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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pe 2002-04-13 10:18:16, Hit : 1626
Homepage   http://dopehead.net/
Subject   [펌] 조선로동당을 넘어, 조선로동당 문제를 넘어서

~~~ 민주노동당, {이론과 실천} 2002년 2월호 ~~~~



[쟁점] 재창당 논의와 "반조선로동당"

                             조선로동당을 넘어, 조선로동당 문제를 넘어서

                                                                                                         주대환





  1. 개인이든 집단이든 정면 대결하기 싫어하는 문제가 있다. 아니 문제의 해결을 뒤로 미루다보니 그것이 습관이 되거나, 그렇게 뒤로 미루는 것이 신중한 태도인양 생각하게 되어버린 그런 문제가 있다. 우리 민주노동당에게는 ‘조선로동당 문제’ 또는 ‘조선로동당과의 관계라는 문제’가 아마 그러할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고민거리로 자리 잡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술자리에서는 간혹 화제가 되지만, 당의 공식회의에서 말해서는 안 되는 금기로 되어 있다. 어릴 적 친구들과 부모형제들을 민주노동당 지지자로 만들기 위해서 애쓰고 설득하다 보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문제이지만 각자 개인적으로 알아서 적당히 해결하고 당에 돌아와 공개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우리 당의 이런 분위기가 바뀌기 전에 누군가 조선로동당 문제를 들고 나온다면 그 사람은 당원 동지들로부터 칭찬을 받지 못할 것이다. 덮어두어야 할 문제를 꺼내어 쓸데없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으로 치부될 것이다. 지금 당의 분위기는 어떤가? 아무도 쓰지 않으려 한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맡겨진 글을 쓰기에 앞서 걱정이 앞선다. 물론 사회당에서 워낙 강경하게 조선로동당에 대한 우리 당의 입장과 태도를 밝히라고, 그것만 분명하게 하면 통합을 할 수 있다고 하니 이 문제에 대해 지금 글을 쓰더라도 최소한 뜬금없는 논란거리를 들고 나오는 사람으로 치부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래도 고민스럽다.
  무엇보다도 인간적, 정치적 이유로 솔직하게 쓸 수가 없다는 애로가 있다. 무자비한 사냥꾼에게 쫓기고 있는 사슴을 사슴이라 하지 못하고 노루라고 해야 한다면, 물론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 또한 글쟁이로서는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슴이라고 써버리면 진실을 말하기는 하지만 잔인한 사냥꾼들을 도와주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진실을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진실을 잘 알면서도 “그건 조작이야!”라고 외쳐왔다. 그러나 이제는 사슴을 사슴이라고 말하면서, 사냥꾼들이 사슴을 함부로 사냥하지 못하도록 두 팔을 벌리고 막아서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올바른 태도가 아닌가? 이런저런 고민이 줄을 잇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정직만이 힘이다!”라는 믿음으로 돌아가서 감히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하기로, 글을 쓰기로 결심한다. 우리 당이 상식이 상식으로 통하는 당이 되기를 바라는 일념으로, 우리 당이 대중의 상식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 이 땅에 대중정당으로 뿌리 내리기를 바라는 염원으로 쓰기를 다짐한다. 이 글의 논지에 찬성하지 않는 동지들도 나의 충정만은 이해해줄 것으로 믿는다.

  2. 아무리 고민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오늘날 조선로동당은 진보세력, 진보정당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조선로동당이 1945년 창당될 때에는 아마도 진보정당이었을 것이다. 아니 당시의 조선로동당은 확실히 진보정당이었다. 그러나 57년이 지난 오늘날 ‘만물은 변한다’는 철리(哲理)를 따라 또 하나의 보수정당이 되었다. 조선로동당이 여러 가지 좋은 말을 하고 있지만 그 말을 다 믿을 수는 없다. 남한의 보수정당들도 조선로동당 못지 않게 좋은 말들을 많이 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다. 조선로동당이든 남한의 보수정당이든 그들의 말을 믿기보다는 실제로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 정책을 취하는지 보아야 한다. 굶어죽는 수십만의 인민을 살리기 위해서 어떤 대책을 마련하는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수십만 실업자를 구제하기 위하여 어떤 정책을 세우는지를 보아야 한다.
