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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07-10 10:23:12, Hit : 1842
Subject   하늘
머리 언덕에 앉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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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비평/Vagina Dentata: 씹어먹는 자궁
>천운영의 '바늘'(창비, 2001)에 대하여
>
>진보평론 제19호  
>김형중, 문학평론가/광주인문사회과학전문서점,'청년글방'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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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에 근거한다는 모든 유의 여성성이란 항상 모든 여성이
>폭력적으로 강요당해야만 했던 것이다. 여성은 남성이다.
>- 아도르노, '한줌의 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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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버지가 없다
>
>천운영의 거의 모든 소설에서 아버지는 부재중이다. 가령 「바늘」에서 아버지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어머니가 짝사랑했던 현파스님이 차지하는 듯하지만, 이내 그는 어머니에 의해 살해당한다. 「월경」에서 아버지는 부정을 저지른 어머니를 살해하고 철길을 따라 떠나 버린 지 오래다. 「눈보라콘」의 모든 인물들(주변 인물들을 포함해서)에게는 아버지가 없으며, 「포옹」에서도 「당신의 바다」에서도 아버지들은 죽었거나 소식이 두절된 상태다. 천운영 소설 속에 아버지가 들어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설사 잠깐이라도 아버지가 소설에 등장할 경우 그들은 예외 없이 지극히 폭력적인 가부장제의 화신(「유령의 집」, 「당신의 바다」)으로 나타난다. 아니면 ‘소싸움 훈련꾼’ 이나 ‘결핵 보균자’(「포옹」)로, 요컨대 지극히 비루하고 부정적인 형상으로만 나타난다.
>사실 한국 소설사 전체를 놓고 볼 때, ‘부친 부재’의 모티브는 너무 흔했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한국 현대사를 일별해 보면, 이런 현상의 이유 역시 쉽사리 이해되기도 한다. 일제 때는 징용에 끌려가거나 독립운동 하러 만주로 떠나고, 한국 전쟁 중엔 국방군으로 빨치산으로 인민군으로 참전하고, 유신 독재 치하에서는 월남으로 사우디아라비아로, 하다못해 ‘사회 정화’라는 그럴듯한 명목으로 국토 개발단에라도 끌려가고, 80년대에 들어서면 노동운동 하러, 학생운동 하러, 혹은 감옥에 가거나 강제 징집당해 끌려가기도 했던 이땅 남성들의 역사가 소설에 남긴 흔적이 바로 부친 부재의 모티브였을 것이다. 그러니 천운영 소설의 부친 부재가 그 자체로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운영의 부친 부재는 새롭다. 그 자체로 새로운 것이 아니라 그것의 결과가 새롭다. 그 새로움은 천운영이 이 부친 부재의 상황으로부터 전혀 새로운 성격의 ‘여성성’을 끌어내고 있다는 사실에서 연유한다. 천운영에게 아비 없음은 김성동에게서처럼 남성 주체의 모성 고착으로 나타나거나, 이문열에게서처럼 강한 레드 콤플렉스로 나타나지 않는다. 김소진에게서처럼 아비에 대한 끝없는 동정과 연민으로 나타나지도 않으며, 서정주에게서처럼 미학주의의 핑계로 나타나지도 않는다. 천운영의 부친 부재는 그로테스크하고 기괴하게도 ‘씹어먹는 자궁’(Vagina Dentata), 한국문학사에서는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탐욕스러운 ‘여성성’을 결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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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성과 남성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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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 부재의 상황이 일차적으로 조장하는 것은 ‘오이디푸스적 상황’ 속으로의 퇴행이다. 이 역시 너무 식상해져버린 개념인지라 설명은 피하자. 단 강조해 두어야 할 것은 천운영적 인물들의 퇴행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전’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오이디푸스적 갈등 상황 속으로’ 향한다는 사실이다. 천운영의 주인공들은 ‘아버지라는 이름’의 금기가 개입하기 전 상태의 모성적 낙원으로 퇴행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라는 이름의 금기가 개입 중이어서 고도로 갈등적인 상황이 이미 시작된 단계로 퇴행한다.
