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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코프스키 2009-03-29 08:31:47, Hit : 921
Link #1    http://blog.aladdin.co.kr/apouge/2205713
Subject   [욕망하는서재]촘스키의 아나키즘
















진보적 지성인

하워드 진과, 노엄 촘스키와 같은 미국의 진보적 지성인들을 인간적으로 지극히 존경함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진리 혹은 진실"의 설파를 통한, 사회 변혁이라는 레토릭, 예를 들어 CIA가 지금까지 해온 추한 일을 사람들이 모두들 잘 알게 된다면, CIA는 지금처럼 계속해서 추한 짓거리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은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그들이 계속해서 그러하기를 원하는지, 어쩌면 그들은 그러하지 않기를 바람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어떤 악순환적인 구조 안에 들어서 있다고 말하는 게 차라리 좀 더 설득력이 있다. (그러니까 구원은 우리가 말 할 수 있는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은.) 과거에 촘스키의 이런 저런 책을 들춰 보면서 큰 인상을 받지 못했던 것도 아마 이런 나의 선호도가 작용하지 않았을까 한다.

하지만 그런 촘스키가 무정부주의자인 건,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아마도 제목만으로는 촘스키의 수많은 저작 중 가장 급진적인 내용을 가졌을 것 같은데, 그런 점에선 기대된다. 몇 달 전에 조금 들추어 보다가, 번역이 약간 오돌거려 한 구석에 밀어 두었는데, 다시 들어 한 장을 읽어보니 생각보다 괜찮다. (원래는 위의 국역본 옆에 있는 다니엘 게랭의 아나키즘의 서문으로 실린, "무정부주의란 무엇인가?"만을 읽을 계획이었으나, 어떻게 하다 보니, 여기저기 찔러보게 되었다.)

무정부주의의 정의 그리고 목표

“무정부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약간은 순진한 질문에 대하여, 푸리에, 바쿠닌, 맑스를 비롯한 19세기의 혁명, 사회주의 이론가, 역사가들의 다양한 생각들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는데, 간단하게 답변을 하자면 국가 소멸 후 “자율적인 생산자들의 자율적인 연합체”이다. 이와 같은 답변-결론이 무정부주의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 촘스키가 도출해낸 결론이다: (흥미로운 건 푸리에 같은 이들은 이러한 무정부주의자들을, 일종의 역사 발전의 단계로서 이해한다; 노예 상태에서 농노, 농노에서 임금 노동자, 마지막 세 번째, “생산자들로 결성된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연합체들이 직접 경제를 관리하는 해방의 최종 조치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완전히 없애는 것” (61))

촘스키가 말하는 무정부주의의 목표는 “고도로 조직화된 사회를 추구함으로써 서로 다른 많은 종류의 조직체를 통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명령을 내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해당 조직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직접 조직을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171) - 일종의 급진적인 참여민주주의이고, 촘스키는 민주주의를 의회민주주의와는 대단히 구별되는, 그리스 시대 폴리스에서 행해지던 직접 민주주의의 의미로서 비교적 제한적으로 사용한다.


무정부주의와 인간본성

“6장 무정부주의,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미래에 거는 기대”에서 인터뷰의 질문자가 촘스키에게 “인간 본성의 변하지 않는 특징은 왜 사회가 근본적으로 무정부주의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할 수 없는지 그 이유가 되는 논거로 자주 사용됩니다. 당신은 다르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을 던진다. (177) 여기에 대해 촘스키는,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하여 충분히 대답할 수 있을 만큼 인간 본성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며, 비록 우리가 과학적으로 인간의 본성에 대해 많은 부분을 알고 있더라도, “우리의 희망과 소망 그리고 직관력과 추측들이야말로 인간의 더 중요한 특성들”이라고 답한다. (178-180) 간단히 말하면, 인간의 이기적인 성격 때문에, 이타적 본성을 강조하는 무정부주의는 현실화 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하여, 촘스키는 우리는 인간 본성이 이기적인지 이타적인지 결정 할 수 있을 만큼 과학적으로 충분히 알지 못하며, 실제 그러한 본성 혹은 특성이 어떠하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소망, 가령 이타적이 되고자 하는 소망 혹은 희망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 본성의 변화 (가령, 사리사욕이 아닌 동기부여, 이타주의, 지식과 교양, 학문 등 좀 더 고차원적인, 혹은 인간적인 활동에 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인간 본성의 변화)는 사실, 무정부주의의 역사 혹은 사회주의의 역사에서, 단순한 소망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이를, 직접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인간본성 개조 프로그램으로 생각하고, 이를 실천했다: “더욱이 이런 정신적 변화는 좌파 마르크스주의 전통과 룩셈부르크의 주장 그리고 무정부주의적 노동조합주의를 따르는 모든 사회 사상가들이 항상 강조해왔던 변화입니다.” (102) 문제는, 이런 본성의 변화가 어떻게 가능한가인데, 국가 주도 하에서 있었던 변화는 소비에트와 중국의 문화혁명에서 보여주었듯이, 처참한 실패이기에 다시 상상하기도 싫다. 그렇다고 이를 비자본주의적 코드와, 혹은 자본주의적 영토에서의 탈영토화로 이해하는 것 역시 별로 설득력이 없다. (물론 좀 더 복잡한 이야기이지만, 간단히 말해, 어떻게 나이키를 욕망하지 않을 수 있는가!  코카콜라를 욕망하지 말라는 말처럼 비현실적인 주장은 없다고 생각한다.) 유일한 가능성은, 전지구적 재앙 혹은 외계인의 등장으로 인해, 지구적 공동체, 연대감의 강화, 그리고 이를 통한 윤리적 성숙도의 배가만이 지금의 자본주의적 욕망에 어느 정도 브레이크를 걸어주지 않을까? 달리 말해, 뉴욕이나 런던 어디 하나 정도는 물에 잠겨야, 그나마 사람들이 조금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자율과 계몽의 아이러니

