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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pe 2002-03-16 15:53:09, Hit : 2919
Subject   최보은의 충격선언 "박근혜 찍는 것이 진보"
디지털 말(http://www.digitalmal.com)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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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출마하면 나는 그를 찍겠다"
페미니스트들의 연쇄 인터뷰-최보은

글 박형숙 기자
사진 박여선 기자  



최보은(43). 현직 영화잡지 월간 『프리미어』 편집장. 전직 『한겨레』 공채 1기 정치부 기자로 출발, 『씨네21』 한국영화 팀장과 『케이블TV가이드』 편집장을 거쳐 『씨네21』에서 「아줌마 극장 가다」란 제목으로 칼럼 연재, 김규항과 함께 『한겨레21』 쾌도난담 진행. 그의 직업상 이력은 그렇고, 본격 ‘허스토리’는 30대 중반 이후 자신이 소수자임을 인식하면서 과격해지지 않을 수 없었던 나날들 속에 있다. 길 가는 남자 아무라도 붙잡고 싸우고 싶을 정도로 억울함이 삶 전체로 치받쳐 쌈닭처럼 손발톱을 세우며 살았다. 그 과격함은 얼추 ‘초강력 아줌마 페미니스트’로 정리되는데, 정작 자신은 ‘여자 마초’ ‘여자 전두환’이라는 누명까지 수용할 태세다.

칼도 없고 총도 없는 여자들의 무기가 생각이고 글이듯이 최보은 아줌마의 주무기 역시 글이다. 거기에 입담까지 좋은 아줌마, 과연 말의 위력을 120% 활용하며 산다. 그 피 없는 총성의 파괴력은 ‘통박 굴리지’ 않은 글, 어디까지 써야 할지 검열하지 않은 글, ‘손끝에 잉크가 마려워’ 쓰는 글이라는 점에 있다. 그리고 바탕에는 여성은 자신의 무덤까지도 사유화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회에 나와 있는 여성들의 자리는 그 자신만의 몫이 아니라는 철저한 여성주의적 윤리가 배어 있다. 그걸 솔선수범하는 차원에서 아줌마는 늘 자신의 삶을 도마 위에 올리고 반성과 성찰을 공개적으로 진행한다. 그의 글이 많은 사람들을 적시는 건 그 때문이다.

“내가 어느 순간 페미니스트가 돼 있는 걸 보고 스스로도 놀랐다. 나는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했을 뿐인데. 내 수준이 사회적 요구와 맞아떨어지는 시점이구나 싶었다.”

아줌마는 어느 칼럼에선가 ‘내가 늘그막에 진짜 ‘진보’가 되었다면 그 이유는 아마 가문도 학벌도 재산도 없는 남자와 결혼한 것이고 딸 둘을 낳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런 소수자의 삶에 보태진 두 번의 이혼경력과 남성 중심의 언론사 기자생활은 자신을 마이너로 인식하는 데 충분한 분노의 재료들이었다. 그럼에도 혈관 속에 여전히 떠다니는 ‘토막시체’들, 주류의 정서들을 하나둘 끄집어내 지면을 통해 신앙고백하는 것은,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줌마의 열혈 독자들이 보인 반응은 크게 두 가지. 인터넷의 익명인(아마도 남자)은 대부분 욕이고, 개인 이메일의 실명인(아마도 여자)은 거개가 찬사였다. 그러던 중, 아줌마 훈장에 시비가 걸려도 좀 크게 걸린 일이 발생했다. 영화 「친구」를 평론한 글에서 언급된 다음의 내용 때문이다.

“…맨날 ‘여자 여자’를 입에 달고 살면서 100% 수컷정서인 이 영화에 매혹됐던 자기감정의 실체가 좀 궁금해졌고, 그래서 그 이튿날 한 번 더 봤다. 그 결과 아줌마는 자신이 수컷을 좋아할 뿐 아니라, 나아가서 수컷들의 세계를 동경하기까지 한다는 것을 알았다. 여자들의 의리라고 해봐야, 기껏해야 신세타령을 열심히 들어주거나 꿔간 돈을 제때 갚거나 친구의 애인이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가로채는 짓 따위는 자제하는 수준인데 남자들은 ‘한 놈 찍어라. 직이주께’ 정도인 것이다. 그리고 ‘내가 건달노릇 못하게 되면 개인택시 한 대 뽑아달라’고 부탁해도 되는 사이인 것이다.”