>오이디푸스적 갈등 이전에 주체는 자신의 성적 주체성을 자각하지 못한다. 이 갈등을 성공적으로 경과한 후에야 주체는 자신의 성적 주체성을 확립한다. 반면 격렬하게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과정 속의 주체는 성적 정체성에 있어 ‘양가적’이다. 주체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갈등한다. 아비와 어미 사이에서 갈등하고, 대상에 대한 욕망에 있어서도 지극히 갈등적으로 양성애적이다. 주체는 남성이면서 여성이고, 남성을 갈망하면서 여성을 갈망한다. 「바늘」이 그 좋은 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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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한복 만드는 법을 배워 엄마처럼 고운 옷을 만들리라, 실톳에 밑실을 감거나 옷감 물들이는 일부터 시작해서 앞섶의 날렵한 선을 박음질할 수 있을 때까지 엄마 곁에 꼭 붙어 있겠다, 그것이 내 생각이었다.(「바늘」, p.24)
>
>인용문은 소설의 화자가 정상적으로 갈등 상황을 돌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화자는 어머니의 고운 바느질 솜씨를 배우고 싶어한다. 여성 화자가 어머니와 동일시하고자 하는 욕망은 정상적이다. 화자가 ‘바늘’에 대해 갖고 있는 거의 페티시즘적인 집착 또한 여기서 연원한다. 그러나 사태는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어머니는 바늘로 ‘수를 놓았다’. 예컨대 바늘을 ‘여성적인’ 용도로 사용했다. 그러나 화자는 바늘을 그렇게 사용하지 않는다. 화자는 바늘로 남성들(거세 공포를 남근 상징의 문신들을 통해 보상받고자 하는)의 몸에 문신을 새겨준다. 게다가 그 문신들은 대개 무기(칼, 미사일, 창 등)의 형상일 경우가 많다. 남근 상징들이다. 요컨대, 화자는 어머니와는 달리 바늘을 공격적인 용도로, 그리고 남근 선망을 충족시키는 용도로 사용한다. 즉 화자는 어머니와의 동일시 욕구와 동시에 남근에 대한 선망 역시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갈등적 성 정체성의 소유자로 나타나는 것이다. 다음의 인용문은 이와 같은 심증을 더욱 굳게 한다.
>
>“내가 군대에 갔을 때 고참들은 내가 곱살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심한 얼차려를 주곤 했어. 난 정말 꿋꿋하게 이겨냈어. 그런데, 어느날 내 옆에서 잠자던 고참이 내 바지를 벗기고 있다는 걸 알았어. 난 꼼짝도 할 수 없었어……”
>“……”
>“그때 난 알았지.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건 두 가지. 거세를 하거나 강해지는 것……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뭐라 생각해? 강해지는 것 밖에 없어. 넌 그걸 해줄 수 있잖아.”
>“내가?”
>“내 몸을 가장 강력한 무기들로 가득 채워줘. 칼이나 활 미사일 비행기 뭐든.”(「바늘」,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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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가슴에 새끼손가락만한 바늘을 하나 그려주었다. 티타늄으로 그린 바늘은 어찌 보면 작은 틈새 같았다. 어린 여자아이의 성기같은 얇은 틈새. 그 틈으로 우주가 빨려들어 갈 것 같다. 그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기를 가슴에 품고 있다. 가장 얇으면서 가장 강하고 부드러운 바늘.(「바늘」, p.33)
>
>첫 번째 인용문은 화자가 사내의 가슴에 새겨준 바늘 문신의 최초 의미를 부각시킨다. 일차적으로 그것은 거세 불안에 맞서는 남근의 의미를 가진다. 남근을 상징하는 무기들을 몸에 새김으로써 사내는 군 시절의 경험에 의해 촉발된 거세 공포를 극복하고자 한다. 그러니 그의 가슴 한 가운데 새겨진 바늘 문신은 일차적으로 보상된 남근이다.
>그러나 두 번째 인용문은 이러한 최초의 해석을 뒤집는다. 화자는 바늘 문신을 “여자아이의 성기”에 비유한다. 틈새를 가진 새끼 손가락만한 바늘의 형상은 여성 성기를 즉각 연상시키는 데가 있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바늘이 화자에게는 어머니와의 동일시 수단이었음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바늘은 또한 여성 상징이기도 하다. 결국 사내의 가슴에 새겨진 바늘 문신은 화자가 성 정체성 확립을 위한 격렬한 갈등 속에 있음을 암시한다. 남성성과 여성성의 격렬한 갈등이 화자 내부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 갈등을 표현하는 객관적 상관물이 여성 상징이자 동시에 남성 상징인 바로 그 바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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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Vagina Dent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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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게 탄생한 그 바늘은 어떤 바늘인가? “우주를 빨아들이는” 틈새, “가장 얇으면서 가장 강하고 부드러운”, 달리 표현하자면 남성적 공격성을 무기로 갖춘 여성성, 파괴와 폭력을 임무로 부여받은 자궁, 곧 ‘씹어먹는 자궁’(Vagina Dentata)이다.