  아무리 좋게 보아주려고 애를 써도 좋게 보아줄 수 없는 것이 꽃제비가 장바닥을 헤매는 북한 현실이다. 수십만이 굶어죽었다는 북한 현실이다. 그리고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조선로동당의 무책임하고 뻔뻔스러운 태도이다. 수십만의 백성을 굶겨 죽인 통치자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는 말인가? 옛날 왕들이었다면 ‘부덕함’을 인정하고 스스로 물러났을지도 모른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거짓을 전할 리 없는 <한겨레>가 연재한 「아! 굶주리는 북녘」이라는 기사 한 대목을 보자. 한승동 기자가 쓴 이 기사의 제목은 “북정권 배부른 흥정만 - 참상은 가린 채 ‘도움받을 조건’ 앞세워”라고 붙어 있다.

  “참 답답한 일이에요. 북한에 가보았거나 연변 또는 일본, 중국 같은 데에서 북한 사람들을 만난 사람들을 이야기해볼까요? 사석에선 북한의 참상에 눈물을 흘리면서 이야기하다가도 일단 공식 석상에선 이를 제대로 말하려 하지 않아요. 왜 그러는지 아십니까?” 대북 식량 지원에 헌신하고 있는 한 민간단체 회원의 하소연이다. 간단하다. “제대로 말했다가는요 북한을 자극해 그나마 어렵게 뚫은 지원 통로마저 막혀버릴 겁니다.”
  아무리 북한 인민을 도우려 하는 사람도 이 장벽에 가로막혀 진실의 입을 다물어야 하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숱한 사람들이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다른 한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북쪽의 식량난이 지나치게 과장된 것은 아닌지, 또 하나의 정치선전전은 아닌지 의심하곤 하는 판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데다가 북한이 정치선전 목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대규모 행사나 토목사업을 벌이기까지 한다면 북의 인민을 위해 식량을 지원하려는 사람의 맥은 더더욱 쭉 빠져버린다.
북한이 식량난의 민생과 상관없이 벌이는 대규모 전시사업을 보자. 지난해 7월 완공되고 올해 진입로 확장공사를 했다는 금수산궁전 개조에는 지난해에만 8천 3백만 달러가 투입됐다고 한다. 당 창건 기념탑, 금수산궁전 등 체제선전용 조형물 건설에 20억달러 가까이 소모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보고도 있다. 올해 4.15 김일성 전 주석 생일행사 때는 30개국에서 5백명의 대표단과 예술공연단을 초청하는 데만 2천 3백만 달러 이상을 소비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지난 2월에도 김정일의 왜곡된 이미지를 바로잡는다며 <뉴욕타임스>에 대대적인 광고까지 했다. 그 내용은 놀랍게도 김정일의 빼어난 사격솜씨 등 이른바 그의 ‘향도성’ 선전에 할애돼 있었다.(<한겨레> 97. 5. 13.)

  자, 이 정도 되면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과연 우리가 이런 현실의 북한에 살고 있었다면 어떤 태도를 취했을 것인가? 솔직하게 우리 자신의 양심에 물어보자.

  3. 아무리 얼버무리고 덮어두려고 해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남한 내에 조선로동당 지지자들, 이른바 ‘주사파’가 다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주사파는 학생운동에서 세력을 떨쳤다. 학생운동이 조선로동당 지지자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은 많은 문제를 낳았다. 특히 진보적 사회운동을 파탄지경에 이르게 하였다. 그래서 좀체 이 문제를 다루지 않던 <한겨레>가 마침내 1994년 9월초 「주체사상, 주사파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여러 필자들의 글을 연재하여 이 문제를 공론화하였다. 나도 당시에 여러 필자들과 함께 글을 썼다. 그 일부를 인용해 보자. 신문에 글을 쓰면서 부드럽게 표현하려고 ‘친북 이미지’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조선로동당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는 인상’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1987년 이후 노동운동이 활성화되었다고 하지만 정치적인 행동에서는 역시 학생운동이 노동운동보다 앞섰다. 그러다 보니 학생운동의 정치적 실천이 진보적 사회운동의 정치적 실천을 대표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지난 7년 동안 학생운동을 주사파가 주도한 결과 진보적 사회운동 전체가 친북적이라는 대중적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의 빚과 우리식 사회주의의 또는 국가 사회주의 일반의 파탄이라는 고집스러운 사실이 있는 한, 친북 이미지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도 국민의 신뢰를 얻기는 어렵다. 따라서 학생운동의 혁신, 이른바 주사파 문제의 해결 없이는 진보적 사회운동의 새로운 출발 역시 불가능하다.