남자들의 우정에 질투를 느낀 아줌마, 남녀의 차이는 알통의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과 집단이라는, 신입사원으로 남자를 뽑으면 그의 학연, 지연, 혈연이 다 따라오지만 여자는 달랑 홀몸이라는 차이를 깨닫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여자들아, 우리도 집단이 되자고.



“잘 나가는 여자 ‘열씨미’ 밀어주기, 잘 나가는 여자 질투하지 않고 더 잘 나가도록 밀어주기, 필요하다면 ‘시다바리’ 기꺼이 해주기, 남편, 자식들한테만 매달려 살지 않고 평소에 주변 여자들 부지런히 챙기기, 개인적으로 싫은 여자도 사회적으로 좋아하기, 어떤 여자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그 여자가 알고 보면 방귀 잘 뀐다더라는 식의 놀부짓 하지 않기, 능력 있는 여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소문내 주기, 한영애과라도 그게 여자라면 표 찍어주기(욕해도 좋다. 하지만 아줌마는 박근혜씨가 대통령에 출마한다면 그를 찍을 작정이다. 멸종위기의 동물은 그게 해충이라 하더라도 보호해야 하고, 프런티어를 개척한다면 그게 진보파 낫이든 보수파 낫이든 무슨 상관이겠느냐는 논리에서), 딸들 옷 사줄 돈 아껴서 여성정치인 후원금 내기 등.”

문제의 발단이었다. 박근혜를 찍겠다? 이 글이 나가고 공식적인 반론은 『여성신문』에 실린 유영선 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의 글 하나였지만 비공식적 비판은 지금까지도 여기저기에서 떠돌고 있다. 차라리 진보적인 남성들처럼 “이회창이 대통령되는 것과 노무현이 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지 않느냐, 그런데 왜 갑자기 박근혜를 지지한다고 해서 표를 분산시키느냐”는 식의 정치적 비판이라도 나오길 기대했던 여성계에서 돌아온 반응은 냉담이었다. ‘여자 박정희’에게 더 두고 볼 정치적 고려가 무어냐 라는 식이다.

‘총알 받아주는 여성에 대한 유난한 편애, 그러니까 여자들이 당대에 깨져줘야 우리 딸들의 삶이 편해진다’는 최보은식 가설을 십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차원의 정치적 ‘오버’라 치더라도, 이번 건은 너무 나간 거 아닌가? 이번 인터뷰의 취지는 그것이었다.

멸종위기 동물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2월 4일 오후 두 시, 약속시간에 맞춰 등장한 최보은 아줌마, 잠깐 기다리라며 원고 하나 마무리할 시간을 달라고 한다. 작년 8월 입사한 뒤로 자신을 고액에 스카우트한 회사에 제 몫을 다 하기 위해 외고청탁을 가리지 않는단다. 철저한 직업윤리의 소유자답다. 자기 자리가 자신의 것만은 아니라는 소명, 혹여라도 여자 편집장 데려다 놨더니 죽 쒔다 라는 평판이라도 나면 그건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많은 능력 있는 여자들에 대한 배신이라는 생각에서다.