>장르를 바꾸면 사실 ‘씹어먹는 자궁’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는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가령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광란의 사랑>에 나오는 사랑의 방해자 어머니, 조토로프스키 감독의 <성스러운 피>에 나오는 연쇄살인 교사자 어머니, 피터 잭슨의 <데드 얼라이브>에 나오는 탐욕스러운 좀비 어머니(실제 이 어머니는 영화의 마지막에 그 거대한 자궁에 돋은 이빨로 아들을 씹어 삼킨다), 이르게는 히치코크의 <싸이코>에 등장하는 질투하는 어머니 역시 씹어먹는 자궁의 이미지를 재현한다. 그러나 그 재현은 모두 노골적으로 부정적인데, 대중문화 특유의 관습이 아마도 이처럼 부정적인 어머니 형상을 필연화 했을 것이다. 대중문화 속에서 로맨스는 항상 방해자를 필요로 하고, 자유는 억압자를 필요로 한다. 씹어먹는 자궁들의 만행이 극렬할수록 해피 엔딩의 카타르시스는 강렬해진다.
>그러나 천운영은 자신의 여성 주인공들을 이렇게 부당하게 다루지 않는다. 반대로 천운영은 자신의 여성 주인공들에게 씹어먹는 자궁의 이미지를 부여함으로써 카타르시스나 감동보다는 그로테스크하고 기괴한 감정을 유발시킨다. 천운영의 소설들은 불쾌하다. 특히 남성 독자들에게는 더욱 불쾌하다. 그리고 그 불쾌함은 그녀가 교란시켜 놓은 전통적 성 역할에서 기인한다.
>가령 「행복한 고물상」의 다음 장면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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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돌린 아내는 상처를 치료해주며 내가 미친년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다, 한순간 돌아버린 모양이다, 하고 빌기 시작할 것이다. 벽에 머리를 박으면서 후회하는 과장된 모습에 나는 쉽게 동요한다. 울컥 눈물이 솟아오를 것 같기도 하다. 아내가 나를 미워해서 때리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내 면상을 후려치는 북두갈고리 같은 손을 가진 억척스런 고물상집 여자지만, 앙증맞은 반지를 끼고 크림을 듬뿍 발라 부드럽던 손을 아내도 가진 적이 있다.(p.162, 강조는 인용자)
>
>역할이 바뀌었다. 익숙한 소설 문법대로라면 강조한 부분들은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어야 맞다. ‘아내는 → 남편은’, ‘내가 미친년이다 → 내가 미친놈이다’, ‘아내가 → 남편이’, ‘여자 → 남자’, ‘앙증맞은 반지를 끼고 크림을 듬뿍 발라 부드럽던 손을 아내도 가진 적이 있다 → 남편도 내 손에 앙증맞은 반지를 끼워주고 크림을 듬뿍 발라주던 적이 있다’. 그러나 천운영은 그렇게 쓰지 않는다. 아내가 남편을 습관적으로 구타하고, 남편은 그 폭력에 고스란히 자신의 몸을 맡긴다. 성역할이 전도된다. 가부장제의 폭력이 그대로 남편에게 되돌아간다. 그러므로 만약 천운영의 소설을 읽고도 불쾌함이 아니라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독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십중팔구 여성일 것이다.
>도대체 천운영 소설 속에서의 이와 같은 성역할 전도는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전도는 아마도 바로 예의 그 ‘포식성’ 자궁과 관련될 것이다. 천운영에게 여성은 통념(포용성, 치유성, 식물성, 초식성과 여성성을 관련시키는)과 달리 ‘육식성’이다. 그녀들은 육식을 즐긴다. 심지어는 육식만 한다. 그녀들은 주로 “양념하지 않은 고기를 먹는다. 손가락 두께로 썰어서 피가 살짝 날 정도로 구운 쇠고기나 마늘과 양파를 많이 넣고 삶은 돼지고기를 좋아한다. 상추와 같은 야채를 곁들여먹지도 않는다”(「바늘」, p.17). 게다가 몸에 든 병마저도 육식으로 치유한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빈혈기가 있다 싶으면 생간을”, “무릎이 시큰거릴 때는 우족이나 스지를”, 속이 불편할 때는 “된장을 풀어 끓인 내장탕을”, 심한 감기를 앓은 후에는 소의 허파를(「숨」, p.45) 먹는다. 심지어는 손자가 결혼하겠다고 말하는 순간에마저도, ‘송치’(자궁속에 든 채로의 송아지)를 먹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숨」) 그녀들은 고기를 탐한다. 요약하자면 그녀들은 모두 ‘씹어먹는 자궁’들, 전통적인 성 역할을 완전히 교란시키는 육식성의 여성들이다.
