05  733
5455    [행동하는 라디오] 용산참사 200일 - 진상규명 없이 저는 절대로 남편을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언론재개발 2009/08/05  867
5454    참사를 부르는 쌍용자동차 공권력 침탈을 즉각 중단하라! 2009/08/05  760
5453    아나방, 나방들의 찬란한 날개짓을 꿈꾸며 우리는 용산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3] 2009/08/03  1091
Prev [1][2][3] 4 [5][6][7][8][9][10][11][12][13][14][15]..[141] Next
Copyright 1999-2017 Zeroboard / skin by lifes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