“내가 ‘출마한다면 박근혜 의원을 찍겠다’고 공언할 때까지만 해도, 그것은 여성정치 참여현실의 참을 수 없는 후진성에 대한 역설적, 반어법적 수사였다. 박근혜의 정치적 기반 뒤에 독재자에 대한 퇴영적 향수, 지역주의의 정서가 숨어 있다는 것을,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왜 모르겠는가. 박근혜가 구체적 화두로 다가온 것은, 그가 한나라당 대선후보 당내경선 주자로 나선 뒤였다. 그 전부터 이 땅에서 여성의 참정권 행사는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 ‘철학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유권자가 된 뒤 두 번의 대선에서 똑같이 김대중씨를 찍었고, 총선 때마다 제1야당 후보를 찍었던, 그 전의 투표행위가 과연 내 이익에 부합되는 것인지에 대한 반성적 성찰 때문이었다. 지난번 대선 때만 해도, 진보정당에 투표해 표를 분산시키는 젊은 후배들을 꾸짖고 야단칠 정도로 확신이 있었는데, 현실정치를 지켜보면서 묘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사표를 방지해야 한다, 힘을 모아야 한다, 우선 급한 적을 따돌려야 한다, 이런 논리가 개인의 신념이나 원칙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방기하게 하는, 그리하여 결국엔 철학부재의 집단논리로 ‘자기 이해의 반영’이라는 개인 참정권 행사의 기본원칙을 묵살하게 하는 데 대한 연막은 아니었던가? 더군다나, ‘일상의 파시즘’론이나 여러 논의를 통해, 진보진영도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나 전체주의적 집단의식과 권위주의, 성차별 행태 면에서는 주류사회의 그것을 거울처럼 반영한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도, 여성진영은 왜 참정권 행사를 여성 독자의 이해관계에 기반해서 바라보지 않고 ‘진보진영’의 틀 속에서만 바라보려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최보은의 박근혜 지지설은 최보은이 박근혜를 지나칠 수 없는 이유로 수정되어야 했다. 그는 자문했다. 나는 박근혜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 그저 박정희의 딸이라는 사실 외에 한나라당 부총재로서, 외무통일 상임위 소속 국회의원으로서, 또 여성 정치인으로서 무엇을 알고 있는가. 아니 나는, 우리는 왜 박근혜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가.

“왜 언론들은 비록 당내이긴 하지만, 헌정사상 최초로 ‘대권’에 도전한 여성 정치인에 대해 합당한 관심을 할애하지 않는가? 왜 각국 여성지도자, 특히 대를 이어 정치한 여성 지도자들의 정보를 쏟아내지 않는가? 왜 조지 부시나 힐러리 등의 ‘정치적 지위 승계’를 우리의 그것, 동남 아시아의 그것과 비교하지 않는가? 나는 지난해 남북화해 무드로 떠들썩할 때,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동행취재하고 돌아온 기자들이 김정일에 대해 ‘날 때부터 제왕수업을 받았던 인물’이며, ‘그 제왕수업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정치적 자산’이라고 평가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왜 그런 논리는 박근혜에게 적용되지 않는가?”

한바탕 ‘박근혜 소란’을 일으킬 작정이다



아줌마는 박근혜를 향한 언론의 이중성을 지적한다. 이회창, 노무현, 이인제와 같은 남성 정치인들을 묘사하는 틀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

“다른 여성 정치인들에 비하면 ‘그 기반’을 의식해서인지 비교적 호의적이긴 했지만, ‘대권 도전’과 같은 결정적인 시점에 다다르면 그 실체가 드러난다. 보수는 보수대로 자신들이 그토록 독재자 향수를 부추겼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듯이 정치인 박근혜의 존재를 조용히 묵살하고, 진보언론은 ‘박근혜=박정희’의 등식을 기정사실화한다. 박정희 향수가 그토록 위험하다면 왜 언론들은 박정희 기념사업에 대해서 흥분하지 않았는가? 아니면 적당히 흥분했는가? 보수언론은 심정적으로 동조하기 때문에, 또 진보언론은 그것이 상대적 진보인 소수정권의 ‘불가피한 전략’임을 이해하기 때문에,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일 것이다.”

아줌마가 내린 결론, 보수언론이나 진보언론이나 똑같다. 정치인으로서의 박근혜의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은 대목에서는 말이다. 한 마디로 아줌마는 ‘잠재적 대권후보 박근혜’를 둘러싼 지금의 고요가 싫다. 박정희 향수를 일으키게 하는 『조선일보』조차 그 딸의 존재를 무시하는 상황이다. ‘페어’하지 않다. 그러면서 치명적인 ‘후광’으로 말하자면 ‘아버지’ 기반이 없는 정치인이 누구냐고 반문한다.