…(중략)… 주사파 문제를 해결하려면 학생들의 민족주의적 정서와 통일열망을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보적 사회운동의 이념으로서 민족주의가 크게 현대화되고 진화해야 한다. 또한 이 과정을 통해 민족주의자들이 주사파와의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
물론 민주주의, 그 연장으로서 사회주의도 진화돼야 한다. 국가사회주의에 대한 견해를 분명하게 하고, 진화된 사회주의 즉 세계적 신좌파의 노선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리고 마음을 열고 생태주의와 페미니즘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사상적 혁신과 현대화는 기존의 운동권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진보적 사회운동을 탄생시킬 것이다.(<한겨레> 94. 9. 6.)

  십 수 년 주사파가 학생운동을 지배하면서 조선로동당에 심정적으로 지지를 보내거나 아니면 최소한 조선로동당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한국 사회 전반에, 특히 진보적 사회운동에 다수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사회에 나와서도 한 번 더 자기 부정을 하지 못하고 계속 조선로동당 지지자로 살고 있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월간조선>의 조갑제가 과장하는 만큼 조선로동당 지지자가 남한 사회 각계각층에 침투하여 다 말아먹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이 땅의 진보적 사회운동은 조선로동당 지지자들이 망쳐 먹었다. 북한전문가 이종석의 표현대로 그들은 ‘조선로동당의 대남정책의 지렛대 노릇’이나 했다.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투쟁을 통해 얻은 국민적 신뢰와 권위는 이른바 주사파의 시대착오적 인식과 실천에 의해 실추하고 말았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군부독재에 저항한 민주화운동, 그 후의 사회운동에 바친 그 엄청난 고통과 고생으로 모은 정치적 자산을 북한의 김씨와 남한의 김씨에게 다 털어 보태주고 말았다. 그것이 주사파의 이른바 통일운동이었고 ‘비판적 지지’였다. “남북 노동자, 서민과는 무관한 자들에게 갖다 바칠 만큼 갖다 바쳤다.”

  4. 아무리 참고 이겨내려고 해도 조선로동당은 우리가 가는 길에 너무나 무거운 짐이 되고 있다. 역사의 전통은 때로 짐이 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해 버려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선전을 해보고 조직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선거운동을 해본 사람이라면 민주노동당이 남한 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길게 드리운 조선로동당의 그림자를 벗어나야만 한다는 것을 충분히 느끼고 있을 것이다. 기실 ‘민주노동당’이라는 당명이 좋지 못하다는 의견도 바로 그러한 이야기, 즉 ‘민주노동당’이라는 이름이 상대적으로 이 사회의 소수인 의식화된 노동자들에게는 ‘노동자의 당’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는 조선로동당과 가까운 사이 또는 ‘조선로동당 남한 지부’ 같은 인상을 준다는 말이 아닌가?
  유럽의 좌파 정당들이 내세운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깃발은 스탈린주의와 스스로를 구분 짓기 위한 깃발이 아니었던가? ‘독재적’ 사회주의가 아니라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말이 아니었던가?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그런 ‘비겁한’ 태도를 비난하던 프랑스공산당마저 이미 1973년에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을 강령에서 완전히 삭제하자는 안을 중앙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키지 않았던가?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가? 소련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이름으로 레닌의 장담처럼 ‘부르주아 민주주의보다 천 배 만 배 더 민주주의적인’ 정치를 실현했다면 그렇게 할 필요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같은 이유로 남한의 진보정당이 대중에게 자신의 주장과 이념을 있는 그대로 알리고 자기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먼저 조선로동당에 대해서 분명한 입장을 천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너희들 진보정당이 북한의 조선로동당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묻는 사람들은 오히려 진보정당을 지지할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 마음 속 깊이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물어오는 많은 사람들의 질문에 명쾌한 답을 주지 못하고서 어떻게 진보정당이 대중정당으로 발전할 것인가?
  우리는 이 땅에서 자본주의의 모순으로부터 대중을 구하고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 사회를 지향하는 진보정당을 뿌리내리려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불과 50년 전에 6.25 전쟁이라는 좌우파 간의 격렬한 계급투쟁으로부터 촉발된 커다란 내전을 치른 분단국이다. 그래서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모든 이념과 그것을 실천하려는 일체의 노력은 그 지향하는 바가 조선로동당의 ‘주체사상’ 및 조선로동당이 북한에 만들어놓은 ‘우리식 사회주의’ 나라와 같은지, 다른지, 다르면 어떻게 다른지를 분명하게 하여야 한다.