>바로 그 육식성으로 하여, 그녀들은 참으로 위험한 여성들, 가부장제의 폭력을 고스란히 남성 주체들에게 되돌려주고, 그럼으로써 기존의 관습이 인정한 대로의 ‘여성성’이라는 관념 자체를 조롱하고 비웃는 ‘씹어먹는 자궁들’이 된다. “모든 유의 여성성이란 항상 모든 여성이 폭력적으로 강요당해야만 했던 것”이라는, 그래서 우리가 상상하는 여성이란 실제에 있어서는 남성적 가상에 의해 깊게 침윤된 것이었다는 아도르노의 통찰이 소설적으로 재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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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버지를 찾아 바다로 떠난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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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성에 대한 전복은 필연적으로 남성성에 대한 재성찰을 요구한다. 천운영 소설 속에서는 남성성 또한 관습적인 이해를 벗어난다. 다음의 예문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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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관의 탁한 물 속에 몸을 말고 있는 곰장어와 그 앞에 나란히 누운 당신의 뒷모습.(「당신의 바다」,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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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누가 그리워하는가? 당연히 여성이다. 물의 이미지는 신화적으로 여성과 관련된다. 바다가 생명체에 대해 갖는 의미는, 어미 자궁의 양수가 인간에게 갖는 의미와 등가이다. 또한 바다는 그것의 조수간만이 달의 운행 주기와 리듬을 같이하고, 다시 달은 찼다가 기울기를 반복한다는 성질(잉태와 출산), 그리고 여성들의 달거리 주기를 결정한다는 사실로 인해 쉽게 여성성의 이미지를 부여받는다. 달은 신화․상징적으로 여성성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달과 바다와 여자는 상징적으로는 동일한 이미지를 갖는다.
>그러나 천운영에게서는 그렇지가 않다. 인용문의 ‘당신’은 여성이 아니다. 그는 화자의 남편이다. 게다가 이 사내가 바다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바다가 모성 원리를 환기시키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어렸을 적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아’ 소설 말미 바다를 향해 떠난다. 「당신의 바다」는 ‘아버지를 찾아 바다로 떠난 사내’의 이야기다. 바다와 아버지, 물과 남성성이 결합되면서 관습적인 소설문법의 성 역할은 철저하게 교란당한다. 다른 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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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에 발끝을 대본다. 맨발에 차가운 쇠의 느낌이 전해져온다. 나는 감전되지 않는다. 은행잎 하나가 날아와 발부리에 닿았다가 철로 사이에 몸을 누인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철길을 넘어선다. 그리고 그가 걸었던 길을 조심조심 밟아 걷는다. 발을 디딜 때마다 잠든 곤충들의 낮은 숨소리가 들린다.(「월경」,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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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이 뜨고, 오래전 신화시대부터 지구상에 존재했다는 은행나무 잎이 지는 밤에 누군가 길을 떠났다면 그 길은 대개 어머니를 향해 있기 마련이다. 신화적인 밤은 가부장제적 일상으로부터 탈출하는 여성들을 위해 만월을 준비하고, 그 일탈을 부추기는 게 관습상 맞는 소설 문법이다(가령 전경린의 「염소를 모는 여자」를 보라). 그러나 인용문의 주인공은 누구를 향해 떠나는가? 그는 자신을 견고하게 가로막고 있던 금기로서의 철로를 따라 어미 아닌 아비를 향해 떠난다. 모성이 아니라 부성이 추구의 대상이다. 천운영의 소설 속에서는 바다가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달과 은행나무 또한 여성의 차지가 아니라 남성의 차지다. 여성성이 그러했던 것처럼 남성성 역시 전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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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동성애자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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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적인 성역할이 교란될 경우, 양성애나 동성애 또한 더 이상 금기의 영역이 아니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천운영의 소설 속에는 동성애 모티브가 심심찮게(「등뼈」, 「월경」, 「포옹」) 등장하곤 한다. 사실 이런 현상은 애초에 천운영이 자신의 소설들을 ‘부친 부재’ 상황이라는 지반 위에 놓았을 때부터 추론이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부친 부재 상황은 오이디푸스적 갈등 상황을 불러일으키고, 이 갈등이 정상적으로 마무리되지 못할 경우 주체는 성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이성애를 습득하는 데 곤란을 겪을 여지가 많다. 더욱이 폭력적인 아버지나 탐욕스런 어머니에 의해 주체의 무의식 내부에 ‘이성 혐오’가 자리잡을 경우 동성애로의 진행은 쉬워진다. 