“온갖 학연과 지연, 혈연으로 무장한 남성 정치인들은 학교의 아들, 고향의 아들, 가문의 아들은 아니었던가? 김대중도 호남의 아들이 아닌가? 정치적 전근대성으로 말하자면 누가 자유로운가? 지금 민주당의 경선 후보들이 모두 정치적 아버지를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대놓고 ‘대부’를 하나씩 모셔두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정치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나? 오히려 그들의 후광을 자연스럽게 보도하며 정치로 그럴싸하게 포장한다. 정치판 전체가 전근대적이라는 업보를 안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는 성차별의 희생자다. 권력자의 아들들은 외곽정치, 막후정치를 통해 권력을 휘둘렀지만 박근혜는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서도 행사한 권력이 김현철에 미칠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떳떳한 지지세력’을 가지고 있는 진보진영은? 그마저도 불길하기는 마찬가지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안 찍는 사람은 많아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찍을 사람은 극소수인 이 땅에서, 설사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여성 후보’를 찍을 가능성이 있는 그 극소수의 여성도 대부분 ‘진보진영’에 ‘열등한 위치’로 편입돼 있다. 거기에는 이 땅의 여성운동을 그토록 어렵게 만드는 ‘우선순위’의 문제가 앞을 가로막고 있다. 여성 스스로도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잖아’라고 백안시하고 서로 끌어내 주는 기회를 사장시킨 게 사실이다. 물론 진보진영 전체가 자신의 가부장적 실체를 반성하고 ‘여성 지도자’의 조력자가 될 날이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미경 의원이나 추미애 의원이 ‘수컷들의 세상’인 정치판에서 온전히 자신만의 역량으로 정치기반을 다져서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때조차도, 그들보다 훨씬 더한 정치적 경륜과 식견으로 무장한, 훨씬 더 탄탄한 정치기반을 가진 ‘진보적 남성 후보’들이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앞일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가능성을 믿고 때를 무한정 기다리기에는, 여성의 현실이 너무나 절박하지 않은가. 여성의 정당한 권력획득, 정치계에서의 합당한 지분확보가 1년 지연될 때, 그 1년 동안 성차별 현실에서 희생당하는 여성의 수를 생각해 보라. 말 그대로 고스란히 한 세대의 절반인 여성이 불이익을 당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여성의 현실이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아줌마가 박근혜에 주목하는 것은 여성의 정치현실에 대한 뼈저린 각성에서 비롯되었고, 이는 ‘후일’을 도모하기 위한 전략적 제스처로 나타난다.



“만약 이 땅의 여성들이 여성의 참정권 행사와 정치세력화를 위해 피를 흘렸다면 여성들의 정치의식이 지금처럼 열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박근혜를 훨씬 더 치열한 토론과 관심의 담금질 앞에 두어야 그 뒷세대 정치인인 이미경, 추미애 의원도 그에 합당한 주목을 받을 수 있다.”

해서 아줌마는 한바탕 소란을 일으킬 작정이다. 소란 통에 온갖 말이 쏟아질 것이고, 거기서 배워야 할 것과 버려야 할 생각이 가려질 것이며, 보수와 진보의 입장차이가 드러날 것이며, 일부 위장된 진보의 실체도 볼 수 있을 것이며, 박근혜도 여성의 생각을 배우고 여성의 기대를 두렵게 의식할 것이기에. 이른바 ‘박근혜 효과’를 십분 활용하자는 것이다.

“그 에너지와 목소리가 모아져야 나중에 박근혜가 반여성적 정책을 편다고 하면 바로 반대운동이라도 해서 탄핵하자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여기까지가 서초동 그의 사무실에서 ‘맨 정신’으로 나눈 대화다. 아줌마의 말은 길고 또 빨랐다. 소문처럼 입담이 대단했다. 그걸 아줌마는 ‘오랄 딸딸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밤’에는 느낄 새가 없다나. 암튼 우리는 칼칼해진 목도 축일 겸 2차로 아줌마 단골 맥주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실 내가 박근혜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건 여성들이 이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뛰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어. 치마만 둘러도 우리는 찍을 수 있다고 여겨질 정도로 여성들의 불만이 치솟아 있다는 걸 보여주자는 거지.”