촘스키는 “무정부주의는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분명 반자본주의다. 그러나 무정부주의는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도 반대한다.” (59) 그러니까 문제는 자율이라는 건데, 인간은 자율적으로 계몽이 되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를, 타인을, 계몽되지 않은 사람을 계몽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심지어 계몽되고 싶어 하지 않은 사람들마저 계몽해 왔던 게 근대의 역사인데, 그런 계몽과 무정부주의적 자율이 어떤 식으로 상충되지 않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자율적으로 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누군가를 계몽하려고 하는게 아닌가?

아나키즘의 현실성, 영감으로의 아나키즘

현대 사회에서 아나키즘의 현실성이 있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국가 없는 공동체, 공동체 연합 혹은 어떤 형태의 사회조직은, 국가와 국가의 적대적 관계들의 총합으로서 다가오는 정치적 현실 앞에선 대단히 무기력하지 않을까? 꼭 이것이 칼 슈미트가 말하는 적대의 정치 때문에 그러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발비바르가 주장하는 것처럼, 국가의 외부에서 저항을 꿈꾸는 것의 불가능성 때문만도 아니다. 그보다 근본적인, 인간 본성이 가지고 있는 반-아나키즘적 성질 때문이라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아나키즘을 가질 수 있다면, 아마도 태도, 자세, 혹은 원동력 정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아나키즘은 이상적 목표 그 이상-이하도 아니다. 촘스키가 지금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최소한 “무정부주의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선, 무정부주의를 일종의 길잡이, 영감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이 후, 다른 글들 혹은 인터뷰에서, 촘스키는 무정부주의를 현실적인 궁극의 비전으로 삼고, 그 중간단계로, 시장의 독재 혹은 전체주의적인 시장을 막을, 국가 권력의 강화를 현실적인 목표로 삼는다: “나의 단기 목표는 국가 권력의 기본 요소들을 보호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국가 권력이 비록 근본적으로는 부당한 권력이지만, 민주주의와 인권을 신장하면서 일궈낸 진보를 ‘후퇴’시키려고 혈안이 돼 있는 세력들을 막으려면 지금 당장은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195)

ps. 항상 일관되게, 명확한 논조를 구사하는 촘스키인데, 흥미로운 건, 그가 현대 철학가들 혹은 사상가들을 거의 거론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주요 참고문헌이 대부분 19세기 사상가들에 할애 되어 있는데, 여기엔 촘스키의 이론 혐오중이 작용하는 듯하다: “인간사에서도 늘 그렇듯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실질적인 전망이다. 우리가 아무리 이론적으로 이해를 잘 한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피상적으로 아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않는다.” (189) 나아가 이렇게도 말한다: “마찬가지로 대학원 과정 언어학 세미나에서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나오면 그들일 알고 싶어 하는 용어를 나는 상세하게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데리다의 최근 논문을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설명해달라고 요청해보면 어떨까요? 분명히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설사 있다 해도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설명해줄 수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나는 데리다의 논문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식인들이 어떤 이유로 아무도 이해할 수 없고 보통 사람들에게 설명해줄 수도 없는 주제나 문제들을 선호하는지 자문해봐야 합니다.” (242) 이건 거의 스캔들에 가까운 발언인데, 글쎄 솔직히 진의가 궁금하다. 과거에 한 연구실에 촘스키의 변형생성문법을 연구하던 분들이 있었는데, 그 분들이 겪은 고통은 내가 데리다를 처음 읽으면서 겪었던 고통에 필적했다고 생각하며, 촘스키가 진정 데리다를 이해 못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별로 아쉬울 건 없다. 데리다 또한 촘스키를 진정으로 이해하지는 못할 테니까 말이다. 달리 말해, 현대 사회에서 학문/지식의 분과화, 고립화의 경향은, 촘스키가. “무정부주의, 지식인, 그리고 국가”라는 인터뷰에서 주장하듯이, 쉽게 극복되거나, 계몽 될 수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분명 지식인은 계몽적 태도를 취해야만 한다. 그리고 기업과 국가에 결탁하여, 지식을 자본화하고 권력화하는 지식인들을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확장되는 지식의 영역에 따른 피할 수 없는 세분화 그리고 이로인환 고립화는 한편으론 피할 수 없는 딜레마이지, 이를 반계몽적이거나, 특정 지식인들의 대중기만적 유행으로 폄하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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