「포옹」의 두 여주인공이 그렇다. 다음의 장면에서 두 사람의 동성애적 욕망은 명백히 가시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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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까스로 그애가 누운 침대로 기어오른다. 등이 아파온다. 등뒤에서 바람소리가 난다. 이불을 들치고 그애 옆에 몸을 누인다. 등뒤에 닿은 그애의 가슴이 따스하다. 후끈한 숨결이 속삭이듯 귓불을 간질인다. 나는 그애의 숨결을 느끼며 눈을 감는다. 어렴풋이 내 머리를 쓰다듬는, 이윽고 조용히 등을 어루만지는 그애의 손길이 느껴진다.(「포옹」,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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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인공의 부친은 각각 ‘결핵 보균자’와 ‘싸움소 훈련꾼’이다. 결핵 보균자 아비는 그 균을 딸의 등뼈에 퍼뜨렸고, 이로 인해 곱추가 된 그녀는 평생 남성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게 되었다. 또 싸움소 훈련꾼 아버지의 가혹한 폭력은 소녀를 부친살해범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그녀들의 동성애는 부친의 폭력에 그 기원을 두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폭력적인 가부장의 존재가 어떻게 그의 딸들을 동성애자로 만드는가 하는 정신병리학적 주제가 이 작품의 전부는 아니다. 이 작품의 진정한 주제는 소설 말미에서야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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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배는 농밀한 어둠을 가르며 어디쯤 지나고 있는 걸까. 왼편 어느 즈음에 내가 떠나온 청도가, 그리고 오른편으로 또 다른 청도가 있겠지. 나는 지금 청도와 청도 사이를 가로질러 남쪽으로 향한다.(「포옹」,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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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 한가운데 전설 속의 푸른 섬이 하나 있어.
>그애가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내 말을 기다린다. 나는 천천히 말을 잇는다.
>- 그 푸른 섬은 바다 깊숙한 곳에 있대. 바다생물들과 육지생물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지. 그곳에는 피부가 빙설 같고 해초를 뜯어먹고 사는 신인이 있어. 그녀가 정신을 집중하면 만물이 소생하고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지워준대. 그러니 걱정 말아. 어느 곳에 도착하든 우린 안전할 거야.
>- 고통스런 기억을 지워줘요?
>- 그래, 그곳엔 가위눌리는 병을 고쳐주는 흰 꽃도 있대. 어떤 책에서 봤어.
>- 그럼 거기로 가요. 배가 난파되면요.(「포옹」, p.243, 강조는 인용자)
>
>첫 번째 인용문의 ‘청도’는 소녀가 아버지를 화형시키고 떠나온 고향이다. 그러므로 지금 두 주인공은 중국의 청도와 동해안의 청도가 형성하고 있는 자장권을 돌파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그 자장권은 소싸움꾼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가부장적 폭력의 자장권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들은 그 강력한 자장권을 어떻게 돌파하는가? 이미 살펴본 바, ‘동성애적 연대’를 통해 돌파한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동성애는 단순히 가부장제로부터의 병리적 도피라고 하는 수동적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다. 동성애는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연대적 저항이라고 하는 적극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로 확대된다.
>그러므로 이어지는 두 번째 인용문에서 묘사된 ‘푸른 섬’은 더 이상 가부장제의 억압이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의 이상화된 형태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신인(神人) 마저도 여성(물론 이때의 여성은 남성적 가상을 벗어 던진 여성일 것이다)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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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맺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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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 소설의 강력한 매력, 무서움, 그로테스크함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그녀 이후로도 우리가 만약 초식, 식물, 달, 바다, 치유, 포용 등의 이미지를 관례적으로 ‘여성성’과 결합시킨다면, 시쳇말로 우리는 여성을 두 번 죽이는 셈이다. 또한 그녀 이후로 우리는 육식성, 공격성, 견고함 등의 이미지들을 ‘남성성’과 관련시키는 편견 또한 버려야 할 것이다. 천운영은 관습적인 성 역할을 신화소의 차원에 이르기까지 전도시킨다. 그녀는 급진적인 성정치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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