맞다. 2백99명 국회의원 중 여성 의원 16명, 지역구는 고작 다섯 석. 여성의 취학률이 세계 130개국 가운데 27위인데도, 여성권한척도(여성들의 국회의원, 행정관리직, 전문기술직 비율)는 70개국 중 63위인 현실. 영국에서 11년이나 집권한 대처 수상이 보수당 출신 매파고, 여성문제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해도 그가 수상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여성 국민들은 여성해방 교과서 10권 읽은 효과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대한민국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일개 이장도 못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에서는 주민들이 뽑은 여성 이장을 면장이 “면 내 이장이 모두 남자인데 여자가 끼면 어렵지 않겠느냐”는 이유로 임명장을 주지 않았다는 기사가 보도된 바 있다.

“여자들은 자기 입장에서 사유하고 거기에 입각해 자신의 이익을 챙길 수 있는 훈련부터가 안 돼 있잖아. 그동안 믿었다가 배신당한 남성 지도자들이 얼마나 많아. 그냥 당대논리에 휩쓸려 온 거지.”

아줌마는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프리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자생활하면서 남자들과 오만가지 걸로 다 싸웠어. 또라이 취급당하고 굉장히 시끄러운 여자로 찍혔었지. 그런 나를 선배로 인정하지 않았어. 하지만 그렇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후배들이 남자 선배를 모실 땐 거의 무조건적인 경의를 표하는 모순을 봤거든. 당연하지. 남자 선배 뒤에는 ‘집단’이 있으니까. 근데 나는 아무것도 없잖아. 그러니까 쉬운 상대로 여기지. 끊임없이 떠들고 끊임없이 싸우다가도 내가 분에 못 이겨 울기라도 하면 또 그래, 선배가 그러니까 여자라는 소리 듣는 거라고. 남자들이 나를 좋게 평가할 때는 누나와 엄마 역할을 해줄 때였어. 고민 들어주고 격려해 주는 따뜻한 사람, 또 젊은 여기자에게는 애인의 모습을 기대하지. 그걸 거부하면 공격과 왕따가 시작돼.”

아줌마의 ‘시다바리론’은 그래서 나왔다. 아무리 무늬만 여자여도 존재론적으로 소수자고, 언젠가 경험과 정서를 공유할 시기가 온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지가 아무리 잘 나가도 ‘황금가치’를 지닌 나이가 지나면 상처의 인과관계가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줌마는 진보적인 남성이 보수적인 여성보다 낫다고 말 못한다. 아니, 아줌마의 여성주의적 당파성은 개량한복 입은 노무현보단 양복 입은 김옥선이 낫다는 쪽이다. 그걸 몸으로 경험했다.



“남자들이 여자들을 상대로 분할정치를 해. 조직에서 여자들이 소수잖아. 먹이는 조금 던져주면서 싸움을 붙이는 거지. 자리 싸움하게 하고 여자 중에서 누가 최고냐 그러면서 서로 철천지원수 만들고. 『한겨레』 근무할 때 나와 조선희(『씨네21』 전 편집장)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자매애를 자랑하기까지 순탄치 않았어. 욕하고 싸운 뒤 1년 동안 말도 안 하고 지낸 적도 있으니까. 그러다가 우리의 이익은 결국 같이 간다는 걸 깨달았지.”

말 끝마다 “내가 좀 잘났잖아(웃음)”하며 ‘맨파워’를 뽑내던 아줌마도 ‘김선주 학교’를 말하는 대목에선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한겨레』 출판국장을 거쳐 현재 논설위원으로 있는 김선주씨가 ‘바람막이가 되어준 최초의 여자선배’라며 그에게서 배운 여기자들은 회사 안에서뿐만 아니라 회사 밖에서도 자매애를 실천한다는 것이다.