  남한의 진보정당은 사회진보뿐만 아니라 통일된 국민 국가의 건설이라는 또 하나의 과제를 가지고 있다. 아니 우리가 만들려고 하는 평등한 사회와 자유롭고 인간적인 나라는 통일이 되어야만 온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궁극적으로 통합 진보정당은 남한의 민중에게 뿐만 아니라 북한의 인민에게도 희망을 주는 존재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다 적극적으로 조선로동당 남한 지부가 아닌 독립된 진보정당 창당의 당위성을 한반도적 차원에서 주장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정황들로 볼 때 사회당의 요구는 그 취지를 선의로 받아들일 만하다. 즉 통합 진보정당이 조선로동당에 대하여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완전히 독립적이라는 사실을, 통합 진보정당이 조선로동당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자 한다는 것을 천명하자는 제안으로 받아들인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통합 진보정당의 강령이나 창당 선언에서 조선로동당의 이데올로기나 북한의 현실에 대하여 철저하고 근본적인 비판을 아끼지 말자는 제안으로 받아들인다면 건전하고 옳은 제안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사회당의 요구가 무조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만큼 완전히 옳지는 않다. 왜냐하면 조선로동당에 대한 입장과 태도의 천명은 진지하고 깊이 있는 비판으로 나타났을 때 그 정치적 가치를 더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러한 입장이 ‘조선로동당 반대’라는 선정적이고 조야한 방식으로 표현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이 다른지를 말하지 못하면서 오로지 반대를 외치고 다른 길을 제시하지 아니 하면서 내용 없는 반대를 외쳐서는 안 될 것이다.

  5. 아무리 부정하고 싶지만 어떤 의미에서 사회당의 존립 근거는 우리 민주노동당이 주고 있다. 사회당과의 통합을 추진하기에 앞서 우리는 사회당이라는 존재 그 자체, 사회당의 존립 근거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이 창당에 참여하고 대중조직이 만든 진보정당, 민주노동당이 있는데 감히 사회당이라는 존재가 나타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였다는 말인가? 그것은 민주노동당의 노선이 분명하지 않음으로부터 비롯된 바도 있지 않은가?
  우리 당 강령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궁극적인 통일체제는 남한 자본주의의 천민성과 북한 사회주의의 경직성이 극복되면서…” 너무나 피상적인 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남한 자본주의는 천민성만 없으면 된다는 말인가? 마찬가지로 북한 사회주의는 경직성만 없으면 된다는 말인가? 경직하지 않은 국가사회주의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러한 피상적이고 애매한 표현은 강령이 분파들 간의 타협, 절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모택동은 일찍이 “혁명은 수놓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치는 한가한 신선놀음이 아니다. 불과 100년 전까지도 권력투쟁에 지면 바로 ‘역적’으로 몰리었다. 이 시대에도 권력 투쟁에 지면 심한 천대를 받고, 바로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것과 같은 모진 고생을 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정당의 이념 노선이나 강령은 대중의 눈길을 끌고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특색이 뚜렷하고 문제의 핵심을 찌르고 시대의 대의명분을 선명하게 내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 깃발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으로 승부를 걸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민주노동당의 노선은 분명하지 못하다.
  사회당은 정확하게 그러나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그 허점을 파고들고 있다. 여러 가지 정파를 아우르기 위하여 절충과 타협을 거듭한 결과 흐리멍텅해진 노선, 색깔이 우중충해진 깃발, 도대체 대중적으로 어필할만한 선명성이 없는, 벤처정당 다운 면모가 없는 정당이 민주노동당이 아니었던가? 여기에 녹색당과 사회당이라는 조직적 근거는 없지만 선명한 깃발 하나 뿐인, 지나치게 ‘벤처스런’ 벤처정당이 등장하고 있다. 벤처이어야 할 민주노동당이 재벌 같은 모습과 행동 방식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이들 벤처정당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창당을 추진하면서 현대적 좌파 이념과 정치철학들을 받아들이고 당의 노선을 분명하게 세워 ‘운동권’의 한계를 넘어서고, 당의 사회정치적 존립 근거를 넓히는 일은 도외시하고 단순한 머리 수 늘리기에 몰두하고 있는 일부의 움직임은 잘못된 것이다.
  사회당이 요구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되기 위해서 통합 진보정당의 이념과 노선은 분명해야 한다. 그리고 대중의 상식에 기초해야 하며 현실적이어야 하고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재창당과 통합의 과정은 바로 이념과 노선이 분명한 진보정당을 만드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우리 당이 정도(正道)를 간다면 설령 나중에 사회당이나 녹색당이 어떤 우리가 모르는, 순수하지 못한 이유로 통합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다만 ‘종파주의자’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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