“내가 첫 남편과 헤어지고 집도 없이 떠돌 때, 앵벌이 번역해서 1천 몇백만 원짜리 지하방 두 칸짜리 전세 겨우 얻었는데 이혼축하연을 『한겨레』 여기자 20명이 해줬어. 그때 이불이며, 비디오, 세간들을 다 해결했지. 두 번째 이혼할 때는 버는 족족 남편과 시댁에 쏟아붓고 빈털털이가 돼서 이혼할 엄두도 못 내고 있는데 여자동료들이 일단 나와라, 방이 없어 못 나오면 우리가 마련해 주겠다면서 빚을 내, 내 전세자금을 만들어 주더라고.”

그래서 아줌마는 이혼을 ‘실천’할 수가 있었고 그 연대의 단맛은 잊을 수가 없다. 아줌마가 무례하게 구는 여자후배에게도 계속 추파를 던져 결국 돌아오게 만들고, 남편과는 이혼했지만 두 시어머니와는 친정 엄마보다 더 잘 지내는 친화력은 이때 생성됐다.

“여자들에 관한 한 소수자의 연대는 권력을 쟁취하기 전까지는 무해해. 물론 권력을 쟁취하고 나서 그 다음에는 치열한 감시와 견제의 대상이 되겠지만.”

여성 연대는 권력을 쟁취하기 전까지 무해하다

현재 아줌마의 가족구성은 친정엄마와 딸 둘, 즉 모녀 삼대로 이뤄져 있다. 이 아줌마 가장은 또래 남자 가장들에 비해 수입이 적지 않은데도 지금보다 배는 더 받아야 한다며 주판알을 튕긴다.

“아무리 많이 받아도 여자의 연봉은 남자의 반밖에 안 돼. 남자들은 마누라 몫을 거져 먹잖아. 공짜로 빨래해 주지, 밥해 주지, 애들 공부 가르쳐 주지. 근데 나는 그 걸 다 돈으로 지불해야 돼. 파출부, 가정교사, 친정 엄마한테.”

밖에서 그렇게 승승장구하는 아줌마도 역시 자식이 아킬레스건임은 예외가 아닌가 보다. 본인은 극구 ‘나는 좋은 엄마야’라고 주장하지만 주변의 공격이 만만치 않다.

“일하는 시간 좀 줄여서 아이들 챙기라고 그래. 그럼 나는 굉장히 짜증이 나. 그러는 한 우린 계속 쪼개지고 극한으로 밀어붙이며 살 수밖에 없어. 물론 알지. 내가 아이들 외롭게 내버려두는 거. 언젠가 서평에 그런 말을 쓴 적이 있어. 부모라는 존재는 운명을 대물림하는 드라큘라라고. 부모자식 간에 안전거리가 없으면 둘 다 위험해. 매일 집에서 맛있는 거 챙겨주고 깨끗한 옷 입혀주는 것보다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바꾸는 게 아이들에게도 더 오래 기억될 거야.”

아줌마는 ‘사회악으로부터 너희가 보호받을 수 있는 예방주사를 놔주겠다’라는 심정으로 바깥일을 한다. 그게 최보은 아줌마 육아법의 핵심이다. 또 일찍이 ‘복사기에 낀 구겨진 종이’ 같은 자신의 삶을 딸들이 반복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순조롭게 찍히는 복사기로 교체해 더 나은 세상이 찍히도록 앞으로 방방 뛰며 살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아줌마가 ‘천둥벌거숭이’를 자처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나는 20%의 진실과 80%의 농담을 하는 코미디언이야. 앞에 간 사람이 좀 난리를 쳐야 그 다음 후배들은 뭐 전에 최보은도 있었는데 하며 좀 쉽게 넘어가지 않겠어? 선배가 도마 위에 오르고 깨지는 걸 두려워하면 그건 끝장이야. 난 내가 무수히 깨지기를 바라고 그런 나를 후배들이 이용하길 바래. 난 고작 인간사다리 한 칸이야. 딛고 올라가라 이거지.”



아줌마는 욕심이 많다. 그런데 권력은 없다. 가문도 없고, 대학졸업장도 없고, 모아둔 재산도 없다. 얼마 전에 딸들 앞으로 들어둔 교육보험도 깨서 빚 탕감했다. 생명보험 하나 달랑 남았다. 그야말로 적수공권이다. 게다가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니 남는 게 있을 리 없다. 권력이라 봤자 기자 출신이라는 건데 그 권력의 기반인 말과 글도 이미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배운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럴 거야. 뭐 저런 게 다 있나 하고. 하지만 난 내 위치를 알아. 여성운동가나 여성학자와는 다른 몫이지. 나는 내가 관념적이지 않다는 게 자랑스러워.”

아줌마는 앞으로 더 과격해질 것 같다. 그러면서 아직 공개되지 않은 글이라며 한 가지 사실을 귀띔한다. 모 남성 잡지에 기고할 내용인데 “나는 이혼을 두 번하고 남자 열두어 명쯤과 자봤을 뿐이다”라고 썼단다.

“내가 정치인이면 그런 얘기 죽어도 못하지. 하지만 내 세계관과 가치관에선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확신이 있어. 그건 마치 내가 어젯밤 술을 10병을 먹었냐, 12병을 먹었느냐는 거랑 동급의 얘기야. 이건 뭐 커밍아웃도 아니고 폭로도 아니거든. 그런데 이런 얘기에 너희들 놀래? 야, ×× 이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 속의 숱한 거짓과 위선이라는 베일에 진짜 놀랄 만한 진실이 숨겨져 있고 뒤집어질 만한 거짓이 있는데 이까짓 걸로 놀래? 진짜 윤리가 뭐고 도덕이 뭔지 생각해 봐. 무서울 지경이라고.”

아줌마가 다시 도마 위에 올라갔다. 3년 전 남편과의 육탄전을 생중계하며 얻어터진 여자의 커밍아웃을 하더니 이번엔 여성의 순결을 조롱하기 위해 몸을 날린다. 과연 페미니즘은 ‘체험’의 이데올로기였던가.

두 시에 시작한 인터뷰는 밤 11시가 다 돼서 끝이 났다. 아줌마는 하남시에 있는 집으로 갈 차를 놓쳤다. 그냥 ‘센트럴’로 간단다. 센트럴은 아줌마의 단골여관 이름. 야근과 철야가 잦은 직업특성상 회사 근처에서 해결하는 일이 잦다.

“나 단골이라고 3만5천 원짜리 방을 3만 원에 줘”라며 아줌마는 뭐 대단한 특혜분양이라도 받은 양 얘기한다. 15센티미터는 족히 되는 높은 굽의, 뒤가 터진 신발을 신고 여관으로 들어가는 뒷모습. 발에 열이 많아서, 또 세상을 좀 높은 곳에서 바라보고 싶어서 신는다는 그 높은 슬리퍼 위에서, 아줌마의 몸은 별다른 흔들림이 없다.

“내가 재혼하고 아이 둘 키우면서 프리랜서 일을 시작했을 때였어. 돈을 벌기 위해 영어만 봐도 토할 지경으로 번역을 해댔지. 그때 뼈저리게 느꼈어. 이건 법이나 제도가 해결해야 할 문제겠구나. 혼자서는 안 되는구나. 그래서 친구를 찾아갔어. 이름이 알려진 친구였는데 내가 막무가내로 그랬지. 너 정치해, 그렇게 유명해지는 거 쉬운 일 아냐. 그 이름, 여자들 위해서 써, 그랬는데 못하겠대. 도마 위에서 부관참시 당할 생각하면 끔찍하고, 정치가 적성에 맞지도 않는대. 그래도 나를 위해서 해달라고 졸랐어. 나, 숨도 못 쉬겠다고….”

술자리를 파할 무렵, 아줌마가 뱉어낸 말이다. 아줌마는 정말 한가하지 않았다.

제 189 호 2002 년 3 월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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